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을 위한 DVD가 있다. (더 정확히, 혼자 밥을 먹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DVD라고 말하고 싶다.) 내용은 간단하다. 그저 화면 저편에서 같이 밥을 먹는 것. 와글와글 게걸스럽게 밥을 먹는 사람, 묵묵히 밥을 먹는 사람 등 직업, 나이, 성별, 성격이 모두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DVD로 재생시킬 수 있다. '홀로임'을 견딜 수 없거나 '홀로서기'가 불가능한 이들에게 외로움은 질병이라며, 이 병에 대한 처방전을 내려줬던 이도 있다.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원초적 고독에 대한 그의 처방은 '아모르파티'(Amor fati : 운명애). 하지만 고도의 자본주의 시대 속에서 고독이 일상이 되어버린 채, 인간의 삶 속 깊이 뿌리박힌 이 병을 은희경 작가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이하『나를』, 인용문구는 쪽수로 표시)는 좀 더 냉소적으로, 좀 더 은밀하게 삶에 대한 혹은 고독에 관한 작가의 시선이 담겨 있다.  요컨대, 『나를』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 소통이 단절된 이 시대 속에서 고독을 발견한 은희경 작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미리 고백하자면, 은희경에 대한 필자의 기억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나의 작품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 말, 한 가지 실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호의적이 않던 삶을 살았다. 돌이켜 보건대 만 가지 말, 만 가지 실수에 대해 너그러운 삶을 살고 있는 지금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필자는『나를』를 통해 은희경 작가의 전작들을 모두 읽고 싶어졌다.『나를』은 그녀가 고독을 발견하게 된 그 과정을 무척 궁금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한사람도 없다는 사실이 마음 편한" 서른여덟 번째 생일을 맞은 K가 구석진 찻집에 앉아있다. k는 짐 모리슨의 'People are strage'를  들으며 잠들다 자신을 부르는 몽환적인 목소리를 듣게 된다.(「고독의 발견」, p. 42) 눈을 뜬 K에 다가온 남자는 K가 하숙집 아주머니의 신뢰를 받았으며, 하숙생들은 모두 K를 좋아했다며(p. 46) K에게 몸을 가볍게 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은희경 작가는 「고독의 발견」 서두에 피노키오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피노키오 이야기. 그녀는 그 이야기에서 거짓말 할 때 코가 아닌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아이의 이야기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묻는다.(p. 40) 이후, K는 어떻게 되었을까?

 K는 꿈인지 현실인지 아득한 경계선에서 “검은 구멍 안으로 사라져버린 중심”인 W시 찾아가고, 그곳에서 난쟁이 여자 젤소미나를 만난다. “이 세상에 나는 여러 개로 흩어져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 살고”(p.59)있다고 말하는 젤소미나에게 K는 하숙생들은 모두 나를 싫어했고, 그들은 악의적인 장난으로 자신을 괴롭혔다는 사실을 말하게 된다.(p.71)   K는 그곳에서 젤소미나를 통해 허공에 떠오르는 자신을 본 것이다. '내 삶'의 진실 혹은 심연과 조우한 나. K. 

  은희경 작가는 고독을 발견한 인간을 부유하듯 형상화한다. 텅빔, 단절된 시간, 결핍, 삶의 부재들이 무수한 파편이 되어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관통한다. 여러 개로 흩어져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젤소미나와 허공에 떠오르는 K,(「고독의 발견」), “자기 몸 안이 텅 비어가는 느낌에 사로잡혀 우주 미아처럼 돌아올 주소를 영원히 잃어버린 두려움에 사로잡힌” 유진(「의심을 찬양함」), 다이어트를 하는 나(「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몽상을 하는 소녀(「날씨와 생활」), 자신의 좌표를 잃어버린 P(「지도중독」), “내 인생에 변수는 거의 없다”고 말하는 출판사 사장이 잃어버린 청춘(「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낯선 한순간 자신의 존재와 부재 사이의 좁은 틈”(「의심을 찬양함」, p. 27)을 발견하는 과정은 대부분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와 조우하는 과정에서 그려진다. 단절되거나 잃어버린 그 시간들. 어린 시절 뚱뚱한 자신을 아버지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 때문에 항상 슬픈 나(「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p.80)는 서른다섯 번째 생일날 부친의 위독을 통보받는다. 나는 과거와 다른 모습을 아비에게 보여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이어트에 매달린다. 여기서 은희경 작가는 다이어트를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 혹을 고독을 말한다. 다이어트가 어려운 것은 몸속에 장착된 수백만 년이나 된 생존본능 씨스템과 싸우는 일(p.96)이라는 것. 인간의 몸은 철저히 지방을 모아 저장하는 돌도끼시대의 시스템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기에 현대인은 빙하기 인간과 다를 게 없는 동물적 존재(p. 97)라는 것. 배고픔을 기억하는 몸은 결국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을 상징한다.  그 원초적인 결핍과 고독에 끈질기게 버텨왔던 나는 아버지의 빈소(또 다른 부재, 결핍, 고독)에서 국밥을 먹는다. 기름진 국물 속의 뽀얀 밥알이 든 국밥을 나는 두 그릇째 달게 비우고 만다. 보띠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처음 본 날을 잊지 못하는(p.78), 아버지에게 축복받지 못한 탄생을 지닌 나는 그 원초적인 결핍을 상징하는 몸의 기억을 거부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거다.  

 

  「지도 중독」에서 P는 1조 8천만 년 전에는 곰과 인간이 같은 개체였다고 말한다. 그는 현화식물, 곤충, 인간이 모두 하나의 개체에서 네 차례 반복된 간빙기가 거쳐 탄생한 인간은 1만 년이 된 유전자를 지닌 거라고 한다.(p. 220)  『나를』은 이렇게 곳곳에서 과거를 탐닉한다. 어린 시절에서부터 1조 8천만 년 전까지. 인간을 고독하게 만드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는 나와 그 과거를 잃어버린 채 현재를 살아가고 내가 마주선 순간이다. 내 몸 깊숙이 박힌 고독. 그 절대적 고독과 마주선 나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허공에 매달려야 할지 모른다. 어린 시절의 나, 젊은 날의 나, 지금의 나가 보일 때까지.    

  오직 앞만을 향해 달려가야만 하는 무한 경쟁 시대 속에서, 필연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인간 소외. 통장 잔고가 내 삶의 지표가 되어야 되는 이 시대 속에서 은희경 작가는 "내 몸 깊숙히 박힌 고독"을 돌아보게 한다. 내 안의 고독을 응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타인의 고독을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원초적 결핍"을 간직한 우리들의 몸을 돌아보는 순간, 1만 년이 된 유전자를 우리가 함께 돌아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나와 너를 보게 되는 게 아닐까.  절망 앞에 선 인간만이 다시 '삶'을 희망할 수 있다면,  내 '심연의 어둠'을 응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너'를 만나게 되는 게 아닐까. 



 “높은 바위에 걸터앉은 여자가 두 발을 번갈아 흔드는 모습을 보며 K는 S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여자와 가족들과 세상 모두에게. K가 자신은 물에 빠졌고, 남의 신분증을 가진 채로 절 옆의 민박집에서 몸을 말렸다고 말하자 여자는 다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그때였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여자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나는 여자의 치맛자락을 붙들었고 그 순간 내 몸도 함께 붕 떠오르는 걸 느꼈다. 붉은 먼지로 감싸인 채 멀리 강이 보였으며 배에 가득 찬 손님들, 검은 외투의 남자, 그리고 흰 입김을 날리며 뭔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강을 내려다보는 젊은날 k의 모습도 보였다. 그렇구나 나는 중얼거렸다. 몸을 가볍게 만드는 연구가 드디어 완성되었어.”  -p.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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