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ㅣ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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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뇌세포'의 '처음'과 '마지막'
- [코끼리는 기억한다] / [커튼] /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애거서 크리스티, 1920~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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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이오.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과거의 어느 곳으로부터 보금자리로 돌아올 가능성 같은 것이 있지요. 그런 걸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과거의 죄는 긴 그림자를 갖고 있다.'"
- [코끼리는 기억한다], <제1부 9장. 코끼리 조사의 결과>, 애거서 크리스티,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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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추리소설 작가의 신비스럽고 공포에 싸인 분위기를 추적하던 중, 잠시 나의 장편소설 읽기 원천이었던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 1890~1976)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녀의 분신과 같은 '여성' 탐정 '미스 마플(Ms. Marple)' 할머니의 '마지막' 활약까지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

미스 마플의 첫 번째 등장은 1930년 발표된 [목사관 살인사건]이었다. 마플 양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까지 살아서 활동했는데, '여성' 작가의 '여성' 주인공 탐정이라 해서 별 다른 특성은 없고 '여성' 추리소설 작가 특유의 '신비'와 '공포' 같은 건 단지 내가 만들어낸 관념이었다는 걸 나는 곧 깨닫게 되었다.

한편, 애거서 크리스티의 등단과 함께 등장했던 주요 명탐정이 '에르퀼 포와로(Hercule Poirot)'였으므로 나는 '여성' 추리소설 작가 탐색을 멈추고 명탐정 포와로의 활약을 마저 확인하고 싶어졌다.

1920년에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으로 첫 작품을 발표한 애거서 크리스티는 등단 후 10년이 지나서야 작가 자신의 '분신'과 같은 '미스 마플'을 창조했는데, 등단 첫 작품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1920)에서부터 등장한 에르퀼 포와로는 어쩌면 작가 자신의 평생 '연인'과도 같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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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살인](1934)으로 유명하고, 그 외 [애크로이드 살인사건](1926), [ABC 살인사건](1936), [테이블 위의 카드](1936), [메소포타미아의 죽음](1936), [나일강의 죽음](1937) 등 약 38편의 걸출한 작품에서 활약한 에르퀼 포와로는 평생 80편 이상의 장/단편 작품을 썼다던 애거서 크리스티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하게 된다.

명탐정 에르퀼 포와로는 1920년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에서 제1차 대전 중 독일군을 피해 벨기에로부터 영국으로 망명한 후로, 1975년 [커튼]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55년을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와 함께 지냈으니, 현실에서는 두 번 결혼한 크리스티에게 포와로는 오랫동안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았던 이야기 속의 '진짜' 남편과도 같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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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랗고 큰 대머리에 우스꽝스런 콧수염과 작은 키(약 163cm)로 묘사되는 포와로는 벨기에 경찰에서 은퇴 후 제1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벨기에를 침공한 독일군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하여 본격 사립탐정 역할을 하는데, 자칭 세계 최고의 뛰어난 '회색 뇌세포'를 작동시켜 오래된 살인사건을 몇 건 밝혀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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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스로를 '세계 최고의 명탐정'이라 자부하고 본인의 '회색 뇌세포'를 자랑한다.


"'글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도 같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포와로는 좀 당황한 얼굴로 그녀(올리버 부인)를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고요?'
'사실 전 '코끼리'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코끼리?'
...
'그런 게 아니에요. 진짜 코끼리를 만나겠다는 게 아니라, '코끼리'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겠다는 거예요. 뛰어나게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이 몇몇 있으니까요...'"
- [코끼리는 기억한다], <제2장. 코끼리에 대한 최초의 언급>, 애거서 크리스티,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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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와로의 '마지막' 활약은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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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의 카드]에서 함께 등장한 추리소설 작가 올리버 부인이 가져온 14년 전 래븐스크로프트 부부 동반자살 사건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이미 노신사가 되었을 포와로는 올리버 부인이 오래전 사건의 관계자들을 만나 오랜 기억들을 수집하는 것을 도우면서 진위가 불분명한 몇 가지 단서들(쌍둥이, 가발, 개, 가정교사 등)을 추적하며 의문에 싸였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그(포와로)는 올리버 부인에게 다가갔다.
'이젠 런던으로 돌아가야죠. 비극적인 사건과 애정에 얽힌 문제는 잊어버리고 평상시 생활로 돌아가야겠죠.'
'코끼리는 기억할 수 있어요.' 올리버 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우린 인간이에요. 자비롭게도 우리 인간은 잊어버릴 수가 있죠.'"
- [코끼리는 기억한다], <제2부 20장. 사문회>, 애거서 크리스티,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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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코끼리'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지능이 높고 기억력이 좋다는 '코끼리'를 오래전 관련자들에 은유하며, 그들의 '기억'이 '코끼리'의 '기억력'처럼 오랫 동안 잊혀지지 않고 진실을 가리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사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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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부부 동반자살 또는 살인사건은 '과거의 죄는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격언처럼 짙은 여운을 남기는데, 보통은 과거의 죄를 덮기 위해 현재의 새로운 살인을 초래하기 마련이지만, 래븐스크로프트 부부 '동반자살' 또는 '살인사건'은 살인자들이 이미 죽음으로 마무리된 사건으로 그 '긴 그림자'의 폐해가 그리 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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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래븐스크로프트 부부의 딸 실리아의 앞날에 포와로와 올리버 부인 콤비는 '코끼리'와 다르게 '망각'에 익숙한 '인간'의 장점을 강조하며 젊은이들을 격려해주고 있다.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에서 에르퀼 포와로는 노신사가 되었지만 아직 팔팔하게 '마지막' 활약을 한다. 반면, 그의 진짜 '마지막' 작품에서 포와로는 거의 삶의 끝자락에서(나중에 이 또한 연기로 판명나게 되지만)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는데, 그 장소는 바로 포와로가 '처음' 등장하여 활약한 '스타일즈(Styles)' 저택으로 선택된다.


"'이곳의 분위기 말이에요. (헤이스팅스) 선생님은 그런 걸 느끼지 못하세요? 저는 느껴요. 어쩐지 '사악한' 분위기,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세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방금 말한 게 사실일까? 어떤 장소에서 일어난 끔찍한 죽음. 살의에 의해서 저질러진 죽음이 발생하게 되면 그 장소에 강한 인상이 남기 때문에 수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일까? 심령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스타일즈 저택'은 그렇게 오래 전에 일어났던 그 사건의 흔적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 이 벽들, 이 정원 안에서 살인의 음모가 떠나지 않고 있다가 점점 강해져서 마침내는 결정적인 행동으로 결과를 맺게 되었었지. 그것이 아직도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단 말인가?"
- [커튼], <제7장>, 애거서 크리스티,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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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영국 런던 대공습이 한창일 때 대부분 영국인들이 그랬듯,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 또한 내일 자신이 과연 살아 있을지를 오늘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에르퀼 포와로의 최후를 담은 작품을 써 두었다고 한다. 자신의 영원한 '연인' 포와로와 끝까지 함께하기 위해서였겠다. 그 작품이 바로 [커튼]으로, 포와로의 죽음으로 머무리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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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대전 후 살아남은 애거서 크리스티는 [커튼]을 미발표작으로 유보하다가 작가의 만년인 1975년에 발표하면서 작가 본인보다 먼저 보내준다. 크리스티가 영원토록 사랑했던 '연인' 포와로는 1975년에 먼저 죽고 작가 자신의 '분신' 미스 마플은 그녀의 사후인 1976년에도 여전히 살아서 활약한다. 
그 작품이 바로 [잠자는 살인](1976)이다.

물론, 주인공 탐정의 '마지막' 활약 시점과 작품의 '마지막' 발표 시점의 차이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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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미스 마플'의 '마지막' 활약은 [복수의 여신](1971)이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 발표작은 [잠자는 살인](1976)이고, 
'포와로'의 '마지막' 활약은 [커튼](1975)이지만 이 작품은 1940년대에 이미 창작되었으니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실제 그의 '마지막' 활약이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가 되는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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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가 에르퀼 포와로의  최후를 상정하고 오래 전에 써두었던 [커튼]을 한참 후에 발표한 것이니, 포와로의 실제 '마지막' 활약은 [커튼](1975)인 한편,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 포와로 작품은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로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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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첫 소설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1920)에서 처음 등장한 망명객 포와로의 연령대가 5~60대라고 치면 [커튼](1975)의 발표 연도를 고려하면 포와로는 100살이 넘겠지만, 실제로 [커튼]이 1940년대에 씌어졌다니 80대 정도로 보면 되겠다. 그렇다면,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는 그 배경이 발표된 시기가 아니라 대략 제2차대전 전후를 배경으로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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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1975)에서 포와로는 명백히 사망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이 첫 등장했던 '스타일즈 저택'에서 극악한 '살인자 X'를 본인 손으로 직접 처단하고는 마치 '자연사'와 같이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이것은 헤이스팅스, 나의 '마지막' 사건이 될 걸세. 또한, 가장 흥미있는 사건이지. 가장 관심있는 범죄가 될 거야. 우리가 다루고 있는 'X'는 고도의 기술을 갖추고 있는 녀석이어서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네. 그만큼이나, 이 친구야, 이 'X'는 나를 패배시킬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어. 이 에르큘 포와로를 말이야! 그는 내가 전혀 해답을 찾아낼 수 없는 공격법을 개발했다네.'
'당신이 건강했다면...'
...
에르큘 포와로는 바로 화를 냈다.
...
'... 나의 사지가 못 쓰게 되었고 심장도 나를 농락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두뇌'만은, 헤이스팅스, 나의 '두뇌'는 고장 난 곳이 한 군데도 없이 그 기능을 다 발휘하고 있단 말이야. 아직도 최고로 우수하다고, 나의 '두뇌'는 말일세.'"
- [커튼], <제15장>, 애거서 크리스티,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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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의 살인자 'X'는 본인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남을 교묘하게 사주하여 수많은 살인을 해 온 자로, 에르퀼 포와로가 오랫 동안 추적해 왔고 결국 '사악한' 기운이 유령처럼 감도는 불길한 '스타일즈 저택'으로 살인자 'X'를 유인히여 결단낸 후 포와로 스스로도 죽는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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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평생 '살인'을 증오하고 인간 생명을 귀하게 여겨온 포와로가 희대의 살인마와의 '마지막' 게임에서 승리하되 법의 처벌이 아닌 사적이고 인간적인 응징을 하면서 이젠 늙어버린 자신의 육신 속 아직 건재한 '회색 뇌세포'를 정지시키고 마는 [커튼](1975)은 확실한 포와로 '마지막'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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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래 전 애거서 크리스티와 그녀의 연인 에르퀼 포와로의 '처음'과 '마지막'을 새삼 읽었으나, 이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여왕과 그녀의 평생 연인 '세계 최고'의 '회색 뇌세포' 두뇌, 에르퀼 포와로를 이대로 떠나 보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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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활약한 소설 중 내가 안 읽은 작품 몇 권을,
역시 추억의 <해문출판사> 판으로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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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로 읽을지, 또 언제 읽어볼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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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끼리는 기억한다(Elephants Can Remember)](1972), Agatha Christie, 권순홍 옮김, <해문출판사>, 1988~2010.
2. [커튼(Curtain)](1975), Agatha Christie, 이가형 옮김, <해문출판사>, 1985~2009.
3.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The Mysterious Affair at Styles)](1920), Agatha Christie, 이가형 옮김, <해문출판사>, 1985~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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