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몽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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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른 시간 내 읽을 책이 필요했다. 저 책은 술술 읽힐 것 같지만 분량이 많아서 제외, 얇지만 검증 안 된(여기서 검증은 내가 기존에 접해본 작가냐 아니냐는 것) 책도 제외, 얇지만 분명 골 때릴 것 같은 책도 제외... 이런 식으로 제외하다가 낙찰된 책이 바로 <예지몽>!

  결론부터 말하면, 빨리 읽을 수는 있었지만 평소 게이고에 관한 기대치에 비하면 확실히 떨어진다는 거! 하긴 여기서 말하는  게이고에 대한 기대치는 <용의자 헌신 X > 에 근거한 것이니, 왠만한 작품은 눈에 안 들어올 수밖에. (좀 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더라면(당시에) 백야행이나 방황하는 칼날 먼저 보는건데 말이다. 슬슬 <용의자 헌신 X > 에서 보여줬던 그 치밀한 구성과 반전, 그 속에 녹아있는 사물이나 현상을 통찰하는 그 능력이 그리워지니.)

  아무튼 <예지몽> 이나 그 전에 읽었던 <탐정 갈릴레오> 는 <용의자 헌신 X > 과 같은 급으로 놓을 수 있는 시리즈 라기 보다는 <용의자 헌신 X > 을 탄생시키기 위한 여러 사건과 발상을 엿볼 수 있는 일종의 습작 같은 거라고 본다. - 이 말은 써놓고 보니 뻘쭘스럽긴 하다. 출판사 책소개에도 이미 그렇게 나와있거든! -  <예지몽>은 제목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오컬트적인 현상들이 보여지는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고 <탐정 갈릴레오> 역시 '과학 미스터리'로 불려질 수 있는 현상들이 등장하는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이렇게 보니 오컬트와 과학 미스터리가 따로 구분된 듯 말했지만, 둘 다 영어라는 거! 뭐, 같은 범주라고 본다. 아무튼 둘 다 초자연적은 현상을 보여주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초자연적 현상처럼 보여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거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그 모든 현상들이 결국 '과학적 원리'에서 설명되니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가와에 의해 설명되어지는 그 모든 기이한 사건들은 결국 '모든 현상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다'라는 게 증명되는 거다.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게 뉴턴의 제3법칙인가, 어떤 물체에 힘을 가하면 그 물체도 반대방향으로 똑같은 크기의 힘을 가한다는 것. 크기는 같으나 방향은 반대인 힘이 존재한다는 것. 아무리 미스터리하게 보이는 사건일지라도 그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다른 힘(과학적인 현상)을 찾는 과정은 확실히 흥미가 유발된다.  

 유가와가 간간이 보여줬던 간단한 실험이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보여주는 과학적인 원리들은 원체 과학이나 물리학 방면에 문외한인지라 일단 호기심 충족면에서는 먹고 들어갔다. 그러니까 <예지몽> 이나 <갈릴레오> (그러고 보니 이 둘이 계속 세트로 붙네) 는 어떤 추리 소설을 본다는 느낌보다는 '호기심 천국'을 보는 기분이었고, 그만큼 구성은 떨어지는 단편들이었다. 뭐, 이 책을 읽게된 동기로만 보자면, 아주 잘 찾은 셈이지만.

  <갈릴레오> 에서도 괜찮은 단편이 있었는데, <예지몽>도 그렇다. '그녀의 알리바이'에서 <용의자 헌신 X > 삘이 났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또 말하면 <용의자 헌신 X > 삘이 나서 좋다는 게 아니라 <용의자 헌신 X >에서 보여줬던 허를 찌르는 지점이 있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알리바이'가 확실히 <용의자 헌신 X >의 전신처럼 보이긴 하구나! - 역시 새삼스런 말이다. - 여튼 그녀의 알리바이에 초첨을 맞춘다면 더욱) 히가시노에게 '통찰력'이 있다는는 말을 붙일 수 있다면, 나는 이런 지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용의자 헌신 X >에 나왔던 말처럼,  "기하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함수 문제"라는 것. 관점만 달리 보면 풀 수 있는 문제라는 것. 그 다른 관점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것.

 추리 소설이라고는 홈즈 시리즈와 애거서 크리스의 책 몇 권만 보았던 내게 단순히 경악할 만한 사건이나 트릭만으로 이뤄진 추리 소설이 아닌 삶의 이면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게이고 식 추리 소설을 만나게 된 건 확실히 행운인 셈이다. 이런 책들을 만나면 특정 장르만 최고라는 식의 편협한 생각은 안 가지게 될 수 있으니까. 실제로 <용의자 헌신 X >이나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만나보기 전에는 이들의 열풍이 '가벼운 글'에 환호하는 현상이라고만 생각했던 거다. 따지고 보면 일본 소설이라도 가와바스 야스나리, 나쓰메 소세키 같은 '고전'이라 불릴 수 있는 책이나 무라카미 하루키나 류와 같이 검증 받은 책만 읽겠다는 독자였으니까. 여기서 '가벼운 글' 이 무엇이냐 라는 정의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데, 과거 나의 정의는 한 문장으로 축약하면 이렇다. 표피적인 재미만 추구한 채, 메시지를 던져주지 못한 글. 그러나 지금은 좀 더 다양하게 책을 고르거나 읽는 기준이 생겼다. 표피적인 재미만 있어도 되고, 메시지만 던져줘도 된다. 구성만 뛰어나도 되고, 묘사만 탁월해도 된다. 그런데 경험상 "최고다" 라고 외치는 책들은 어느 한 가지만 갖추지 않았다. 재미와 감동, 구성과 메시지, 뛰어난 묘사력 그 모든 게 다 들어간 책이 있다는 것. 어떤 책이냐고? 이럴 땐 사악한 미소 한 번 지어주며, 배가 좀 고픈데 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튼 게이고의 다른 책 리뷰에서도 <예지몽> 이야기는 빠지지 않을 테니, 오늘은 여기서 접을란다. 정말 배가 고파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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