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 이성복 산문집
이성복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고백컨대, 입을 틀어막아도 막을 수 없었던 울음을 흘렸던 한 시인의 오열이 담긴 산문집을 읽고 어쭙잖은 나의 언어로 그의 산문집에 대한 평을 할 수 없었다. 한 번도 치열하게 시인과 시를 혹은 시인의 언어를 생각해보지 못한 나였기에 기껏해야 한두 시간 안에 쓰여질 나의 글은 그의 시를 욕되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는 쉽지 않은 책읽기였고, 책을 읽는 동안 머리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시인의 언어들로 울컥이는 마음을 하염없이 달래야 했다.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자 끝내 복 받쳐 흘렀던 이 뜨거움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하여 이후의 글은 그의 산문집과 <<아, 입이 없는 것들>> 시집 속에서 인용한 글이라는 것을 밝힌다. 정체모를 이 먹먹함과 타오름을 한 자락이나마 그의 글에 빗대어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아본다.  (* 덧붙임 : 이 리뷰는 1년 전에 쓴 글인데, 역시 다르게 수정을 하지 못하고 올린다. 여전히 나는 시와 시인의 언어를 모른다. 정제된 언어의 힘, 그 힘 앞에 나는 불순한 독자일 뿐이다.)
  

이해 가능한 청각 언어로 번역되지 못할 바알간 석류 꽃잎을 두고,
시인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가슴 속에 깊게 패인 못자국을 들여다본다.
시인의 숨결은 그 못자국을 헤집고 너덜거리는 생채기들을 잡아채면서 상처받은 것들에게 끊임없이 제사를 올린다.

제에 올려진 것은 도살장으로 향하는 트럭 위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암컷 뒤를 핥다가 가끔 겅중겅중 올라타는 수퇘지들이나, 먼지와 매연, 미세한 세균들을 덮어싸고 입 안으로 올라온 침이나 무수한 죽음의 얼굴을 한 채 모든 것을 보았으나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었던 그 눈이나 환(幻) 에 환(幻)을 보태고 언어에 의한 언어를 통한 언어의 자기 쓰기들.

맨날 와서 피 흘려 좋을 여기가 어디인가,
느낌도 흐느낌도 없는 말이 있었던가,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것들

시인이 보는 곳은 살얼음낀 우물,
시인의 기억이 머문 곳은 당집 죽은 대나무 앞,
한 고통이 다른 고통을 들여다보듯,
마른 잎새를 흔드는 죽은 대나무 아래서 시인은 자신의 환부를 들여다본다.

시인이 본 것은 진실, 살아내야 할 진실,
진실을 보지 못한 채 글쓰기를 하려는가, 시를 쓰려하는가?

시인은 그 진실을 부등켜 안고 삶에 대한 사랑을 받아내려 한다.
그 여름의 끝자락에서 그 변증의 여름을 기억하면서,
시인을 배반하는, 시인의 의식을 부정하는 즐거운 일탈을 향해 나아간다.

시인에게 시는 헐벗고 버림받은 존재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존재의 긍정이며 성화였고,
시인에게 시는 가짜 아름다움 속의 추악함과 추악함 속의 진짜 아름다움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상호 모순된 것들을 제 품에 아우르는 것이었다. 

아, 입이 없는 것들
애초부터 죽어 있었던 것들
죽었다는 생각들 이전부터 죽어 있었으며 죽었다는 생각들 이후에도 죽어 있을 것들.

누군가는 인생길 반 고비에 어두운 숲에 들어서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순례하고,
누군가는 삶과 삶을 언어와 언어를 다시 삶과 삶을 향한 오열을 터뜨린다.

어느 날 문득 방문을 열다가 보아버리 듯, 그 오열 속에서 시인은 괄호 속에 묶인 애초의 형극을 위해 본래의 시간과 장소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시인은 흠뻑 빗물을 머금고 창유리에 달라붙은 그날의 석류 꽃잎 앞에 두 마음 없이 다가선다.
 

   
  문학은 일종의 삶의 형식화이다. 문학은 자기 위안도 구원의 수단도 아니다. 우리의 감정적 호오에 관계없이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삶의 여러 조건들의 단순화된 표현이다. (106면)

오늘날 시는 죽었는가, 죽었다면 누가 시를 죽였는가 등속의 질문이 잇따르는 것은 애초에 시를 살아 있는 어떤 것으로 전제하는 데서 출발한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 물음들은 특정 사회 속에서의 시의 위의, 문화의 여러 영역들 사이에서의 시의 위치 등을 염두에 두고 하는 질문들이리라. 그러나 유독 그에게 그 질문들이 공소하게 들리는 것은 죽음이 곧 시의 본질이라는 뿌리 깊은 생각에서이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여, 만약 시가 극진히 대접받고 숭배받는 시대가 있다면, 그 시대의 시는 루비와 사파이어로 장식한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모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십자가와 시의 위의는 최초의 형극으로부터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데 있다. (116~117면)

글쓰기에 대한 의식은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를 지양하는 지식만이 ‘즐거운 지식’일 수 있듯이, 글쓰기를 배반하는 글쓰기, 글쓰기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일탈할 수 있는 글쓰기만이 즐거운 글쓰기일 것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의 정도는 글쓰기의 낙원에 얼마나 접근했는가를 가리키는 구체적 지표가 될 것이다. (19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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