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밤 랜덤소설선 11
윤영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뭔가(잡글이든 리뷰든) 쓰고 싶은 날에 읽어보리라 하고 차일피일 미뤄뒀던 책이었다. 그러니까 사둔 지 꽤 된 책이라 결국 구입 동기를 잊고 지낸 셈이고, 이게 겐지 '사마'식의 산문집이나 되는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구입하게 될 때, 5만 원을 안 넘기면 뭔가 손해보는 느낌인지라, 5만 원을 넘기려다 보니까 항상 무더기로 구입을 하게 된다.(이젠 상술이라고 생각 되지도 않는다. '생존'을 위해 채우게 된다!) 암튼 구입 동기를 잊고 지낸 책의 대부분은 무더기로 책을 샀다는 산 증인들이다.

한국 소설 특히 내가 접하지 않은 작가의 책은 일단 사고 보는지라, 읽고 나서 산뜻한 포만감을 안겨주지 못한 책일지라도 뭐랄까 미지의 세계를 개척했다는 느낌으로 아깝다거나 괜히 샀다거나 하는 생각은 안 드는 편이다. 잡설이 길어졌는데, 요지는  <<소설 쓰는 밤>>,(이하 <소설>이 윤영수 작가와의 첫만남이었고, 나쁘지 않았다는 거다.

그 이유로 단순히 동네 이야기를 잘 쓰고, 문장력이 좋은 여성 작가라고 분류할 수만은 없다는 데 있다. 소설집으로 소개된 책이지만 연작 소설 형식으로 되어 있어 장편 소설인 셈인데, 연작 소설은 각 단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그 관건을 넘긴 작품이라고나 할까. <무대 뒤의 공연>이라는 단편을 읽었을 때 꼭 <<원미동 사람들>> 도입부에서 나온 장면이 떠올랐다. 물론, 스케일은 더 작았지만. 그러니까 "내과 병동 302호, 4인용 여자 병실" 그 곳에 입원한 사람들의 모습이 첫 단편에서 그려지는데, 그 첫 단편이 마치 소품 하나 등장 인물 하나 다 갖춰진 무대 위를 보는 느낌이라는 거다. 이런 구성은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첫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전율을 느끼게 한다, 좋다는 말이다. 
 
 <<원미동 사람들>>의 도입부가 탁월했던 것도 그 이유라고 본다. 온갖 사건과 사람들이 한바탕 휘몰아치고 격정을 향해 내달리다 끝이 났을 때, 다시 첫 장면이 떠올려지면서 전율이 느껴지게 하는 것! 이삿짐 트럭이 원미동에 당도했을 때 그 젊은 부부를 둘러싼 국자 형태의 골목길에 옹기종기 얼굴을 내밀었던 사람들. 마치 졸업 앨범을 보는 듯이 얘 하고는 이런 일이 있었고, 쟤 하고는 이런 일이 있었고 하듯 한 장의 사진 속에 그 격정의 순간과 시간들을 담아낸 느낌이라고 할까. 그러고 보니  영화 공동경비구역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한 장의 사진 같은 느낌인 거다.  그러니까 또 요지는 <무대 뒤의 공연>을 읽었을 때는 느낌이 좋았다. <원미동>에 비한 전율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꾸 비교되네)

이런 구성은 이야기를 이끌어 가야 할 힘이 뒷받침 되어야 빛을 발한다고 보기 때문에 기대감을 실어준다는 거다.  물론, 나는 처음에 <소설>을 읽었을 때 단편인 줄 알았기 때문에 이런 감상은 두 번째 단편을 읽었을 때 알게 됐다. 그런데 두 번째 단편 <내 창가에 기르는 꽃>을 읽었을 때 이만저만 실망한 게 아니었다. 이야기를 이끌어갈 사건 자체가 너무 안이했다고나 할까. 진부하고 시시하기까지 느껴질 만큼. 이게 아닌데, 특히나 그 전에 공선옥 작가의 <<명랑한 밤길>>을 읽은 터라 더더욱 고개를 저었던 것 같다. <<명랑한 밤길>> 도 나중에 느낌을 말하겠지만, 여성 작가들의 보여주는 한계 즉 소재의 빈곤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글이었다. 물론, 문장력은 뛰어났고 묘사력도 생생했지만,  나도 '내 이야기, 내 주변 이야기, 가족 이야기 그러니까 동네 이야기'는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고 싶은 독자이기 때문이다. (덧붙임 : 이 리뷰도 꽤 오래 전에 쓴 건데, 그때는 이런 게 진절머리 났을 때였고, 요즘은 부러 찾아 읽는다. 소소한 내 주변의 일상과 살아가는 이야기가 그리워질 때, 여성 작가들의 책을 제일 먼저 찾는다.) 

  두 번째 단편은 전형적인 느낌이었기에 내가 이걸 계속 붙잡고 읽어야 하나 심히 고민을 했더랜다. 단편집은 내 마음을 확 끌지 않는 한, 그 자리에서 다 읽지 않는 편이다. 어디에 붙여둔 껌을 씹는 자세로다 한두 편 있다 나중에 읽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나만 더 읽어보자 하는 심정으로 <당신의 저녁 시간>을 읽었다. 그런데 어라? 두 번째와 다르게 완성도 높은 구성과 소재를 보여준 거다. 순간 화색이 확 돌았다.  

단편은 분량이 적은 만큼 완성도를 높이기가 어렵다고 본다. 그러니까 장편에서는 살짝 삑사리 나도 흐름만 놓치지 않는다면 눈치를 못 채는데  단편은 단박에 눈에 띈다는 거다. 안일하고 편안하게 쓴 단편이 얼마나 많나, 그러다 치밀하게 내놓은 이런 단편들은 읽는 이들에게 역시 포만감을 안겨준다. 이래야 나도 쓰겠다 라는 말을 목구멍에 쏙 집어넣게 한다. 특히나 등장 인물이나 개별적인 사건이 많아질수록 단편은 탄탄한 구성을 갖추기 어려울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의 저녁 시간>은 꽤 여러 사건과 등장 인물이 나와도 마지막에 탄성을 지르게 한다는 거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좋았다.  

<달빛 고양이>는 소재나 구성에서도 진부하긴 하다. 그럼에도 단숨에 읽게 하는 건, 역시 필력 있는 작가의 힘이다. 그리고 전체적인 메시지(이 책의 구성)에서 모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성주> 역시 연작 소설이라는 톱니바퀴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마지막 단편이자 표제작인 <소설 쓰는 밤>을 읽었을 때 생각나는 책이 있었다. 제목은 생각 안 나는데 운명이나 필연에 관한 내용을 철학적으로 풀어쓴 책이다. 예를 들어, 그 책의 서술자가 k 라는 주인공이었다면 k가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미래를 기록한 책을 본 거다. 그게 일종의 예언서인 셈인데, 그는 자신의 미래를 알고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로 인해 괴로워한다. 그 운명에 맞서싸워보기도 하지만 결국엔 그 책의 기록처럼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내용인데, 뭐 오이디푸스에 나오는 예언처럼 말이다. <소설 쓰는 밤>에는 소설가가 나온다. 여기서 내용을 더 쓰면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하고. (읽어보시길, 우후훗!) 그 소설가의 이야기에 병원의 경비원이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어찌나 공감이 되는지!  

이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이런 기분이 든다. 글을 쓰기 위한 예비 작업 같은 작가의 마음을 엿본 기분 같은 거. 그러니까 애초에 <<원미동 사람들>>과 비교하는 건, 뭐랄까 공정하지 못한 처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허술하게 뚝딱 써낸 글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긴장하게 되었다. 다음 작품이 몹시 기다려진다!

 

사족:
참, 나중에 다 읽고 보니까 <내 창가에 기르는 꽃> 단편이 구성이나 소재 특히 사건이 진행되거나 나오는 이야기들이 이 책의 단편 중에서 제일 떨어졌다. 그랬으니 그때 더 읽을까 말까로 얼마나 고민이 됐겠는가. 아무튼  책 사이즈가 작고 분량도 많지 않은 데 비해 해설은 분량은 물론 시작부터 장황하길래 처음엔 뭔일인가 싶었다. 그 장황한 해설 속에 "한국 문학에 중요한 전환의 계기"를 안겨준 작가라는 말이 나오는데, 지체없이 그 문제적 소설인 <사랑하라, 희망 없이>는 장바구니로 직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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