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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눈앞의 현실 - 엇갈리고 교차하는 인간의 욕망과 배반에 대하여
탕누어 지음, 김영문 옮김 / 378 / 2018년 10월
평점 :
[좌전(左傳)]의 '안전(眼前)'
- [역사, 눈앞의 현실], 탕누어/김영문, 2016.
"... 모든 사람의 시선이 각각 한 줄기, '도(道)의 빛'... 춘추시대 사람들의 '눈앞(眼前)', [좌전(左傳)] 저자의 '눈앞', 나의 '눈앞'에서 그것들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기를... 사방으로 종횡하는 직선이 서로 교차할 수 있기를...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하나의 고귀한 교차지점을 보고 자신이 어느 시대, 어느 곳에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 또한 가장 가본적이고 가장 간단한 '위치측정' 방식이다."
- [역사, 눈앞의 현실], <서문>, 탕누어, 2016.
중국의 춘추시대는 기원전 8세기 주나라의 분봉국들이 각자 수세대 세습을 하는 과정에서 독립국이 되어 중국 전체가 열국(列國)의 쟁패장이 되는 시대의 시작이었다.
기원전 6세기(노양공 27년), 춘추시대 송나라의 주선으로 북방의 전통강국 진(晉)나라와 남방의 신흥강국 초(楚)나라가 각자의 종속국(송/노/정/채/위 등)을 거느리고 맺었던 거대한 '정전( 평화)협정'인 '미병지회(弭兵之會)'는 동방의 제(齊)나라와 서방의 진(秦)나라 등의 대국들을 아우르면서 이후 전국시대 7대국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미병지회 후 1세기가 지나면서 진(晉)나라가 한/위/조씨 가문의 삼국으로 분열하고 동북방 끝 연나라까지 가세하면 '진/초/제/연/한/위/조'의 '전국칠웅'이 된다.
공자가 주로 활동한 노나라는 춘추시대 소국이었지만 중국 문명의 기초를 놓은 주공 단의 후예국이라 당대의 '문화국'이자 '도서관'과도 같았다.
이에 공자는 노나라 약 2백년의 역사를 [춘추]라는 역사책으로 죽간에 기록했다. '춘추시대'라는 명칭은 여기서 유래했고,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 아닌 '대의'를 품은 사건을 발췌편집하고 강조한 '춘추필법' 또한 공자의 [춘추]로부터 시작되었다.
공자의 역사책, [춘추]에 주석을 달고 해설한 또 하나의 역사책이 [좌전(左傳)] 또는 [춘추좌씨전]이다.
"[좌전(左傳)]은 세월의 '뱃전에 새긴(刻舟)' [춘추(春秋)]의 흔적을 하나하나 해체하여 시간 순서와 구체적인 디테일과 인간의 이야기를 복원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의 서술을 회복한 책이다."
- [역사, 눈앞의 현실], <8장. 뱃전에 새긴 흔적>, 탕누어, 2016.
[좌전]의 저자는 공자와 동시대인이자 노나라의 관방 역사가 좌구명이었다고 전해지나 사실 정확하지는 않다. 노나라의 사관인 '좌(左)'씨 집안 전체가 저자일 수도 있는 것이, 우선 노나라의 어용역사책 '좌구명춘추'가 있었고, 한편으로 이를 발췌편집한 민간역사책 '공자춘추'가 있었으며, 이 텍스트를 '좌씨' 집안에서 계속 수정보완한 역사책이 '좌씨춘추전' 즉 [좌전]이 되었다는 설이다.
"이제 진정한 [좌전]의 저자가 존재했던 가장 적절한 시점을 말해야 한다. 공자 사후에 11년만 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좌전]의 저자는 진(晉)나라의 한씨, 조씨, 위씨가 지씨를 멸망시키는 걸 분명하게 목격했고, 춘추시대를 지탱한 진(晉)나라의 멸망도 예언에 그치지 않았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즉, 진정으로 춘추라는 시대의 종말이 닥치자 그는 이 역사의 단애 끝에 서서 그 시대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추억하기도 했다."
- [역사, 눈앞의 현실], <2장. 저자를 상상하다>, 탕누어, 2016.
대만의 문화기획자이며 전문 독서가이자 서평가인 탕누어(唐諾:1958~)는 [좌전]을 읽고 꽤 긴 서평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춘추시대의 소국 노나라의 200여 년 역사를 배경으로 한 [춘추]와 [좌전]은 소국의 역사서이니 만큼 역시 또 하나의 소국 정나라의 현실정치가인 자산을 자주 등장시켰다는데, 이는 중국권의 소국인 대만의 인문학자 탕누어의 역사관이 투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탕누어의 역사관이란, 역사를 변화시키는 힘은 천하의 '중심'을 자처하는 대국이 아니라 변방인 소국에서 나온다는 관점이다.
당대 현실 사람들의 '눈앞'에서는 '중심'이 현실을 이끌지만, 역사의 '눈'으로 본 기록에서는 다양한 변방의 '눈앞'과 시선이 교차하고 겹치면서 역사를 만든다는 것이다.
탕누어의 [좌전] 해설서 또는 긴 서평책의 원 제목이 [안전(眼前)](2016), 즉 '눈앞'이다. 모든 사람들의 '안전', 즉 '눈앞의 현실'들이 교차하고 겹치면서 의미있는 역사책이 된다는 의미라는데, 우리 말로는 좀 생경하다. 그래서 번역자인 인문학자 김영문 선생님의 국역본 제목은 [역사, 눈앞의 현실](2018)이 되었다.
나는 [좌전]을 직접 읽지는 못했다. 그러나 [좌전]을 많이 참고했다는 사마천의 기전체 역사서 [사기(史記)]를 최고의 역사책으로 생각하는 독자로서의 나는, 국역본 제목에 [좌전]을 넣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옮긴이 김영문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탕누어의 [안전]의 부제목이 <좌전을 읽다(讀左傳)>라고 하니, 우리말 번역본에도 [좌전]을 명시하였으면 더 좋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래서, 탕누어의 [안전]을 읽은 나의 서평 제목이라도 '좌전(左傳)의 안전(眼前)'으로 지어본다. 즉, [좌전]의 저자와 등장인물들의 집단적 '눈앞(眼前)'들이 만들어낸 역사에 관한 의견이다.
"춘추시대 '의전(義戰)'은 없었다(춘추무의전/春秋無義戰)."
- [역사, 눈앞의 현실], <6장. 아주 황당한 전쟁>, 탕누어, 2016.
춘추시대는 주나라 천자의 호위를 자처하는 강대국의 '맹주(패자)'가 여기저기 나대고 있는 타국과 소국을 혼내주는 것이 곧 전쟁이었다. 제나라 환공부터 진나라 문공, 초나라 장왕 등의 '춘추5패'는 바로 돌아가며 열국들을 소집시킨 이 '맹주'들을 이른다.
춘추시대 전쟁은 자원약탈의 본심은 여전했으나 상대방을 멸망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한/위씨가 진(晉)나라의 지씨를 몰락시키고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를 멸망시켜버린 이후의 전국시대 전쟁은 대의명분은 뒷전이고 상대방이 죽어야 내가 사는 세상이 되었다. 탕누어에 의하면 전국시대는 이런 '전쟁'의 시대 이전에 '너 죽고 나 살자'라는 인간의 변화된 문화의 산물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의전(義戰)', 즉 '정의로운 전쟁'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있을 수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탕누어는 "춘추시대 '의전(義戰)'은 없었다(春秋無義戰)"고 단언하지만, 상대적으로 전국시대 이후 지금껏 끊이지 않고 있는 인류의 대규모 살상에 비하면 춘추시대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義戰)'의 '이상'이 그나마 남아있었다고 말한다(이상 [안전], <6장>).
이는 춘추시대 전쟁의 실상을 많이 기록하고 묘사한다는 [좌전]이 전하는 메시지 중 하나이기도 하겠다. 당장의 현실인 '눈앞(眼前)'에서는 '원한'과 복수', '살상'의 현실이지만, 다수의 '눈앞'이 집단적으로 교차하는 '대의(大義)'의 관점에서는 '정의로운 전쟁'의 '이상'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이런 '춘추필법'은 바로 공자의 역사기록 취지이기도 했다.
"문자는... 어떤 완전한 기억을 다시 불러오는 '뱃전에 새긴(刻舟) 흔적'일 뿐이다. 그러나 문자는 '시간'에 의해 흘러가고 죽음에 의해 중지되는 기억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특수한 능력으로 마침내 인간의 기억과 언어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처럼 천천히 완성되어가고 항거할 수 없는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춘추시대 조금 뒤의 시기는 바로 역사의 기록이 분명하게 눈에 띄게 늘어나는 시대, 즉 기록의 폭발이라고 형용할 만한 시대의 시작이었다. 그 시작 지점이 '공자' 문하에서 비롯되었다는 합리적인 믿음이 내게는 있다."
- [역사, 눈앞의 현실], <8장. 뱃전에 새긴 흔적>, 탕누어, 2016.
강에 빠뜨린 보검을 돌아오는 길에 찾고자 배의 앞머리에 물높이를 새겨 두었다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고사가 있다.
탕누어는 [안전]의 결론인 <8장>의 제목으로 '뱃전에 새긴 흔적'을 삼았다.
'각주구검'의 고사는 어리석은 자에 대한 풍자였지만, 탕누어를 따라 결국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당장의 '눈앞(眼前)' 현실을 '뱃머리에 새겨(刻舟)' 왔고 또 부단하게 새기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역사의 가록은 '각주구검'이 맞을 수도 있겠다. '시간'이라는 물결은 어제 우리가 보검을 잃어버린 그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데, 지나간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이 동일할 수 없겠지만, 역사를 통과하는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문자로 '뱃전에 새기는' 것이 아직은 최선이다.
우리의 인문학자 유시민 선생은 '역사의 역사'를 '역사기록의 역사(History of Writting history)'로 보기도 했다.
사실들은 '시간'의 강물을 따라 무심히 지나가고,
우리에게는 문자로 '뱃전에 새긴' 기록이 남는다.
그러다 보면 누가 알겠는가.
혹시나 잊었거나 잃었던 '보검'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에릭 홉스봄이 찾고자 했다던 '역사의 일반법칙'(같은책, <8장>)은 고대 중국 공자의 [춘추]와 지금은 원전으로 전하지는 않는다는 이 [춘추]를 지속 수정보완하면서 책으로 전해져 왔다는 [좌전]이 인간사 '눈앞(眼前)'의 관찰과 '뱃전에 새긴' 문자 기록을 통해 이미 수행하기 시작한 것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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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눈앞의 현실 / 안전(眼前): 만유재 '좌전'적 세계(漫遊在 '左傳'的 世界](2016), 탕누어(唐諾), 김영문 옮김, <흐름출판>, 2018.
2. [창시자(奠基者;전기자) - 이중톈 중국사 3](2013), 이중톈(易中天),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14.
3. [역사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돌베개>,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