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2 펭귄클래식 13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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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존재'로 향한 근대적 '자유의지'의 여정
- [파우스트], 괴테, 1790~1831.


"...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는 서기 1~3세기경에 로마제국의 많은 지역에서 연금술사들, 점성술사들, 주술사들의 수호신으로 숭배되었지만, 훗날 기독교 작가들에게는 '악마'로 인식되었고, 16~17세기에 악마론을 다룬 문헌들에서는 '오피엘'과 '메피스토-오피엘'로 호칭되는 악마로 묘사된다."
- [데모니쿠스], <3-1>, 토머스 데이비슨 외, 19세기.

19세기 미국 철학자 토머스 데이비슨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근원을 추적하던 중,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신의 전령사이자 마술사와 사기꾼, 도박꾼 등의 상징인 '헤르메스'로부터 시작하여 기독교 세계관에서 '악마' 또는 '마귀'의 이름 중 하나인 '오피엘'의 어원을 파헤치면서 '메피스토-오피엘' 혹은 '메기스토-오피엘'이라는 존재로까지 소개하고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 1749~1832) 일생의 역작인 [파우스트(Faust)](1790~1831)는 괴테가 41세에 <1부>를 내놓았다지만, 실은 그의 나이 17세부터 구상했던 이야기로서 괴테가 70년 동안 집필한 작품으로 전해진다.

17세의 괴테가 보았던 연극 [파우스트 박사]의 주인공 '요한 게오르크 파우스트'는 16세기 독일 라이프치히와 하르츠 지방의 연금술사였다고 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독일 시민들은 중세 말기 흑사병을 '고쳐준' 의사이자 마술사인 파우스트의 아버지를 높이 칭송하고 있다. 이미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는 토로한다. 사실 아버지와 본인이 했던 일은 흑사병을 고치기는 커녕 사람들을 기망했던 사기였을 뿐이라고. 물론 당시 의학 및 과학의 지식이나 기술로는 '신의 징벌'로 여겨진 흑사병에 대처할 수 없었지만, 이처럼 파우스트는 인간 지식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지상적인 것을 높이 평가하는 법을 익히고,
우리 모두 계시를 갈망하면 된다.
이런 계시야 그 어디에서보다
신 앞에서 가장 멋지게 빛난다.
어서 원전을 펼쳐놓고
나의 온 정성을 담아
이 성스러운 원문([성경])을
사랑하는 독일어로 옮겨보고 싶다.

(책을 펼치고 펜을 손에 든다)

이런 말이 적혀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처음부터 막히는군! 누가 좀 도와주었으면!
'말씀'이 그리 높은 뜻을 지닐 수는 없다,
번역을 달리 해야 한다.
성령의 높은 감화를 받은 내가 아닌가.
이렇게 적혀있다. '태초에 뜻이 있었다.'
이 첫 행을 조심해야 한다.
펜을 너무 서두르면 안된다.
'뜻'이 모든 행동과 창조의 근원인가?
이렇게 쓰자. '태초에 힘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쓰는 사이
거기서 멈추지 말라. 경고의 소리 들린다.
정신이 돕는구나! 묘안이 떠오른다.
나는 당당히 적는다.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
- [파우스트], <비극 1부. 서재(1)>, 괴테, 1790.


부친의 명성과 당대의 모든 학문을 섭렵한 파우스트 박사는 마르틴 루터처럼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려고 하다가 결국 '보편적 존재'를 꿈꾸는 인간의 지식적 한계를 체감하고는 대학교수직에도 회의를 느끼면서 모종의 '행동'을 하고자 하는데, 바로 '자살'이었다.

[성경]의 첫 구절,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를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로 재해석한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난 이후 학문을 떠나 자살'은 미뤄두고는 그 '악마'와 함께 일련의 '행동'에 나선다.

이것이 '파우스트'로 대표되는 근대 시민적 '자유의지' 여행의 시작이다.


"결국 그러다 보니 우리는 다시 정신력의 한계에 이르렀네요.
이 지점에 이르면 당신들 인간들은 늘 이성을 잃어버려요.
감당할 능력도 안되면서 우리와 손을 잡는거요?
날고는 싶은데 현기증 때문에 겁이 난다는 격이네요.
대체 우리가 당신을 끌어들인거요, 아니면 당신이 우리를 끌어들인거요?
...
그녀를 구해내라고요? 아니 그 여자애(그레트헨/마르가르테)를 파멸에 빠뜨린 게 대체 누구요? 나요? 아니면 당신이오?"
- [파우스트], <비극 1부. 우중충한 날, 들판>, 괴테, 1790.


'자살'이라는, 기독교적 신에 반(反)하는 '행동'을 시도하려던 파우스트 박사는 최초 개의 형상으로 자신을 따라붙던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대화를 시작한다. 신학은 물론 고대의 철학 등 인류의 지적 유산을 모두 섭렵했다고 생각하는 파우스트는 시종일관 메피스토펠레스를 존대하지도, 마냥 끌려다니지만도  않는다. 마치 자신의 종처럼 부리면서 '자살'이라는 당시 세계관에 대한 소극적 반항 '행동' 대신,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악마를 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790년에 일단락된 괴테 [파우스트] <비극 1부>에서는 메피스토펠레스와 '피의 계약'을 맺은 파우스트가 대학의 서재를 떠나 거리로 나와 젊은 소녀를 후리고 청년들과 술집에서 난잡토론을 하는 일련의 사회적 교류를 통해 인간 개인의 '자유의지'를 실험하는 적극적인 '행동'의 무대로 이어진다.

비록 악마에게 영혼을 판 계약이었지만, 파우스트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결단을 통해 악마를 부리고 그 힘으로 사회적 '행동'을 결행했다. 마지막에 파우스트가 꼬셨던 소녀 마르가르테(또는 그레트헨)의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소녀 또한 감옥에 갇히지만 파우스트는 역시 악마의 힘을 다시 빌려 소녀를 탈출시키고자 한다.

후회스러워 하는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저주하지만, 악마의 대꾸는 의미심장하다.

"대체 우리가 당신을 끌어들인거요,
아니면 당신이 우리를 끌어들인거요?"

근대적 '자유의지'의 실험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 때 썼던
그 펜도 그대로 여기에 있다.
그래! 깃펜 안쪽에는 그의 핏줄에서
내가 옭아냈던 피 한 방울도 들어있다."
- [파우스트], <비극 2부. 2막>, 괴테, 1831.


1815년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 임명된 괴테가 이듬해부터 구상을 다시 시작한 [파우스트] <비극 2부>는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 현실을 떠난 파우스트가 온갖 고대 인물들과 다니는 연극무대와도 같다. 여기서부터는 트로이 전쟁 후 다시 스파르타로 돌아온 헬레네도 등장하고, <비극 1부>에서 파우스트로 변장한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현혹된 조교 바그너가 대학을 떠난 파우스트의 공백을 채우면서 만들어낸 '호문쿨루스'라는 실험적이고 이상적 인간형태도 나온다. 그리스 신화의 마녀 세자매 '포르키아스'는 물론 각종 신화적 보조출연자로 변신한 메피스토펠레스는 <비극 1부>에서 파우스트를 타락시킨 것처럼 <비극 2부>에서도 인류역사의 모든 추상적 현상들을 동원하여 그를 파멸시키고자 한다. 

그들의 외도 중에도 파우스트가 떠난 대학의 서재에는 여전히 악마에게 영혼를 판 파우스트의 '피'가 묻은 펜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파우스트)는 자신에게 표면적이고 형식적 허울을 강요하는 모든 학문, 모든 인간관계, 모든 제도, 모든 보편적 인간의 관심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에 인류의 모든 경험을 축적하려고 전심전력한다. 그는 애초에 충동적으로 개시한 이런 노력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이런 노력은 '보편적 존재'가 되려고 염원하는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열망의 발로이다. 왜냐하면 그는 오직 '보편적 존재'만이 언제나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데모니쿠스], <3-4>, 토머스 데이비슨, 19세기.


그러나 결론은 역시 '악마'가 아닌 '인간'의 몫이었다.

애초에 파우스트가 결행한 '행동'은 중세에서 근세를 거쳐 근대적 인간으로서 깨어나려는 '개인'의 '자유의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파우스트]의 세계관 또한 당대 유럽의 기독교적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지막에 악마와의 계약을 무력회시키면서 파우스트가 안긴 곳 또한 신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인간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신과 종교의 테두리에서 찾는 '보편성'이 아니라, 때로는 '악마'와도 계약할 수 있는 근대적 시민 '개인'의 '자유의지'에 주목하며 개별과 추상 모두를 여행하면서 성장하는 인간의 모습을 괴테의 [파우스트]는 전형화하고 있다.
'자유의지'의 화신, '파우스트(Faust)' 이름의 의미는 '주먹(fist)'이기도 하단다.

19세기 괴테의 [파우스트]는 과연, '보편적 존재'로 향한 인간 개인의 '자유의지'의 긴 여정을 담은 서사시이기도 하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기원을 추적하려던 19세기 미국 철학자 토머스 데이비슨에 의하면, 괴테의 [파우스트]는 "개인들 각자를 '보편적' 인간으로 간주하는 근대적 '개인주의'"를 보여주는 인류의 '고전'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호메로스와 존 밀턴 등의 서사시가 우리말로 온전히 번역되기 어려운 것처럼, 괴테의 '비극'적 '희곡' [파우스트] 또한 번역본으로는 원문의 감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존 밀턴의 [실락원]조차 원문으로 읽을 마음이 없는 '영문학' 전공자인 내가 괴테의 독일어 원문을 읽어볼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원문은 아니지만 우리말로라도 인류의 근대적 '자유의지'를 다른 고전은 비록 그것이 서사시라 해도 계속 읽어볼까 한다.

그렇게 어찌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시(詩)는 역사보다 더 엄중하고 철학적"일 수 있으니 말이다.

***

1. [파우스트(Faust)](1790~1831), Johann Wolfgang von Goethe, 김재혁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12.
2. [데모니쿠스(Demonicus)](19세기), Thomas Davison 외, 김성균 옮김, <우물이있는집>, 2025.
3. [실락원(失樂園;Paradise Lost)](1667), John Milton, 김흥숙 옮김, <서해문집>,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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