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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야, 쫌! ㅣ 미래아이문고 16
고수산나 지음, 노성빈 그림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독일 아동협회의 '부모상담전화'에서 가정상담사로, 자녀교육과 가정을 중심 테마로 하는 저널리스트로 활동중인 펠리치타스 뢰머는 자신의 저서 <슈퍼차일드>에서
아이들은 주로 기분이 나쁠 때, 마음이 불안할 때, 무시당했거나 과도한 부담에 눌릴 때, 거부당한 기분이 들 때,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이상행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보육교사, 교사, 부모들은 이상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고통을 당하는 희생자가 아니라 훼방꾼으로 여기고 이런 아이들 때문에 부모들은 행복한 가정의 그림이 깨진다고 생각하며, 교육자들은 능력 있는 자아상에 흠집이 생겨 짜증이 난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부모나 교육자들은 자신의 이상을 깨지 않기 위해 아이에게 모든 책임과 잘못을 떠넘긴다고 썼습니다.
너무 비약적일 수 있겠으나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개인차를 고려하지 않은 구조적 환경에서 아이의 감성이나 능력에 벗어난 일률적인 강요가 수많은 ADHD 진단을 낳지 않았나 생각도 해 봅니다. 물론 아주 정상적인 아이의 ADHD 판정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민구야, 쫌!> (고수산나 글 / 노성빈 그림. 미래아이. 2010)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인 말썽꾸러기 동생을 둔 한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몸에 오토바이를 단 것처럼 잠시도 가만 있지를 못하는 민구. 좋아하는 닭튀김이 나왔는데 많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식판을 엎고, 로봇 흉내를 내며 집안의 물건을 때려 부수고, 복도에서 벌을 받다 나무가 흔들흔들 자기를 부른다며 집으로 가버리고...
급기야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학을 권유받기까지 합니다. 이런 민구 때문에 같은 학교에 다니는 누나인 5학년 누리도 부끄럽고 힘듭니다. 문제아 누나니까 너도 혹시 문제아 아니니? 하는 표정에서 자유롭지 못하지요.
새로 오신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온 날 엄마는 민구의 병원치료를 결심하지만 아빠는 민구가 '조금 산만하고 까부는 남자애'일 뿐인데 정신병원에 간다는 것에 크게 화를 내며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민구가 병원에 다니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 우리 사회 슬픈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지방근무 때문에 이주일에 한번 집에 와, 늘 잠과 텔레비전으로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는 아빠, 병원에 다닌 후로 모든 관심은 온통 민구에게로 향해 급기야 위염과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엄마, 사춘기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해 풀도 나무도 없는 벌판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라는 누리.
힘들었을 가족에게도 희망의 싹은 찾아옵니다. 민구를 열외시키고 밀어내기에 급급하던 선생님과는 달리 새로 오신 선생님은 민구가 병원에 다닌다는 소문이 나자 같은 반 친구들에게 감기가 걸린 것처럼 마음이 아픈거라고, 배가 아프면 내과에 가는 것처럼 민구는 마음이 아파 병원에 가는 거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민구가 수업시간에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민구의 손을 잡고 조금만 참아보자 하십니다. 약속을 지킬 때마다 큰 포도송이에 예쁜 스티커를 붙여주는 것도 잊지 않으시지요.
아빠 또한 엄마의 부재시 민구를 돌보고 집안일을 대신하며 그간 힘들었을 가족을 마음으로 느낍니다. 민구가 꼬깃꼬깃 모은 세뱃돈과 누리에게 빌린 삼만이천 원으로 아빠의 하루 일당 십만원을 만들어 운동회날 아빠의 하루를 사겠다고 했을 때 아빠는 가족들 앞에서 고백합니다.
아빠가 겁쟁이였다고, 엄마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고 아빠는 그냥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너희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게 더 힘들까봐 겁이 났었다고.
각자의 자리에서 많이 힘들었을 가족, 천천히 느리게 가는 달팽이처럼 변화하는 민구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희망을 봅니다.
동화지만 섬세한 가족의 심리묘사와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문제를 풀어내었기에 우리를 돌아보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위에 ADHD로 고통 받거나, 혹 아이의 산만한 행동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이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슈퍼차일드>에서 아이가 이상행동을 하는 것은 관심과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이며, 너무 많은 방해를 받아서 자신도 다른 사람을 방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자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이상행동을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약점까지도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것이므로 부모와 교육자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치료사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힘들어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상행동'을 견디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행동장애를 보이는 아이 당사자가 겪는 고난뿐 아니라 주변 환경에 감춰진 문제와 갈등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느꼈을 소외감, 가족이 받을 사회적 편견이 그들에게는 선명한 핏자국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 이웃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