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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2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156
조르조 바사리 지음, 이근배 옮김, 고종희 / 한길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재현'의 '민주주의'적 역사
- [명화의 비밀], 데이비드 호크니, 2001~2006.
"나는 (장 오귀스트) 앵그르가 모종의 광학장치를 작품에 이용했다고 확신한다. 드로잉의 경우에는 카메라 루시다였겠지만, 회화의 섬세한 세부를 그릴 때는 카메라 오브스쿠라(옵스큐라)로 사용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만이 유일한 설명이다. 그러나 앵그르가 처음으로 광학을 이용한 화가는 아니다. 베르메르(페르메이르)도 카메라 오브스쿠라를 사용했다고 생각되는데, 이 점은 회화에 나타난 광학적 효과로 추측할 수 있다. 그가 처음이었을까? 나는 많은 책과 목록을 뒤져 찾을 수 있는 모든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기에 이르렀다. 내 호기심은 점점 커졌다."
- [명화의 비밀], <시각적 증거>, 데이비드 호크니, 2001.
다시, '재현'의 문제다.
14~16세기 르네상스 미술가들의 '열전'을 남긴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 1511~74)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 등의 거장들로 완성되는, 특히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기법'을 확정된 '마니에라(manner)'라 규정하며 이후 예술가들이 이 '기법(방식/매너)'을 따라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에 따르면, 14세기(트레첸토:300년대) 조토 디 본도네의 사실성의 '혁신'으로부터 미술사의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열렸고, 15세기(콰트로첸토:400년대)에 회화의 마사초 디 산 조반니와 건축의 필리포 브루넬리스키의 '선형 원근법', 도나텔로(혹은 도나토)의 일방향 부조를 넘어선 입체적 사방 조각을 거쳐, 16세기(친퀘첸토:500년대) 회화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조각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색채의 라파엘로 산치오 등의 거장들에 이르러 르네상스 미술의 '기법(방식/매너/마니에라)'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화가들이 바사리가 규정한 이 '방식'을 '답습'하는 행태가 지금 우리가 아는 '매너리즘'이다.
일제강점기에 의학을 전공한 이근배(1914~2007) 조선대 의대 교수는 자신의 전공도 아닌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취미적 관심 하나로 자그만치 18년간 조르조 바사리의 '열전' 영문판을 우리말로 옮기셨단다. 그가 번역하면서 본 16세기 바사리의 예술관은 '자연의 철저한 모방'이었다. 즉, 신이 창조한 자연은 그 자체가 완벽 그 자체이므로 인간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예술의 지상명령'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열전의 첫문장은 위대한 미술가들의 뛰어난 디세뇨(기교)가 '신의 의지'라는 바사리의 찬사로 시작한다.
2018년에 <한길사>에서 2007년 작고하신 이근배 선생님의 번역본([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 <탐구당>, 1986)을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내면서 고종희 미술학박사의 해설을 함께 엮었는데, 그는 <해설>에서 "바사리는 자연의 충실한 '모방'과 그것의 '초월'이라는 두 딜레마의 관계를 처음으로 지적하면서 '주관성'이 '객관성'에 우선한다는 이론을 남겼다. 이것이 바로 '매너리즘' 이론의 핵심이자 미켈란젤로 미학의 핵심이기도 하다"([르네상스 미술가평전], <한길사>, 2018)라고 쓰며, '마니에라'의 이 모순된 중층적 의미를 이해하면서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을 읽을 것을 권한다.
즉, 예술 또는 미술은 '자연의 충실한 모방'을 임무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의 '객관성' 보다는 예술가 또는 미술가의 '주관성'의 우위를 통한 자연의 '초월'을 목표로 한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그렇게 미술사에서는,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말처럼 "미술은 없고 혁신적 미술가만 존재"([서양미술사], <서론>, 1950)하는 것이며,
게오르그 루카치의 사실주의 예술관처럼 '예술은 현실의 단순한 모방이 아닌 현실의 특수한 반영'이 된다.
영미권의 현대 사실주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 1937~)는 18~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장 오귀스트 앵그르(1780~1867)의 명화들을 보면서 그 '사실주의'적 기법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하여 2001년부터는 화가로서 작품활동을 잠시 멈추고 16세기 화가들의 '사실주의'적 작풍을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그 명화들의 '비밀'을 파헤친다.
우선, 그는 앵그르는 물론 그 이전 화가인 남유럽 이탈리아의 카라바조와 북유럽 플랑드르의 페르메이르(베르메르) 등의 '사실주의' 그림이 카메라 기술의 전신인 '광학' 기법을 사용한 것이라는 전제로 '광학' 이전과 이후의 초상화들을 하나의 '장벽'으로 담았다. 그의 실험적 연구서와 같은 [명화의 비밀]은 그가 만든 초상화의 [대장벽](2000)으로부터 시작한다.
"나의 [대장벽]은 예술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점점 사실성이 향상되어온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많은 그림들을 놓고 볼 때 분명한 것은 그 과정이 점진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광학'은 갑자기 도입되어 금세 정착되고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내가 경험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화가들이 사용하는 방법(재료, 도구, 기법, 통찰력)은 그들이 제작하는 작품의 성격에 중대하고 직접적이며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내가 보기에 그 급작스런 변화는 새로운 관찰방식이라기보다 '기술적 혁신'이며, 그것이 점진적인 그림 기술의 발달로 이어졌다고 생각된다. 15세기 초에 이루어진 그러한 혁신 중의 하나가 바로 분석적 '선형 원근법'의 발명이다... '광학'의 기술과 지식은 그보다 훨씬 이후에 탄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 [명화의 비밀], <시각적 증거>, 데이비드 호크니, 2001.
조토는 그림에 '원근법'적 요소를 도입하여 중세 미술의 평면성을 혁신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마사초는 브루넬리스키의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선형 원근법'을 그림에 적용하였고, 브루넬리스키는 '선형 원근법'의 혁신을 주도한 르네상스 예술가(건축가)가 되었다. 르네상스 미술 혁신의 핵심은 '원근법'이었다. 중세 미술의 평면성은 근대 르네상스 '선형 원근법'을 통해 입체적 사실성을 획득했다.
그런데 16세기 카라바조 풍의 그림은 그 이전 그림에 비해 확연한 '사실주의'적 재현을 보여주고 있는데, 데이비드 호크니가 발견한 [명화의 비밀]이란 바로, '광학(光學)'이었다.
"... 카라바조가 1596년에 그린 과일(앞쪽)의 사실성과 세잔이 1877~78년에 그린 사과(아래)의 '새로운 어색함'을 비교해 보라. 이 부분을 좀 멀리 떼어놓고 보라. 책에서 멀어질수록 카라바조의 사과는 점점 알아보기 어려워진다. 반면에 묘하게도 세잔의 사과는 점점 더 확고해지고 선명해진다. 카라바조의 이미지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세잔의 이미지는 감상자에게서 나오는 것, 즉 감상자의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한 눈의 렌즈로 보는 시야와 두 눈을 가진 인간의 시야의 차이다."
- [명화의 비밀], <시각적 증거>, 데이비드 호크니, 2001.
카메라 루시다는 막대기에 프리즘을 얹어 앞의 상을 아래 종이에 투영하는 방식의 광학 기술이라고 하는데 미술가의 눈으로만 묘사하는 이른바 '눈 굴리기' 방식과 달리 움직이지 않는 상을 그대로 모사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한다.
호크니는 [명화의 비밀]에서 '광학' 이전의 조토, 치마부에, 프라 안젤리코 등의 15~16세기 이전 르네상스 화가들의 그림 그리기 방식을 전통적 '눈 굴리기'라고 명명한다. 즉, 모델을 보고 지면을 보는 화가의 '눈 굴리기'로는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카메라 루시다는 18세기 이전에도 존재했었을 수도 있고 16세기 북유럽 플랑드르 화가인 얀 반 에이크나 17세기 요하네스 얀 페르메이르(베르메르) 등은 이미 이 카메라 루시다 또는 카메라 옵스큐라 같은 '광학' 기술을 이용하여 사실을 사진처럼 '재현'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페르메이르가 카메라 옵스큐라로 추정되는 모종의 카메라 기술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렸다는 기존 의심을 호크니는 19세기 앵그르와 그 이전 16세기 카라바조, 17세기 페르메이르 등의 그림 등으로 미술가 영역을 확장하면서 화가 본인의 실험을 통해 파헤치고 있다.
카메라가 대중화된 19세기 초중반 이전부터 카메라 옵스큐라(오브스쿠라)라는 암실 상자 속 렌즈를 통해 상을 거꾸로 맺히게 하는 또 다른 '광학' 기술은 미술의 '사실주의'적 '재현'을 한층 더 가능토록 했다. 카메라처럼 맺혀지는 상 위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대중화된 1839년 이후 그림은 더 이상 사진을 따라갈 수 없었다. 미술은 시간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사진만큼 현실을 '재현'할 수 없었다. 2차원적 평면 그림에서 튀어나오는 듯한 '트롱프뢰유'의 신기함도 있지만 그림이 사진과 경쟁하는 것은 예술적으로 별 의미는 없어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한 눈의 렌즈를 통해 보는 것과 같은 카라바조 풍의 그림은 언뜻 사진과도 같이 '사실주의'적이지만, 멀리서 보면 세잔의 입체적 묘사가 더욱 '사실주의'적일 수 있다.
미술의 역사에서 '재현'의 '사실성'은 현실과 그림의 '객관성'에서 나오는 것 보다는, 두 눈을 통해 입체적으로 현실을 보는 감상자의 '주관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인간의 '주관성'이 자연의 '객관성'에 우선한다는 조르조 바사리의 예술관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문제는,
사실의 '재현'이 된다.
"... 렌즈는 권력과 관계가 있을까? 1839년까지 카메라를 비밀로 숨겨왔고 교회가 사회적 힘(그림을 통제하는)을 갖고 있었다면, 그 힘은 '카메라의 대중화'와 함께 쇠퇴했고, 렌즈 이후의 사회적 힘은 미디어로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수백만 개의 카메라가 추가로 만들어졌으며(심지어 휴대전화에도), 이미지의 유통방법이 변하고 있다. 거울과 렌즈는 연속체다. 흥미로운 시간은 과거에도 역시 존재했다."
- [명화의 비밀], <시각적 증거>, 데이비드 호크니, 2001.
그림과 조각 같은 미술과 이들이 장식하는 건축을 포괄하는 예술 전체를 '신의 의지' 실현에 이용하려는 교회의 힘이 쇠퇴하기 시작한 근대 르네상스 말기에는 '광학'을 비롯한 과학 기술의 힘으로 더 많은 미술가가 등장할 수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감상자도 양산되었을 것이다. 칼로 무장한 기사들이 총으로 무장한 일반 민중들에게 패배한 전쟁의 역사와도 같다. 과학기술 발전은 모든 역사에서 다수의 '평등'한 점유를 향한 '민주주의'적 요소를 동반한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명화의 비밀]의 원제는 [Secret Knowledge :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다.
직역하면, [숨겨진 진실 : 거장들의 잊혀진 기법을 다시 찾아서] 정도 되겠다. 즉, 카라바조를 추종한 '카라바지스티'들의 기법은 '광학'의 증거로서 빛과 어둠의 극단적 대조인 '키아로스쿠로(명암대비법)'를 그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당시 '광학'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켜두었던 강한 조명의 증거라고 한다.
루벤스 조차도 배우고자 이탈리아를 찾았다던 그 '기술'은 아직까지도 전하는 기록도 없이 비밀에 싸여 있다고 한다. 호크니가 화가로서 카메라 루시다, 카메라 옵스큐라 등의 '광학' 기술을 통해 실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하지 않는 기술을 화가 본인의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책 [명화의 비밀](2001~2006)은 이렇게 <시각적 증거>와 <문헌적 증거>의 방식으로 잊혀진 명화의 '사실주의'적 '재현'의 기법 속 '비밀'을 추적하는 생생한 연구서다.
'광학' 기술과의 결합으로 혁신을 이끌었던 미술가들의 '재현'은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기술의 대중화와 '민주주의'적 미술관을 통해 다시금 혁신된다.
그래서 예술의 문제는 여전하다.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를 지향한다는 예술에서 '재현'이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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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화의 비밀(Secret Knowledge :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2091~2006), David Hockney, 남경태 옮김, <한길사>, 2019.
2.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1550~1568), Giorgio Vasari, 이근배 옮김, 고종희 해설, <한길사>, 2018.
3. [오직, 그림 - 세계 미술사의 획기적인 그림 51], 박영택, <마음산책>,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