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미술관 - 아름답고 서늘한 명화 속 미스터리 기묘한 미술관
진병관 지음 / 빅피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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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a Ludo(세리아 루도)!"
- [벌거벗은 미술관], 양정무, <창비>, 2021.
- [기묘한 미술관], 진병관, <빅피시>, 2021.


"고전(古典)은 영어 classic의 번역어인데, 그 어원은 라틴어 Classicus로 '최상의 클래스', 즉 최상의 계급에 속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중세... 이 시기 '클래식'이라는 용어는 주로 라틴어로 쓰인 중요한 문헌을 의미했습니다. '클래식'을 한자로 옮기면서 '고전(古典)', 즉 '옛날책'이라고 풀이한 건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겁니다... '고전미술'이라고 하면 우선적으로 고대 그리스-로마의 미술, 즉 기원전 8세기(호메로스)에서 서기 5세기(서로마 멸망)까지의 서양미술을 가리킵니다."
- [벌거벗은 미술관], <1장. 고전은 없다>, 양정무, 2021.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실패한 '혁명 정신'을 팔며 전 유럽을 침략한 후 '벨베데레의 아폴로'와 같은 고대 로마의 고전미술들은 이 절대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박물관에 모인 고전미술 작품들은 제국주의 팽창의 필수품이었는데 한 세기 이상 지난 20세기에 제2차 세계대전을 벌였던 미술가 지망생 아돌프 히틀러가 수십만 점의 고전미술을 수집하고 집착한 이유 또한 나폴레옹이나 영국여왕과 다르지 않았다. 유럽을 지배하고자 했던 제국주의 독재자들과 파시스트들은 본인들이 유럽 문명의 '정신적 뿌리'를 차지한 '정통성' 있는 유일한 권력자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벌거벗은 미술사], <3장. 반전의 박물관>). 
고대 그리스의 미술작품들은 눈에 보이는 신체를 최대한 이상화시켜서 표현했다. 인체의 비례에 집착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있는 것을 그린 이전의 이집트 미술과 다른 점이었다. 이는 알렉산더의 정복전쟁을 통해 동서양이 교류되는 헬레니즘 미술로 발전했고 이후 로마 시대에는 더욱 이상화된 그리스 미술은 수없이 모방되고 양식화되었으며 확대재생산되었다. 유럽인들의 문화적 근원이라 칭해지는 고대 그리스-로마 '고전미술'의 탄생이다. 이후 유럽을 지배하려는 권력자들이 찾는 유럽의 '정통성'의 상징은 바로 이 '고전미술'이 되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대혁명 후 파리의 루브르 궁은 '공공 미술관'이 된다. 12세기 바이킹을 방어하는 요새로 지어졌던 루브르는 16세기부터 왕궁으로 사용되다가 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로 궁전을 옮기면서 왕가의 미술품 수장고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대혁명 후 혁명의회는 이 미술품들을 대중에게 공개하면서 최초의 '공공 미술관'을 열었다. 혁명 공화국을 배반하고 황제가 되어 제정을 복고시킨 나폴레옹이 이 '공공 미술관'인 루브르 미술관을 약탈한 고전미술품들로 채운 것은 또 하나의 혁명의 '반전'이었다. 혁명적 공화국이 내세웠던 '자유'의 기치는 반동적 제국의 약탈로 '반전'되었고, 그에 따라 인류의 자유의지를 표현했던 '고전미술'은 제국주의 전리품이 되었다. 소수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확대된 '공공 미술관'의 역사는 한편으로 제국주의적 약탈의 역사라는 '반전'을 담고 있다.


미술이론가 양정무 교수의 [벌거벗은 미술관](2021)은 이른바 '고전미술'에 관한 에세이다. '인문성(humanity)'을 담아내고자 했던 '고전미술'을 주제로 그 뜻과 표정, 반전의 역사와 팬데믹 시대 속 의미 등을 여러 미술작품들을 함께 소개하면서 풀어낸다. 
'고전'이란 고대에는 '최상위 계급'(라틴어 Classicus)'의 전유물이었고 중세까지도 기독교 사제와 왕족이나 귀족 등이 배타적으로 소유하였으나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으며 프랑스 대혁명 후 '공공'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형태로 더욱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보아온 고대 그리스 조각 같은 고전미술은 대부분이 로마에서 모방한 대리석 작품들이었다. 20세기 들어 고도화된 미술사학의 발전으로 원래 고대 그리스 조각은 채색된 형태였는데 거의 파괴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벨베데레의 아폴로'나 '밀로의 비너스', '라오콘 군상' 등의 정교한 흰색 조각품들은 18세기 미술고고학의 시조인 신고전주의 미학자 요한 요하임 빙켈만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복제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나폴레옹의 실각 후 각국의 요구로 미술품들을 다시 반환해야 했을 때 프랑스에서는 해당 미술품들을 다시 똑같이 복제하는 기술이 발전했다고 한다. 이후 이런 석고 조각들에 대한 '소묘', '드로잉(drawing)', '데생(dessin)'이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근대 미술교육의 핵심이 되었고 이러한 방식이 일본을 통해 아시아까지 들어온 결과 '미대입시'의 기본실기가 '석고 데생'이 된 것이라고 한다.

'미술', 더 나아가 '고전미술'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벌거벗은 미술관]의 저자는 "고전미술로 집약되는 절대적인 '미'의 세계가 있다는 신념 하에 그 세계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 했던 것이 르네상스 이후 서양 근대미술의 전통"(같은책, <1장>)이라면서 '인문성(humanity)'을 담고자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는 미술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전은 없다'. 다만, 어디에도 구속됨 없이 고난과 어려움을 딛고 어디에도 없을지 모르는 '완벽한 미'를 구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과 '인문성'이 남는다. '고전'의 '신비성'과 허상을 벗어냄으로 인해 결국 '고전미술이란 없다'.


"서양 근대문화의 시작은 르네상스이고, 르네상스 문화의 핵심은 '휴머니즘'... '미술'은 'Art' 또는 'Fine Art'에 대한 번역어로, 그 어원을 따지자면 라틴어 'Ars'로 거슬러 갑니다. 여기서 라틴어 'Ars'는 그리스어로는 'Techne'로 즉, '기술' 또는 '좋은 기술'이 '미술'의 원래 의미에 가깝다는 것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술'의 의미는 '미' 보다는 '좋은 기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입니다."
- [벌거벗은 미술관], <에필로그>, 양정무, 2021,


'고전미술'의 '신비성'을 벗기고, 미술사의 '반전'을 돌아보며 중세 흑사병과 현대 스페인독감의 팬데믹을 그린 미술의 역사를 통해 미술 자체의 옷을 벗긴 저자는 그 속에서 '인문성(humanity)'을 찾아낸다. 19~20세기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이 말한 '3F', 즉 'Form Follows Function(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은 저자에 의하면 "Form Follows Humanity(형태는 인문성을 따른다)"로 정정된다. 팬데믹을 이겨내고자 했던 인류는 그 의지를 미술로 표현했고 이 미술 작품들은 더 많은 다수의 호응과 지지를 기반으로 인간의 실패도 표현했지만 희망 또한 만들었으며, 결국에는 지금의 인류 역사로까지 진화할 수 있도록 한 하나의 기제였다. 중세 흑사병의 격리기간 14일 중 주일과 휴일을 제외한 열흘 간 지어진 보카치오의 '데카메론(10일야화)'은 대중에게 널리 퍼지면서 인류 보편의 기괴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이어갔으며 현재도 수많은 '데카메론'들이 이어진다. 
문자보다 더 효과적인 미술은 '인문성'을 담아내는 주요한 형식이다.


문화콘텐츠 기획자였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문화해설사로 일하는 진병관은 [기묘한 미술관](2021)이라는 책에서 미술작품들의 여러 뒷이야기들을 들려주는데, 로코코 화가 프랑수아 부셰의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화> 속 디드로 백과사전을 통해 루이 15세의 정부인 퐁파두르 부인의 지원을 받은 '백과전서파'가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적 토대가 되어 결국 왕정을 무너뜨렸다는 이야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제단화 <쾌락의 정원>은 그 파격성으로 인해 결국 제단화로서의 본래 역할을 할 수는 없었지만 인간사의 혼돈을 품고는 후세로 하여금 현재까지 미스터리의 반복적 근원이 되었다는 이야기 등, 흥미로운 미술관 이야기를 풀어낸다. 대중화된 '공공 미술관'의 미술사 이야기는 더 많은 이들에게 재미있는 소재다. 18세기 영국의 '여흥클럽'인 'Society of Dilettanti(소사이어트 오브 딜레탕티)'는 이탈리아 문예여행자들의 '금수저 클럽'이었는데, 할 일 없이 매일매일 술이나 마시며 '고전미술'을 수집하고 돌려보는 한량들이었지만 결국 그들의 수집품들이 오늘날의 고전미술 컬렉션에 기여하기도 했단다. 이들의 젠 체하는 건배사 중 "Seria Ludo(세리아 루도)!"는 "심각한 문제도 놀면서 풀자!"는 의미의 라틴어 문구였다. 심각한 인간사를 진지하지 않게 놀면서 풀기에 '미술' 만한 좋은 '기술(Art / Ars / Techne)'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다수 대중이 공유하고 통제하는 진정한 '공공 미술관'에서는 더욱 더 "Seria Ludo"가 현실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술 또한 현대의 '공유재'로서의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미술의 역사는 '고전미술'이나 '명작'들이 모여 만든 역사가 아니다. 미술사는 인류의 실패와 미완성으로 점철된 고뇌와 좌절의 역사이며, 그럼에도 이겨내고 버텨내게 되는, 끝도 없고, 완벽한 미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그러나 '진지한 문제도 놀면서 풀 수 있는(Seria Ludo)' 인류의 생생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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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에세이], 양정무, <창비>, 2021.
2. [기묘한 미술관], 진병관, <빅피시>,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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