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 '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하는 죄'의 기원
필립 샌즈 지음, 정철승.황문주 옮김 / 더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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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와 '반(反)인도죄'
- [East West Street], Philippe Sands, 2016.


제목을 왜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로 지었을까, 
처음에는 궁금했다.

인간사에서 '정의(正義)'의 범위는 넓다. 
어쩌면 편향적일 수도 있는데, 보편적이어야 할 '정의'의 본래 속성과는 형용모순일 수 있는 이런 상황은, 
멀리 볼 것 없이 '계급투쟁'의 인류역사에서는 가능한 현실이다.
각자의 계급적 관점에서는 살기 위한 생존권적 선택이 바로 각자의 '정의'가 된다.
자본가에게는 돈이 '정의'인 반면,
노동자에게는 단결이 '정의'다.

하다못해 미국의 정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2010)의 정의조차도 미국식 공화주의적 정의였지 인류 보편의 정의가 아니었다.

영국의 국제인권법 학자 필립 샌즈(Philippe Sands)의 책 [East West Street](2016)의 주제는 인류의 '정의(正義/Justice)'에 관한 내용은 맞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승전국인 연합국측이 1945년 11월부터 1년간 열었던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소가 히틀러의 독일 제3제국 핵심인사들의 죄를 기소 및 판결한 과정에서 그 국제인권법의 이론적 기원을 추적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책은 더 이상의 세계대전을 통한 국제적 살상을 방지하고자 하는 국제인권법적 '정의' 실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국역본 제목이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로 된 이유가 비로소, 아직 청산되지 못한 우리의 일제강점기 식민역사와 결부하여 '정의'의 범위를 유럽 뿐만 아니라 우리 동아시아로까지 확장시키려는 이 땅의 민주개혁세력의 정치적 의도로 판단되었는데, 책의 대표번역자 정철승 변호사의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나서 알 수 있었다.

책의 원제는 [East West Street(동-서 거리)],
부제는 '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하는 죄의 기원에 관하여(On the Origins of 'Genocide' and 'Crimes Against Humanity')'다.

저자 필립 샌즈는 영국의 국제인권법 학자로 유대인이었던 외할아버지 레온 부흐홀츠(같은책, <part 1>)의 출생과 삶의 궤적을 따라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에 큰 영향을 끼친 유대인 출신 두 법이론가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전쟁 전과 전쟁 동안 민간인에게 자행된 살인, 말살, 노예화, 추방 및 기타 비인도적인 행위; 또는 행위가 자행된 국가의 법 위반과는 관련 없이 재판소의 관할권 내에서 범죄의 실행 또는 범죄와 관련되어 정치, 민족 또는 종교적 이유로 자행된 학대 행위"
-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part 2. 라우터파하트>, '뉘른베르크 헌장 제6장 c항', 필립 샌즈, 2016.

뉘른베르크 협정 또는 헌장의 제6조 c항이 정한 '인도에 반하는 죄(Crimes Against Humanity)'의 내용이다.
'인도에 반하는 죄'는 국제법에 개인의 권리를 처음으로 정착시킨 중요한 시도로서 유대인 법학자 허쉬 라우터파하트(Hersch Lauterpacht)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영국측 수석검사(영국 법무장관) 하틀리 쇼크로스를 통해 관철시켰다. 

제1차 세계대전 후만 해도 패전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투르크 등의 '제국'이었다. 즉, 국제법이라고 해도 주권은 왕국에게 있었고 국가권력은 국민이든 그 어느 민족이든 제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고 여겨지던 전근대적 법이론이 주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이른바 '전간기' 동안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을 비롯한 대중민주주의 혁명과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건설 등의 의회민주주의 개혁을 통해 왕국이 아닌 공화국으로 전환되었다. 즉 국가주권의 주체가 비로소 국민이 되었고 근대법이론 또한 이에 따라 국민 개인의 권리에 초점을 맞춰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내가 보기에 허쉬 라우터파하트의 '인도에 반하는 죄'가 천착하는 법에서의 개인권리 우선 원칙의 배경이다.
나는 '인도에 반(反)하는 죄'를 줄여 '반(反)인도죄'로 부르고자 한다.

저자의 외할아버지 레온 부흐홀츠와 동시대에 동유럽 너머 리비우(렘베르크/로보프/리보프)에 살았고 레온의 외가와 리비우 인근 도시 주기에프의 '동-서 거리(East West St.)에 걸쳐 살았을 라우터파하트는 당시 폴란드령 리비우(현 우크라이나 지역) 지역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유대인 법학자로서 전쟁 시기 영국에 정착하여 국제법에 개인 인권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시켰다. 
서로 일면식은 없었지만 라우터파하트는 같은 리비우대학 법대 후배였을 라파엘 렘킨의 사상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두게 된다. 

요약하자면,
국제법 현장에서의 '개인 vs. 집단' 관념이다.

전직 폴란드 검사 라파엘 렘킨의 '제노사이드'의 등장이다.

"특정 민족과 계급의 사람들 그리고 국가, 민족 또는 종교집단, 특히 유대인, 폴란드인, 집시 및 다른 집단을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정 점령 지역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민족과 종교 집단의 말살"
-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part 4. 렘킨>, '뉘른베르크 공소장', 필립 샌즈, 2016.

'제노사이드(Genocide)'는 유대인이자 전직 폴란드 검사였고 전쟁 동안 미국으로 건너간 법학자 라파엘 렘킨(Rafael Lemkin)이 주장한 개념으로 정의는 위와 같고, 어원은 그리스어로 '종족'을 뜻하는 'genos'와 라틴어로 '살인'을 의미하는 'cide'의 합성어다. 원래 리비우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렘킨이 1915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과 한참 후 아르메니아인의 오스만 제국 장관 살해의 복수행위를 보며, 그리고 국제법이 무죄를 판결한 오스만 제국과 달리 장관 살해자의 보복행위는 유죄로 선고하는 것을 보면서 생각하기 시작한 '집단학살(barbarism)'과 '파괴행위(Vandalism)'의 관계를 미국에서 새롭게 정립한 개념이 바로 '제노사이드(Genocide)'였다.
정리하면, 한 집단이 다른 특정 집단을 말살할 목적으로 행하는 일련의 '집단학살'을 의미한다.

역시 유대인이자 전직 폴란드 검사였던 미국 법률가 라파엘 렘킨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의 미국측 수석검사 로버트 잭슨(미연방 법무장관)을 통해 '제노사이드'를 뉘른베르크 헌장에 삽입하기 위해 적극 시도하지만 계속 실패하게 된다. 열정적인 렘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소의 주체국이었던 미국과 영국은 허쉬 라우터파하트의 '인도에 반하는 죄(반인도죄)'의 개인권리는 적극 수용한 것과 다르게 '제노사이드'의 집단주의는 계속 무시하다가 최종 기소문과 판결문에서야 일부 언급하기 시작한다. 

그 배경은 흑인노예 차별로 점철된 미국의 인종주의와 식민지 착취 및 학살의 역사를 가진 영국의 제국주의였다.
렘킨의 '제노사이드'는 전쟁 시기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자행된 '집단말살' 행위 일체에 대한 단죄를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열린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목적은 패전국 독일에 대한 전쟁범죄 처벌이었다. 역시 제국주의였던 승전국 그 누구도 '제노사이드'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테니, 뉘른베르크 국제재판에서는 패전국 독일에 대한 승전국들의 '전쟁범죄'에 대한 판결만으로 제한시켰던 것이다.

이로써, 히틀러 독일제국의 2인자 헤르만 괴링과 리비우 지역을 포함하여 지배관할하던 독일령 폴란드총독 한스 프랑크(같은책, <part 6>) 등은 사형판결을 받았다. 
뉘른베르크 피고인 21명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유대인 대량이주와 집단학살의 하수인으로 국외로 도주했던 아돌프 아이히만 같은 자들은 전후의 신생 유대인국가 이스라엘의 독단적 체포와 처벌이 불가피해졌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사형은 국제법적 논란을 야기한 일종의 '사적 보복'으로도 보였다.

'제노사이드'가 국제인권법에 주요하게 인정된 것은 그 이후 더 많은 국지적 전쟁과 크고 작은 집단학살이 더 자행되고 난 후였다.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 후 50여년이 지나서야 '반인도죄'와 '제노사이드'가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동시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국제인권법에서 '개인(반인도죄)'과 '집단(제노사이드)'의 법이론적 균형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지금의 국제인권법에서는 개인권리에 초점을 둔 허쉬 라우터파하트의 '반인도죄'와 집단에 중점을 둔 라파엘 렘킨의 '제노사이드' 모두가 상식이 되었다.
물론, 리비우와 뉘른베르크를 포함한 그 어디에서도 단 한 번 마주치지는 못했던 라우터파하트와 렘킨의 '개인'과 '집단'이 이론적으로는 상호교차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만, 라우터파하트의 '반인도죄'의 개인인권주의는 렘킨의 '제노사이드'가 천착한 집단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표명했고, 렘킨은 '개인'을 강조하면 전쟁 전부터 벌어진 '집단'적 학살행위를 처단할 수 없다는 주장을 간헐적으로 했을 뿐이다. 

현대 국제인권법에서 '정의'의 기원은 유대인 출신의 리비우대학 법학과 선후배인 라우터파하트와 렘킨의 행적을 쫓으며 추적된다.

'개인'과 '집단'이 동시에 존중받는 국제법적 '정의(正義/Justice)'의 탄생기원이다.

***

-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East West Street - On the Origins of 'Genocide' and 'Crimes Against Humanity')](2016), Philippe Sands, 정철승 책임번역, <더봄>, 2019~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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