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지음, 이수경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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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이이콘, '유다의 키스'
- [가룟 유다],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1907.


"그러나 예수는 제자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들의 경고가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버림받고 사랑받지 못하는 유다에 대한 관심을 어쩌지 못하는 모순된 갈등 속에서 예수는 유다를 받아들여 선택된 자들, 제자들의 무리에 포함했다. 제자들은 흥분해 뒤에서 투덜거렸다. 유다는 지는 해 쪽으로 얼굴을 향한 채 조용히 앉아 생각에 잠겨 그들의 말을 들었다. 어쩌면 무언가 다른 소리를 듣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가룟 유다], <1>,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1907.


예수가 죽은 다음날 그의 제자 하나가 예루살렘의 절벽에서 목을 매달았다. 밤새 허공에 달렸던 그를 발견한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알고는 그 시신을 들판에 버렸다. 그는 예수를 은화 30닢에 팔았던 제자 가룟 유다였다.
예수를 배반한 것도 그였고, 예수의 최후를 끝까지 지켰던 것도 그였다.


러시아 소설가 레오니트 안드레예프(1871~1919)는 독학으로 그림도 그리던 러시아 소설가였다. 한때 막심 고리키의 지원으로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모임인 '수요회'의 동인이었던 그는 1905년과 1917년 러시아 혁명시기를 거치면서 한때 혁명에 열광하기는 했으나 유물론자는 아니었고,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실존적 허무주의(니힐리즘) 또는 비관주의(페시미즘) 작가로 분류된다. 1905년 1월 '피의 일요일' 사건 후 사회체제보다는 인간실존을 더 고민했고 1917년 2월 '부르주아혁명'에 잠시 들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조국 러시아의 대독일 전쟁을 찬양하다가 전쟁에 회의를 품었고 그해 10월 '볼셰비키혁명' 이후에는 아예 반혁명의 러시아 백군을 옹호하다가 망명자의 삶으로 생을 마감했다. 혁명과 체제변혁에 관한 생각의 차이로 고리키와 멀어지기 이전인 1907년에는 두 해전 '피의 일요일' 사건 후 오히려 강화된 차르 체제의 공안정국에서 배신과 밀고가 판을 치던 인간사를 그린 [가룟 유다와 다른 제자들]이라는 제목의 중편소설을 발표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나사렛 예수'가 아닌 배신자 '가룟 유다(Judas Iscariot)'였다.

고리키도 극찬했다는 이 소설 [가룟 유다]는 예수를 배신하고 유대교 대제사장에게 팔아넘긴 예수의 제자 '유다'의 관점에서 그의 실존적 고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설 속 가룟 유다는 붉은 머리의 애꾸눈에, 아마도 서양 골상학적으로 불길한 상인 듯한 쪼개진 뒷통수로 묘사된다. 기질 또한 거짓말쟁이에 가식적으로 모두에게 예의바른 캐릭터로서 자부심 높은 예수의 다른 제자들이 보기에 불경스러웠으며 예수 집단 내 '왕따'였다. 그러나 모두에게 공평한 예수가 그런 유다를 제자로 받아들이자 스승의 말은 잘 듣는 다른 제자들은 조금씩 마음을 연다. 예수의 최고 애제자 요한(John)은 끝내 유다(Judas)와 거리를 두었지만 성격있는 베드로(Peter)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유다와 농담을 주고받았고,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기 어려운 유다의 개그에 현학적인 마태(Mattew)는 성현의 말로 받아쳤다. 언제나 진지하고 이성적인 도마(Thomas)는 매번 유다가 던진 개그의 진위를 캐물으며 일행의 후열에서 동행했다.

생각해보면, 당대에 널리 인정받지 못한 채 고난의 행군을 이어간 공자와 석가모니, 예수는 제자들을 몰고 세상을 주유하던 일종의 '거지떼' 같았을 게다. 공자는 [논어]로, 부처는 '불경'과 예수는 '신약성경'의 복음으로 제자들이 그 성스러움을 증명하고 있다. 공자에게는 안회, 자공, 자로 등이 있었듯, 예수에게는 마태, 베드로, 요한, 도마, 유다 등이 있었다. 안드레예프의 [가룟 유다]에 등장하는 주요 제자들의 이름이다. 주인공인 듯 주인공 아닌 예수는 소설 전반에 대사 한마디 안 나오다가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 중 하나가 나를 배신할 것"이라는 대목에서 첫 대사를 친다. 이후 "베드로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든가 유다가 대제사장의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 "내가 입맞추는 자가 바로 예수요"라며 키스했을 때, "입맞춤으로 배반하느냐?" 등의 복음서에 나오는 유명대사 외에는 거의 침묵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배신'의 절정은 역시 '유다의 키스'지만, 소설의 테마는 '배신'의 배경이다.


"... 예수는 죽었다.
실현됐다. 구해 주소서! 구해 주소서!
공포와 꿈이 실현됐다. 이제 누가 유다의 손아귀에서 승리를 빼앗겠는가? 실현됐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군중이 골고다에 모여 '구해 주소서! 구해 주소서!' 외치도록 내버려 두자. 피와 눈물의 바다가 땅 위에 흐르겠지만 그들은 단지 치욕스러운 십자가와 죽은 예수만을 발견할 것이다... 실현됐다."
- [가룟 유다], <8>,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1907.


유다는 예수 집단에서 일테면 초한지 유방 집단의 모사 진평과 같다. 기질은 사기꾼에 도둑놈에다가 음모로 처세하는 역할이다. 예수 집단의 회계관리 담당으로 돈통을 관리하면서 위조동전을 감별하다가 횡령도 가끔 하고 예수에게 용서받고는 어려운 이웃에게 횡령한 돈을 주었다고 둘러대고 예수를 욕하고 위협하는 주민들을 만나 곤경에 처했을 때 거짓말과 비위맞추기 수완으로 예수와 제자들이 도망갈 시간을 버는 등 집단의 '현실'적 생존에 일정한 역할을 한다. 아마도 예수의 '현실주의'적 제자였을 유다는 요한과 베드로 같은 '성령' 가득한 총애를 갈망했을지도 모른다. 어느날 요한과 베드로가 각자 유다에게 "천국에서 예수의 옆자리에 누가 앉을 것 같은가?" 물었을 때 각자에게는 듣기 좋은 답을 했음에도, 나중에 그 두 제자로부터 대질심문 받았을 때 유다는 본인이 예수의 옆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답하고는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배신당할 본인의 미래를 예언한다. 아마도 이런 예언은 그 때가 처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에 의하면 영리한 유다는 아마도 이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 예수를 권력에 팔았을 것이다. 말로는 예수의 최고 제자라 떠들지만 스승의 예언 앞에서는 침묵하거나 피하는 비겁한 다른 제자들과 달리 유다는 스승의 예언을 '실행'했고, '유다의 키스'로 인해 예수의 영원한 기독교왕국은 "실현됐다". 베드로는 예수의 예언대로 끌려간 예수를 뒤따르며 세 번 예수를 부인했으나, 예수를 배신한 유다는 끝까지 예수의 뒤를 따르며 십자가 보혈의 희생으로 완성되는 기독교왕국의 미래를 확인하고는 제사장들을 찾아가 무고한 예수를 희생시킴으로써 권력자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영생의 죄인이 되었고 앞으로 사람들은 예수의 십자가 아래 무릎을 꿇게 되는 절대신성이 완성되었음을 선포하면서 배신의 댓가로 받은 은화 30닢을 모조리 돌려준다. 예수의 목숨 치고는 싸구려라고 비웃음을 받던 그 은화들은 이제 권력자들의 역사적 목숨값이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는 비겁하게 숨은 제자들을 찾아가 이제 예수의 권력은 '실현'되었으며 유다 본인이 천국에서 예수의 옆자리를 차지할 것이라 선언하고는 미리 봐둔 산에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예수를 팔아넘긴 '배신자'가 아닌, 기독교 절대왕국 실현의 '공로자'가 된 가룟 유다의 이야기에서는 예수의 부활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안드레예프의 소설 [가룟 유다]는 유다의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예수는 기원전 당시 유대교 거대종파(사두가이/바리사이) 사이에서 '급진적 평등주의'를 설파하던 소수의 '제3세력' 반란자였다. 
로마제국의 예루살렘 총독 빌라도는 예루살렘에서 기득권 싸움에 여념없던 이 종파들을 관리하기만 했을 뿐, 정작 예수를 죽이자고 한 건 유대교 제사장 권력자들이었다. 빌라도는 본인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급진적' 종파를 처단하는 방법을 알았던 것이다. 
'이단'적 음모론은 이러한 권력관계를 잘 알고 있었던 예수가 빌라도와 비밀리에 교섭하여 '십자가형'을 꾸미고는 '부활'하여 막달라 마리아를 데리고 유럽으로 건너가 고트족 메로빙거 왕조와 혈연관계를 맺어 현재까지 지배계급 내의 후손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 마지막 왕족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였으며 '시온수도회'가 지키려는 '성배'가 바로 이 예수의 혈연 가계도라는 주장까지 전개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막달라 마리아 같은 예수와 혈연관계가 아니었던 베드로는 예수 사후 다른 종파를 형성하여 순교와 포교를 거듭한 결과 가톨릭(Katholikos : 전체적 / 보편적) 교회라는 현실적 절대권력을 구축했다. 
어느 쪽이든 '배신자'로 영겁의 낙인이 찍힌 가룟 유다를 역사적으로 '배신'한 건 예수와 그의 다른 제자들이라는 결론이 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20세기 초 러시아 소설가 레오니트 안드레예프의 기이한 소설 [가룟 유다]에 한정된 이야기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8 : [그리스도교의 기원](1908) - 칼 카우츠키

'배신'의 아이콘, '유다의 키스'.
그 진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

1. [가룟 유다](1907),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이수경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20.
2. [연표로 보는 서양미술사], 김영숙, <현암사>, 2021.
3. [그리스도교의 기원](1908), 칼 카우츠키 지음, 이승무 옮김, <동연>, 2011.
4. [성혈과 성배](1981), 헨리 링컨/마이클 베이전트/리처드 레이 지음, 이정임/정미나 옮김, <자음과모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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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쉬의 비밀 1 - 쾌락의 정원
페터 뎀프 지음, 정지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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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a Mutatur, Veritas Extinguit."
- [보쉬의 비밀], 페터 뎀프, 1999.


"<쾌락의 정원>은 가톨릭교회의 종말을, 남성지배의 종말을 선포하는 그림이라는 사실이오."
- [보쉬의 비밀], <세번째 책>, 페터 뎀프, 1999.


여기 그림 '세폭'이 있다. 
한폭한폭, 또 한폭이 모여 성스런 제단에 바쳐진 그림, '세폭 제단화(triptych)'다.
17세기 루벤스의 <십자가를 세움>이나 <십자가에서 내려짐>, 그 이전 세기의 <메로드 제단화> 등은 교회의 의뢰를 받아 그려져 미사의 배경화면이 되는 그림이었을 것이다. 대형교회는 이 세폭 제단화의 주요 화면인 중앙 패널을 중심으로 신자들에게 성스러움 또는 공포와 회개를 유발했을 것이다. 기본이념은 기독교였으되 세부내용은 의뢰자인 해당 교회나 종파의 사상을 담고자 했을 것이다.

15~16세기 북유럽 네덜란드 화가 히로니뮈스 보쉬(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1450~1516)가 그린 세폭 제단화가 있다. 제목도 없이 미술사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20세기 초 살바도르 달리 등의 초현실주의 화풍에 영향을 준 작품 중 하나로 <쾌락의 정원>이라 불리게 된 그림이다. 

히로니뮈스 보쉬의 <쾌락의 정원>은 이른바 '아담파'로 불렸던 '자유정신형제회'의 의뢰를 받아 그려진 작품으로 그들의 비밀예배에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성화 같지 않고 매우 난잡해 보이는 이 그림은 전혀 가톨릭교회의 미사에 사용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 20세기 중반 독일 미술사학자 빌헬름 프룅거가 제기한 위와 같은 가설에 의하면 남녀 교인들이 태초의 낙원과 같이 나체로 혼교를 하며 미사를 드리는 '아담파'라는 이단교의 수장인 야코프 반 알마엔힌의 의뢰를 받아서 그린 작품이었다고 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보쉬는 '아담파'였고 '이단'이었다.
'성당기사단'이나 '장미십자회', '프리메이슨'이나 '시온수도회' 등 정통 가톨릭에 의해 '이단'으로 배척받기 시작하면 온갖 음모와 미스터리가 가득해진다. 한편으로 이러한 '이단'적 환상과 상상의 결과는 '정통'의 교리에 가하는 균열이다.
기존 체제를 뒤집어 엎는 '혁명'은 그렇게 시작된다.


독일의 작가 페터 뎀프(Peter Dempf)는 미술사학자 빌헬름 프룅거의 이 가설을 중심으로 보쉬의 작품 <쾌락의 정원>을 해석한다. 20세기 말인 1999년에 발표된 [보쉬의 비밀]은 21세기 초에 발표된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나 매튜 펄의 [단테 클럽]과 같은 영화적 활극이나 자극적 살인 등은 나오지 않는다. 1998년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된 보쉬의 <쾌락의 정원>에 염산을 뿌린 '정통파' 신부 바에를러를 조사하면서 그가 들려주는 16세기 보쉬와 '아담파'(자유정신형제회) 이야기가 액자형식으로 병행하여 전개되지만 중세의 활극은 그저 옛날 이야기만 같고 사실 바에를러 신부의 최면과 같은 이야기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그저 15~16세기 북유럽 네덜란드의 도미니크 수도회의 종교재판관이었던 동명의 바에를러 신부의 현신 시늉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중세말의 '정통파' 종교재판관 바에를러 신부와 현재의 '정통' 수호자 바에를러 신부(사실 가명이다)의 변하지 않는 사명은 '이단'을 처단하는 것 뿐이다. 중세에는 마녀사냥과 고문과 화형의 방식이었고 현대는 '이단'의 아이콘인 미술작품의 파괴의 방식이라는 차이는 있다.

어릴적 우연히 보쉬의 <쾌락의 정원>을 본 후 18년 간 연구를 거쳐 관련 소설을 쓴 페터 뎀프는 바에를러 신부 못지 않게 그럴듯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사실, 히로니뮈스 보쉬의 생애 자체가 거의 알려진 것이 없어 그저 추측과 상상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소설 속 액자형 이야기의 주인공인 페트로니우스 오리스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추천을 받아 보쉬의 직인까지 되었고 '아담파' 수장인 알마엔힌의 초상화까지 그릴 수 있었던 화가로 등장하나 미술사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다. 고향이 아우크스부르크란 점에서 같은 지역 출신인 저자 페터 뎀프의 상상속 현신일 수도 있겠다. 또한 소설 속 현재의 주인공인 미하엘 카이에 박사의 전생일 수도 있겠다. 훼손된 <쾌락의 정원>을 복원하는 미술사 전문가인 카이에와 '아담파'의 후예로 의심받는 여주인공 그리트 반데르베르프는 중세의 페트로니우스와 그의 여인 지타의 현신과도 같이 겹친다.


"16세기는 종교에서 새로운 경향들이 생겨나던 시대였소. 루터는 그 중 목소리가 가장 컸던 사람일 뿐이지. 교회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요구는 전 세계적으로 울려퍼지고 있었어요... 완전과 명상과 자유라는 세 원칙... 자유정신형제회는 완전의 원칙에서 정신적인 인간의 불과오성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냈고, 명상에서는 신과의 유사성을, 자유에서는 자유로운 사랑의 개념을 만들어냈소. 천상적 사랑의 힘으로 이 땅에 낙원을 넓히겠다는 의미에서 말이오. 그것은 혁명적인 생각이었을 뿐 아니라 당대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극악무도한 것이었지요."
- [보쉬의 비밀], <첫번째 책>, 페터 뎀프, 1999.


'혁명'은 '이단'이고, '이단'은 '혁명'이다.
소설에서 주인공 미하엘 카이에와 함께 보쉬의 <쾌락의 정원>이 숨기고 있을 비밀을 파헤치려는 미술사학자 안토니오 데 네브리하는 염산에 녹은 부분에서 발견된 비너스 상징기호나 불멸성(Posse non mori : 사람은 죽을 수 없다) 등을 표현한 이니셜(PSSNNMR) 등을 기초로 '정통' 가톨릭 교리에 균열을 내고 도전하던 '이단'의 '혁명성'을 읽어내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해석이 근거가 박약한 추측에 불과하다는 암시와 함께 모조리 의문에 다시금 휩싸이며 소설은 끝나고 만다. 중세 유대교의 신비술인 카발라의 수비술과 수리 해석 등의 중세시대 당시의 '과학'이 동원되고 별자리 시대구분까지 갖다붙이고 있지만 결국 지적유희 또는 말장난과도 같다. 
<쾌락의 정원> 속에 숨겨진 '보쉬의 비밀(신비 : Das Geheimnis)'을 캐기 위해 에둘러 돌고 돌았던 지적유희의 결과는 허망하고 모호하다. 그러나 '이단'의 환상 속에서 진리의 라틴어 명제 하나가 또렷이 남는다.


"Natura Mutatur(나투라 무타투르),
Veritas Extinguit(베리타스 엑스팅구이트)"


즉, "자연은 변화하고, 진실(진리)은 소멸한다"는 명제다. 미술사가 네브리하가 발견한 이 테제 속에 <쾌락의 정원>이 숨긴 메시지 일반이 담겨있다. 세계의 만물은 변화하고 '진리'였던 것은 소멸하며 새로운 '진리(진실)'가 나타난다. 가부장제로 버텨온 예수 이래 가톨릭 세계는 2천년 이상 '사자자리'의 시대였으나 예수를 상징하는 '물고기자리'를 거쳐 여성이 다시금 주체성을 회복하는 '물병자리'의 앞으로 2천년을 예고한다. <쾌락의 정원> 중앙 패널 상단에서 100명의 나체 남성들이 원무를 추는 장면과 그 가운데 연못에서 33명의 나체 여성들이 물 밖으로 나오는 장면이 그 은유다. 카발라의 수비술에 의하면 '100'은 무수히 많은 수를 의미하며 직선적 진보의 사고를 대표하던 가부장적 남성들이 순환을 의미하는 여성적 원무를 추면서 다음 시대를 예고한다. 역시 '3'은 동양과 같이 '완전한 순환'을 의미하는 기초단위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33년을 살았던 것처럼 완전한 숫자인 33인의 여성이 다음 세대로서 태어나는 중이다. 중앙 패널 하단을 채운 나체의 남녀 군상들은 딸기와 자두 등 성욕을 상징하는 열매를 따먹고는 있지만 직접적 성행위는 하지 않는다. 소설 속 '아담파'는 그 '이단'의 혐의에도 불구하고 비밀예배에서 혼교나 난교 등 집단성행위를 하지 않을 뿐더러 그 우두머리인 학자 야코프 반 알마엔힌은 아주 결정적 '비밀'을 숨기고 있다. 당시로서는 최고로 '이단'적이었던 비밀이다. 의문의 화가 히로니뮈스 보쉬는 이 모든 '이단'적 '비밀'을 안고 1516년경 화형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면 미처 밝히지 못한 '비밀'들은 <쾌락의 정원>이라는 '아담파'의 세폭 제단화에 아직까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앞으로 영영 그 '비밀'들은 미궁 속에 있겠지만, 그림을 둘러싼 '이단'적 상상은 이미 "모든 것은 변하며 진리는 영원할 수 없다(Natura Mutatur, Veritas Extinguit)"는 비밀 아닌 '비밀'을 나체와도 같이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좌측 패널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첫 만남을 갖는 '낙원'의 첫번째 에피소드인데, 순종적이지만은 않은 이브의 태도가 엿보인다. 이 모든 것은 가운데 분홍색 구조물 속 올빼미가 지켜보고 있다. 올빼미는 그리스 신화와 철학에서는 지혜의 상징이지만 기독교에서는 악마의 새로도 알려져 있다. 이미 '낙원'에는 선악과를 따먹기 전부터 선과 악이 공존했다는 암시다.

우측 패널은 결국 모두가 불타는 지옥에서 <쾌락의 정원>을 뛰놀던 나체의 남녀 군상들이 향락의 상징인 악기에 묶이거나 얼음물에 잠기거나 새부리 괴물여인에게 잡아먹히는 등 암울한 결말의 세번째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이 '지옥도'의 가운데 중심에서 섬찟한 표정의 인물이 몸통이 잘려 빈 속을 보이는 나무거인의 뒤에서 우리를 쳐다보는데, 보쉬 자신의 자회상이라는 설도 있고 또는 의뢰인인 알마엔힌의 초상이라는 설도 있다. 자세히 보면, 여성의 얼굴 같기도 하다. 아마도 여기에서 '아담파'의 수장 야코프 반 알마엔힌의 위험한 '비밀'이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알마엔힌 또한 1547년 즈음 화형을 당했다고 한다.

히로니뮈스 보쉬의 '세폭 제단화' <쾌락의 정원>의 '비밀'을 밝히지 못한 채 덮으면 세계 창조의 첫 장면이 나타나는데, 창조주인 신이 가운데가 아닌 한 구석에 찌그러져 있다. 

'신'이 중심에서 밀려나는 '이단'적 '혁명'이 이미 <쾌락의 정원> 곳곳에서 암시된다.

***

1. [보쉬의 비밀(Das Geheimnis des Hieronymus Bosch)](1999), Peter Dempf, 정지인 옮김, <생각의 나무>, 2006.
2. [기묘한 미술관], 진병관, <빅피시>, 2021.
3. [연표로 보는 서양미술사], 김영숙, <현암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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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쉬의 비밀 2 - 최후의 심판
페터 뎀프 지음, 정지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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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Natura Mutatur, Veritas Extinguit."
- [보쉬의 비밀], 페터 뎀프, 1999.


"<쾌락의 정원>은 가톨릭교회의 종말을, 남성지배의 종말을 선포하는 그림이라는 사실이오."
- [보쉬의 비밀], <세번째 책>, 페터 뎀프, 1999.


여기 그림 '세폭'이 있다. 
한폭한폭, 또 한폭이 모여 성스런 제단에 바쳐진 그림, '세폭 제단화(triptych)'다.
17세기 루벤스의 <십자가를 세움>이나 <십자가에서 내려짐>, 그 이전 세기의 <메로드 제단화> 등은 교회의 의뢰를 받아 그려져 미사의 배경화면이 되는 그림이었을 것이다. 대형교회는 이 세폭 제단화의 주요 화면인 중앙 패널을 중심으로 신자들에게 성스러움 또는 공포와 회개를 유발했을 것이다. 기본이념은 기독교였으되 세부내용은 의뢰자인 해당 교회나 종파의 사상을 담고자 했을 것이다.

15~16세기 북유럽 네덜란드 화가 히로니뮈스 보쉬(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1450~1516)가 그린 세폭 제단화가 있다. 제목도 없이 미술사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20세기 초 살바도르 달리 등의 초현실주의 화풍에 영향을 준 작품 중 하나로 <쾌락의 정원>이라 불리게 된 그림이다. 

히로니뮈스 보쉬의 <쾌락의 정원>은 이른바 '아담파'로 불렸던 '자유정신형제회'의 의뢰를 받아 그려진 작품으로 그들의 비밀예배에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성화 같지 않고 매우 난잡해 보이는 이 그림은 전혀 가톨릭교회의 미사에 사용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 20세기 중반 독일 미술사학자 빌헬름 프룅거가 제기한 위와 같은 가설에 의하면 남녀 교인들이 태초의 낙원과 같이 나체로 혼교를 하며 미사를 드리는 '아담파'라는 이단교의 수장인 야코프 반 알마엔힌의 의뢰를 받아서 그린 작품이었다고 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보쉬는 '아담파'였고 '이단'이었다.
'성당기사단'이나 '장미십자회', '프리메이슨'이나 '시온수도회' 등 정통 가톨릭에 의해 '이단'으로 배척받기 시작하면 온갖 음모와 미스터리가 가득해진다. 한편으로 이러한 '이단'적 환상과 상상의 결과는 '정통'의 교리에 가하는 균열이다.
기존 체제를 뒤집어 엎는 '혁명'은 그렇게 시작된다.


독일의 작가 페터 뎀프(Peter Dempf)는 미술사학자 빌헬름 프룅거의 이 가설을 중심으로 보쉬의 작품 <쾌락의 정원>을 해석한다. 20세기 말인 1999년에 발표된 [보쉬의 비밀]은 21세기 초에 발표된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나 매튜 펄의 [단테 클럽]과 같은 영화적 활극이나 자극적 살인 등은 나오지 않는다. 1998년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된 보쉬의 <쾌락의 정원>에 염산을 뿌린 '정통파' 신부 바에를러를 조사하면서 그가 들려주는 16세기 보쉬와 '아담파'(자유정신형제회) 이야기가 액자형식으로 병행하여 전개되지만 중세의 활극은 그저 옛날 이야기만 같고 사실 바에를러 신부의 최면과 같은 이야기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그저 15~16세기 북유럽 네덜란드의 도미니크 수도회의 종교재판관이었던 동명의 바에를러 신부의 현신 시늉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중세말의 '정통파' 종교재판관 바에를러 신부와 현재의 '정통' 수호자 바에를러 신부(사실 가명이다)의 변하지 않는 사명은 '이단'을 처단하는 것 뿐이다. 중세에는 마녀사냥과 고문과 화형의 방식이었고 현대는 '이단'의 아이콘인 미술작품의 파괴의 방식이라는 차이는 있다.

어릴적 우연히 보쉬의 <쾌락의 정원>을 본 후 18년 간 연구를 거쳐 관련 소설을 쓴 페터 뎀프는 바에를러 신부 못지 않게 그럴듯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사실, 히로니뮈스 보쉬의 생애 자체가 거의 알려진 것이 없어 그저 추측과 상상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소설 속 액자형 이야기의 주인공인 페트로니우스 오리스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추천을 받아 보쉬의 직인까지 되었고 '아담파' 수장인 알마엔힌의 초상화까지 그릴 수 있었던 화가로 등장하나 미술사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다. 고향이 아우크스부르크란 점에서 같은 지역 출신인 저자 페터 뎀프의 상상속 현신일 수도 있겠다. 또한 소설 속 현재의 주인공인 미하엘 카이에 박사의 전생일 수도 있겠다. 훼손된 <쾌락의 정원>을 복원하는 미술사 전문가인 카이에와 '아담파'의 후예로 의심받는 여주인공 그리트 반데르베르프는 중세의 페트로니우스와 그의 여인 지타의 현신과도 같이 겹친다.


"16세기는 종교에서 새로운 경향들이 생겨나던 시대였소. 루터는 그 중 목소리가 가장 컸던 사람일 뿐이지. 교회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요구는 전 세계적으로 울려퍼지고 있었어요... 완전과 명상과 자유라는 세 원칙... 자유정신형제회는 완전의 원칙에서 정신적인 인간의 불과오성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냈고, 명상에서는 신과의 유사성을, 자유에서는 자유로운 사랑의 개념을 만들어냈소. 천상적 사랑의 힘으로 이 땅에 낙원을 넓히겠다는 의미에서 말이오. 그것은 혁명적인 생각이었을 뿐 아니라 당대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극악무도한 것이었지요."
- [보쉬의 비밀], <첫번째 책>, 페터 뎀프, 1999.


'혁명'은 '이단'이고, '이단'은 '혁명'이다.
소설에서 주인공 미하엘 카이에와 함께 보쉬의 <쾌락의 정원>이 숨기고 있을 비밀을 파헤치려는 미술사학자 안토니오 데 네브리하는 염산에 녹은 부분에서 발견된 비너스 상징기호나 불멸성(Posse non mori : 사람은 죽을 수 없다) 등을 표현한 이니셜(PSSNNMR) 등을 기초로 '정통' 가톨릭 교리에 균열을 내고 도전하던 '이단'의 '혁명성'을 읽어내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해석이 근거가 박약한 추측에 불과하다는 암시와 함께 모조리 의문에 다시금 휩싸이며 소설은 끝나고 만다. 중세 유대교의 신비술인 카발라의 수비술과 수리 해석 등의 중세시대 당시의 '과학'이 동원되고 별자리 시대구분까지 갖다붙이고 있지만 결국 지적유희 또는 말장난과도 같다. 
<쾌락의 정원> 속에 숨겨진 '보쉬의 비밀(신비 : Das Geheimnis)'을 캐기 위해 에둘러 돌고 돌았던 지적유희의 결과는 허망하고 모호하다. 그러나 '이단'의 환상 속에서 진리의 라틴어 명제 하나가 또렷이 남는다.


"Natura Mutatur(나투라 무타투르),
Veritas Extinguit(베리타스 엑스팅구이트)"


즉, "자연은 변화하고, 진실(진리)은 소멸한다"는 명제다. 미술사가 네브리하가 발견한 이 테제 속에 <쾌락의 정원>이 숨긴 메시지 일반이 담겨있다. 세계의 만물은 변화하고 '진리'였던 것은 소멸하며 새로운 '진리(진실)'가 나타난다. 가부장제로 버텨온 예수 이래 가톨릭 세계는 2천년 이상 '사자자리'의 시대였으나 예수를 상징하는 '물고기자리'를 거쳐 여성이 다시금 주체성을 회복하는 '물병자리'의 앞으로 2천년을 예고한다. <쾌락의 정원> 중앙 패널 상단에서 100명의 나체 남성들이 원무를 추는 장면과 그 가운데 연못에서 33명의 나체 여성들이 물 밖으로 나오는 장면이 그 은유다. 카발라의 수비술에 의하면 '100'은 무수히 많은 수를 의미하며 직선적 진보의 사고를 대표하던 가부장적 남성들이 순환을 의미하는 여성적 원무를 추면서 다음 시대를 예고한다. 역시 '3'은 동양과 같이 '완전한 순환'을 의미하는 기초단위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33년을 살았던 것처럼 완전한 숫자인 33인의 여성이 다음 세대로서 태어나는 중이다. 중앙 패널 하단을 채운 나체의 남녀 군상들은 딸기와 자두 등 성욕을 상징하는 열매를 따먹고는 있지만 직접적 성행위는 하지 않는다. 소설 속 '아담파'는 그 '이단'의 혐의에도 불구하고 비밀예배에서 혼교나 난교 등 집단성행위를 하지 않을 뿐더러 그 우두머리인 학자 야코프 반 알마엔힌은 아주 결정적 '비밀'을 숨기고 있다. 당시로서는 최고로 '이단'적이었던 비밀이다. 의문의 화가 히로니뮈스 보쉬는 이 모든 '이단'적 '비밀'을 안고 1516년경 화형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면 미처 밝히지 못한 '비밀'들은 <쾌락의 정원>이라는 '아담파'의 세폭 제단화에 아직까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앞으로 영영 그 '비밀'들은 미궁 속에 있겠지만, 그림을 둘러싼 '이단'적 상상은 이미 "모든 것은 변하며 진리는 영원할 수 없다(Natura Mutatur, Veritas Extinguit)"는 비밀 아닌 '비밀'을 나체와도 같이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좌측 패널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첫 만남을 갖는 '낙원'의 첫번째 에피소드인데, 순종적이지만은 않은 이브의 태도가 엿보인다. 이 모든 것은 가운데 분홍색 구조물 속 올빼미가 지켜보고 있다. 올빼미는 그리스 신화와 철학에서는 지혜의 상징이지만 기독교에서는 악마의 새로도 알려져 있다. 이미 '낙원'에는 선악과를 따먹기 전부터 선과 악이 공존했다는 암시다.

우측 패널은 결국 모두가 불타는 지옥에서 <쾌락의 정원>을 뛰놀던 나체의 남녀 군상들이 향락의 상징인 악기에 묶이거나 얼음물에 잠기거나 새부리 괴물여인에게 잡아먹히는 등 암울한 결말의 세번째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이 '지옥도'의 가운데 중심에서 섬찟한 표정의 인물이 몸통이 잘려 빈 속을 보이는 나무거인의 뒤에서 우리를 쳐다보는데, 보쉬 자신의 자회상이라는 설도 있고 또는 의뢰인인 알마엔힌의 초상이라는 설도 있다. 자세히 보면, 여성의 얼굴 같기도 하다. 아마도 여기에서 '아담파'의 수장 야코프 반 알마엔힌의 위험한 '비밀'이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알마엔힌 또한 1547년 즈음 화형을 당했다고 한다.

히로니뮈스 보쉬의 '세폭 제단화' <쾌락의 정원>의 '비밀'을 밝히지 못한 채 덮으면 세계 창조의 첫 장면이 나타나는데, 창조주인 신이 가운데가 아닌 한 구석에 찌그러져 있다. 

'신'이 중심에서 밀려나는 '이단'적 '혁명'이 이미 <쾌락의 정원> 곳곳에서 암시된다.

***

1. [보쉬의 비밀(Das Geheimnis des Hieronymus Bosch)](1999), Peter Dempf, 정지인 옮김, <생각의 나무>, 2006.
2. [기묘한 미술관], 진병관, <빅피시>, 2021.
3. [연표로 보는 서양미술사], 김영숙, <현암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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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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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a Ludo(세리아 루도)!"
- [벌거벗은 미술관], 양정무, <창비>, 2021.


"고전(古典)은 영어 classic의 번역어인데, 그 어원은 라틴어 Classicus로 '최상의 클래스', 즉 최상의 계급에 속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중세... 이 시기 '클래식'이라는 용어는 주로 라틴어로 쓰인 중요한 문헌을 의미했습니다. '클래식'을 한자로 옮기면서 '고전(古典)', 즉 '옛날책'이라고 풀이한 건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겁니다... '고전미술'이라고 하면 우선적으로 고대 그리스-로마의 미술, 즉 기원전 8세기(호메로스)에서 서기 5세기(서로마 멸망)까지의 서양미술을 가리킵니다."
- [벌거벗은 미술관], <1장. 고전은 없다>, 양정무, 2021.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실패한 '혁명 정신'을 팔며 전 유럽을 침략한 후 '벨베데레의 아폴로'와 같은 고대 로마의 고전미술들은 이 절대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박물관에 모인 고전미술 작품들은 제국주의 팽창의 필수품이었는데 한 세기 이상 지난 20세기에 제2차 세계대전을 벌였던 미술가 지망생 아돌프 히틀러가 수십만 점의 고전미술을 수집하고 집착한 이유 또한 나폴레옹이나 영국여왕과 다르지 않았다. 유럽을 지배하고자 했던 제국주의 독재자들과 파시스트들은 본인들이 유럽 문명의 '정신적 뿌리'를 차지한 '정통성' 있는 유일한 권력자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벌거벗은 미술사], <3장. 반전의 박물관>). 
고대 그리스의 미술작품들은 눈에 보이는 신체를 최대한 이상화시켜서 표현했다. 인체의 비례에 집착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있는 것을 그린 이전의 이집트 미술과 다른 점이었다. 이는 알렉산더의 정복전쟁을 통해 동서양이 교류되는 헬레니즘 미술로 발전했고 이후 로마 시대에는 더욱 이상화된 그리스 미술은 수없이 모방되고 양식화되었으며 확대재생산되었다. 유럽인들의 문화적 근원이라 칭해지는 고대 그리스-로마 '고전미술'의 탄생이다. 이후 유럽을 지배하려는 권력자들이 찾는 유럽의 '정통성'의 상징은 바로 이 '고전미술'이 되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대혁명 후 파리의 루브르 궁은 '공공 미술관'이 된다. 12세기 바이킹을 방어하는 요새로 지어졌던 루브르는 16세기부터 왕궁으로 사용되다가 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로 궁전을 옮기면서 왕가의 미술품 수장고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대혁명 후 혁명의회는 이 미술품들을 대중에게 공개하면서 최초의 '공공 미술관'을 열었다. 혁명 공화국을 배반하고 황제가 되어 제정을 복고시킨 나폴레옹이 이 '공공 미술관'인 루브르 미술관을 약탈한 고전미술품들로 채운 것은 또 하나의 혁명의 '반전'이었다. 혁명적 공화국이 내세웠던 '자유'의 기치는 반동적 제국의 약탈로 '반전'되었고, 그에 따라 인류의 자유의지를 표현했던 '고전미술'은 제국주의 전리품이 되었다. 소수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확대된 '공공 미술관'의 역사는 한편으로 제국주의적 약탈의 역사라는 '반전'을 담고 있다.


미술이론가 양정무 교수의 [벌거벗은 미술관](2021)은 이른바 '고전미술'에 관한 에세이다. '인문성(humanity)'을 담아내고자 했던 '고전미술'을 주제로 그 뜻과 표정, 반전의 역사와 팬데믹 시대 속 의미 등을 여러 미술작품들을 함께 소개하면서 풀어낸다. 
'고전'이란 고대에는 '최상위 계급'(라틴어 Classicus)'의 전유물이었고 중세까지도 기독교 사제와 왕족이나 귀족 등이 배타적으로 소유하였으나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으며 프랑스 대혁명 후 '공공'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형태로 더욱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보아온 고대 그리스 조각 같은 고전미술은 대부분이 로마에서 모방한 대리석 작품들이었다. 20세기 들어 고도화된 미술사학의 발전으로 원래 고대 그리스 조각은 채색된 형태였는데 거의 파괴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벨베데레의 아폴로'나 '밀로의 비너스', '라오콘 군상' 등의 정교한 흰색 조각품들은 18세기 미술고고학의 시조인 신고전주의 미학자 요한 요하임 빙켈만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복제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나폴레옹의 실각 후 각국의 요구로 미술품들을 다시 반환해야 했을 때 프랑스에서는 해당 미술품들을 다시 똑같이 복제하는 기술이 발전했다고 한다. 이후 이런 석고 조각들에 대한 '소묘', '드로잉(drawing)', '데생(dessin)'이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근대 미술교육의 핵심이 되었고 이러한 방식이 일본을 통해 아시아까지 들어온 결과 '미대입시'의 기본실기가 '석고 데생'이 된 것이라고 한다.

'미술', 더 나아가 '고전미술'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벌거벗은 미술관]의 저자는 "고전미술로 집약되는 절대적인 '미'의 세계가 있다는 신념 하에 그 세계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 했던 것이 르네상스 이후 서양 근대미술의 전통"(같은책, <1장>)이라면서 '인문성(humanity)'을 담고자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는 미술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전은 없다'. 다만, 어디에도 구속됨 없이 고난과 어려움을 딛고 어디에도 없을지 모르는 '완벽한 미'를 구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과 '인문성'이 남는다. '고전'의 '신비성'과 허상을 벗어냄으로 인해 결국 '고전미술이란 없다'.


"서양 근대문화의 시작은 르네상스이고, 르네상스 문화의 핵심은 '휴머니즘'... '미술'은 'Art' 또는 'Fine Art'에 대한 번역어로, 그 어원을 따지자면 라틴어 'Ars'로 거슬러 갑니다. 여기서 라틴어 'Ars'는 그리스어로는 'Techne'로 즉, '기술' 또는 '좋은 기술'이 '미술'의 원래 의미에 가깝다는 것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술'의 의미는 '미' 보다는 '좋은 기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입니다."
- [벌거벗은 미술관], <에필로그>, 양정무, 2021,


'고전미술'의 '신비성'을 벗기고, 미술사의 '반전'을 돌아보며 중세 흑사병과 현대 스페인독감의 팬데믹을 그린 미술의 역사를 통해 미술 자체의 옷을 벗긴 저자는 그 속에서 '인문성(humanity)'을 찾아낸다. 19~20세기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이 말한 '3F', 즉 'Form Follows Function(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은 저자에 의하면 "Form Follows Humanity(형태는 인문성을 따른다)"로 정정된다. 팬데믹을 이겨내고자 했던 인류는 그 의지를 미술로 표현했고 이 미술 작품들은 더 많은 다수의 호응과 지지를 기반으로 인간의 실패도 표현했지만 희망 또한 만들었으며, 결국에는 지금의 인류 역사로까지 진화할 수 있도록 한 하나의 기제였다. 중세 흑사병의 격리기간 14일 중 주일과 휴일을 제외한 열흘 간 지어진 보카치오의 '데카메론(10일야화)'은 대중에게 널리 퍼지면서 인류 보편의 기괴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이어갔으며 현재도 수많은 '데카메론'들이 이어진다. 
문자보다 더 효과적인 미술은 '인문성'을 담아내는 주요한 형식이다.


문화콘텐츠 기획자였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문화해설사로 일하는 진병관은 [기묘한 미술관](2021)이라는 책에서 미술작품들의 여러 뒷이야기들을 들려주는데, 로코코 화가 프랑수아 부셰의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화> 속 디드로 백과사전을 통해 루이 15세의 정부인 퐁파두르 부인의 지원을 받은 '백과전서파'가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적 토대가 되어 결국 왕정을 무너뜨렸다는 이야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제단화 <쾌락의 정원>은 그 파격성으로 인해 결국 제단화로서의 본래 역할을 할 수는 없었지만 인간사의 혼돈을 품고는 후세로 하여금 현재까지 미스터리의 반복적 근원이 되었다는 이야기 등, 흥미로운 미술관 이야기를 풀어낸다. 대중화된 '공공 미술관'의 미술사 이야기는 더 많은 이들에게 재미있는 소재다. 18세기 영국의 '여흥클럽'인 'Society of Dilettanti(소사이어트 오브 딜레탕티)'는 이탈리아 문예여행자들의 '금수저 클럽'이었는데, 할 일 없이 매일매일 술이나 마시며 '고전미술'을 수집하고 돌려보는 한량들이었지만 결국 그들의 수집품들이 오늘날의 고전미술 컬렉션에 기여하기도 했단다. 이들의 젠 체하는 건배사 중 "Seria Ludo(세리아 루도)!"는 "심각한 문제도 놀면서 풀자!"는 의미의 라틴어 문구였다. 심각한 인간사를 진지하지 않게 놀면서 풀기에 '미술' 만한 좋은 '기술(Art / Ars / Techne)'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다수 대중이 공유하고 통제하는 진정한 '공공 미술관'에서는 더욱 더 "Seria Ludo"가 현실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술 또한 현대의 '공유재'로서의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미술의 역사는 '고전미술'이나 '명작'들이 모여 만든 역사가 아니다. 미술사는 인류의 실패와 미완성으로 점철된 고뇌와 좌절의 역사이며, 그럼에도 이겨내고 버텨내게 되는, 끝도 없고, 완벽한 미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그러나 '진지한 문제도 놀면서 풀 수 있는(Seria Ludo)' 인류의 생생한 이야기다.

***

1. [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에세이], 양정무, <창비>, 2021.
2. [기묘한 미술관], 진병관, <빅피시>,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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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미술관 - 아름답고 서늘한 명화 속 미스터리 기묘한 미술관
진병관 지음 / 빅피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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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a Ludo(세리아 루도)!"
- [벌거벗은 미술관], 양정무, <창비>, 2021.
- [기묘한 미술관], 진병관, <빅피시>, 2021.


"고전(古典)은 영어 classic의 번역어인데, 그 어원은 라틴어 Classicus로 '최상의 클래스', 즉 최상의 계급에 속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중세... 이 시기 '클래식'이라는 용어는 주로 라틴어로 쓰인 중요한 문헌을 의미했습니다. '클래식'을 한자로 옮기면서 '고전(古典)', 즉 '옛날책'이라고 풀이한 건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겁니다... '고전미술'이라고 하면 우선적으로 고대 그리스-로마의 미술, 즉 기원전 8세기(호메로스)에서 서기 5세기(서로마 멸망)까지의 서양미술을 가리킵니다."
- [벌거벗은 미술관], <1장. 고전은 없다>, 양정무, 2021.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실패한 '혁명 정신'을 팔며 전 유럽을 침략한 후 '벨베데레의 아폴로'와 같은 고대 로마의 고전미술들은 이 절대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박물관에 모인 고전미술 작품들은 제국주의 팽창의 필수품이었는데 한 세기 이상 지난 20세기에 제2차 세계대전을 벌였던 미술가 지망생 아돌프 히틀러가 수십만 점의 고전미술을 수집하고 집착한 이유 또한 나폴레옹이나 영국여왕과 다르지 않았다. 유럽을 지배하고자 했던 제국주의 독재자들과 파시스트들은 본인들이 유럽 문명의 '정신적 뿌리'를 차지한 '정통성' 있는 유일한 권력자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벌거벗은 미술사], <3장. 반전의 박물관>). 
고대 그리스의 미술작품들은 눈에 보이는 신체를 최대한 이상화시켜서 표현했다. 인체의 비례에 집착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있는 것을 그린 이전의 이집트 미술과 다른 점이었다. 이는 알렉산더의 정복전쟁을 통해 동서양이 교류되는 헬레니즘 미술로 발전했고 이후 로마 시대에는 더욱 이상화된 그리스 미술은 수없이 모방되고 양식화되었으며 확대재생산되었다. 유럽인들의 문화적 근원이라 칭해지는 고대 그리스-로마 '고전미술'의 탄생이다. 이후 유럽을 지배하려는 권력자들이 찾는 유럽의 '정통성'의 상징은 바로 이 '고전미술'이 되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대혁명 후 파리의 루브르 궁은 '공공 미술관'이 된다. 12세기 바이킹을 방어하는 요새로 지어졌던 루브르는 16세기부터 왕궁으로 사용되다가 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로 궁전을 옮기면서 왕가의 미술품 수장고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대혁명 후 혁명의회는 이 미술품들을 대중에게 공개하면서 최초의 '공공 미술관'을 열었다. 혁명 공화국을 배반하고 황제가 되어 제정을 복고시킨 나폴레옹이 이 '공공 미술관'인 루브르 미술관을 약탈한 고전미술품들로 채운 것은 또 하나의 혁명의 '반전'이었다. 혁명적 공화국이 내세웠던 '자유'의 기치는 반동적 제국의 약탈로 '반전'되었고, 그에 따라 인류의 자유의지를 표현했던 '고전미술'은 제국주의 전리품이 되었다. 소수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확대된 '공공 미술관'의 역사는 한편으로 제국주의적 약탈의 역사라는 '반전'을 담고 있다.


미술이론가 양정무 교수의 [벌거벗은 미술관](2021)은 이른바 '고전미술'에 관한 에세이다. '인문성(humanity)'을 담아내고자 했던 '고전미술'을 주제로 그 뜻과 표정, 반전의 역사와 팬데믹 시대 속 의미 등을 여러 미술작품들을 함께 소개하면서 풀어낸다. 
'고전'이란 고대에는 '최상위 계급'(라틴어 Classicus)'의 전유물이었고 중세까지도 기독교 사제와 왕족이나 귀족 등이 배타적으로 소유하였으나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으며 프랑스 대혁명 후 '공공'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형태로 더욱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보아온 고대 그리스 조각 같은 고전미술은 대부분이 로마에서 모방한 대리석 작품들이었다. 20세기 들어 고도화된 미술사학의 발전으로 원래 고대 그리스 조각은 채색된 형태였는데 거의 파괴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벨베데레의 아폴로'나 '밀로의 비너스', '라오콘 군상' 등의 정교한 흰색 조각품들은 18세기 미술고고학의 시조인 신고전주의 미학자 요한 요하임 빙켈만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복제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나폴레옹의 실각 후 각국의 요구로 미술품들을 다시 반환해야 했을 때 프랑스에서는 해당 미술품들을 다시 똑같이 복제하는 기술이 발전했다고 한다. 이후 이런 석고 조각들에 대한 '소묘', '드로잉(drawing)', '데생(dessin)'이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근대 미술교육의 핵심이 되었고 이러한 방식이 일본을 통해 아시아까지 들어온 결과 '미대입시'의 기본실기가 '석고 데생'이 된 것이라고 한다.

'미술', 더 나아가 '고전미술'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벌거벗은 미술관]의 저자는 "고전미술로 집약되는 절대적인 '미'의 세계가 있다는 신념 하에 그 세계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 했던 것이 르네상스 이후 서양 근대미술의 전통"(같은책, <1장>)이라면서 '인문성(humanity)'을 담고자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는 미술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전은 없다'. 다만, 어디에도 구속됨 없이 고난과 어려움을 딛고 어디에도 없을지 모르는 '완벽한 미'를 구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과 '인문성'이 남는다. '고전'의 '신비성'과 허상을 벗어냄으로 인해 결국 '고전미술이란 없다'.


"서양 근대문화의 시작은 르네상스이고, 르네상스 문화의 핵심은 '휴머니즘'... '미술'은 'Art' 또는 'Fine Art'에 대한 번역어로, 그 어원을 따지자면 라틴어 'Ars'로 거슬러 갑니다. 여기서 라틴어 'Ars'는 그리스어로는 'Techne'로 즉, '기술' 또는 '좋은 기술'이 '미술'의 원래 의미에 가깝다는 것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술'의 의미는 '미' 보다는 '좋은 기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입니다."
- [벌거벗은 미술관], <에필로그>, 양정무, 2021,


'고전미술'의 '신비성'을 벗기고, 미술사의 '반전'을 돌아보며 중세 흑사병과 현대 스페인독감의 팬데믹을 그린 미술의 역사를 통해 미술 자체의 옷을 벗긴 저자는 그 속에서 '인문성(humanity)'을 찾아낸다. 19~20세기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이 말한 '3F', 즉 'Form Follows Function(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은 저자에 의하면 "Form Follows Humanity(형태는 인문성을 따른다)"로 정정된다. 팬데믹을 이겨내고자 했던 인류는 그 의지를 미술로 표현했고 이 미술 작품들은 더 많은 다수의 호응과 지지를 기반으로 인간의 실패도 표현했지만 희망 또한 만들었으며, 결국에는 지금의 인류 역사로까지 진화할 수 있도록 한 하나의 기제였다. 중세 흑사병의 격리기간 14일 중 주일과 휴일을 제외한 열흘 간 지어진 보카치오의 '데카메론(10일야화)'은 대중에게 널리 퍼지면서 인류 보편의 기괴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이어갔으며 현재도 수많은 '데카메론'들이 이어진다. 
문자보다 더 효과적인 미술은 '인문성'을 담아내는 주요한 형식이다.


문화콘텐츠 기획자였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문화해설사로 일하는 진병관은 [기묘한 미술관](2021)이라는 책에서 미술작품들의 여러 뒷이야기들을 들려주는데, 로코코 화가 프랑수아 부셰의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화> 속 디드로 백과사전을 통해 루이 15세의 정부인 퐁파두르 부인의 지원을 받은 '백과전서파'가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적 토대가 되어 결국 왕정을 무너뜨렸다는 이야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제단화 <쾌락의 정원>은 그 파격성으로 인해 결국 제단화로서의 본래 역할을 할 수는 없었지만 인간사의 혼돈을 품고는 후세로 하여금 현재까지 미스터리의 반복적 근원이 되었다는 이야기 등, 흥미로운 미술관 이야기를 풀어낸다. 대중화된 '공공 미술관'의 미술사 이야기는 더 많은 이들에게 재미있는 소재다. 18세기 영국의 '여흥클럽'인 'Society of Dilettanti(소사이어트 오브 딜레탕티)'는 이탈리아 문예여행자들의 '금수저 클럽'이었는데, 할 일 없이 매일매일 술이나 마시며 '고전미술'을 수집하고 돌려보는 한량들이었지만 결국 그들의 수집품들이 오늘날의 고전미술 컬렉션에 기여하기도 했단다. 이들의 젠 체하는 건배사 중 "Seria Ludo(세리아 루도)!"는 "심각한 문제도 놀면서 풀자!"는 의미의 라틴어 문구였다. 심각한 인간사를 진지하지 않게 놀면서 풀기에 '미술' 만한 좋은 '기술(Art / Ars / Techne)'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다수 대중이 공유하고 통제하는 진정한 '공공 미술관'에서는 더욱 더 "Seria Ludo"가 현실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술 또한 현대의 '공유재'로서의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미술의 역사는 '고전미술'이나 '명작'들이 모여 만든 역사가 아니다. 미술사는 인류의 실패와 미완성으로 점철된 고뇌와 좌절의 역사이며, 그럼에도 이겨내고 버텨내게 되는, 끝도 없고, 완벽한 미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그러나 '진지한 문제도 놀면서 풀 수 있는(Seria Ludo)' 인류의 생생한 이야기다.

***

1. [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에세이], 양정무, <창비>, 2021.
2. [기묘한 미술관], 진병관, <빅피시>,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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