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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쉬의 비밀 1 - 쾌락의 정원
페터 뎀프 지음, 정지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Natura Mutatur, Veritas Extinguit."
- [보쉬의 비밀], 페터 뎀프, 1999.
"<쾌락의 정원>은 가톨릭교회의 종말을, 남성지배의 종말을 선포하는 그림이라는 사실이오."
- [보쉬의 비밀], <세번째 책>, 페터 뎀프, 1999.
여기 그림 '세폭'이 있다.
한폭한폭, 또 한폭이 모여 성스런 제단에 바쳐진 그림, '세폭 제단화(triptych)'다.
17세기 루벤스의 <십자가를 세움>이나 <십자가에서 내려짐>, 그 이전 세기의 <메로드 제단화> 등은 교회의 의뢰를 받아 그려져 미사의 배경화면이 되는 그림이었을 것이다. 대형교회는 이 세폭 제단화의 주요 화면인 중앙 패널을 중심으로 신자들에게 성스러움 또는 공포와 회개를 유발했을 것이다. 기본이념은 기독교였으되 세부내용은 의뢰자인 해당 교회나 종파의 사상을 담고자 했을 것이다.
15~16세기 북유럽 네덜란드 화가 히로니뮈스 보쉬(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1450~1516)가 그린 세폭 제단화가 있다. 제목도 없이 미술사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20세기 초 살바도르 달리 등의 초현실주의 화풍에 영향을 준 작품 중 하나로 <쾌락의 정원>이라 불리게 된 그림이다.
히로니뮈스 보쉬의 <쾌락의 정원>은 이른바 '아담파'로 불렸던 '자유정신형제회'의 의뢰를 받아 그려진 작품으로 그들의 비밀예배에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성화 같지 않고 매우 난잡해 보이는 이 그림은 전혀 가톨릭교회의 미사에 사용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 20세기 중반 독일 미술사학자 빌헬름 프룅거가 제기한 위와 같은 가설에 의하면 남녀 교인들이 태초의 낙원과 같이 나체로 혼교를 하며 미사를 드리는 '아담파'라는 이단교의 수장인 야코프 반 알마엔힌의 의뢰를 받아서 그린 작품이었다고 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보쉬는 '아담파'였고 '이단'이었다.
'성당기사단'이나 '장미십자회', '프리메이슨'이나 '시온수도회' 등 정통 가톨릭에 의해 '이단'으로 배척받기 시작하면 온갖 음모와 미스터리가 가득해진다. 한편으로 이러한 '이단'적 환상과 상상의 결과는 '정통'의 교리에 가하는 균열이다.
기존 체제를 뒤집어 엎는 '혁명'은 그렇게 시작된다.
독일의 작가 페터 뎀프(Peter Dempf)는 미술사학자 빌헬름 프룅거의 이 가설을 중심으로 보쉬의 작품 <쾌락의 정원>을 해석한다. 20세기 말인 1999년에 발표된 [보쉬의 비밀]은 21세기 초에 발표된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나 매튜 펄의 [단테 클럽]과 같은 영화적 활극이나 자극적 살인 등은 나오지 않는다. 1998년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된 보쉬의 <쾌락의 정원>에 염산을 뿌린 '정통파' 신부 바에를러를 조사하면서 그가 들려주는 16세기 보쉬와 '아담파'(자유정신형제회) 이야기가 액자형식으로 병행하여 전개되지만 중세의 활극은 그저 옛날 이야기만 같고 사실 바에를러 신부의 최면과 같은 이야기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그저 15~16세기 북유럽 네덜란드의 도미니크 수도회의 종교재판관이었던 동명의 바에를러 신부의 현신 시늉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중세말의 '정통파' 종교재판관 바에를러 신부와 현재의 '정통' 수호자 바에를러 신부(사실 가명이다)의 변하지 않는 사명은 '이단'을 처단하는 것 뿐이다. 중세에는 마녀사냥과 고문과 화형의 방식이었고 현대는 '이단'의 아이콘인 미술작품의 파괴의 방식이라는 차이는 있다.
어릴적 우연히 보쉬의 <쾌락의 정원>을 본 후 18년 간 연구를 거쳐 관련 소설을 쓴 페터 뎀프는 바에를러 신부 못지 않게 그럴듯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사실, 히로니뮈스 보쉬의 생애 자체가 거의 알려진 것이 없어 그저 추측과 상상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소설 속 액자형 이야기의 주인공인 페트로니우스 오리스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추천을 받아 보쉬의 직인까지 되었고 '아담파' 수장인 알마엔힌의 초상화까지 그릴 수 있었던 화가로 등장하나 미술사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다. 고향이 아우크스부르크란 점에서 같은 지역 출신인 저자 페터 뎀프의 상상속 현신일 수도 있겠다. 또한 소설 속 현재의 주인공인 미하엘 카이에 박사의 전생일 수도 있겠다. 훼손된 <쾌락의 정원>을 복원하는 미술사 전문가인 카이에와 '아담파'의 후예로 의심받는 여주인공 그리트 반데르베르프는 중세의 페트로니우스와 그의 여인 지타의 현신과도 같이 겹친다.
"16세기는 종교에서 새로운 경향들이 생겨나던 시대였소. 루터는 그 중 목소리가 가장 컸던 사람일 뿐이지. 교회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요구는 전 세계적으로 울려퍼지고 있었어요... 완전과 명상과 자유라는 세 원칙... 자유정신형제회는 완전의 원칙에서 정신적인 인간의 불과오성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냈고, 명상에서는 신과의 유사성을, 자유에서는 자유로운 사랑의 개념을 만들어냈소. 천상적 사랑의 힘으로 이 땅에 낙원을 넓히겠다는 의미에서 말이오. 그것은 혁명적인 생각이었을 뿐 아니라 당대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극악무도한 것이었지요."
- [보쉬의 비밀], <첫번째 책>, 페터 뎀프, 1999.
'혁명'은 '이단'이고, '이단'은 '혁명'이다.
소설에서 주인공 미하엘 카이에와 함께 보쉬의 <쾌락의 정원>이 숨기고 있을 비밀을 파헤치려는 미술사학자 안토니오 데 네브리하는 염산에 녹은 부분에서 발견된 비너스 상징기호나 불멸성(Posse non mori : 사람은 죽을 수 없다) 등을 표현한 이니셜(PSSNNMR) 등을 기초로 '정통' 가톨릭 교리에 균열을 내고 도전하던 '이단'의 '혁명성'을 읽어내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해석이 근거가 박약한 추측에 불과하다는 암시와 함께 모조리 의문에 다시금 휩싸이며 소설은 끝나고 만다. 중세 유대교의 신비술인 카발라의 수비술과 수리 해석 등의 중세시대 당시의 '과학'이 동원되고 별자리 시대구분까지 갖다붙이고 있지만 결국 지적유희 또는 말장난과도 같다.
<쾌락의 정원> 속에 숨겨진 '보쉬의 비밀(신비 : Das Geheimnis)'을 캐기 위해 에둘러 돌고 돌았던 지적유희의 결과는 허망하고 모호하다. 그러나 '이단'의 환상 속에서 진리의 라틴어 명제 하나가 또렷이 남는다.
"Natura Mutatur(나투라 무타투르),
Veritas Extinguit(베리타스 엑스팅구이트)"
즉, "자연은 변화하고, 진실(진리)은 소멸한다"는 명제다. 미술사가 네브리하가 발견한 이 테제 속에 <쾌락의 정원>이 숨긴 메시지 일반이 담겨있다. 세계의 만물은 변화하고 '진리'였던 것은 소멸하며 새로운 '진리(진실)'가 나타난다. 가부장제로 버텨온 예수 이래 가톨릭 세계는 2천년 이상 '사자자리'의 시대였으나 예수를 상징하는 '물고기자리'를 거쳐 여성이 다시금 주체성을 회복하는 '물병자리'의 앞으로 2천년을 예고한다. <쾌락의 정원> 중앙 패널 상단에서 100명의 나체 남성들이 원무를 추는 장면과 그 가운데 연못에서 33명의 나체 여성들이 물 밖으로 나오는 장면이 그 은유다. 카발라의 수비술에 의하면 '100'은 무수히 많은 수를 의미하며 직선적 진보의 사고를 대표하던 가부장적 남성들이 순환을 의미하는 여성적 원무를 추면서 다음 시대를 예고한다. 역시 '3'은 동양과 같이 '완전한 순환'을 의미하는 기초단위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33년을 살았던 것처럼 완전한 숫자인 33인의 여성이 다음 세대로서 태어나는 중이다. 중앙 패널 하단을 채운 나체의 남녀 군상들은 딸기와 자두 등 성욕을 상징하는 열매를 따먹고는 있지만 직접적 성행위는 하지 않는다. 소설 속 '아담파'는 그 '이단'의 혐의에도 불구하고 비밀예배에서 혼교나 난교 등 집단성행위를 하지 않을 뿐더러 그 우두머리인 학자 야코프 반 알마엔힌은 아주 결정적 '비밀'을 숨기고 있다. 당시로서는 최고로 '이단'적이었던 비밀이다. 의문의 화가 히로니뮈스 보쉬는 이 모든 '이단'적 '비밀'을 안고 1516년경 화형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면 미처 밝히지 못한 '비밀'들은 <쾌락의 정원>이라는 '아담파'의 세폭 제단화에 아직까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앞으로 영영 그 '비밀'들은 미궁 속에 있겠지만, 그림을 둘러싼 '이단'적 상상은 이미 "모든 것은 변하며 진리는 영원할 수 없다(Natura Mutatur, Veritas Extinguit)"는 비밀 아닌 '비밀'을 나체와도 같이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좌측 패널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첫 만남을 갖는 '낙원'의 첫번째 에피소드인데, 순종적이지만은 않은 이브의 태도가 엿보인다. 이 모든 것은 가운데 분홍색 구조물 속 올빼미가 지켜보고 있다. 올빼미는 그리스 신화와 철학에서는 지혜의 상징이지만 기독교에서는 악마의 새로도 알려져 있다. 이미 '낙원'에는 선악과를 따먹기 전부터 선과 악이 공존했다는 암시다.
우측 패널은 결국 모두가 불타는 지옥에서 <쾌락의 정원>을 뛰놀던 나체의 남녀 군상들이 향락의 상징인 악기에 묶이거나 얼음물에 잠기거나 새부리 괴물여인에게 잡아먹히는 등 암울한 결말의 세번째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이 '지옥도'의 가운데 중심에서 섬찟한 표정의 인물이 몸통이 잘려 빈 속을 보이는 나무거인의 뒤에서 우리를 쳐다보는데, 보쉬 자신의 자회상이라는 설도 있고 또는 의뢰인인 알마엔힌의 초상이라는 설도 있다. 자세히 보면, 여성의 얼굴 같기도 하다. 아마도 여기에서 '아담파'의 수장 야코프 반 알마엔힌의 위험한 '비밀'이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알마엔힌 또한 1547년 즈음 화형을 당했다고 한다.
히로니뮈스 보쉬의 '세폭 제단화' <쾌락의 정원>의 '비밀'을 밝히지 못한 채 덮으면 세계 창조의 첫 장면이 나타나는데, 창조주인 신이 가운데가 아닌 한 구석에 찌그러져 있다.
'신'이 중심에서 밀려나는 '이단'적 '혁명'이 이미 <쾌락의 정원> 곳곳에서 암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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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쉬의 비밀(Das Geheimnis des Hieronymus Bosch)](1999), Peter Dempf, 정지인 옮김, <생각의 나무>, 2006.
2. [기묘한 미술관], 진병관, <빅피시>, 2021.
3. [연표로 보는 서양미술사], 김영숙, <현암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