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 / 창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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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강화를 읽고나면 소설이든 시든 편지든 일기든 잡글이든 뭐든 쓰고잡아질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뭐 하나 끄적이지 않았다면, 아마도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글 안 써!"라고 절필을 선언한 사람의 각오 정도는 된다고 하겠다. 어딜 내놔도 흠 잡을 데 없을 만큼 두루두루 어여뻐 주시는 책이니 '글쓰기'라는 난공불락에 하염없이 머리칼을 쥐뜯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발모제 대신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다만 한문 '울렁증'이 있는 이라면 쓰나미를 타고 서핑하는 기분이 들 터이나 1940년에 나온 단행본으로 언문일치를 고민하던 시기에 나온 책이라니 용서가 될 것이다. 참고로 한글 세대인 나는 언문일치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긴가 하여 그 말의 역사를 찾아봤다.
 

 "한국 최초의 국한문혼용체인 유길준(兪吉濬)의 《서유견문(西遊見聞)》(1865) 서문(序文)에 언문일치 주장이 처음으로 나타나며, 그 후 이인직(李仁稙) 등의 신소설과 최남선(崔南善) ·이광수(李光洙) 등을 거쳐 김동인(金東仁)에 이르러 완성을 보았다. 김동인은 이광수의 ‘이더라 ·하더라’를 ‘이다 ·한다 ·하였다’ 등으로 고치고, 소설에서 ‘he ·she’에 상당하는 3인칭 대명사 ‘그’ ‘그녀’를 쓸 것을 주장하였다. 이는 ‘하도다 ·하외다’ 등의 문어(文語)에서 벗어나 ‘한다 ·합니다’ 등의 구어(口語)를 쓰는 문장으로의 변천과정이었으나, 한국어의 특성상 그 완전일치는 불가능하였다."  출처 -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그러나 이 책의 삼분지 이를 차지할 법한 각종 예문들을 읽는 데는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중고등 국어 교과서 비롯한 각종 문제집과 언어 영역에서 자주 보던 친숙한 이들의 글이니, 어즈버 학창 시절이 꿈이런가 하는 나에게는 특히나 졸업 이후 현대 문학만을 쫓은 나에게는 그 시절의 '노스땔지어'와 함께 반갑기 그지없는 예문들이었다. 동시에 예를 드는 문장들이 일반인들은 결코 넘볼 수 없는 경지가 그득하메 노파심에 혹여 그 예문들로 인해 좌절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 가령, 제재 부분에서 제 아무리 작고 평범한 것이라도 얼마든지 훌륭한 글이 된다며 들어준 예는 이상의 <권태> 였고, 맛깔나는 문장은 대상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에서 비롯된다고 하며 들어준 예문은 정지용 이나 최명익과 같은 당대 내로라 하는 문장가들의 글이었다. 

 
   한 가지 또 큰소득은 정지용 작가의 재발견이다. 중고등 시절 이후 한 번도 안 찾아봤던 작가인데, 이 책의 예문을 통해  한 마디로 그의 글에 뻑이 갔다. 책의 중후반쯤 가면 "글자 하나 토씨 하나 하부로 하지 않는 정지용" 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체감했다고나 할까. 지용 횽아 최곱! 내꼬! 당장 장바구니에 담아주겠어! 


 이런 잡글이나마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게 바로 문장강화라고, 다시 한 번 '수미일관 어법'을 구사하며 글을 마치련다. 


 * 아참, 여기서 강화의 의미도 재발견 했다. 강화라곤 복부 강화 내지 삼별초 항쟁만 생각나는 내게 "강의하듯이 쉽게 풀어서 이야기함" 이라는 세계도 있다는 것을 저자가 몸소 강림하여 보여준다. 쉽게 쓴다는 건, 글쓰기의 제 1도리가 아니겠는가 저 혼자 뿌듯해 하며 자위하는 글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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