무릎딱지 한울림 그림책 컬렉션 12
샤를로트 문드리크 지음, 이경혜 옮김,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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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하지요. 어제 저녁 같이 근무하고 있는 선생님이 사랑하는 부친을 떠나보내셨습니다.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지만 늘 이런 일을 겪을 때면 황망함이 앞섭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행복한 결혼식장에 갈 일보다는 장례식장을 찾는 발걸음이 더 잦아지고 돌아오는 길에는 자연스레 저의 부모님과 시댁
어른들을 떠올립니다.
나이든 어른조차도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많이 위축되고 불안합니다. 아직 삶과 죽음의 이치를 이해하는 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닥친 죽음은 어른보다 훨씬 더 혼란스럽고 충격적이리라 생각됩니다.

<사진 속 울 엄마> (이브 나동 지음 / 마농 고티에 그림 / 이정주 옮김. 개암나무. 2009)는 엄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일곱 살 막심의 이야기입니다.
3월의 어느 날 밤, 너무 많이 아프고 힘들어서 떠난 엄마, 이제 막심에게 남은 것은 엄마랑 휴가지에서 재미난 표정으로 찍었던 즉석사진 뿐.
막심은 작지만 소중한 사진들을 자주 꺼내 봅니다. 마치, 엄마와 함께 있는 것처럼.
눈을 들면 엄마가 보이고, 눈을 감으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고, 솔솔 바람이 코끝을 스치면 엄마라는 걸 압니다. 그리고 잠에서 깰 때면 엄마의 웃음소리가, 잠자리에 들 때면 엄마의 자장가 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요.
엄마의 빈자리가 막심에겐 너무 크지만 사랑하는 아빠, 오렐리 아줌마, 할머니, 고양이 키위곁에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리라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에게 울 엄마 얘기를 해 주기로 말이에요.

<무릎딱지> (샤를로트 문드리크 지음/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 이경혜 옮김. 2010. 한울림어린이)
<사진 속 울 엄마>가 '엄마의 죽음'이라는 아이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지만 약간은 가벼운 분위기로 죽음에 접근할 수 있는 책이라면 <무릎딱지>는 한층 무거운 느낌을 줍니다.

전체적으로 빨간색 배경, 빨간색 소파 그리고 소파에 앉아 있는 아이의 무릎에 난 새빨간 상처가 그려져 있는 표지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로 이어지는 충격적인 시작.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를 어느 날 갑자기 잃은 아이가 겪는 공포와 아픔이 절절하게 표현된 책이라 그림책이지만 읽어내기가 많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분노와 부정이 반복되다 그것이 엄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집착으로 바뀌면서 그 속에서 아파하는 아이는 너무 고통스럽게 다가옵니다.
집 창문을 열면 엄마의 냄새가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창문도 열지 못할 정도로 아픈 아이의 마음. 그런 아이를 지켜보는 어른들도 참 많이 아플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혹여 내가 떠나고 없는 순간이 오면 내 아이가 느낄 아픔이 이러할까 싶어 괜히 훌쩍이기도 하고, 내 아이에게는 이런 아픔을 주고 싶지 않으니 건강하게 더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운동을 시작해 볼까 하는 당찬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던 할머니는 아이에게 엄마는 움푹 들어간 여기. 가슴 안에 늘 있다고, 그 가슴속에서 영원히 아이와 함께 살거라고 위로합니다. 너무 절절한 아픔이 녹아있는 책이라 아이들보다는 부모님에게 적당한 책입니다.


<아빠 보내기> (박미라 글 / 최정인 그림. 시공주니어. 2004)는 간암으로 아빠를 떠나보낸 민서의 이야기입니다.

엄마와 슬픈 나날을 보냈지만 민서는 차츰 슬픔에서 벗어나게 되지요. 하지만 엄마의 슬픔은 나아지지가 않았습니다.
새벽에 놀이터에 우두커니 나가 앉아있는 엄마를 보게 되면서 민서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집니다. 혹여 아빠처럼 엄마도 민서 곁을 떠날까봐.

다행히 마음 따뜻한 7층 할머니를 만나면서 민서는 엄마 마음에 있는 상처를 다독여 줄 방법을 찾게 되지요.
'밤마다 엄마에게 동요 불러주기' 를 선택한 민서는 친구 미정이의 반주로 열심히 연습을 하게 됩니다. '섬집 아기', '클레멘타인'.. 그 노래들을 부르니까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쪼개지는 것처럼 아팠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민서. 엄마 아빠와 함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엄마를 위한 동요 부르기였지만, 결국 민서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엄마는 7층 할머니와 산책도 하고 아파트 버려진 땅에 텃밭 가꾸기를 시작하면서 점점 슬픔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웁니다. 버려진 땅이지만 사람이 만지면 예쁜 땅으로 변하게 된다고 한 할머니의 말씀처럼 지금은 온 아파트 사람들이 저마다 쪼그만 밭에 네모난 울타리를 만들어 부지런히 심고 거두는 멋진 땅이 되었지요.
자신이 지나온 힘든 경험에서 얻은 갚진 깨달음을 아빠를,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아파하는 엄마와 민서에게 나눠줄 수 있었던 할머니의 넉넉함. 이런 분들이 있어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운가 봅니다.
'민서야,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잖니. 누군가 태어나고 누군가 떠나고. 어딘가 에서는 행복하게 웃고 어떤 이는 슬퍼서 울겠지. 이 모두를 겪으며 속이 꽉 찬 나무처럼 자라는 거야. 겁낼 것 없어. 창문을 열어 봐. 밖엔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모든 게 있으니까.'
이렇게 쓴 작가의 말을 장례식장에서 슬픔에 겨워하고 있을 선생님께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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