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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 세상에서 가장 쉬운 미술 기초 체력 수업
노아 차니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3월
평점 :
'예술'이라 자신있게 말하자
-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노아 차니, 2022.
"엉터리 같은 작품을 보면 엉터리라고 자신있게 말하자."
-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11. 미술의 미래>, 노아 차니, 2022.
러시아 미술가가 반정부 '예술' 행위라 부르며 붉은 광장에서 자신의 음낭을 자갈바닥에 못박든, 이탈리아 예술가가 자신의 배설물을 90개의 깡통에 담고 '예술'이라 우기든, 엉터리는 엉터리라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대중들 앞에 책을 내민 미술사학자가 있다.
슬로베니아에 사는 미국인 미술사학자 노아 차니(Noah Charney : 1979~)다.
미술사학자이면서 작가로 활동한다는 그의 현재 주 전공분야는 '미술 범죄(art crime)'인데, 유럽의 미술관에서 사라지는 예술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미술사 서술 또는 소설 등으로 풀어낸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라는 책에서 소개하는 역사상 가장 많이 도난의 수난을 겪었던 작품은 15세기 얀 반 에이크의 <신비한 어린 양에 대한 경배>를 담은 '헨트 제단화'다. 아마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 리자>가 그 다음일 게다.
노아 차니의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는 전술한 대로 단 시간에 일반 대중을 '예술', 특히 '미술'의 '전문가'로 만들어주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내내 유지하고 있는 책이다. 원제는 'The 12-Hour Art Expert'로 '한나절만에 미술 전문가' 또는 '한나절이면 나도 미술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정도로 직역이 가능할텐데, 실제로 저자는 책의 '서문'인 <들어가며 - 미술은 열려있다>에서 성인 평균의 독서속도로 4시간 반이면 읽을 수 있는 1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일반인도 미술 전문가 못지 않게 될 수 있다며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다 읽는 데 '반나절', 생각을 정리하는데 '한나절', 그래서 '12시간'만에 일반 독자가 '미술(예술) 전문가(art expert)'가 된다.
말도 안되는 이 자부심을 완화하고자 국역은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라는 다소 겸손한 번역본을 낸 듯 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아 차니가 말한 '예술 전문가(art expert)'는 미술사학자가 아니라 '엉터리'를 주저없이 '엉터리'라 말할 정도로 예술 작품을 주눅들지 않고 보는 사람이 될 수 있게 저자가 도와주겠다는 의미였다.
"... (조르조) 바사리가 미술에 관한 글을 최초로 쓴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미술과 미술관에 대한 현대인의 생각 대부분이 그의 글과 관련 있다. 1550년과 1568년에 출간한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한길사>,2018)은 최초의 미술사 책으로 평가된다. 이 책은 미술가에 관한 짧은 전기들로 구성되었고, 거의 처음으로 '미술가' 개인에 초점을 맞췄다... 미술을 처음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미술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을 처음 만들어냈다는 의미에서 조르조 바사리가 '미술사'를 '발명'했다고 말할 수 있다."
-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1. 이것도 예술일까?>, 노아 차니, 2022.
동양의 역사에서 사마천 [사기](기원전 1세기)로부터 시작된 기전체 역사서와 서양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기원후 1~2세기)의 백미는 '열전', 즉 각 인물들의 '전기'다.
서양미술사에도 그런 고전이 있는데 바로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회화, 조각, 건축가로 알려진 예술가 조르조 바사리(Giorgo Vasari : 1511~1574)의 미술가 '열전'이다.
바사리는 조토 디 본도네의 스승인 13세기 미술가 조반니 치마부에로부터 16세기 당대 플랑드르 여러 미술가들까지 여러 미술가의 '전기'를 남겼다. 그의 책은 국역으로는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한길사>,2018)으로 번역되어 있다. 한참 오랜 후의 20세기 미술사학자 곰브리치가 [서양미술사](1950)에서 따랐듯 바사리는 이미 16세기에 조토 디 본도네의 '혁명성'을 최초로 주장했고(<1권>), 그랬기에 '열전'의 시작을 조토의 스승 치마부에로부터 시작했다(<1권>). 외모든 미술 실력이든 '신의 행위'와 같다는 칭송을 담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같은책 <3권>에서 소개하고 있지만, 결국 바사리의 결론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5권>)다.
미켈란젤로는 같은책 <5권>의 1/3 정도를 차지하는데, 르네상스 예술은 미켈란젤로에서 완성되었고, 그의 방식 또는 '양식'(매너/마니에르:manner)을 넘어서지 못한 '매너리즘'을 규정하는 1차적 문헌자료가 바로 조르조 바사리의 '열전'이다.
"... 조각과 회화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지력의 모든 부분을 육성하는 생명이라고 할 '디세뇨(disegno : 소묘 또는 의장, 조형력)'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늘을 눈부신 빛으로 장식하고서 맑은 대기를 뚫고 견고한 대지에 지력을 가지고 내려와 마지막에 인간의 형상을 창조했을 때, 다른 아름다운 창조물들과 함께 조각과 회화에서 최초로 매혹할 만한 형상을 발견했을 때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 1], <전기에 대한 서설>, 조르조 바사리, 16세기.
노아 차니는 미술가의 자질로서 '인벤치오네(invention)'와 '디세뇨(design)'를 그의 책 <2장>에서 소개하는데 이러한 개념들 또한 16세기 바사리의 저작들로 인해 형성된 미술사 개념들이다. 물론 바사리가 '미술가', '인벤치오네', '디세뇨' 등의 예술 개념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16세기에 이른 '친퀘첸토(500년대)' 르네상스는 이미 예술가들에게 지금의 헐리우드 제작자 못지 않은 명성을 안긴 시대였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은 이미 예술가 본인의 이름을 내건 당대의 유명인이었다.
바사리는 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여 남긴 사람인 것이다.
'소묘', '의장(意匠:design)', '조형력'으로 번역되는 '디세뇨(disegno)'는 노아 차니에 의하면, 모사하는 기술적 능력이다. 이에 반해 '인벤치오네'는 '아이디어'또는 '개념' 등으로, 르네상스 미술가 공방을 예로 들면 미켈란젤로 같은 대 화가 또는 공방 사장님은 주로 큰 구상을 짜는 '인벤치오네'를 맡고, 공방의 도제들은 '디세뇨'를 맡는 것으로 보면 된다. 물론 공방 사장님은 '인벤치오네'와 '디세뇨' 둘 다 잘 해야 하지만 부자들로부터 의뢰받은 대작을 유명 미술가 혼자 다 생산하기란 불가능했기에 유명 미술가의 공방을 통한 매뉴팩처 분업이 당시 미술에서는 불가피했다. 동료들의 실력이 미덥지 않아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를 미켈란젤로 혼자 문 잠그고 다 그렸다는 전기는 어느 정도는 조르조 바사리의 과장일 수도 있으며, 미술가 홀로 작은 캔버스를 마주한 고독한 장면은 이후 19세기 인상주의 정도 가야 전형이 되는 장면이다.
르네상스 미술가의 작업장인 '공방'은 지금의 헐리우드 종합예술 '공장'과 같았다.
"추상미술은 우리 두뇌가 진화하면서 익숙하게 재구성해 온 이미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이미지를 해석하라고 우리 시각 체계를 부추긴다."
-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8. 프로이트는 뭐라고 말할까?>, 노아 차니, 2022.
노아 차니는 미술의 몇 가지 기본 개념만을 익힌 일반 대중이 주눅들지 말고 '예술'을 바라보라 권한다. 물론 '알고 봐야 보인다'는 강령에 맞게 시작은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서 규정한 '예술'의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요건이다.
1) 훌륭한가 : 기교있게 기술적으로 잘 만들어졌는가,
2) 아름다운가 : 미적 뿐만 아니라 도덕적, 지적으로도 감흥을 주는가,
3) 흥미로운가 : 재미가 있어 계속 끌리는가,
위 3요건을 갖춘 것이 '예술'인 바, 그 다음은 현실의 '모방'으로서 역시 사실의 '재현' 문제가 온다.
이미 사실의 '재현'은 카메라 옵스큐라는 물론 사진 기술의 발전을 시작으로 현대 과학기술의 몫이 된지 오래되었다.
본격적인 사진 기술은 19세기가 되어서야 눈앞의 현실을 재현해내었지만 프리즘을 이용한 카메라 루시다, 거울처럼 상을 거꾸로 맺히게 하는 카메라 옵스큐라 등의 광학 기술은 이미 사진 기술 보다 오래 전부터 발전되어 왔다.
현존하는 화가 중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린다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 1937~)는 15세기 화가 얀 반 에이크는 물론 16세기의 브론치노와 카라바조, 17세기 페르메이르, 18세기 앵그르 등이 눈에 보이는 사물을 사진 이상으로 '재현'해낸 사실로부터 새삼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호크니는 화가인 본인이 직접 실험을 하면서 앵그르 같은 선배 화가들과 비슷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고, 르네상스 이후의 화가들이 광학 기술을 이용하여 그려낸, 공식적으로 전해지지 못한 채 지금은 잊혀진 기술적 사실을 과학적, 문헌적으로 증명하는 글쓰기를 위해 미술작품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고 한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명화의 비밀](2001~)이라는 책에서 증명하고자 하는 대로, 이미 미술에서 사실의 '재현'은 오래 전부터 과학의 힘과 함께해 왔던 것이며, 인간의 기교만으로는 눈앞 사물의 오롯한 '재현'이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미술의 임무는 눈에 보이는 대로의 '재현'일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원래부터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미술은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재현'해야 하는 본연의 소임을 끊임없이 완수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그 역사에 복무할 것이다.
이 길에서 '미술가'의 '혁신성'은 필수 요소로서 미술사를 전진시켰지만, '새로운 시도'라고 해서 다 '예술'은 아니다. '예술'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반 대중도 미술에 대해 조금만 '알고 보면' 주눅들지 않고 '예술'을 구분해낼 수 있다.
'내가 볼 때 아름다운 것'이 결국 '예술'이다.
이제,
자신있게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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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The 12-Hour Art Expert)](2022), Noah Charney, 이선주 옮김, <현대지성>, 2025.
2.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1550~1568), Giorgio Vasari, 이근배 옮김, <한길사>, 2018.
3. [명화의 비밀(Secret Knowledge :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2001~2006), David Hockney, 남경태 옮김, <한길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