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읽는 그림 - 수천 년 세계사를 담은 기록의 그림들
김선지 지음 / 블랙피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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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시간'
- [시간을 읽는 그림], 김선지, 2025.


"버팔로는 거의 멸종되었다... 
버팔로 사냥이 끝나자, 사람들은 곧 아프리카의 상아, 남태평양의 해양 자원, 남극의 고래로 손을 뻗었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의 욕망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숲은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사라졌고, 전통문화는 관광 자원으로 가공되었으며, 지역의 자원과 노동은 글로벌 시장에 흡수되었다. 우리는 지금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의 상실, 생태계 붕괴라는 전 지구적 위기 속에 살고 있다. 그 뿌리 깊은 위기의 출발점에는 19세기 세계화가 보여 준 무분별한 자연 소비의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버팔로 사냥은 그 파괴적 흐름을 예고한 첫 경고장이었다."
- [시간을 읽는 그림], <6-1. 세계화의 희생양, 버팔로와 북미 원주민 : 미국 서부 개척 신화의 진실>, 김선지, 2025.


19세기 말 미국의 철도와 전신이 아메리카 전역을 연결하기 시작했고, 철도 자본이 한 때 돈벌이로 개시한 '철도 사파리'는 당시까지 수천만 마리에 달하던 버팔로를 사냥하는 관광 상품이었다. 기차를 탄 백인들이 미국 서부를 달리며 버팔로 떼에 총을 쏴서 마구잡이로 죽이는 것이었다. 토착 원주민 인디언들도 버팔로를 사냥하며 살았지만 그들은 버팔로를 숭배하면서 꼭 필요한 만큼만 잡아 고기를 먹고 가죽으로 생필품을 만들었다. 원주민과 버팔로는 공존했다. 그러나 '철도 사파리'를 탄 정복자 백인들은 버팔로를 재미로 살육하면서 단시간 만에 거의 멸종시켰다. 

18세기 유럽의 자본주의는 석탄 산업을 시작하기는 했으되 아직은 주로 인간의 노동 착취를 통해 산업을 발전시켰고, 
19세기 미국의 글로벌 자본주의는 본격적으로 지구와 자연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버팔로 멸종은 그 상징적 시작이었다. 

'성장'과 '퇴보'를 동시에 보여주는,
현대 자본주의의 두 얼굴이다.


"우리는 두 개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새의 관점이다. 이 시선은 왕조의 교체, 전쟁과 조약, 혁명과 제국의 부침 같은 거대한 사건들에 집중한다. 마치 강물처럼 흐르는 정치, 사회, 경제의 큰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조감도와 같다... 
그러나 그 거대한 강물 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물방울이 있다.... 곤충의 눈으로 들여다본 세계는 왕조의 역사 대신 보통 사람들의 삶과 일상, 대제국의 흥망성쇠 대신 마을 축제와 박람회 풍경,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쟁 대신 그것으로 고통받는 시민들의 생존과 먹거리 같은 것들로 채워진다. 곤충의 관점은 작은 것 속에 담긴 삶을 포착하며, 미시적인 관점을 통해 인간 역사의 내밀한 얼굴을 드러낸다."
- [시간을 읽는 그림], <시작하며 :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의 풍경>, 김선지, 2025.


[그림 속 천문학](2020)과 [그림 속 별자리 신화](2021), [뜻밖의 미술관](2023)과 [사유하는 미술관](2024)의 작가 김선지 선생은 '그림', 즉 명화들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작가다. 대학 학부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작가는 전공을 잘 살려 '그림'으로 '역사' 이야기를 쓴다.

나 또한 모든 것이 '역사책'이라 생각하며, 개인적으로 그 중 가장 재미있는 놀이터가 '미술사'라고 생각하기에,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만난 김선지 선생의 글이 반갑기 그지 없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마치 '미술사'라는 같은 '놀이터'에서 만난 소꿉친구를 대하는 듯, 그녀의 책이 나오면 꼭 읽게 된다.

2025년에 [시간을 읽는 그림]을 들고 다시 '미술사'의 놀이터로 찾아온 김선지 선생은 여전하다. 
변함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해 준다. 일직선의 시간의 흐름이나 사건의 나열이 아닌 인류의 역사 이면에 존재하는 양면성과 이중성을 일관되게 서술한다.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믿음으로 다수 민중편향의 역사관을 지닌 나와는 조금 결이 다르겠지만, 김선지 선생은 어렵고 난해한 글이 아니라 출퇴근 전철 안에서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친밀한 글로 균형 잡힌 역사관을 서술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녀와 나는 '소외'된 사람들 또는 주류 역사의 이면에 가려지고 억압받는 이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미술사'의 놀이터에서 만나 왔다. 
'미술사'를 매개로 '별자리'([그림 속 천문학])를 올려다 볼 때나, 
'그리스 신화'([그림 속 별자리 신화]) 속에 들어갈 때도, 
'미술관'([뜻밖의 미술관] / [사유하는 미술관])을 돌아다닐 때도, 
공간은 달랐지만, 역사의 '모순'과 '이중성'을 일관되고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주고 설명해 주었던 거다.

김선지 작가의 신간 [시간을 읽는 그림](2025)도 역시 그런 역사관의 연속이다. 

<1장>에서는 고대 역사 이야기, 
<2장>은 중세의 동서양과 유라시아 및 아프리카 말리제국까지, 
<3장>의 르네상스와 대항해 시대, 
<4장>의 근대 '혁명'과 계몽주의, 그러나 여전한 문명의 '야만성'
<5장> 현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지나, 
마지막 <6장>에서는 양차 세계대전과 '맥도날드'식 효율화 자본주의 문명을 담은 명화와 각종 그림, 사진, 만화, 기사 등의 시각예술적 기록들을 통해 인류의 세계사적 사건들을 선별하여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역사 교과서처럼 시간의 모든 흐름을 다룰 필요는 없다. 각 시기별 특별한 미시적 사건들을 담아낸 '그림'들을 매개로 인류 역사라는 '시간'의 보편성을 설명할 수 있으면 된다. 
이렇게 인류의 '역사'라는 모든 '시간' 속에 흐르고 있는 '일반 법칙' 같은 무언가를 간파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한편으로, '미술사'라는 '놀이터'에서 가끔 만나 놀던 김선지 작가가 한 뼘 더 커서 어느덧 이 해 지는 '놀이터'를 떠날 시간이 와 버린 건 아닐까 싶다. 

역사의 '시간'을 통해 미술사의 '그림'을 이야기하던 '놀이터'의 '작은 아이'에서 어느덧,
미술사를 넘어 '그림'을 통해 인류 역사의 거대한 '시간'을 이야기하는 '어른'이 되어,
'미술사'라는 '놀이터'를 떠나게 되는 그런 시간.

그래서 '미술사'라는 해 저무는 석양의 '놀이터'에 홀로 남겨진 듯한 독자로서 나는 김선지 작가의 신간 [시간을 읽는 그림]이라는 제목을 이렇게 허락없이 뒤집어 읽어 본다.

'그림'으로 읽는 '시간'이라고.

역사의 '시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왔고, 
지금도 조용히 혹은 격동적으로 흐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영원할 것이다.

'그림'은 유한할 수 있으나,
'시간'은 이렇게도 무한한 것처럼.

역사 이야기 작가 김선지 선생의 '시간'이 무한하기를 기대해 본다.

***

1. [시간을 읽는 그림], 김선지, <블랙피쉬>, 2025.
2. [그림 속 천문학], 김선지/김현구, <아날로그>, 2020.
3. [그림 속 별자리 신화], 김선지, <아날로그>, 2021.
4. [뜻밖의 미술관], 김선지, <다산북스>, 2023.
5. [사유하는 미술관], 김선지, <알에이치코리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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