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ㅣ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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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뇌세포'의 '처음'과 '마지막'
- [코끼리는 기억한다] / [커튼] /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애거서 크리스티, 1920~1975.
​
​
"맞는 말이오.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과거의 어느 곳으로부터 보금자리로 돌아올 가능성 같은 것이 있지요. 그런 걸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과거의 죄는 긴 그림자를 갖고 있다.'"
- [코끼리는 기억한다], <제1부 9장. 코끼리 조사의 결과>, 애거서 크리스티, 1972.
​
​
'여성' 추리소설 작가의 신비스럽고 공포에 싸인 분위기를 추적하던 중, 잠시 나의 장편소설 읽기 원천이었던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 1890~1976)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녀의 분신과 같은 '여성' 탐정 '미스 마플(Ms. Marple)' 할머니의 '마지막' 활약까지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

미스 마플의 첫 번째 등장은 1930년 발표된 [목사관 살인사건]이었다. 마플 양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까지 살아서 활동했는데, '여성' 작가의 '여성' 주인공 탐정이라 해서 별 다른 특성은 없고 '여성' 추리소설 작가 특유의 '신비'와 '공포' 같은 건 단지 내가 만들어낸 관념이었다는 걸 나는 곧 깨닫게 되었다.

한편, 애거서 크리스티의 등단과 함께 등장했던 주요 명탐정이 '에르퀼 포와로(Hercule Poirot)'였으므로 나는 '여성' 추리소설 작가 탐색을 멈추고 명탐정 포와로의 활약을 마저 확인하고 싶어졌다.

1920년에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으로 첫 작품을 발표한 애거서 크리스티는 등단 후 10년이 지나서야 작가 자신의 '분신'과 같은 '미스 마플'을 창조했는데, 등단 첫 작품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1920)에서부터 등장한 에르퀼 포와로는 어쩌면 작가 자신의 평생 '연인'과도 같지 않았을까 싶다.
​
[오리엔트 특급살인](1934)으로 유명하고, 그 외 [애크로이드 살인사건](1926), [ABC 살인사건](1936), [테이블 위의 카드](1936), [메소포타미아의 죽음](1936), [나일강의 죽음](1937) 등 약 38편의 걸출한 작품에서 활약한 에르퀼 포와로는 평생 80편 이상의 장/단편 작품을 썼다던 애거서 크리스티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하게 된다.

명탐정 에르퀼 포와로는 1920년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에서 제1차 대전 중 독일군을 피해 벨기에로부터 영국으로 망명한 후로, 1975년 [커튼]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55년을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와 함께 지냈으니, 현실에서는 두 번 결혼한 크리스티에게 포와로는 오랫동안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았던 이야기 속의 '진짜' 남편과도 같다고 하겠다.
​
동그랗고 큰 대머리에 우스꽝스런 콧수염과 작은 키(약 163cm)로 묘사되는 포와로는 벨기에 경찰에서 은퇴 후 제1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벨기에를 침공한 독일군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하여 본격 사립탐정 역할을 하는데, 자칭 세계 최고의 뛰어난 '회색 뇌세포'를 작동시켜 오래된 살인사건을 몇 건 밝혀내기도 한다.
​
그는 스스로를 '세계 최고의 명탐정'이라 자부하고 본인의 '회색 뇌세포'를 자랑한다.


"'글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도 같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포와로는 좀 당황한 얼굴로 그녀(올리버 부인)를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고요?'
'사실 전 '코끼리'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코끼리?'
...
'그런 게 아니에요. 진짜 코끼리를 만나겠다는 게 아니라, '코끼리'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겠다는 거예요. 뛰어나게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이 몇몇 있으니까요...'"
- [코끼리는 기억한다], <제2장. 코끼리에 대한 최초의 언급>, 애거서 크리스티, 1972.
​
​
포와로의 '마지막' 활약은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라는 작품이다.
​
[테이블 위의 카드]에서 함께 등장한 추리소설 작가 올리버 부인이 가져온 14년 전 래븐스크로프트 부부 동반자살 사건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이미 노신사가 되었을 포와로는 올리버 부인이 오래전 사건의 관계자들을 만나 오랜 기억들을 수집하는 것을 도우면서 진위가 불분명한 몇 가지 단서들(쌍둥이, 가발, 개, 가정교사 등)을 추적하며 의문에 싸였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그(포와로)는 올리버 부인에게 다가갔다.
'이젠 런던으로 돌아가야죠. 비극적인 사건과 애정에 얽힌 문제는 잊어버리고 평상시 생활로 돌아가야겠죠.'
'코끼리는 기억할 수 있어요.' 올리버 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우린 인간이에요. 자비롭게도 우리 인간은 잊어버릴 수가 있죠.'"
- [코끼리는 기억한다], <제2부 20장. 사문회>, 애거서 크리스티, 1972.
​
​
이 작품에 '코끼리'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지능이 높고 기억력이 좋다는 '코끼리'를 오래전 관련자들에 은유하며, 그들의 '기억'이 '코끼리'의 '기억력'처럼 오랫 동안 잊혀지지 않고 진실을 가리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사한다는 뜻이다.
​
오래전 부부 동반자살 또는 살인사건은 '과거의 죄는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격언처럼 짙은 여운을 남기는데, 보통은 과거의 죄를 덮기 위해 현재의 새로운 살인을 초래하기 마련이지만, 래븐스크로프트 부부 '동반자살' 또는 '살인사건'은 살인자들이 이미 죽음으로 마무리된 사건으로 그 '긴 그림자'의 폐해가 그리 짙지는 않다.
​
그러므로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래븐스크로프트 부부의 딸 실리아의 앞날에 포와로와 올리버 부인 콤비는 '코끼리'와 다르게 '망각'에 익숙한 '인간'의 장점을 강조하며 젊은이들을 격려해주고 있다.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에서 에르퀼 포와로는 노신사가 되었지만 아직 팔팔하게 '마지막' 활약을 한다. 반면, 그의 진짜 '마지막' 작품에서 포와로는 거의 삶의 끝자락에서(나중에 이 또한 연기로 판명나게 되지만)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는데, 그 장소는 바로 포와로가 '처음' 등장하여 활약한 '스타일즈(Styles)' 저택으로 선택된다.


"'이곳의 분위기 말이에요. (헤이스팅스) 선생님은 그런 걸 느끼지 못하세요? 저는 느껴요. 어쩐지 '사악한' 분위기,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세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방금 말한 게 사실일까? 어떤 장소에서 일어난 끔찍한 죽음. 살의에 의해서 저질러진 죽음이 발생하게 되면 그 장소에 강한 인상이 남기 때문에 수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일까? 심령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스타일즈 저택'은 그렇게 오래 전에 일어났던 그 사건의 흔적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 이 벽들, 이 정원 안에서 살인의 음모가 떠나지 않고 있다가 점점 강해져서 마침내는 결정적인 행동으로 결과를 맺게 되었었지. 그것이 아직도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단 말인가?"
- [커튼], <제7장>, 애거서 크리스티,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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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영국 런던 대공습이 한창일 때 대부분 영국인들이 그랬듯,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 또한 내일 자신이 과연 살아 있을지를 오늘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에르퀼 포와로의 최후를 담은 작품을 써 두었다고 한다. 자신의 영원한 '연인' 포와로와 끝까지 함께하기 위해서였겠다. 그 작품이 바로 [커튼]으로, 포와로의 죽음으로 머무리되는 이야기다.
​
제2차 대전 후 살아남은 애거서 크리스티는 [커튼]을 미발표작으로 유보하다가 작가의 만년인 1975년에 발표하면서 작가 본인보다 먼저 보내준다. 크리스티가 영원토록 사랑했던 '연인' 포와로는 1975년에 먼저 죽고 작가 자신의 '분신' 미스 마플은 그녀의 사후인 1976년에도 여전히 살아서 활약한다. 
그 작품이 바로 [잠자는 살인](1976)이다.

물론, 주인공 탐정의 '마지막' 활약 시점과 작품의 '마지막' 발표 시점의 차이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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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미스 마플'의 '마지막' 활약은 [복수의 여신](1971)이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 발표작은 [잠자는 살인](1976)이고, 
'포와로'의 '마지막' 활약은 [커튼](1975)이지만 이 작품은 1940년대에 이미 창작되었으니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실제 그의 '마지막' 활약이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가 되는 식으로 말이다.
​
애거서 크리스티가 에르퀼 포와로의  최후를 상정하고 오래 전에 써두었던 [커튼]을 한참 후에 발표한 것이니, 포와로의 실제 '마지막' 활약은 [커튼](1975)인 한편,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 포와로 작품은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로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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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첫 소설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1920)에서 처음 등장한 망명객 포와로의 연령대가 5~60대라고 치면 [커튼](1975)의 발표 연도를 고려하면 포와로는 100살이 넘겠지만, 실제로 [커튼]이 1940년대에 씌어졌다니 80대 정도로 보면 되겠다. 그렇다면,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는 그 배경이 발표된 시기가 아니라 대략 제2차대전 전후를 배경으로 생각해야겠다. 
​
[커튼](1975)에서 포와로는 명백히 사망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이 첫 등장했던 '스타일즈 저택'에서 극악한 '살인자 X'를 본인 손으로 직접 처단하고는 마치 '자연사'와 같이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이것은 헤이스팅스, 나의 '마지막' 사건이 될 걸세. 또한, 가장 흥미있는 사건이지. 가장 관심있는 범죄가 될 거야. 우리가 다루고 있는 'X'는 고도의 기술을 갖추고 있는 녀석이어서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네. 그만큼이나, 이 친구야, 이 'X'는 나를 패배시킬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어. 이 에르큘 포와로를 말이야! 그는 내가 전혀 해답을 찾아낼 수 없는 공격법을 개발했다네.'
'당신이 건강했다면...'
...
에르큘 포와로는 바로 화를 냈다.
...
'... 나의 사지가 못 쓰게 되었고 심장도 나를 농락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두뇌'만은, 헤이스팅스, 나의 '두뇌'는 고장 난 곳이 한 군데도 없이 그 기능을 다 발휘하고 있단 말이야. 아직도 최고로 우수하다고, 나의 '두뇌'는 말일세.'"
- [커튼], <제15장>, 애거서 크리스티, 1975.
​
​
[커튼]의 살인자 'X'는 본인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남을 교묘하게 사주하여 수많은 살인을 해 온 자로, 에르퀼 포와로가 오랫 동안 추적해 왔고 결국 '사악한' 기운이 유령처럼 감도는 불길한 '스타일즈 저택'으로 살인자 'X'를 유인히여 결단낸 후 포와로 스스로도 죽는다는 내용이다.
​
이처럼 평생 '살인'을 증오하고 인간 생명을 귀하게 여겨온 포와로가 희대의 살인마와의 '마지막' 게임에서 승리하되 법의 처벌이 아닌 사적이고 인간적인 응징을 하면서 이젠 늙어버린 자신의 육신 속 아직 건재한 '회색 뇌세포'를 정지시키고 마는 [커튼](1975)은 확실한 포와로 '마지막' 작품이다.
​
이렇게 오래 전 애거서 크리스티와 그녀의 연인 에르퀼 포와로의 '처음'과 '마지막'을 새삼 읽었으나, 이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여왕과 그녀의 평생 연인 '세계 최고'의 '회색 뇌세포' 두뇌, 에르퀼 포와로를 이대로 떠나 보낼 수가 없다.
​
그가 활약한 소설 중 내가 안 읽은 작품 몇 권을,
역시 추억의 <해문출판사> 판으로 주문한다.
​
지금 바로 읽을지, 또 언제 읽어볼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
***
​
1. [코끼리는 기억한다(Elephants Can Remember)](1972), Agatha Christie, 권순홍 옮김, <해문출판사>, 1988~2010.
2. [커튼(Curtain)](1975), Agatha Christie, 이가형 옮김, <해문출판사>, 1985~2009.
3.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The Mysterious Affair at Styles)](1920), Agatha Christie, 이가형 옮김, <해문출판사>, 1985~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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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ㅣ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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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뇌세포'의 '처음'과 '마지막'
- [코끼리는 기억한다] / [커튼] /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애거서 크리스티, 1920~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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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이오.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과거의 어느 곳으로부터 보금자리로 돌아올 가능성 같은 것이 있지요. 그런 걸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과거의 죄는 긴 그림자를 갖고 있다.'"
- [코끼리는 기억한다], <제1부 9장. 코끼리 조사의 결과>, 애거서 크리스티,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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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추리소설 작가의 신비스럽고 공포에 싸인 분위기를 추적하던 중, 잠시 나의 장편소설 읽기 원천이었던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 1890~1976)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녀의 분신과 같은 '여성' 탐정 '미스 마플(Ms. Marple)' 할머니의 '마지막' 활약까지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

미스 마플의 첫 번째 등장은 1930년 발표된 [목사관 살인사건]이었다. 마플 양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까지 살아서 활동했는데, '여성' 작가의 '여성' 주인공 탐정이라 해서 별 다른 특성은 없고 '여성' 추리소설 작가 특유의 '신비'와 '공포' 같은 건 단지 내가 만들어낸 관념이었다는 걸 나는 곧 깨닫게 되었다.

한편, 애거서 크리스티의 등단과 함께 등장했던 주요 명탐정이 '에르퀼 포와로(Hercule Poirot)'였으므로 나는 '여성' 추리소설 작가 탐색을 멈추고 명탐정 포와로의 활약을 마저 확인하고 싶어졌다.

1920년에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으로 첫 작품을 발표한 애거서 크리스티는 등단 후 10년이 지나서야 작가 자신의 '분신'과 같은 '미스 마플'을 창조했는데, 등단 첫 작품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1920)에서부터 등장한 에르퀼 포와로는 어쩌면 작가 자신의 평생 '연인'과도 같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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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살인](1934)으로 유명하고, 그 외 [애크로이드 살인사건](1926), [ABC 살인사건](1936), [테이블 위의 카드](1936), [메소포타미아의 죽음](1936), [나일강의 죽음](1937) 등 약 38편의 걸출한 작품에서 활약한 에르퀼 포와로는 평생 80편 이상의 장/단편 작품을 썼다던 애거서 크리스티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하게 된다.

명탐정 에르퀼 포와로는 1920년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에서 제1차 대전 중 독일군을 피해 벨기에로부터 영국으로 망명한 후로, 1975년 [커튼]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55년을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와 함께 지냈으니, 현실에서는 두 번 결혼한 크리스티에게 포와로는 오랫동안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았던 이야기 속의 '진짜' 남편과도 같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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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랗고 큰 대머리에 우스꽝스런 콧수염과 작은 키(약 163cm)로 묘사되는 포와로는 벨기에 경찰에서 은퇴 후 제1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벨기에를 침공한 독일군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하여 본격 사립탐정 역할을 하는데, 자칭 세계 최고의 뛰어난 '회색 뇌세포'를 작동시켜 오래된 살인사건을 몇 건 밝혀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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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스로를 '세계 최고의 명탐정'이라 자부하고 본인의 '회색 뇌세포'를 자랑한다.


"'글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도 같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포와로는 좀 당황한 얼굴로 그녀(올리버 부인)를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고요?'
'사실 전 '코끼리'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코끼리?'
...
'그런 게 아니에요. 진짜 코끼리를 만나겠다는 게 아니라, '코끼리'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겠다는 거예요. 뛰어나게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이 몇몇 있으니까요...'"
- [코끼리는 기억한다], <제2장. 코끼리에 대한 최초의 언급>, 애거서 크리스티,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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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와로의 '마지막' 활약은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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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의 카드]에서 함께 등장한 추리소설 작가 올리버 부인이 가져온 14년 전 래븐스크로프트 부부 동반자살 사건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이미 노신사가 되었을 포와로는 올리버 부인이 오래전 사건의 관계자들을 만나 오랜 기억들을 수집하는 것을 도우면서 진위가 불분명한 몇 가지 단서들(쌍둥이, 가발, 개, 가정교사 등)을 추적하며 의문에 싸였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그(포와로)는 올리버 부인에게 다가갔다.
'이젠 런던으로 돌아가야죠. 비극적인 사건과 애정에 얽힌 문제는 잊어버리고 평상시 생활로 돌아가야겠죠.'
'코끼리는 기억할 수 있어요.' 올리버 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우린 인간이에요. 자비롭게도 우리 인간은 잊어버릴 수가 있죠.'"
- [코끼리는 기억한다], <제2부 20장. 사문회>, 애거서 크리스티,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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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코끼리'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지능이 높고 기억력이 좋다는 '코끼리'를 오래전 관련자들에 은유하며, 그들의 '기억'이 '코끼리'의 '기억력'처럼 오랫 동안 잊혀지지 않고 진실을 가리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사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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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부부 동반자살 또는 살인사건은 '과거의 죄는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격언처럼 짙은 여운을 남기는데, 보통은 과거의 죄를 덮기 위해 현재의 새로운 살인을 초래하기 마련이지만, 래븐스크로프트 부부 '동반자살' 또는 '살인사건'은 살인자들이 이미 죽음으로 마무리된 사건으로 그 '긴 그림자'의 폐해가 그리 짙지는 않다.
​
그러므로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래븐스크로프트 부부의 딸 실리아의 앞날에 포와로와 올리버 부인 콤비는 '코끼리'와 다르게 '망각'에 익숙한 '인간'의 장점을 강조하며 젊은이들을 격려해주고 있다.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에서 에르퀼 포와로는 노신사가 되었지만 아직 팔팔하게 '마지막' 활약을 한다. 반면, 그의 진짜 '마지막' 작품에서 포와로는 거의 삶의 끝자락에서(나중에 이 또한 연기로 판명나게 되지만)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는데, 그 장소는 바로 포와로가 '처음' 등장하여 활약한 '스타일즈(Styles)' 저택으로 선택된다.


"'이곳의 분위기 말이에요. (헤이스팅스) 선생님은 그런 걸 느끼지 못하세요? 저는 느껴요. 어쩐지 '사악한' 분위기,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세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방금 말한 게 사실일까? 어떤 장소에서 일어난 끔찍한 죽음. 살의에 의해서 저질러진 죽음이 발생하게 되면 그 장소에 강한 인상이 남기 때문에 수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일까? 심령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스타일즈 저택'은 그렇게 오래 전에 일어났던 그 사건의 흔적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 이 벽들, 이 정원 안에서 살인의 음모가 떠나지 않고 있다가 점점 강해져서 마침내는 결정적인 행동으로 결과를 맺게 되었었지. 그것이 아직도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단 말인가?"
- [커튼], <제7장>, 애거서 크리스티, 1975.
​
​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영국 런던 대공습이 한창일 때 대부분 영국인들이 그랬듯,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 또한 내일 자신이 과연 살아 있을지를 오늘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에르퀼 포와로의 최후를 담은 작품을 써 두었다고 한다. 자신의 영원한 '연인' 포와로와 끝까지 함께하기 위해서였겠다. 그 작품이 바로 [커튼]으로, 포와로의 죽음으로 머무리되는 이야기다.
​
제2차 대전 후 살아남은 애거서 크리스티는 [커튼]을 미발표작으로 유보하다가 작가의 만년인 1975년에 발표하면서 작가 본인보다 먼저 보내준다. 크리스티가 영원토록 사랑했던 '연인' 포와로는 1975년에 먼저 죽고 작가 자신의 '분신' 미스 마플은 그녀의 사후인 1976년에도 여전히 살아서 활약한다. 
그 작품이 바로 [잠자는 살인](1976)이다.

물론, 주인공 탐정의 '마지막' 활약 시점과 작품의 '마지막' 발표 시점의 차이는 있다.
​
즉, '미스 마플'의 '마지막' 활약은 [복수의 여신](1971)이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 발표작은 [잠자는 살인](1976)이고, 
'포와로'의 '마지막' 활약은 [커튼](1975)이지만 이 작품은 1940년대에 이미 창작되었으니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실제 그의 '마지막' 활약이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가 되는 식으로 말이다.
​
애거서 크리스티가 에르퀼 포와로의  최후를 상정하고 오래 전에 써두었던 [커튼]을 한참 후에 발표한 것이니, 포와로의 실제 '마지막' 활약은 [커튼](1975)인 한편,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 포와로 작품은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로 보면 되겠다.
​
그러므로 첫 소설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1920)에서 처음 등장한 망명객 포와로의 연령대가 5~60대라고 치면 [커튼](1975)의 발표 연도를 고려하면 포와로는 100살이 넘겠지만, 실제로 [커튼]이 1940년대에 씌어졌다니 80대 정도로 보면 되겠다. 그렇다면,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는 그 배경이 발표된 시기가 아니라 대략 제2차대전 전후를 배경으로 생각해야겠다. 
​
[커튼](1975)에서 포와로는 명백히 사망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이 첫 등장했던 '스타일즈 저택'에서 극악한 '살인자 X'를 본인 손으로 직접 처단하고는 마치 '자연사'와 같이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이것은 헤이스팅스, 나의 '마지막' 사건이 될 걸세. 또한, 가장 흥미있는 사건이지. 가장 관심있는 범죄가 될 거야. 우리가 다루고 있는 'X'는 고도의 기술을 갖추고 있는 녀석이어서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네. 그만큼이나, 이 친구야, 이 'X'는 나를 패배시킬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어. 이 에르큘 포와로를 말이야! 그는 내가 전혀 해답을 찾아낼 수 없는 공격법을 개발했다네.'
'당신이 건강했다면...'
...
에르큘 포와로는 바로 화를 냈다.
...
'... 나의 사지가 못 쓰게 되었고 심장도 나를 농락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두뇌'만은, 헤이스팅스, 나의 '두뇌'는 고장 난 곳이 한 군데도 없이 그 기능을 다 발휘하고 있단 말이야. 아직도 최고로 우수하다고, 나의 '두뇌'는 말일세.'"
- [커튼], <제15장>, 애거서 크리스티, 1975.
​
​
[커튼]의 살인자 'X'는 본인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남을 교묘하게 사주하여 수많은 살인을 해 온 자로, 에르퀼 포와로가 오랫 동안 추적해 왔고 결국 '사악한' 기운이 유령처럼 감도는 불길한 '스타일즈 저택'으로 살인자 'X'를 유인히여 결단낸 후 포와로 스스로도 죽는다는 내용이다.
​
이처럼 평생 '살인'을 증오하고 인간 생명을 귀하게 여겨온 포와로가 희대의 살인마와의 '마지막' 게임에서 승리하되 법의 처벌이 아닌 사적이고 인간적인 응징을 하면서 이젠 늙어버린 자신의 육신 속 아직 건재한 '회색 뇌세포'를 정지시키고 마는 [커튼](1975)은 확실한 포와로 '마지막' 작품이다.
​
이렇게 오래 전 애거서 크리스티와 그녀의 연인 에르퀼 포와로의 '처음'과 '마지막'을 새삼 읽었으나, 이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여왕과 그녀의 평생 연인 '세계 최고'의 '회색 뇌세포' 두뇌, 에르퀼 포와로를 이대로 떠나 보낼 수가 없다.
​
그가 활약한 소설 중 내가 안 읽은 작품 몇 권을,
역시 추억의 <해문출판사> 판으로 주문한다.
​
지금 바로 읽을지, 또 언제 읽어볼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
***
​
1. [코끼리는 기억한다(Elephants Can Remember)](1972), Agatha Christie, 권순홍 옮김, <해문출판사>, 1988~2010.
2. [커튼(Curtain)](1975), Agatha Christie, 이가형 옮김, <해문출판사>, 1985~2009.
3.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The Mysterious Affair at Styles)](1920), Agatha Christie, 이가형 옮김, <해문출판사>, 1985~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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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기억한다 ㅣ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6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권순홍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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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뇌세포'의 '처음'과 '마지막'
- [코끼리는 기억한다] / [커튼] /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애거서 크리스티, 1920~1975.
​
​
"맞는 말이오.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과거의 어느 곳으로부터 보금자리로 돌아올 가능성 같은 것이 있지요. 그런 걸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과거의 죄는 긴 그림자를 갖고 있다.'"
- [코끼리는 기억한다], <제1부 9장. 코끼리 조사의 결과>, 애거서 크리스티, 1972.
​
​
'여성' 추리소설 작가의 신비스럽고 공포에 싸인 분위기를 추적하던 중, 잠시 나의 장편소설 읽기 원천이었던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 1890~1976)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녀의 분신과 같은 '여성' 탐정 '미스 마플(Ms. Marple)' 할머니의 '마지막' 활약까지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

미스 마플의 첫 번째 등장은 1930년 발표된 [목사관 살인사건]이었다. 마플 양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까지 살아서 활동했는데, '여성' 작가의 '여성' 주인공 탐정이라 해서 별 다른 특성은 없고 '여성' 추리소설 작가 특유의 '신비'와 '공포' 같은 건 단지 내가 만들어낸 관념이었다는 걸 나는 곧 깨닫게 되었다.

한편, 애거서 크리스티의 등단과 함께 등장했던 주요 명탐정이 '에르퀼 포와로(Hercule Poirot)'였으므로 나는 '여성' 추리소설 작가 탐색을 멈추고 명탐정 포와로의 활약을 마저 확인하고 싶어졌다.

1920년에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으로 첫 작품을 발표한 애거서 크리스티는 등단 후 10년이 지나서야 작가 자신의 '분신'과 같은 '미스 마플'을 창조했는데, 등단 첫 작품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1920)에서부터 등장한 에르퀼 포와로는 어쩌면 작가 자신의 평생 '연인'과도 같지 않았을까 싶다.
​
[오리엔트 특급살인](1934)으로 유명하고, 그 외 [애크로이드 살인사건](1926), [ABC 살인사건](1936), [테이블 위의 카드](1936), [메소포타미아의 죽음](1936), [나일강의 죽음](1937) 등 약 38편의 걸출한 작품에서 활약한 에르퀼 포와로는 평생 80편 이상의 장/단편 작품을 썼다던 애거서 크리스티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하게 된다.

명탐정 에르퀼 포와로는 1920년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에서 제1차 대전 중 독일군을 피해 벨기에로부터 영국으로 망명한 후로, 1975년 [커튼]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55년을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와 함께 지냈으니, 현실에서는 두 번 결혼한 크리스티에게 포와로는 오랫동안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았던 이야기 속의 '진짜' 남편과도 같다고 하겠다.
​
동그랗고 큰 대머리에 우스꽝스런 콧수염과 작은 키(약 163cm)로 묘사되는 포와로는 벨기에 경찰에서 은퇴 후 제1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벨기에를 침공한 독일군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하여 본격 사립탐정 역할을 하는데, 자칭 세계 최고의 뛰어난 '회색 뇌세포'를 작동시켜 오래된 살인사건을 몇 건 밝혀내기도 한다.
​
그는 스스로를 '세계 최고의 명탐정'이라 자부하고 본인의 '회색 뇌세포'를 자랑한다.


"'글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도 같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포와로는 좀 당황한 얼굴로 그녀(올리버 부인)를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고요?'
'사실 전 '코끼리'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코끼리?'
...
'그런 게 아니에요. 진짜 코끼리를 만나겠다는 게 아니라, '코끼리'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겠다는 거예요. 뛰어나게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이 몇몇 있으니까요...'"
- [코끼리는 기억한다], <제2장. 코끼리에 대한 최초의 언급>, 애거서 크리스티, 1972.
​
​
포와로의 '마지막' 활약은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라는 작품이다.
​
[테이블 위의 카드]에서 함께 등장한 추리소설 작가 올리버 부인이 가져온 14년 전 래븐스크로프트 부부 동반자살 사건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이미 노신사가 되었을 포와로는 올리버 부인이 오래전 사건의 관계자들을 만나 오랜 기억들을 수집하는 것을 도우면서 진위가 불분명한 몇 가지 단서들(쌍둥이, 가발, 개, 가정교사 등)을 추적하며 의문에 싸였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그(포와로)는 올리버 부인에게 다가갔다.
'이젠 런던으로 돌아가야죠. 비극적인 사건과 애정에 얽힌 문제는 잊어버리고 평상시 생활로 돌아가야겠죠.'
'코끼리는 기억할 수 있어요.' 올리버 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우린 인간이에요. 자비롭게도 우리 인간은 잊어버릴 수가 있죠.'"
- [코끼리는 기억한다], <제2부 20장. 사문회>, 애거서 크리스티, 1972.
​
​
이 작품에 '코끼리'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지능이 높고 기억력이 좋다는 '코끼리'를 오래전 관련자들에 은유하며, 그들의 '기억'이 '코끼리'의 '기억력'처럼 오랫 동안 잊혀지지 않고 진실을 가리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사한다는 뜻이다.
​
오래전 부부 동반자살 또는 살인사건은 '과거의 죄는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격언처럼 짙은 여운을 남기는데, 보통은 과거의 죄를 덮기 위해 현재의 새로운 살인을 초래하기 마련이지만, 래븐스크로프트 부부 '동반자살' 또는 '살인사건'은 살인자들이 이미 죽음으로 마무리된 사건으로 그 '긴 그림자'의 폐해가 그리 짙지는 않다.
​
그러므로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래븐스크로프트 부부의 딸 실리아의 앞날에 포와로와 올리버 부인 콤비는 '코끼리'와 다르게 '망각'에 익숙한 '인간'의 장점을 강조하며 젊은이들을 격려해주고 있다.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에서 에르퀼 포와로는 노신사가 되었지만 아직 팔팔하게 '마지막' 활약을 한다. 반면, 그의 진짜 '마지막' 작품에서 포와로는 거의 삶의 끝자락에서(나중에 이 또한 연기로 판명나게 되지만)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는데, 그 장소는 바로 포와로가 '처음' 등장하여 활약한 '스타일즈(Styles)' 저택으로 선택된다.


"'이곳의 분위기 말이에요. (헤이스팅스) 선생님은 그런 걸 느끼지 못하세요? 저는 느껴요. 어쩐지 '사악한' 분위기,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세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방금 말한 게 사실일까? 어떤 장소에서 일어난 끔찍한 죽음. 살의에 의해서 저질러진 죽음이 발생하게 되면 그 장소에 강한 인상이 남기 때문에 수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일까? 심령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스타일즈 저택'은 그렇게 오래 전에 일어났던 그 사건의 흔적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 이 벽들, 이 정원 안에서 살인의 음모가 떠나지 않고 있다가 점점 강해져서 마침내는 결정적인 행동으로 결과를 맺게 되었었지. 그것이 아직도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단 말인가?"
- [커튼], <제7장>, 애거서 크리스티,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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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영국 런던 대공습이 한창일 때 대부분 영국인들이 그랬듯,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 또한 내일 자신이 과연 살아 있을지를 오늘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에르퀼 포와로의 최후를 담은 작품을 써 두었다고 한다. 자신의 영원한 '연인' 포와로와 끝까지 함께하기 위해서였겠다. 그 작품이 바로 [커튼]으로, 포와로의 죽음으로 머무리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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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대전 후 살아남은 애거서 크리스티는 [커튼]을 미발표작으로 유보하다가 작가의 만년인 1975년에 발표하면서 작가 본인보다 먼저 보내준다. 크리스티가 영원토록 사랑했던 '연인' 포와로는 1975년에 먼저 죽고 작가 자신의 '분신' 미스 마플은 그녀의 사후인 1976년에도 여전히 살아서 활약한다. 
그 작품이 바로 [잠자는 살인](1976)이다.

물론, 주인공 탐정의 '마지막' 활약 시점과 작품의 '마지막' 발표 시점의 차이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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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미스 마플'의 '마지막' 활약은 [복수의 여신](1971)이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 발표작은 [잠자는 살인](1976)이고, 
'포와로'의 '마지막' 활약은 [커튼](1975)이지만 이 작품은 1940년대에 이미 창작되었으니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실제 그의 '마지막' 활약이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가 되는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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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가 에르퀼 포와로의  최후를 상정하고 오래 전에 써두었던 [커튼]을 한참 후에 발표한 것이니, 포와로의 실제 '마지막' 활약은 [커튼](1975)인 한편,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 포와로 작품은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로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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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첫 소설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1920)에서 처음 등장한 망명객 포와로의 연령대가 5~60대라고 치면 [커튼](1975)의 발표 연도를 고려하면 포와로는 100살이 넘겠지만, 실제로 [커튼]이 1940년대에 씌어졌다니 80대 정도로 보면 되겠다. 그렇다면,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는 그 배경이 발표된 시기가 아니라 대략 제2차대전 전후를 배경으로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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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1975)에서 포와로는 명백히 사망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이 첫 등장했던 '스타일즈 저택'에서 극악한 '살인자 X'를 본인 손으로 직접 처단하고는 마치 '자연사'와 같이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이것은 헤이스팅스, 나의 '마지막' 사건이 될 걸세. 또한, 가장 흥미있는 사건이지. 가장 관심있는 범죄가 될 거야. 우리가 다루고 있는 'X'는 고도의 기술을 갖추고 있는 녀석이어서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네. 그만큼이나, 이 친구야, 이 'X'는 나를 패배시킬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어. 이 에르큘 포와로를 말이야! 그는 내가 전혀 해답을 찾아낼 수 없는 공격법을 개발했다네.'
'당신이 건강했다면...'
...
에르큘 포와로는 바로 화를 냈다.
...
'... 나의 사지가 못 쓰게 되었고 심장도 나를 농락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두뇌'만은, 헤이스팅스, 나의 '두뇌'는 고장 난 곳이 한 군데도 없이 그 기능을 다 발휘하고 있단 말이야. 아직도 최고로 우수하다고, 나의 '두뇌'는 말일세.'"
- [커튼], <제15장>, 애거서 크리스티,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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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의 살인자 'X'는 본인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남을 교묘하게 사주하여 수많은 살인을 해 온 자로, 에르퀼 포와로가 오랫 동안 추적해 왔고 결국 '사악한' 기운이 유령처럼 감도는 불길한 '스타일즈 저택'으로 살인자 'X'를 유인히여 결단낸 후 포와로 스스로도 죽는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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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평생 '살인'을 증오하고 인간 생명을 귀하게 여겨온 포와로가 희대의 살인마와의 '마지막' 게임에서 승리하되 법의 처벌이 아닌 사적이고 인간적인 응징을 하면서 이젠 늙어버린 자신의 육신 속 아직 건재한 '회색 뇌세포'를 정지시키고 마는 [커튼](1975)은 확실한 포와로 '마지막'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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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래 전 애거서 크리스티와 그녀의 연인 에르퀼 포와로의 '처음'과 '마지막'을 새삼 읽었으나, 이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여왕과 그녀의 평생 연인 '세계 최고'의 '회색 뇌세포' 두뇌, 에르퀼 포와로를 이대로 떠나 보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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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활약한 소설 중 내가 안 읽은 작품 몇 권을,
역시 추억의 <해문출판사> 판으로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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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로 읽을지, 또 언제 읽어볼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
***
​
1. [코끼리는 기억한다(Elephants Can Remember)](1972), Agatha Christie, 권순홍 옮김, <해문출판사>, 1988~2010.
2. [커튼(Curtain)](1975), Agatha Christie, 이가형 옮김, <해문출판사>, 1985~2009.
3.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The Mysterious Affair at Styles)](1920), Agatha Christie, 이가형 옮김, <해문출판사>, 1985~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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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시간의 딸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48
조세핀 테이 지음, 문용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여성' 추리소설 작가의 신비와 공포 - 3
- [진리는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1951.
​
​
올해 3월에 마을 도서관에서 <동서문화사>의 오래된 시리즈인 '동서미스터리북스' 서가를 발견하고는 약 8개월 동안 서성이고도 그래도 아쉬워 더 머물기 위해 요즘 생각해낸 주제어가 '여성' 추리소설 작가였다.

진정으로 '여성'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앞세워 그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심리묘사로서 특유의 '신비'와 '공포'를 남긴 헬런 매클로이와 까뜨린느 아를레이의 작품들을 먼저 골라서 읽다가,
내 장편 추리소설 읽기의 원천이었던 '여성'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를 새삼 읽어보기도 했다.

결국, 애거서 크리스티는 '여성' 주인공 '미스 마플'과 함께 읽었음에도 내게는 '여성' 작가보다는 그냥 위대한 추리소설 작가로 다시금 다가왔다. 
​
그렇기에 내친 김에 '남성' 주인공 탐정 에르퀼 포와로가 등장하는 '마지막' 소설까지 가보기 위해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를 읽고는, 어릴적 읽던 <해문출판사> 판으로 포와로의 진정 '마지막' 작품인 [커튼](1975)까지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마을도서관으로 가서 '여성'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 한 권을 또 대출해 왔다.
​
얼마전 보아 두었던 영국 작가 조세핀 테이(Josephine Tey : 1896~1952)의 [진리는 시간의 딸(The Daughter of Time)](1951)이다. 
​
​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이 연) 노르만 왕조는 백 년 가까이 계속되다가 몰락하고, 마침내 잉글랜드인에 의한 플랜태저넷 왕조가 12세기 중반부터 250년 정도 이어진다. 플랜태저넷 왕조 말기에 영불 '백년 전쟁'이 발발하는데, 잔 다르크의 활약으로 기세가 오른 프랑스에 패한 잉글랜드는 칼레만 남기고 과거에 차지한 대륙의 영토를 모조리 빼앗기고 만다.
왕관은 플랜태저넷의 분가 '랭커스터' 가문이 차지했지만, 패전의 어수선함 속에서 또하나의 분가인 '요크' 가문이 대두하고, 결국 집안 싸움으로 번져 1455년부터 30년에 걸친 격렬한 내분이 시작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장미 전쟁'이다. 이름이 로맨틱한 이유는 양가의 문양과 관련이 있다. '랭커스터'가가 붉은 장미, '요크'가가 흰 장미 문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 <현재진행형 역사, 영국 왕가>, 나카노 교코, 2017.
​
​
런던 경시청의 앨런 글랜트 경감은 사고로 다쳐서 병원 침대에 누웠으나, 직업적 본성을 쉬지 못하고 역사 속 '진범'을 추적해보기 시작한다.
움직일 수 없어 머리로만 추리하는 '안락의자 탐정', 아니 '침대 탐정'의 등장이다.
​
본업이 형사이다 보니 인물의 얼굴을 보고는 관상 보듯 추리하는 습성이 있어, 애인인 연극배우 마타 핼러드가 역사 속 인물들의 초상화를 병실의 그에게 가져다 준다.
​
15세기 말 영국 왕가의 집안 싸움인 '장미 전쟁(1455~1485)' 속 희대의 악마로 남은 '리처드 3세'의 초상화를 본 글랜트 경감의 주변사람들은 서로 다른 평가들을 내리는데, 각자의 선입견 또는 직관에 입각한 다양하고도 상이한 의견들로 나뉜다. 
그만큼 '리처드 3세'의 역사적 평가는 다면적이다.
​
​
"글랜트는 다시 (리처드 3세) 초상을 돌아다보았다.
'마타는 이 얼굴을 가리켜 위인 로렌초를 조금 닮았다고 했소. 그녀의 친구 제임스는 성자의 얼굴이라 했고, 내 외과의사는 불구자의 얼굴이라고 말했으며, 윌리엄즈 형사는 훌륭한 판사 같다고 했소. 그러나 나는 수간호원의 말이 가장 핵심에 가까운 곳을 찔렀다고 생각하오.'
'그녀는 뭐라고 했습니까?'
'참으로 끔찍한 괴로움에 찬 얼굴이라는 것이오.'"
- [진리는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1951.
​
​
조세핀 테이의 소설 [진리는 시간의 딸(The Daughter of Time)](1951)의 마지막 장면에서 글랜트 경감은 영국 역사 속에서 실제로는 무척이나 성실하고 신실했던 '리처드 3세'를 왕좌를 찬탈하기 위해 자신의 친형인 에드워드 4세의 아들이자 정당한 왕위 계승자인 조카들을 죽인 '희대의 악마'로 만든 이후 권력자 '헨리 7세'의 정치적 공작을 새삼 밝혀낸 후, '리처드 3세' 초상의 다면성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
결국 '리처드 3세' 초상의 특징은 역사 속 억울함으로 인해 '끔찍한 괴로움에 찬 얼굴'인 것이다.
​
30년 '장미 전쟁'에서 '흰 장미' 문양의 요크 가문 마지막 왕 '리처드 3세'를 조카들을 런던탑에 가둬 죽인 '악마'로 만들어낸 정치적 공작으로 권좌를 차지한 '붉은 장미' 랭커스터 계열의 '헨리 7세'가 사실은 요크 가문 왕자들을 죽인 '진범'임을 믿는 사람들에게 '리처드 3세'는 역사의 오명이라는 "끔찍한 괴로움에 찬" 인물이 된다.

랭커스터(붉은 장미)와 요크(흰 장미) 가문 간의 '장미 전쟁'은 '플랜태저넷' 가문의 일파들 사이의 집안 싸움이었다. 그러나 요크 가문 '리처드 3세'의 보즈워스 전투에서의 패전과 전사 후 왕이 된 '헨리 7세'는 랭커스터 계열이기는 했지만 '왕의 남동생 아들의 사생아의 증손'으로 방계 서출이었으니 아예 새로운 가문인 '튜더' 왕조를 연다. 
​
이 '튜더' 왕가가 이후 영국사에서 절대 전제정치 권력자 '헨리 8세'와 '블러드 메리',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등으로 이어진 바로 그 가문이다. 

'침대 탐정' 앨런 글랜트는 오귀스트 뒤팽'(E.A. 포)이나 '파일로 번즈'(S.S. 반 다인), '엘러리 퀸'(엘러리 퀸)으로 대표되는 '연역소거법'의 '안락의자 탐정'들의 후예답게 오로지 역사책과 두뇌 추리만으로 결론에 도달한 것 같지만, 한편으로 '물적 증거'를 필수로 여기는 형사답게 부단한 '과학수사'를 수행한다. 본인이 거동할 수 없으니 애인 마타 핼러드가 소개해 준 미국인 역사 연구가 브렌트 캘러다인을 '조사원'으로 삼아 당대의 서신과 기록 등을 면밀히 조사하도록 한다. 
​
'안락의자 탐정'답게 침대에 누워 '연역적' 추리로 시작하면서도 형사다운 물적 '과학수사'를 통해 귀납적 추리를 연결하여 역사적 '진실'을 밝혀낸다.


"'... 어째서 리처드 3세에게 흥미를 갖게 되셨습니까?'
'몸이 다 나을 때까지는 어차피 직접 수사활동을 할 수 없으니까. 그때까지는 학문적인 조사를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마타가 제안했지요. 그리고 내(앨런 글랜트 경감)가 사람의 얼굴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마타)가 여러 가지 초상사진을 가져다 주었소. 여러 가지 미스터리의 주역 말이오. 이 리처드는 얼마쯤 우연히 그 사진들 속에 잘못 끼어 있었는데, 그것이 실은 가장 큰 수수께끼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리처드 3세가 말입니까? 어떤 이유로?'
'사상 최대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장본인이면서 위대한 재판관 같은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오. 위대한 정치가의 얼굴을 말이오.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볼 때 그는 정상적인 교양을 지닌 사람이며 생활도 훌륭했었소... 재능있는 고급장교이며 훌륭한 무인이었소.'"
- [진리는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1951.
​
​
물론 요크 가문 마지막 왕 '리처드 3세'가 토머스 모어나 셰익스피어 같은 대문호들의 '악마적' 묘사와 달리, 사실은 튜더 가문의 창업자 '헨리 7세'의 정치적 공작으로 인한 희생양이었다는 평가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
그럼에도 조세핀 테이의 [진리는 시간의 딸](1951)에서 앨런 글랜트 경감이 '침대 탐정'이 되어 새삼 밝혀낸 '진실'은 탐정과 같은 역할을 해내는 '역사학'의 묘미를 재조명해주고 있다.
​
비록 소설 속 글랜트 경감과 브렌트가 '역사의 승자'인 '헨리 7세'가 만들어낸 기존 역사 기록을 답습하면서 '역사의 패배자'였던 '리처드 3세'를 악마화하는 다수 역사학자들을 비웃고 있기는 해도, 
'역사학'이란 본래 오래된 문헌과 유물이라는 '물적 증거'를 토대로 새로운 역사적 진실을 끊임없이 밝혀내는 일종의 '탐정' 역할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
역사가 항상 새롭게 밝혀져야 하는 이유다.
​
이제 '여성' 추리소설가의 작품 몇 권을 읽어보니 알겠다.
'여성' 추리작가 특유의 '신비'와 '공포'는 그만의 특성이 아닌, 내가 억지로 만들어낸 관념에 불과했다는 것을.
​
그나마 '여성' 작가를 새삼 생각하게 되면서,
내가 읽고 싶게 된, 또 읽어봐야 할,
작품의 폭은 더 넓어졌다.

이제, '여성'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마을도서관에서 다음에 다시 빌려보기로 하고,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명탐정 에르퀄 포와로의 '마지막' 횔약을 마저 읽으러 간다.
​
포와로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커튼](1975)이다.

***

1. [진리는 시간의 딸(The Daughter of Time)](1951), Josephine Tey, 문용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2017), 나카노 교코, 조사연 옮김, <한경arte>,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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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 ㅣ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3
나카노 교코 지음, 조사연 옮김 / 한경arte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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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추리소설 작가의 신비와 공포 - 3
- [진리는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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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에 마을 도서관에서 <동서문화사>의 오래된 시리즈인 '동서미스터리북스' 서가를 발견하고는 약 8개월 동안 서성이고도 그래도 아쉬워 더 머물기 위해 요즘 생각해낸 주제어가 '여성' 추리소설 작가였다.

진정으로 '여성'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앞세워 그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심리묘사로서 특유의 '신비'와 '공포'를 남긴 헬런 매클로이와 까뜨린느 아를레이의 작품들을 먼저 골라서 읽다가,
내 장편 추리소설 읽기의 원천이었던 '여성'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를 새삼 읽어보기도 했다.

결국, 애거서 크리스티는 '여성' 주인공 '미스 마플'과 함께 읽었음에도 내게는 '여성' 작가보다는 그냥 위대한 추리소설 작가로 다시금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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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내친 김에 '남성' 주인공 탐정 에르퀼 포와로가 등장하는 '마지막' 소설까지 가보기 위해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를 읽고는, 어릴적 읽던 <해문출판사> 판으로 포와로의 진정 '마지막' 작품인 [커튼](1975)까지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마을도서관으로 가서 '여성'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 한 권을 또 대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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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보아 두었던 영국 작가 조세핀 테이(Josephine Tey : 1896~1952)의 [진리는 시간의 딸(The Daughter of Time)](195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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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6년 정복왕 윌리엄이 연) 노르만 왕조는 백 년 가까이 계속되다가 몰락하고, 마침내 잉글랜드인에 의한 플랜태저넷 왕조가 12세기 중반부터 250년 정도 이어진다. 플랜태저넷 왕조 말기에 영불 '백년 전쟁'이 발발하는데, 잔 다르크의 활약으로 기세가 오른 프랑스에 패한 잉글랜드는 칼레만 남기고 과거에 차지한 대륙의 영토를 모조리 빼앗기고 만다.
왕관은 플랜태저넷의 분가 '랭커스터' 가문이 차지했지만, 패전의 어수선함 속에서 또하나의 분가인 '요크' 가문이 대두하고, 결국 집안 싸움으로 번져 1455년부터 30년에 걸친 격렬한 내분이 시작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장미 전쟁'이다. 이름이 로맨틱한 이유는 양가의 문양과 관련이 있다. '랭커스터'가가 붉은 장미, '요크'가가 흰 장미 문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 <현재진행형 역사, 영국 왕가>, 나카노 교코,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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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경시청의 앨런 글랜트 경감은 사고로 다쳐서 병원 침대에 누웠으나, 직업적 본성을 쉬지 못하고 역사 속 '진범'을 추적해보기 시작한다.
움직일 수 없어 머리로만 추리하는 '안락의자 탐정', 아니 '침대 탐정'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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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이 형사이다 보니 인물의 얼굴을 보고는 관상 보듯 추리하는 습성이 있어, 애인인 연극배우 마타 핼러드가 역사 속 인물들의 초상화를 병실의 그에게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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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말 영국 왕가의 집안 싸움인 '장미 전쟁(1455~1485)' 속 희대의 악마로 남은 '리처드 3세'의 초상화를 본 글랜트 경감의 주변사람들은 서로 다른 평가들을 내리는데, 각자의 선입견 또는 직관에 입각한 다양하고도 상이한 의견들로 나뉜다. 
그만큼 '리처드 3세'의 역사적 평가는 다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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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랜트는 다시 (리처드 3세) 초상을 돌아다보았다.
'마타는 이 얼굴을 가리켜 위인 로렌초를 조금 닮았다고 했소. 그녀의 친구 제임스는 성자의 얼굴이라 했고, 내 외과의사는 불구자의 얼굴이라고 말했으며, 윌리엄즈 형사는 훌륭한 판사 같다고 했소. 그러나 나는 수간호원의 말이 가장 핵심에 가까운 곳을 찔렀다고 생각하오.'
'그녀는 뭐라고 했습니까?'
'참으로 끔찍한 괴로움에 찬 얼굴이라는 것이오.'"
- [진리는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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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핀 테이의 소설 [진리는 시간의 딸(The Daughter of Time)](1951)의 마지막 장면에서 글랜트 경감은 영국 역사 속에서 실제로는 무척이나 성실하고 신실했던 '리처드 3세'를 왕좌를 찬탈하기 위해 자신의 친형인 에드워드 4세의 아들이자 정당한 왕위 계승자인 조카들을 죽인 '희대의 악마'로 만든 이후 권력자 '헨리 7세'의 정치적 공작을 새삼 밝혀낸 후, '리처드 3세' 초상의 다면성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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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리처드 3세' 초상의 특징은 역사 속 억울함으로 인해 '끔찍한 괴로움에 찬 얼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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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장미 전쟁'에서 '흰 장미' 문양의 요크 가문 마지막 왕 '리처드 3세'를 조카들을 런던탑에 가둬 죽인 '악마'로 만들어낸 정치적 공작으로 권좌를 차지한 '붉은 장미' 랭커스터 계열의 '헨리 7세'가 사실은 요크 가문 왕자들을 죽인 '진범'임을 믿는 사람들에게 '리처드 3세'는 역사의 오명이라는 "끔찍한 괴로움에 찬" 인물이 된다.

랭커스터(붉은 장미)와 요크(흰 장미) 가문 간의 '장미 전쟁'은 '플랜태저넷' 가문의 일파들 사이의 집안 싸움이었다. 그러나 요크 가문 '리처드 3세'의 보즈워스 전투에서의 패전과 전사 후 왕이 된 '헨리 7세'는 랭커스터 계열이기는 했지만 '왕의 남동생 아들의 사생아의 증손'으로 방계 서출이었으니 아예 새로운 가문인 '튜더' 왕조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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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튜더' 왕가가 이후 영국사에서 절대 전제정치 권력자 '헨리 8세'와 '블러드 메리',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등으로 이어진 바로 그 가문이다. 

'침대 탐정' 앨런 글랜트는 오귀스트 뒤팽'(E.A. 포)이나 '파일로 번즈'(S.S. 반 다인), '엘러리 퀸'(엘러리 퀸)으로 대표되는 '연역소거법'의 '안락의자 탐정'들의 후예답게 오로지 역사책과 두뇌 추리만으로 결론에 도달한 것 같지만, 한편으로 '물적 증거'를 필수로 여기는 형사답게 부단한 '과학수사'를 수행한다. 본인이 거동할 수 없으니 애인 마타 핼러드가 소개해 준 미국인 역사 연구가 브렌트 캘러다인을 '조사원'으로 삼아 당대의 서신과 기록 등을 면밀히 조사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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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의자 탐정'답게 침대에 누워 '연역적' 추리로 시작하면서도 형사다운 물적 '과학수사'를 통해 귀납적 추리를 연결하여 역사적 '진실'을 밝혀낸다.


"'... 어째서 리처드 3세에게 흥미를 갖게 되셨습니까?'
'몸이 다 나을 때까지는 어차피 직접 수사활동을 할 수 없으니까. 그때까지는 학문적인 조사를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마타가 제안했지요. 그리고 내(앨런 글랜트 경감)가 사람의 얼굴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마타)가 여러 가지 초상사진을 가져다 주었소. 여러 가지 미스터리의 주역 말이오. 이 리처드는 얼마쯤 우연히 그 사진들 속에 잘못 끼어 있었는데, 그것이 실은 가장 큰 수수께끼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리처드 3세가 말입니까? 어떤 이유로?'
'사상 최대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장본인이면서 위대한 재판관 같은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오. 위대한 정치가의 얼굴을 말이오.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볼 때 그는 정상적인 교양을 지닌 사람이며 생활도 훌륭했었소... 재능있는 고급장교이며 훌륭한 무인이었소.'"
- [진리는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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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요크 가문 마지막 왕 '리처드 3세'가 토머스 모어나 셰익스피어 같은 대문호들의 '악마적' 묘사와 달리, 사실은 튜더 가문의 창업자 '헨리 7세'의 정치적 공작으로 인한 희생양이었다는 평가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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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조세핀 테이의 [진리는 시간의 딸](1951)에서 앨런 글랜트 경감이 '침대 탐정'이 되어 새삼 밝혀낸 '진실'은 탐정과 같은 역할을 해내는 '역사학'의 묘미를 재조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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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소설 속 글랜트 경감과 브렌트가 '역사의 승자'인 '헨리 7세'가 만들어낸 기존 역사 기록을 답습하면서 '역사의 패배자'였던 '리처드 3세'를 악마화하는 다수 역사학자들을 비웃고 있기는 해도, 
'역사학'이란 본래 오래된 문헌과 유물이라는 '물적 증거'를 토대로 새로운 역사적 진실을 끊임없이 밝혀내는 일종의 '탐정' 역할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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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항상 새롭게 밝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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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성' 추리소설가의 작품 몇 권을 읽어보니 알겠다.
'여성' 추리작가 특유의 '신비'와 '공포'는 그만의 특성이 아닌, 내가 억지로 만들어낸 관념에 불과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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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여성' 작가를 새삼 생각하게 되면서,
내가 읽고 싶게 된, 또 읽어봐야 할,
작품의 폭은 더 넓어졌다.

이제, '여성'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마을도서관에서 다음에 다시 빌려보기로 하고,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명탐정 에르퀄 포와로의 '마지막' 횔약을 마저 읽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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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와로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커튼](197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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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리는 시간의 딸(The Daughter of Time)](1951), Josephine Tey, 문용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2017), 나카노 교코, 조사연 옮김, <한경arte>,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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