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을 전공하기 때문에 교육실습을 다녀왔다. 실습 때 아이들을 때리는 대신 '칭찬'과 '경고'를 통해 모둠별로 자석을 붙여주었다. 모둠활동이나 학급분위기를 조성할 때 매우 효과적이었는데 모둠별로 사이가 안 좋아지고 경고가 나갈 때에는 서로를 탓하고 다른 모둠에 칭찬이 나가면 왜 자기들은 안주냐고 항의를 했다. '나쁜 어린이표'를 읽으며 폭력을 쓰지 않는다고 민주적이거나 좋은 선생님은 아니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또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절망을 안겨주는 스티커나 자석만이 능사가 아니며 학급을 운영하는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모두가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교사의 칭찬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인정해주며 칭찬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면, 그리고 그런 어머니가 되고 싶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문제아는 없다. 문제아를 문제아로 만드는 사회와 어른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책의 시점은 창수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평범하지 않게 보는 사회와 어른들의 시각을 조금은 원망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는 작가가 하고 싶어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창수의 선생님이라면 나는 어떤 시선으로 창수를 바라볼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깡이 세서 상급생과 싸워도 이기고, 싸우다가 친구에게 의자를 던지는 아이, 학교에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아이를 보며 나는 과연 평범한 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사건과 상황을 있는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은 왜곡되고 있다. 그래서 점점 문제아로 몰리는 창수의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나의 경우에는 창수에게 평범치 않은 시선으로 관심을 보이며 문제가 있다는 가정 하에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다가갈 것 같다. 평범치 않은 시선 자체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동화책을 너무나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여름방학 내내 동네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동화책을 탐독하던 친구이다. 그 친구가 말하기를 아이들이 이 책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책 표지를 보니 약간 괴기스러운 그림 스타일에 꺼리는 마음이 생겼다. 더구나 까치도 아니고 까마귀라니......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도 나는 아이들이 왜 이 책을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솔직히 따돌림에 대한 내용은 마음을 어둡게 하고 또 아프게 한다. 나 역시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들에게 사소한 이유를 빌미로 따돌림을 받았기 때문에 아픈 상처처럼 덮어두었던 부분을 다시 건드린 느낌이다. 그래서 책을 샀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읽은 뒤로 다시 펼쳐보지 않았다가 이번 과제를 계기로 조심스레 다시 열어보았다. 조심스럽게 한 장 한 장, 그림을 살펴보면서 읽었다. 다시 한 번 땅꼬마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또 다시 슬퍼졌다. 그런데 이소베 선생님의 등장으로 나는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이전에 읽었을 때는 따돌리는 부분에 집중하다보니 뒷부분의 내용을 등한시하였기 때문에 이소베 선생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나 보다. '까마귀소년'에서 이소베 선생님은 땅꼬마에게 새로운 돌파구이며 구원자이다. 구석에 조그맣게 묻혀 있는 아이에게도, 마구잡이로 떠들며 말썽을 피우는 아이에게도 그 나름의 재능과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이소베 선생은 알고 있있다. 이러한 이소베 선생의 태도는 따돌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라는 확신을 갖게 하였다. 따돌림 문제는 해결불가이며 나와 같이 마음에 아픔을 가진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생긴다라는 생각은 사라지게 되었다. 땅꼬마가 까마귀소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따사로운 눈빛을 보내주는 이소베 선생이 될 수 있도록 나는 땅꼬마이면서 동시에 이소베 선생이 될 것이다. 그 길에 '까마귀소년'은 끊임없는 감동으로 가야할 바를 안내할 지침이 되어 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초등교육을 전공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실습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번 실습에서 우리 반에는 영대처럼 엄마도 없이 할머니와 사는 철이(가명)란 아이가 있었는데 반의 아이들 모두 철이를 놀리면서 멀리하기 일쑤였지요..안타까운 마음에 아이들을 혼내기도 하고 철이를 감싸주기도 했지만 문제의 원인은 철이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늘 헤헤거리면서 웃지만 친구들이 싫어할만한 행동과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철이를 이해하라고 말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어주면서 마음 속으로는 이 책에서와 같이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어요.제가 눈물을 글썽이며 영대가 우는 부분을 읽어내려갈 때 숨을 죽인 채 듣고 있었지만 책을 다 읽고나자마자 '선생님, 우리 반에도 영대같은 애가 있어요.' '영대처럼 바보예요!'라고 소리를 쳤어요. 아이들은 오히려 신이 나서 철이를 놀려대는 것이죠. 당황스러워서 할 말을 잃은 저. 그런데 철이의 짝인 영이(가명)가 살며시 다가와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 책은 누가 쓴 거예요? 왜 제목이 '내짝궁 최영대'라고 되어 있어요?' 라구요.저는 대답했죠. '이 책은 최영대의 짝인 여자아이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되어 있잖니. 어쩌면 이 책을 지은 사람이 어렸을 때 이런 짝이 있었는지도 몰라.' 영이는 심각한 얼굴이 되어 다시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 짝도 최영대 같은걸요. 저도 이 사람처럼 영대에게 잘해줘야해요?' '영이는 이 여자아이보다 더 마음이 넓잖니. 다른 친구들이 철이를 놀려도 영이가 잘 대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럼 철이도 영대처럼 반 아이들이랑 잘 지내게 될지도 몰라.' 따돌림 문제는 어느 교실에나 존재하며 그 해결점을 찾기란 너무 힘이 듭니다. 한 권의 책으로 따돌림을 해결하고자 했던 저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런 작은 시도들을 통해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따돌림을 받는 아이에 대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희생이라는 의미보다는 자신의 의미를 찾고 실현하는 의미에서 강아지똥을 바라보게 됩니다. '넌 더러운 강아지똥이야!!' 라는 말에 울어버리고야마는 강아지똥의 모습은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 우리들의 모습을 닮아있지요. 자신의 위축된 모습, 열등감으로 가득찬 모습은 견디기 힘든 괴로움이니까요...그러나, 우리는 다시 강아지똥에게 위로를 받습니다. 하늘의 별보다도 고운 민들레꽃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강아지똥의 희생이 필요했고, 강아지똥은 서슴없이 봄비에 자신의 몸을 녹여 거름이 되어줍니다. 자아의 의미를 찾는 방법이지요.. 강아지똥은 위로와 감동, 희망의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