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미술기행 - 인간과 예술의 원형을 찾아서
편완식 지음 / 예담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마그리트(R. Magritte)의 1936년 작, <꿈의 열쇠>를 보자. 그림과 그 그림을 지시하는 문자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 <꿈의 열쇠>는 이처럼 제목과 상이 일치하지 않는 그림 셋과 일치하는 그림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 “말과 사물”의 관계를 묻는 마그리트의 그림은 비단 <꿈의 열쇠>뿐만이 아니다. 지시 대상과 지시어의 일치가 더 이상 긴밀한 관계를 갖지 않을 때, 회화도 본질(일치하는 대상)을 그리던 과거로부터 탈각한다.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많은 화가들이 아프리카를 찾았던 이유는 뭘까? 말과 사물의 관계 혹은 언어와 대상이 관계가 자유롭게 유희했던 곳 아프리카. 문자조차 없었던 사하라 사막 이남 부족들의 그림(그림언어인 문양)이 현대 미술의 바탕이 되었다고 말한 저자의 말 만큼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것은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명제가 명쾌하게 뒤집힌 결과이리라. 

  『아프리카 미술기행』은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가 언급했듯이 “인간의 원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했다.(필자는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다) 또한 그는 두 명의 한국 화가와 동행하면서 케냐부터 시작해 킬리만자로, 세렝게티, 짐바브웨, 남아공 등 아프리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와 예술 작품들을 소개한다. 
 
  전체 컬러로 구성된 『아프리카 미술기행』은 시각적인 재미 만큼은 톡톡히 안겨준다. 나이로비의 석양을 찍은 사진(p. 18)에서부터 “잔지바르 좁은 골목길 안에서 만난 무명작가들의 작품”(p. 98~99), 불라와요 내셔널갤러리에서 전시중인 작품들(p. 130~131), 세네갈을 대표하는 화가의 그림(p. 185) 등 아프리카 자연 풍광과 그 곳의 미술 작품들, 주민들의 모습과 더불어 그와 동행했던 화가들의 작품까지 어우러진 그림과 글은 240쪽이 넘도록 『아프리카 미술기행』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저자의 아프리카 미술 기행에 관한 서술이 끝나면, 함께 동행 했던 화가들의 짧은 글을 읽게 된다. 그들의 글 중에서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열악한 먹을거리는 고통 그 자체 (...) 기대했던 열대과일과 채소도 흔치 않아 애를 먹었다”(p. 242~243)고 토로한 부분이 나온다. 필자는 이 부분이 <아프리카 미술기행>을 통틀어 가장 현실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마사이 족을 비롯해 저자가 보여줬던 평온한 주민들의 일상은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인 것이다. 여전히 기아와 내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주민들 대부분의 삶이 배제된 “원형 찾기”는 애석하지만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저자의 바람(과거형)으로 그친 것 같다. “인간 원형”을 찾는 과정은 그 뿌리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사유와 체험이 담겨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학 평론가 김현은 암스테르담에 있는 고흐의 미술관을 다녀와서 대단히 실망했다고 전한다. 현대식 건물 속에 수용된(갇힌) 고흐의 열정을 그는 그 곳에서 찾을 수 없음을 토로한 것이다. 그는 고흐를 만나려면 오히려 남불의 뜨거운 태양 앞에 서야 한다고 말한다. 


  기행 서적들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 상당히 상응한다. 그래서 왜 지금 아프리카 미술인가? 라는 질문도 반드시 던져봐야 한다. 『아프리카 미술기행』의 저자는 “작업 공동체로 묶인 팅가팅가 조직체”(p. 89)에 대해 상업화의 길을 택한 아프리카 미술의 단면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찾아갔던 갤러리들은 이미 아프리카 미술의 상업화가 오래 전부터 이뤄져 왔음을 상징한다. 이를 테면, ‘갤러리’라는 단어에는 이미 자본주의 시스템이 거미줄처럼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미술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지금 구매자들의 욕구를 자극시킬 미술은 어디에 있는가? 피카소와 마티스가 고갱과 자코메티가 그 밖의 수많은 예술가들이(저자는 실제로 다양한 예술가들을 마지막 장에서 소개하고 있다) 한 번쯤 열광했던 나라 아프리카, 그 아프리카 미술 만큼 유혹적인 상품도 없을 것이다.


  우연히 책의 붉은색 겉표지가 벗겨졌는데, 겉표지를 벗겨놔도 예쁜 책이었다. 책장 한켠에 예쁘게 자리잡고 있을 책, 한 번쯤 아프리카 미술 기행을 계획해 본다거나 “초원 위의 바람” 같은 아프리카 음악과 풍광을 관조하고 싶다면 『아프리카 미술기행』도 좋은 지침서가 될 듯하다. 허나 그 뿐이라는 것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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