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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 페르시아 고양이 ㅣ 생각의나무 우리소설 2
구효서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1.
책을 읽고나면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멋지구리한 문장(겉만 번드드한 문장을 의미한 게 아니다)이 대부분인데, (<물 속 페르시아 고양이> 이하 <물>)에서는 화자가 학창시절에 기거했던 자취방 주인 아줌마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니 한동안 혼자서 그 아줌마 톤이나 억양을 상상하며 그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무슨 말인고 하면, 당시 소설가 지망생인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주인 아줌마가 "소설가라면 마르께스가 최고지요" 라고 한 말 때문이다. 화자는 그 말이 "TV 라면 아남이 최고지요" 라는 말처럼 지나치게 자신의 기호를 일반화 한 것 같아 그녀의 안목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듯 말한다. 어쨌거나 이삿짐 옮길 때(특히 책) "그 책들 다 읽은거유"라고 말하는 아주머니들에 비하면 주인 아주마 쪽이 대화하기엔 낫지 않느냐 라고 화자도 나름 만족은 한다.
아무튼 이 이야기를 꽤 길게 늘어놨는데, 나, 그 아주머니의 말에 완전 취미 붙였다. 가령 이런 거다. 벤야민의 선집 중에서 한 권을 읽었다. 그러면 "비평가라면 벤야민이 최고지요" 하는 식이다. 혹은 예약 주문한 <밤은 노래한다>가 도착하면 아마 나는 "소설가라면 김연수가 최고지요" 할 것 같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역시 마르께스가 발음상 재미는 있다. 마르께스가 마르케스가 를 연발하면서 제스처까지 취해주면 이런 재미가 또 없다. (실제로도 <백년의 고독>은 최고지 않나!)
2.
<물>을 읽으면, 마르께스가 이렇게 따라온다.(후반부에 다른 책들도 많이 언급된다.) 책들은 연결된다는 말, 갈수록 확신이 든다는 말이다. 암튼 넘어가서, 이 책이 구효서 작가와의 첫 만남인 셈이다. 그런데 소설 이야기 보다 자꾸 딴 이야기(내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다. 만약 구효서 작가와 대면하게 된다면 줄줄이 말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편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바디페인팅> 도 편하기 그지 없는데, 내 감성은 효서 씨와 맞나부다. 어쩌면 '소설' 이야기를 하고 있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자기 이야기.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 글쓰기에 관한(내 직업이나 관심사) 이야기, 살아가면서 힘들었거나 억울했던 이야기 같은 것들. (그건 <바디페인팅>도 마찬가지인데! 왜 자꾸 그 책을 걸고 넘어지나) 아무튼 <물> 중에서 '물 속 페르시아 고양이', '나무 남자의 아내', '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혀'가 아주 좋더라. 이번에는 메스 좀 안 들이애 볼란다. 딱히 구성이 어떻고 문체나 메시지가 어떻고 하는 식으로 두 눈을 희번뜩이며 판단하고 싶어지지 않아졌다. 아휴~효서 씨 글은 안 피곤하게 보고 싶다. 아항,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에서 딱 어울리는 말을 찾았다. "언어란 언제나 너무 노골적이라서, 그런 희미한 빛의 소중함을 모두 지워버린다" -103쪽 예전에 어떤 영화평론가가 에세이 비슷한 글에서 그러더라구. 영화를 보는 게 '직업'이 되어버려서 아쉽다고. 나야 관련 종사자는 아니지만, 꼭 그런 느낌이기도 한다. 좀 편하게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표지도 봐라. 얼마나 푸근하니. (어차피 에세이에 더 가까운 글이라 본다.)
3.
끝으로 다시 우리의 마르께스 아주머니 이야기로 돌아가면, 화자는 소설이라는 말이 왜 그녀를 설레게 했는지 알 것 같다며 그녀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를 기다려온 건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특별한 외상 없이 마치 "심상치 않은 충격과 압박"에 의해 죽었으리라고 추측되는 고양이 시체와 함께 그녀의 사연을 떠올리는 '물 속 페르시아 고양이'. <물>의 단편들은 그렇게 사는 이야기 나온다. 정갈한 안주와 함께 술 한 잔 기울이며 소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주고 있는 사람에게 니 말투가 어쩌고 의도거 뭐고 하는 식으로 따지고 싶어지지 않는 기분이랄까. 술이라면 역시 살짝 얼려진 얼음이 동동 뜬 동동주가 어울릴 글이다. 캬아! 비도 오는데 오늘은 부침개와 함께 동동주렷다!
추신 : '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혀'는 아주 재미있는 우화다. 한국문단의 현실을 풍자하고 있는 단편인데, 그게 요즘 읽고 있는 <이문열과 김용옥>(인물과사상사) 때문에 더욱 흥미로웠다. 참, 강준만 씨의 저 책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나 준만 씨 팬이 될 생각이다. 말로만 들어왔던 준만 횽아의 첫대면은 대박이었다. 횽아킹왕짱! <이문열과 김용옥> 서평은 날밤을 새워줄 작정이다. 것도 상,하란다. 이틀밤을 새워야 겠어. (쉿쉿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