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이면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먼저 내심 기대했던 책이라는 것부터 밝힌다. 어떤 책을 구입하느냐, 그 경로는 사람마다 다양할진대 일단 이게 법칙 내지 공식처럼 봐도 되는건지 아니면 필연적인 귀결로 생각해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특정 분야의 책을 읽게 되면 반드시 꼬리에 꼬리를 물듯 줄줄이 감자가 캐어져 나오듯 책들이 연결되어 있는 거다.  마치 바벨 도선관의 나선형의 계단처럼, 이 방과 저 방을 연결해 주는 무수한 계단들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발밑에 놓여있다. 가령 기형도 전집을 읽다보면 김현과 김승옥, 장정일이라는 작가들로 향하는 계단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하여 뿅뿅뿅 그네들의 책들을 구입하게 되는데, 참고로 김현 이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만나면 근 몇달은 굶을 각오로 책을 구입해야 할 일이다. 
 

  <생의 이면>(이하 <생>)은 한창 중고책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연결된 책이다. 끝내 중고로는 구입하지 못했지만, 아마 내가 내놓으면 누군가는 구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중고로 구입하지 못함을 매우 안타까워했다는 말이다. 일단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큰 탓이라는 것도 밝힌다. 그러나 평점은 별 4개를 쾌척한다! 이유는 차차 나온다. 사실 나는 엥간하면 평점은 안 짜다. 그리고 이번 서평은 꽤 길다! 따지고 보면 별 내용도 없는 서평이지만, 이거 쓰느라 -안 그래도 뭘 쓰는 게 늦는 인간인지라 - 밤 샜다! 하긴 새벽에 뭐 하나 쓰면 밤 새는 거야 뭐. 참고로 내 서평은 읽은 시기와 현재 공개되는 시기가 맞지 않다. 이거 언제 읽었지?


2.

 <생>은 5부작으로 연결된 장편 소설인데, '그를 이해하기 위하여', '연보를 완성하기 위하여 1'까지는 아주 좋았다는 것도 밝힌다. 대체 누구에게 밝히는 건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밝힌다. <생>은 '작가탐구' 기획의 일환으로 박부길 이라는 작가의 연보를 즉, 책에 따르면 "박부길 씨가 살아온 삶의 이력을 그의 소설들과 관련지어 추적해 보라는 편집자의 주문"을 받은 '내'가 그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이 뼈대를 이루고 있다. 
 

 일단 '그를 이해하기 위해' 화자는 박부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데, 구성이 참 절묘했다. 소설가였던 박부길의 글(책이든 문예지에 실린 글이든)과 함께 실제 박부길의 삶을 추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굳빠이 이상>의 구성 방식이 떠올랐고 그 책이 주었던 동급의 재미를 기대했던 거다. 어쩌면 더 노련한 재미를.(연수보다 연식이 더 나가는 작가니까) 책 속의 책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런 걸 액자식 구성이라고 해야 하나 =정확히는 모르겠으만 암튼 독자는 제 아무리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 아니라 한다 할지라도 작가의 글을 작가의 삶과 결부시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근거해 화자인 나는 박부길의 글을 인용하면서 그를 이해하기 위한 글을 서술하고 있다.  
 

  으레 예상되듯 박부길의 유년 시절은 결코 무난하지 않았다. 초등 4학년이 헤르만 헤세와 앙드레 지드와 <삼국지>를 읽고 이후에도 '소나 양들이 풀을 뜯어 먹듯' 집안의 책을 죄다 읽어버렸다는 설정, 뒤주에 갇히듯 뒤채에 갇혀버린 남자의 죽음, 집안에서 쫓겨나 강직한 경찰 공무원과 결혼해 버린 어머니, 부길에 대한 큰아버지의 기대와 같은 특별한 가정사, 결국 초극해야 할 현실을 위해 아버지의 무덤에 불을 지르고 떠난 "치욕의 시간들" 기실, 아버지 살해 욕구나 박부길의 보여주는 방화 사건은 거창하게 해석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부친 살해 욕망은 일단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먹어주시고 대서사나 대문자의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며 권위나 기타 아버지가 상징하는 무수한 기의들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재 자체가 신선한 책은 아니었다. 92년에 초판이 발행된 책이니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이야기라는 것을 감안해야 할 터이지만, 아무리 92년을 떠올려봐도 막막한 나 같은 독자에게는 역시  진부한 소재다. 다만, 탄탄한 문장력과 구성 그리고 치열한 고뇌가 보이는 문장들로 인해 숨을 훅 들이마쉬게 했다. 적어도 중반까지는. 문제는 '지상의 양식'부터인데, '지상의 양식'은 박부길의 첫 소설이자 동시에 미완성왼 소설이라는 설정을 갖고 있다. 박부길이 돌연 신학대학을 가게 된 이유가 밝혀지는 부분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사랑 이야기'가 시작된다. (갑자기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떠오르는 이유가 뭘까, 거기서도 어린 시절과 첫사랑이야기가 공식인양 수순처럼 나오긴 한데 왜 갑자기 삼미가 생각나지? 분위기도 완전 다르고 무엇보다 <생>은 삼미 같은 재미는 없는 책이란 말이다. 일단 그렇게 등장되는 순서가 같다는 것과 그런 공식 자체는 너무 빤하다는 것으로 넘어가자)

 
3.


 아무튼 문제는 여기서부터 낯익은 결말까지는 완전 식상의 아우토반을 달려주신다는 거다. 한국 소설이라면 진저리 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첫째 재미 없음, 둘째 어려움, 셋째 진부함 이 셋을 골고루 비벼주신다. 그리고 어렵게 말함으로써 자신이 열라 고민하고 있다거나 많이 아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부류들이 있는데, 솔직히 나도 지난날 어렵게 말하려고 얼마나 목에 힘을 주며 살아보려 했던가. 그러나 <생>은 아는 척을 하려는 책은 아니다. 작가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치열한 고뇌. <생>이 빛났던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아무튼 흔히들 "너 말 되게 어렵게 한다" 라는 것과 같은 의미의  문장이 있어 거슬리는 부분은 많다. 가령 그녀에 대해 꿈에서 상상을 한 부분 . 


 "어둠은 깊어서 나의 부끄러운 의식을 적당히 가려 주었다. 반투명의 세계 속에 꿈으로 위장된 욕망의 발현." 168쪽

  하지만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좋아하는 문장들이다. (이런 식의 글을 좋아하는 부류가 있다.) 게다가 박부길이 고민하는 것들을 만만치 않은 강도의 무게로 보여주는 것도 내 취향에 들어맞았다. 그러나 상황 자체는 식상해서 어느 쪽에 맞장구를 쳐줄까 하다 결국 식상함에 표를 던진다. 왜냐면 '그래도 좋다'로 갈까 하다가 '낯익은 결말'에서는 정말 낯이 익다 못해 푹푹 쪄버렸기 때문이다. 낯익은 결말은 결국 파국을 맞이한 결말이다. 그런데 그 파국이란 게 일단 예정된 것이라는 점을 차치해도 전혀 이입이 안 된 상황이라는 거다. 그동안 상황이 식상하니 어쩌니 해도 박부길 이라는 작자의 삶에 나도 한창 신나서 따라가고 있었는데 낯익은 결말에서 보여주는 파국은 뒷수습도 제대로 안 된 결말을 보여주었다고 본다. 

 
4.

 그녀와 주인공이 사이를 오가며 보여주는 사랑의 확인이랄까 하는 상황들이 80년대 통속극을 보고 있다손 치더라도 둘이 맞이하는 파국의 시초에서 나는 진지하게 묻고 싶었다. '장난하시는 거 아니죠?'  게다가 공들여 만들어 놓은 주인공 캐릭터를 죽 써서 개 준 꼴도 아니고, 아니 그와 같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주인공이 자신의 인생의 변환점을 준 첫사랑에 대한 태도하며 결국 선택한 결말하며! 그렇게 버릴 캐릭터였나 하는 게 무쟈하게 안타까웠다. 게다가 그렇게 산 인간을 왜 탐구 하려고 했는지 초반의 설정조차 석연치 않다.  그의 삶을 추적하는 나(화자)조차 처음엔 박부길의 책을 몇 권 안 읽었을 뿐더러 유명한 작가도 아니라는 말은 한다. 그런데 들춰보니 역시 별 볼일 없네 하는 결말을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책 속의 책과 같은 구성 역시 다른 변화 없이 시종 일관 진행되니까 그러려니 하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박부길의 증언(그의 글들) 외에 다른 자료들도 적극 끌어와서 그의 마지막 결말을 추적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거다. 좀 더 극적으로, 좀 더 긴박하게 좀 더 퐌타스틱엘레강스펙터클킹왕짱 말이다. 이건 편하게 앉아서 결말을 보려는 심보 같았다. 

 
5.


 장편의 결말은 극적이어야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흐름을 확 잡아챌 수 있을 만큼! 이 대단원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는 유치한 장난으로는 씨도 안 먹히는 거다. 차라리 부길아 그녀가 다니는 교회당에 불을 싸지르지 그랬니!  <수상한 식모>는 그점에서 여러 단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괜찮게 남은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하여 낯익은 결말 읽기가 가장 힘들었다. 보통 책의 3분의 2를 읽고나면 가속도라도 붙는지 상대적으로 빨리 읽히는 것 같던데, 그 단편이 이 책에서 가장 늦게 읽은 부분일 게다. 

 덧붙여,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결말이 되지 않았느냐는 말도 맞다고 본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결말. 그러나 박부길에게는 이력이 있다. 유년 시절의 방화 사건. 나는 그 이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후반부에서도 마찬가지의 강도로 자신의 삶에 뎀벼야 되었다고 본 거다. 그러니까 실망했던 건, 후반부에서는 너무 소극적으로 혹은 소박하게 해결한 게 아니냐는 거다. 처음부터 그런 인생이었으면 그러려니 하지만, 박부길은 온 생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고민을 담은 문장들 또한 매혹적이지 않은가.(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이런 문장을 좋아하는 부류가 있다.)

  나의 이런 심정을 예견이라도 하듯 작가의 말에서 이미 그 변이 나와 있긴 하다. "후반부에서 문장의 긴장도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긴장이 완전 집 나갔는데요. 라고 울먹이며 말하고 싶다. 그만큼 전반부가 좋았던 탓인지라 실망이 컸지만, 화자가 박부길을 이해하듯 나도 작가를 이해하련다. 작가가 밝히듯 자신의 숨결과 혼이 가장 진지하게 배어 있다고 하는데, 그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기분은 김영하의 <호출>을 읽었을 때와 비슷했다. <호출>도 그런 엇비슷한 작가의 말을 남겨둔 거 같은데, 이승우 작가의 이런 시절 또한 어찌 아니 이해할 수 있겠는가.(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셈이다) 하여 이 책은 실은 헌책방에 내놓을 생각이 애초에도 없었고, 그의 다음 책으로 <검은 나무>도 사뒀음을 솔직히 밝힌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에게 밝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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