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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의 역사 - 지금 내 앞에 놓인 한 그릇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25년 10월
평점 :
새삼 '냉면주의자'로의 귀환
- [냉면의 역사], 강명관, 2025.
"어떤 국수를 가리켜 '냉면'이라 하는가?"
- [냉면의 역사], <1장>, 강명관, 2025.
누군가 내게 저녁에 술 한 잔 하자며 뭘 먹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1초만에 '횟집'을 가자고 말할 것이다. 사시사철 언제 물어도 똑같다.
또한 점심에 뭘 먹겠느냐 묻는다면,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단연 '냉면'이다. 역시 언제든 그렇다.
모두, 나의 취향이자 나의 '이념'과도 같은,
'차가운 음식'이다.
한반도 북쪽에서 오래전부터 먹어왔을 '냉면(冷麵)'은 말 그대로 차가운 국수인데, 우리의 문헌에 등장하는 최초의 '냉면'은 고려말의 성리학자 목은 이색의 시에 나오는 '괴엽냉도(槐葉冷淘)'가 최초일 것으로 추정된단다. 실제로는 더 오래 되었겠으나,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고려말에도 이미 '냉면'을 먹었다는 거다.
"... 국수와 동치밋국... 이것이 '냉면'의 핵심요소다... '냉면'은 국수틀을 눌러 뽑아만든 메밀국수를 동치밋국에 말고 김치(무와 배추)를 얹고, 거기에 돼지고기 편육을 올려서 만든 차가운 국수다."
- [냉면의 역사], <1장. 냉면이란 무엇인가>, 강명관, 2025.
부산대 한문학과 강명관 명예교수는 냉면을 좋아하여 스스로를 '냉면주의자'로 자칭하다가 2025년 [냉면의 역사]로 책을 엮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냥 '냉면'에 대한 '썰'을 풀어내는 게 아니다. 15세기 세종 연간의 [산가요록]과 16세기 이문건의 [묵재일기], 17~18세기 [음식디미방]이나 [산림경제], [임원경제지] 등의 고문헌을 근거로 설명하는 '냉면'에 관한 '역사책'이다. 현대에 이르러 이용기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 같은 식민지 시대의 근대적 기술서와 신문, 잡지 등의 언론기사 역시 주요 근거자료가 된다.
역사학의 1차 사료는 역시 '문헌' 자료다.
중종과 인종 대 중앙 관료를 역임하다가 을사사화를 겪으며 귀양살던 이문건의 [묵재일기]에서 '냉면'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고 한다. 1558년 4월 20일의 일기에서 이문건이 쓴 "낮잠을 자다 깨어 곧 '냉면'을 먹었더니 발바닥이 차가워졌다"는 문장이 그 출처다.
신라 진흥왕 대에 '차가운 국수'를 먹었다는 이야기는 출처 불문의 전설에 불과하고 고려시대 이색이 먹은 '괴엽냉도'와 조선 중기 이문건이 자다 일어나 먹었다는 '냉면' 또한 차가운 국수에 대한 기록은 분명하나 과연 어떤 형태의 국수였는지 알 수 없다. 이후 [음식디미방] 등의 한글 조리서는 '세면'과 '창면'의 이름으로 신맛을 내는 오미자 국물에 말아먹는 '냉면'을 추정케 하는데, 이후 18세기 중반 이후가 되면 '냉면'이란 국수틀로 뽑은 '메밀국수(세면)'를 차가운 '동치밋국'에 만 형태로 확인된다.
걸레 빤 물 같고 심심한 물냉면이 평양냉면이고 '비빔국수'의 시조새인 골동면이 조상일 듯한 비빔국수는 함흥냉면이라는 구분은 현대 이후 정착한 형태에 불과하다.
즉, 원래부터 평안도 중심으로 확산된 '냉면' 또는 '평양냉면'은 '메밀국수를 동치밋국에 말고 배추/무김치와 돼지고기 편육을 고명으로 올린 차가운 국수'를 이르는 말이었고, 당시 보통 '국수'라 하면 이러한 '냉면'을 이르는 보통명사였다.
"국수틀을 눌러 뽑은 메밀국수는 처음에는 간장으로 만든 국물에 말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유구가 말했듯 그것은 장물에 끓여서 내는 온면의 형태였을 것이다. '메밀국수+동치밋국=냉면'은 18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문헌에 출현한다."
- [냉면의 역사], <끝맺음>, 강명관, 2025.
부산경남의 밀면이나 해산물육수의 진주냉면, 강원도의 막국수, 대중적인 콩국수도 넓게 보면 모두 '냉면'이지만, 문헌상으로 추적되는 엄밀한 '냉면'의 정의와 분류에 의하면, 오로지 국수틀로 뽑아낸 '메밀국수'와 겨울의 '동치밋국', 동치미가 바닥난 여름에 끓여낸 소와 돼지 또는 닭과 꿩고기(생치) 육수인 '장국'이 결합해야 비로소 '냉면'이 된다.
학자인 강명관 교수의 책 [냉면의 역사]에서는 1차 사료인 문헌적 출처를 찾을 수 없는 밀면이나 진주냉면, 막국수까지 '냉면'의 엄밀한 정의 밖의 영역이다.
"... 18세기 후반 국수가 팔리고 있었고 서울 시정에 국수를 파는 가게가 등장... 서울만이 아니다. 평안도의 경우 유득공의 <서경잡설>에 '냉면'이 팔리는 정황이 담겨 있어, 이 작품이 지어진 1773년에 이미 '냉면'이 상업화되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 [냉면의 역사], <6장. 냉면의 확산 - 냉면의 상업화>, 강명관, 2025.
10~12세기 북송 시대 인구 100만 명의 '메트로시티' 개봉(카이펑) 중심가를 그린 <청명상하도>를 보면 당시 이미 시장에서 사먹던 외식의 주류는 '국수'였다. 물론 '냉면'도 있었는지는 알 수 없고 주로 뜨거운 '탕면'이었을 것이지만.
그러다가 중국을 다녀가는 조선 사신단이 한양에서 평양과 의주를 지나 만주를 통과하면서 지역 음식인 국수, 그 중에도 차가운 국수인 '냉면'을 접했을 테고, 사신단에 합류한 상인과 기술자들이 북방에서 본 국수틀을 한양까지 모방하여 들여왔을 게다. 조선 철종이 시켜먹은 '냉면'도 칼국수 같은 '절면'이 아닌 북방의 기술을 모방한 '메밀세면'을 겨울에는 '동치밋국'에, 여름에는 고기장국인 '육수'에, 또는 동치밋국과 고기장국을 섞은 육수에 말아먹던 국수였을 것이다.
"냉면값은 1925년 15전 내외에서 1943년 22전까지 올랐으니 그리 빠르게 인상된 것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소설에 등장한 식민지시대의 급여를 정리한 논문에 의하면, 보통학교 교사가 40~60원, 중학교와 고등보통학교 교사가 60~70원, 기자가 60~80원, 은행원이 60~80원, 기수가 30~40원 정도였다고 한다. 1원은 100전이므로 15~20전 정도의 냉면가격은 그리 비싼 것이 아니었다."
- [냉면의 역사], <7장. 근대 이후,냉면의 시대 - 총독부, 가격과 양을 정하다>, 강명관, 2025.
나는 '라면'을 비롯한 모든 국수를 매우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 제일은 역시 '냉면'이다. 회와 냉면 모두 차가운 음식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회냉면 보다는 물냉면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냉면의 역사] <후기>에서 저자 강명관 교수는 20대에 물냉면 한 그릇을 '35초'만에 먹었단다.
나 또한 즐기면서 먹고 싶어서 그런 거지 50대인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물냉면 한 그릇 쯤이야 1분 내로 다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매주 토요일 처와 함께 걷는 서울과 경기 인근 나들이길에도 나는 늘 처에게 '냉면'을 먹자고 조른다. 그리고 차가운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처는 싫다면서도 같이 냉면을 먹어준다. 나는 항상 물냉면 곱배기, 처는 비빔냉면 보통을 먹는데 처가 남기는 반 그릇도 전부 내 차지니 한 번 나가면 나는 물과 비빔 섞어 2인분을 먹게 된다. 한편, 맛은 어떨지 모르지만 라면과 김치볶음밥 외에 내가 집에서 해 먹는 음식 또한 역시 인스턴트이긴 해도 '냉면'이다.
냉면을 서울과 평양 등지의 시장에서 팔던 시기는 18세기 중후반 부터라지만, 1895년 갑오개혁 이후의 근대화 과정에서는 수도 서울과 개항지였던 인천 등지에서 냉면을 비롯한 음식점이 성행했다. 이유는 관공서와 현대적 기업의 등장, 전화와 자전거의 발전으로 사작된 배달문화를 통해 직장인과 상류층 가정집의 점심식사 해결의 수요 때문이기도 했다.
차가운 육수 또는 돼지고기 고명의 부패로 인한 냉면 식중독의 위험은 식초를 쳐서 먹는 관행의 이유였지만, 식중독의 확률이 적어진 지금은 식초와 겨자가 오로지 풍미를 위한 향료가 되었다.
메밀을 반죽하고('반죽꾼'), 국수틀로 뽑아내고('발대꾼'), 찬물로 씻어 그릇에 담고('앞자리'), 육수와 고명으로 포장하고('고명꾼'), 자전거로 하루 19시간 동안 배달을 했던('배달인')-어느 진정한 배달의 달인은 믿거나 말거나 한 번에 80그릇을 나르기도 했다던- 냉면집(면옥)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 스스로의 처우개선를 위한 1920년대 면옥노동조합의 결성과 사용자측인 면옥조합과의 산별교섭 및 파업 등의 역사 또한 [냉면의 역사]에서 뺄 수 없는 이야기다.
과연 '냉면'의 역사는 우리의 중요한 미시사 중 하나가 된다.
"1925년 1월 25일 냉면의 성지인 평양에서 최초의 노조가 만들어졌다... 면옥노동조합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연히 임금인상이었다... 12개의 요구조건... 1) 임금인상(50전 이하는 10전, 50전 이상은 5전을 인상할 것-하후상박), 2) 노동시간은 어후 11시까지로 할 것, 3) 노동조합 회원 이외의 사람은 고용하지 말 것, 4) 해고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노동조합의 승낙을 받을 것 등..."
- [냉면의 역사], <7장. 근대 이후 냉면의 시대 - 면옥노동조합의 활동>, 강명관, 2025.
실제로는 점심메뉴에 대한 동료들과의 의견이 '냉면'으로 일치된 경우가 없어 나의 직장생활 중 점심에 '냉면'을 먹은 적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점심식사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냉면'은 내게 음식이란 이래야('차가워야') 한다는 모종의 '이념' 또는 '강령'과도 같다.
이 정도면 나도 '냉면주의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강명관 교수의 [냉면의 역사](2025) 덕분에 나는 새삼 '냉면주의자'로 귀환한다.
"1945~1950년 서울의 냉면점들이 이렇게 평양냉면을 내세운 것은, 일제강점기 서울의 냉면이 이미 평양냉면화되어 있었음을 의미할 터이다. 이 냉면점들은 또 다동, 충무로, 광화문, 명동, 남대문, 관철동, 예지동, 낙원동, 을지로, 시청 앞, 종로 등의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주로 서울의 좁은 중심지대 안에 있었다."
- [냉면의 역사], <8장. 8.15 해방 이후의 냉면 - 각지의 냉면점>, 강명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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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냉면(冷麵)의 역사 - 지금 내 앞에 놓인 한 그릇], 강명관, <푸른역사>, 2025.
2. [라면의 재발견], 김정현/한종수, <따비>,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