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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역사 - 지식을 향한 욕망의 문화사 ㅣ Philos 시리즈 36
앤드루 페티그리.아르트휘르 데르베뒤언 지음, 배동근.장은수 옮김, 장은수 해제 / arte(아르테) / 2025년 3월
평점 :
책과 도서관의 '반전(irony)'
- [도서관의 역사], 앤드류 페테그리 외, 2021.
1.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 둘째딸과 토요일마다 마을 도서관에 온다.
여름방학에도 학교 갈 시간 즈음에 깨워 마치 학교 가듯이 데리고 오려고 했으나 매번 쉽지는 않다. 토요일 오전의 동네 도서관에서 며칠 전 빌린 책을 반납하기 전에 서평을 쓰고 또 다른 책을 빌리는 내게는 이 더운 여름에 도서관만한 피서지가 없다. 그러나 토요일 아침마다 미적거리는 나의 둘째딸은 이 '피서지'로 영 가기 싫은 눈치다.
하긴, 도서관을 좋아라 하는 내게도 한때 해야 하는 '공부'를 위해 찾았던 도서관은 답답하기 그지없던 장소였으니, 열아홉 인생 최초로 갑갑한 일상을 버텨야 하는 고3 수험생에게 도서관이 반가울리 만무할게다.
그러던 중 근대적 인간의 '자유의지'를 다룬 괴테의 [파우스트]를 반납하고는 잠시,
'도서관'이란 무엇인가, 생각하던 나의 눈에 들어온 책이 마침,
[도서관의 역사]였다.
2.
"지식축적의 욕망은 지식접근권을 통제하려는 욕망 또는 독자 '계몽'을 위해 지식을 사용하려는 욕망과 경합했다."
- [도서관의 역사], <프롤로그>, 앤드류 페테그리 외, 2021.
커뮤니케이션의 역사가 주요 연구대상인 영국의 역사학자 앤드류 페테그리(Andrew Pettegree)가 설립한 '국제약식서명목록(USTC;Universal Short Title Catalogue)'은 17세기 이전 유럽의 인쇄출판물을 연구하는 단체인데, 창립자 앤드류 페테그리와 USTC의 부소장 아르트휘르 데르베뒤언(Arthur der Weduwen)이 2021년에 출간한 [도서관의 역사(The Library)]의 노란색 표지가 그 때 나의 눈에 띄었던 거다.
[도서관의 역사 - 지식을 향한 욕망의 문화사](2025)로 번역된 이 책의 원제는 [The Library - A Fragile History](2021)다. 직역하면, '도서관의 세밀한 역사' 또는 '도서관 정밀사' 정도 되겠다. 그만큼 6백 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의 이 책에는 인류의 역사에서 '도서관'을 발전시켜 온 수많은 인물들의 노고가 가득 소개되고 있다. 19세기 대서양 양안에서 영미 공공 도서관 문화가 만개할 수 있게 한 그 유명한 카네기 뿐만 아니라 근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로부터 이후의 유명한 도서관 사서 관료들의 활약은 물론, 각종 대학도서관을 키워낸 인물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아르헨티나의 국립도서관장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의 [독서의 역사](1996)를 통해 '책'과 '읽기'의 역사를 충분히 일별했다고 생각하던 내게 '도서관의 역사'는 좀더 넓은 '책'과 '도서관'의 세상을 보여주었다.
[도서관의 역사]의 공동 번역자인 장은수 전 민음사 대표는 국역판 <해제>에서, 이 책에 가장 빈번히 나오는 단어가 '반전(irony)'이라고 쓰고 있다.
즉, 도서관은 인류 지식을 독점하려는 당대 권력의지의 소산으로서 지식통제와 지식계몽의 모순된 목표를 향했고, 권력이동 과정에서 철저히 파괴되곤 했지만 오히려 기존에 탄압당하던 공간을 통해 은신하기도 했다는, 온갖 '반전(irony)'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모든 역사의 동력이 그렇듯,
'도서관의 역사' 또한 '모순'과 '반전'이 그 동력이다.
"... 그러나 전쟁의 승패가 바뀌면 불가피하게 그 도서관은 정당한 제거대상이 됐다. 승리자들은 도서관을 약탈하고 파괴하면서 패배집단의 정당성도 함께 무너뜨렸다. 약탈당한 책은 전리품으로 정복자의 고국에 있는 도서관으로 옮겨졌다.
이 모든 '반전(irony)'의 반전은 비록 난폭한 방식이었으나 '책'의 힘을 입증하는 일이기도 했다. 다툼의 주역 중에 누구도 '책'에 사람을 바꾸고 삶을 이끌며 의문을 해결하는 힘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책'들은 종종 성스러운 권력에 대항했다가 오히려 의심을 사서 의식적 수모와 함께 죽임을 당했던 선교사들과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 전쟁을 위한 무기는 다양하다. 어떤 무기는 무시무시한 모습만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그 은밀함이 무기가 된다. 17세기와 18세기에 '도서관'을 둘러싼 전쟁도 그랬다."
- [도서관의 역사], <3-9. 선교의 장>, 앤드류 페테그리 외, 2021.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고대 기원전 아시리아를 무너뜨린 바빌로니아는 아시리아 니네베 도서관의 모든 점토판을 파괴하면서 이전 권력의 미래를 빼앗고자 했다. 고대 로마는 초기 기독교의 양피지를 탄압했다. 중세 가톨릭은 '이단'의 책(코덱스)들을 역시 불태웠고, 그 후 '종교개혁' 시기와 숱한 전쟁, 특히 20세기 세계대전 총력전은 셀 수 없는 책들을 파괴하고 훼손시켰으며 약탈해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도서관의 역사]는 위와 같은 "전쟁이나 악의보다 방치가 더 무서운 적"(같은책, <1-1>)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로마의 박해에도 책은 수도원에서 안식처를 찾았고 종교전쟁 속에서도 책은 반대파의 서재 궤짝에서 잠을 잤다.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의 수하 알프레드 로젠베르크의 특수부대가 약탈한 수많은 책들 대신 소련을 비롯한 승전국들은 그 이상의 책들을 패전국 독일로부터 빼앗아 복수했다. 또한 인쇄기술 및 출판산업의 발달과 독자들로의 권력이동으로 인해 전쟁과 재난으로 파괴된 책보다 훨씬 더 많은 책들이 생산되고 유통 및 공유되기도 했다. 반면, 오래된 고서와 기록은 '이단'이라는 이유로, 하찮다는 이유로,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 등으로 인해 방치되면서 세월의 궤짝 속에 묻힌 채 사라지거나 훼손된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이다.
17세기 영국 옥스포드 대학도서관의 기반을 닦은 토머스 보들리는 라틴어나 고어가 아닌 셰익스피어 같은 당대 영어책은 '고상한' 지식의 보고가 아닌 '하찮은' 책이라서 도서관에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미국의 어느 사업가는 상상 이상의 거금을 들여 셰익스피어 희귀본만을 수집하여 보존해 왔단다. 이후 프랑스의 독서클럽이나 독일의 독서협회 또한 어느 정도 고지식한 틀을 고집했고 18세기 미국의 회원제 도서관이나 대여 도서관도 처음은 그랬으나 점차로 로맨스 소설과 여성 독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즉, '도서관의 역사' 또한 독자층의 저변이 확대되는 '책'의 민주화 과정과 궤를 함께 한다.
지금은 없어지고 다른 형태로 존속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근세에 콜럼버스의 아들 페르난도 콜론이 한 차례 재건하려고 했는데, 한 때 그 도서관이 전성기를 맞은 이유도 '팸플릿' 같이 '하찮은' 인쇄물 취급은 받았지만 대중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읽을거리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재상 리슐리외 추기경의 사서 가브리엘 노데는 [도서관 설립을 위한 의견서]에서 도서관은 전통적 학문의 모든 분과를 포함하는 한편 '하찮은' 인쇄물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데는 이탈리아와 스웨덴에서도 고급 사서로 일했는데 밀린 급여를 귀중한 장서들로 대신 받아 챙기고는 고국에 들여와 리슐리외의 후계자 쥘 마쟈랭의 공공도서관을 채우기도 했다.
17~18세기 대학도서관 같은 근대적 공공도서관의 발전 시기에도 귀족과 군주의 개인도서관은 권력의 사치와 향유를 위한 공간으로 남았지만 이곳에 모인 작가와 예술가들은 이 개인도서관을 활발한 사교의 장으로 만들면서 문화발전을 촉진하는 매개체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이후 도서관의 근대화 과정에서 전쟁이나 화재 같은 재난으로 인해 파괴된 공공도서관의 책들은 상류계층의 개인도서관으로부터 기부되거나 책에 관심없는 상속인들에 의해 쉽게 처분되면서 다시 채워지기도 했단다.
유럽 지배층의 사치품에서 공공재로, 미국 악덕자본가의 폼내기 기부에서 역시 공공재로 전환되는 이 '반전' 또한 '도서관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 '책'은 튼튼하고 복원력이 뛰어난 데다 사후서비스나 부품교체가 필요하지 않고, 집이나 사무실을 꾸미는 데 쓰이기도 하고, 공유하고 대여하고 소장할 수도 있는 '문화자본'을 제공한다.
...
'도서관'이 다양한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돌아다니고, '책'을 읽다가 내킬 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장소로 남을 수 있는 이유는 '책'의 '무작위성'과 사람들 취향과 호기심의 '무작위성'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다른 공공 공간과 구별하는 점도 이 '무작위성'이다. '도서관'은 사람들이 무얼 바라든지 간에, 그 바람을 북돋우는 모든 것을 마음껏 탐색할 수 있는 장소이다."
- [도서관의 역사], <에필로그>, 앤드류 페테그리 외, 2021.
그러나 사실, 이 '도서관의 역사'는 또 하나의 '반전'과 '배반'(같은책, <5-15>)을 보여주는데, 항상 그 '고상한'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에 세워진 공공도서관은 식민통치의 정당성와 식민지인들에 대한 효율적 착취가 그 설립의 주요 목표였지만, 공공도서관을 통해 지식을 깨우친 사람들은 어느덧 식민지 해방투쟁의 전사가 되었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 독일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 주도로 세워진 노동자 도서관 네트워크에서는 정치사회적 도서나 노동조합 관련 책들은 거의 대출되지 않았고 문학이나 희곡 작품이 수천 배나 더 많이 대출되었다. 대신 노동시간 단축으로 여가를 보내기 위한 노동계급의 활발한 사교공간으로서 유감없는 제 역할을 했다.
그리하여 18~19세기에 '하찮은 금서' 취급을 받던 소설이 20세기의 이데올로기 시대를 맞아 그 금서 자리를 공산주의와 포르노 서적들에게 물려주고는 비로소 공공도서관의 주역급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제 도서관은 예전의 '하찮은' 것들 없이는 생존할 수 없게 되었다.
[도서관의 역사]의 저자들은 말한다.
'책'과 '도서관'은 없어질 것 같았으면 아주 오래전에 이미 없어졌을 거라고.
아직까지 유효한 '문화자본'으로서 '책'이 있고,
그 책들을 공유하는 독자대중과 시대를 함께 하는 한,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도서관' 또한 그런 '책'의 끊임없는 '반전(irony)' 속에서 다양한 독자대중 취향의 '무작위성'과 만나면서 오래도록 진화하고 남을 것이라고 말이다.
3.
이제 알 것 같다.
고3 딸이야 답답하건 말건 내가 더 도서관을 찾는 이유를.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우연히 책들과 만나게 되는 그 '무작위성'(같은책, <에필로그>)이 바로 그 이유였다.
다음에 읽고 싶은 책이 있든 없든,
무시로 드나드는 생각의 꼬리를 따라 만나게 되는 뜻하지 않은 세상,
도서관은 적어도 내게는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었던 거다.
게다가, 근대의 공공도서관은 보일러를 놓지 않아 겨울난방이 안되었다고 하는데, 현대의 마을도서관은 겨울난방은 물론 한여름 냉방까지 매우 훌륭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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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서관의 역사(The Library - A Fragile History)](2021), Andrew Pettegree/Arthur der Weduwen, 배동근/장은수 옮김, <Arte>, 2025.
2. [독서의 역사(A History of Reading)](1996), Alberto Manguel, 정명진 옮김, <세종>,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