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지음, 이수경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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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이이콘, '유다의 키스'
- [가룟 유다],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1907.


"그러나 예수는 제자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들의 경고가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버림받고 사랑받지 못하는 유다에 대한 관심을 어쩌지 못하는 모순된 갈등 속에서 예수는 유다를 받아들여 선택된 자들, 제자들의 무리에 포함했다. 제자들은 흥분해 뒤에서 투덜거렸다. 유다는 지는 해 쪽으로 얼굴을 향한 채 조용히 앉아 생각에 잠겨 그들의 말을 들었다. 어쩌면 무언가 다른 소리를 듣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가룟 유다], <1>,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1907.


예수가 죽은 다음날 그의 제자 하나가 예루살렘의 절벽에서 목을 매달았다. 밤새 허공에 달렸던 그를 발견한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알고는 그 시신을 들판에 버렸다. 그는 예수를 은화 30닢에 팔았던 제자 가룟 유다였다.
예수를 배반한 것도 그였고, 예수의 최후를 끝까지 지켰던 것도 그였다.


러시아 소설가 레오니트 안드레예프(1871~1919)는 독학으로 그림도 그리던 러시아 소설가였다. 한때 막심 고리키의 지원으로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모임인 '수요회'의 동인이었던 그는 1905년과 1917년 러시아 혁명시기를 거치면서 한때 혁명에 열광하기는 했으나 유물론자는 아니었고,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실존적 허무주의(니힐리즘) 또는 비관주의(페시미즘) 작가로 분류된다. 1905년 1월 '피의 일요일' 사건 후 사회체제보다는 인간실존을 더 고민했고 1917년 2월 '부르주아혁명'에 잠시 들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조국 러시아의 대독일 전쟁을 찬양하다가 전쟁에 회의를 품었고 그해 10월 '볼셰비키혁명' 이후에는 아예 반혁명의 러시아 백군을 옹호하다가 망명자의 삶으로 생을 마감했다. 혁명과 체제변혁에 관한 생각의 차이로 고리키와 멀어지기 이전인 1907년에는 두 해전 '피의 일요일' 사건 후 오히려 강화된 차르 체제의 공안정국에서 배신과 밀고가 판을 치던 인간사를 그린 [가룟 유다와 다른 제자들]이라는 제목의 중편소설을 발표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나사렛 예수'가 아닌 배신자 '가룟 유다(Judas Iscariot)'였다.

고리키도 극찬했다는 이 소설 [가룟 유다]는 예수를 배신하고 유대교 대제사장에게 팔아넘긴 예수의 제자 '유다'의 관점에서 그의 실존적 고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설 속 가룟 유다는 붉은 머리의 애꾸눈에, 아마도 서양 골상학적으로 불길한 상인 듯한 쪼개진 뒷통수로 묘사된다. 기질 또한 거짓말쟁이에 가식적으로 모두에게 예의바른 캐릭터로서 자부심 높은 예수의 다른 제자들이 보기에 불경스러웠으며 예수 집단 내 '왕따'였다. 그러나 모두에게 공평한 예수가 그런 유다를 제자로 받아들이자 스승의 말은 잘 듣는 다른 제자들은 조금씩 마음을 연다. 예수의 최고 애제자 요한(John)은 끝내 유다(Judas)와 거리를 두었지만 성격있는 베드로(Peter)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유다와 농담을 주고받았고,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기 어려운 유다의 개그에 현학적인 마태(Mattew)는 성현의 말로 받아쳤다. 언제나 진지하고 이성적인 도마(Thomas)는 매번 유다가 던진 개그의 진위를 캐물으며 일행의 후열에서 동행했다.

생각해보면, 당대에 널리 인정받지 못한 채 고난의 행군을 이어간 공자와 석가모니, 예수는 제자들을 몰고 세상을 주유하던 일종의 '거지떼' 같았을 게다. 공자는 [논어]로, 부처는 '불경'과 예수는 '신약성경'의 복음으로 제자들이 그 성스러움을 증명하고 있다. 공자에게는 안회, 자공, 자로 등이 있었듯, 예수에게는 마태, 베드로, 요한, 도마, 유다 등이 있었다. 안드레예프의 [가룟 유다]에 등장하는 주요 제자들의 이름이다. 주인공인 듯 주인공 아닌 예수는 소설 전반에 대사 한마디 안 나오다가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 중 하나가 나를 배신할 것"이라는 대목에서 첫 대사를 친다. 이후 "베드로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든가 유다가 대제사장의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 "내가 입맞추는 자가 바로 예수요"라며 키스했을 때, "입맞춤으로 배반하느냐?" 등의 복음서에 나오는 유명대사 외에는 거의 침묵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배신'의 절정은 역시 '유다의 키스'지만, 소설의 테마는 '배신'의 배경이다.


"... 예수는 죽었다.
실현됐다. 구해 주소서! 구해 주소서!
공포와 꿈이 실현됐다. 이제 누가 유다의 손아귀에서 승리를 빼앗겠는가? 실현됐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군중이 골고다에 모여 '구해 주소서! 구해 주소서!' 외치도록 내버려 두자. 피와 눈물의 바다가 땅 위에 흐르겠지만 그들은 단지 치욕스러운 십자가와 죽은 예수만을 발견할 것이다... 실현됐다."
- [가룟 유다], <8>,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1907.


유다는 예수 집단에서 일테면 초한지 유방 집단의 모사 진평과 같다. 기질은 사기꾼에 도둑놈에다가 음모로 처세하는 역할이다. 예수 집단의 회계관리 담당으로 돈통을 관리하면서 위조동전을 감별하다가 횡령도 가끔 하고 예수에게 용서받고는 어려운 이웃에게 횡령한 돈을 주었다고 둘러대고 예수를 욕하고 위협하는 주민들을 만나 곤경에 처했을 때 거짓말과 비위맞추기 수완으로 예수와 제자들이 도망갈 시간을 버는 등 집단의 '현실'적 생존에 일정한 역할을 한다. 아마도 예수의 '현실주의'적 제자였을 유다는 요한과 베드로 같은 '성령' 가득한 총애를 갈망했을지도 모른다. 어느날 요한과 베드로가 각자 유다에게 "천국에서 예수의 옆자리에 누가 앉을 것 같은가?" 물었을 때 각자에게는 듣기 좋은 답을 했음에도, 나중에 그 두 제자로부터 대질심문 받았을 때 유다는 본인이 예수의 옆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답하고는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배신당할 본인의 미래를 예언한다. 아마도 이런 예언은 그 때가 처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에 의하면 영리한 유다는 아마도 이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 예수를 권력에 팔았을 것이다. 말로는 예수의 최고 제자라 떠들지만 스승의 예언 앞에서는 침묵하거나 피하는 비겁한 다른 제자들과 달리 유다는 스승의 예언을 '실행'했고, '유다의 키스'로 인해 예수의 영원한 기독교왕국은 "실현됐다". 베드로는 예수의 예언대로 끌려간 예수를 뒤따르며 세 번 예수를 부인했으나, 예수를 배신한 유다는 끝까지 예수의 뒤를 따르며 십자가 보혈의 희생으로 완성되는 기독교왕국의 미래를 확인하고는 제사장들을 찾아가 무고한 예수를 희생시킴으로써 권력자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영생의 죄인이 되었고 앞으로 사람들은 예수의 십자가 아래 무릎을 꿇게 되는 절대신성이 완성되었음을 선포하면서 배신의 댓가로 받은 은화 30닢을 모조리 돌려준다. 예수의 목숨 치고는 싸구려라고 비웃음을 받던 그 은화들은 이제 권력자들의 역사적 목숨값이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는 비겁하게 숨은 제자들을 찾아가 이제 예수의 권력은 '실현'되었으며 유다 본인이 천국에서 예수의 옆자리를 차지할 것이라 선언하고는 미리 봐둔 산에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예수를 팔아넘긴 '배신자'가 아닌, 기독교 절대왕국 실현의 '공로자'가 된 가룟 유다의 이야기에서는 예수의 부활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안드레예프의 소설 [가룟 유다]는 유다의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예수는 기원전 당시 유대교 거대종파(사두가이/바리사이) 사이에서 '급진적 평등주의'를 설파하던 소수의 '제3세력' 반란자였다. 
로마제국의 예루살렘 총독 빌라도는 예루살렘에서 기득권 싸움에 여념없던 이 종파들을 관리하기만 했을 뿐, 정작 예수를 죽이자고 한 건 유대교 제사장 권력자들이었다. 빌라도는 본인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급진적' 종파를 처단하는 방법을 알았던 것이다. 
'이단'적 음모론은 이러한 권력관계를 잘 알고 있었던 예수가 빌라도와 비밀리에 교섭하여 '십자가형'을 꾸미고는 '부활'하여 막달라 마리아를 데리고 유럽으로 건너가 고트족 메로빙거 왕조와 혈연관계를 맺어 현재까지 지배계급 내의 후손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 마지막 왕족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였으며 '시온수도회'가 지키려는 '성배'가 바로 이 예수의 혈연 가계도라는 주장까지 전개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막달라 마리아 같은 예수와 혈연관계가 아니었던 베드로는 예수 사후 다른 종파를 형성하여 순교와 포교를 거듭한 결과 가톨릭(Katholikos : 전체적 / 보편적) 교회라는 현실적 절대권력을 구축했다. 
어느 쪽이든 '배신자'로 영겁의 낙인이 찍힌 가룟 유다를 역사적으로 '배신'한 건 예수와 그의 다른 제자들이라는 결론이 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20세기 초 러시아 소설가 레오니트 안드레예프의 기이한 소설 [가룟 유다]에 한정된 이야기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8 : [그리스도교의 기원](1908) - 칼 카우츠키

'배신'의 아이콘, '유다의 키스'.
그 진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

1. [가룟 유다](1907),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이수경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20.
2. [연표로 보는 서양미술사], 김영숙, <현암사>, 2021.
3. [그리스도교의 기원](1908), 칼 카우츠키 지음, 이승무 옮김, <동연>, 2011.
4. [성혈과 성배](1981), 헨리 링컨/마이클 베이전트/리처드 레이 지음, 이정임/정미나 옮김, <자음과모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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