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힘 - 인생의 무기가 되는 12가지 최소한의 수학도구
올리버 존슨 지음, 노태복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학은 이제 여기까지만
- [수학의 힘], 올리버 존슨, 2023.


1.

며칠 전, 
어머니가 둘째 누나한테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어머니는 팔순을 훌쩍 넘기면서 하루하루 노쇠해진 일상을 통해 사람이 별 일 없이도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걸어가는 과정을 내게 보여준다. 
방금 했던 말과 행동도 돌아서면 다시 반복하는 어머니 이전에, 이태 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통해 나는 '죽음'이라는 게 내 삶의 직접적 일부이자 궁극의 종착점임을 처음으로 실감한 바였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내게 삶을 주었고 최초로 먹는 법과 말하는 법 등 살아가는 기본은 물론 종국에는 죽음까지도 실질적으로 가르쳐주는 그런 것이었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를 앞으로 몇 년간 나는 함께 사는 연로하신 어머니를 통해 죽음에 관해 또 다시 새로 배울 차례가 오고 있다. 
모르는 남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죽음은 내 것일 수 없었다. 나는 죽음 앞에 그저 구경꾼이었다. 심지어는 십년 전 둘째 누나의 죽음 또한, 슬픈 일이었지만 마흔넷 누이의 죽음 앞에서도 나는 방관자에 불과했었다.

이제 연로하신 어머니가 갑자기 오래전 죽은 둘째 딸이 보고싶다 한다.

내일은,
둘째 누나의 55세 생일날이다.


2.

나의 둘째 누나는 수학을 잘했다.

딸 셋에 아들이 나 하나였던 우리집은 가난하여 그나마 대학은 내 몫으로 애진작에 정해져 있었다. 큰 누나는 꿈또 꿀 수 없었고 셋째 누나는 형제들에게 양보해야 했기에 애초에 기회조차 없었다. 아마도 같은 운명이었을 둘째 누나는 아버지한테 계속 대들고 요구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특히 수학을 잘해서 이과를 선택했고 무려 의대에 가겠다고 했다. 아버지한테 대들다가 빰을 맞았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나보다 네 살이 많았으니 둘째 누나가 오랜 투쟁 속에 의대는 못 갔지만 의대 편입을 꿈꾸며 생물학과에 진학했을 때 중학생이었던 난 그녀가 내 누나지만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누나의 등록금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돈을 구하러 다니다가 숱하게 싸우시던 부모님을 보며 나는 덕수상고에 진학하여 빨리 졸업하고 은행에 취업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부모님의 생각은 달랐겠지만, 특히 집안을 뒤집어 놓으며 대학에 진학한 둘째 누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 뿐인 남동생이었던 나만은 본인이 대학까지 가르치겠다고 장담했다.

수학을 잘했던 이과생 둘째 누나와 달리 나는 타고난 문과생이었다. 누나가 몇 번 수학 과외를 해주겠다고 나섰지만 자고로 공부와 운전은 식구한테 배우는 건 아니었기에 나는 도와주겠다는 둘째 누나의 손을 뿌리치고 나의 길을 갔다. 가난한 집이었지만 하나 뿐인 외아들을 대학까지 보내겠다는 부모님의 염원이 컸다. 그런데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직에 종사할 수 있게끔 공대를 보내고 싶었던 어머니와 천생 이과생 둘째 누나의 바람과 달리 나는 수학에 재능이 없어 그냥 기본수학의 정석 문제들을 외워야 했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통계과학연구소장인 올리버 존슨(Oliver Johnson)이 코로나 팬데믹 시기 전염병 확산을 예측하기 위해 각종 '수학모델'을 만들었을 때, 수학자인 올리버 존슨의 자세는 'number crunch'였다. 우리말로 하면 '수학사랑' 또는 '숫자덕후' 정도 아닐까 싶다. 이를 '구조'와 '무작위성', 그리고 '정보'를 키워드를 통해 '수학모델'과 수학적 사고방식에 관한 글로 엮은 책의 제목이 [Number Crunch](2023)다. 이듬해 우리말로 번역된 책 제목은 [수학의 힘](<더퀘스트>)이다.


"수학모델은 2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로 기존의 데이터를 설명하고, 둘째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수학자는 숫자나 다른 정보들에서 패턴을 포착한 다음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뉴턴의 방정식 덕분에 닐 암스트롱은 아폴로 11호에서 달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달의 중력이 어느 정도일지 알고 있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애초에 달에 도착할 로켓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뉴턴의 방정식을 이해한 덕분이다."
- [수학의 힘], <들어가며: 수학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면>, 올리버 존스, 2023.


나는 애석하게도 수학을 잘하지 못했지만, 고대에 인류가 세계의 근본원리를 찾고자 했던 철학의 중요한 방법으로서 수를 통해 정확히 표현하고 증명하려는 수학의 중요함은 이해했기에 수학을 잘 하고 싶어하기는 했다. 그러나 수학이나 관련 과학 전공자가 아닌 고등학교 일반수학이 그렇게까지 어려워야 하는가 싶은 의구심은 고등학생 자녀 남매를 둔 학부모인 지금도 여전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은 각자 다양한 법, 의대를 가고 싶어했던 둘째 누나 같은 사람들은 아마도 세상만물을 '수학모델'을 통해 이해하는 게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수학은 잘 모르지만 철학이라는 광범위한 학문의 이름으로 세계의 운동원리를 이해하고 싶어하며, 그 사유방식으로 '존재'가 '의식'보다 일차적이라는 '유물론'과 만물은 모순속에서 운동 및 변화한다는 '변증법'을 결합시킨 '유물변증법'을 채택하고 있다. 유물변증법은 항상 당대의 과학발전에 따라야 하므로 나는 이해를 다 하지는 못하더라도 '양자역학'이나 '수학' 관련 책은 가끔 펼쳐본다.

역시, 전부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내 삶에서 수학은 숫자나 공식 또는 그래프가 아니다. 모든 수학 대중서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혼란하고 무작위적이며 우연으로 점철된 세상만사 속에서 확률과 통계를 통해 앞으로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단단한 사유방식인 것이다.
미국의 수학천재 조던 엘렌버그의 [틀리지 않는 법](2014)도 그랬지만, '귀무가설'과 '대수의 법칙', '베이즈추론'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이해했다.
일본 수학자 하타무라 요타로의 [직관수학](2004)을 통해서는 딱 떨어지는 숫자가 아닌 대략의 숫자로 추산하는 접근법을 배웠다.
영국의 보험수리학자 앤드류 엘리엇의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2018)을 읽고는 지수로그방식을 통해 큰 수를 보는 법과 비교수치를 통해 이해하는 법 등을 어렴풋이나마 익혔다.


"... 수학이야말로 상황을 파악하는 데 이용할 만한 올바른 도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함수가 어떻게 증가하는지,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 어떤 질문이든 수학적 기법들이야말로 감정과 개인적 편향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통찰을 준다. 구조(1부), 무작위성(2부), 정보(3부)의 핵심 도구들은 여러분의 사고과정에 위력적인 도구를 제공한다."
- [수학의 힘], <4-13. 오류에서 배우는 교훈>, 올리버 존슨, 2023.


세계는 혼란스럽고 복잡하기 그지없지만,
철학자들이 도달하지 못할지 모르는 '보편적 진리'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듯,
수학자들도 각종의 추상적 '수학모델'을 만들어 세계운동의 원리를 파악하고자 한다.
아인슈타인도 죽기 전 책상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신의 방정식'을 구하고자 했단다.

숫자는 정확하고 엄말함을 추구한다. 그러니 수학이란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올바른 도구'일 수 있다. 다만, [수학의 힘]의 저자 올리버 존슨은 선입견과 과거의 수치, 지난 시절의 수학모델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시대는 매번 변하니 항상 조건들과 가정들을 의심하고 같은 모델을 적용하지 않으며 오류가 있다면 이를 인정하고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틀리지 않고 올바른' 수학의 힘이다.


3.

언제나 지금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늘 더 나은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려던 용감했던 둘째 누나가 다시 못 올 먼 곳으로 돌아간지 십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수학을 잘 했지만 누나가 정확하거나 올바른 삶을 살았을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혼란하고 무작위적이었을 길지 않은 인생의 파고를 넘던 중 어느날 갑자기 떠났다.

둘째 누나는 소설가를 꿈꾸던 이십대의 나를 늘 안쓰럽게 바라보며 능력도 안되면서 본인이 책임질테니 나보고 하고싶은 거 다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둘째 누나만큼 용감할 자신이 없던 나는 여전히 누나의 손을 뿌리쳤다. 

이제 나도 '수학'은 여기까지 하련다.
사실 몇 권을 읽고 또 읽어도 다 비슷한 내용으로 보이고 더 이상 흥미도 없다.
한편으론 수학을 잘 하던 둘째 누나의 안쓰런 눈빛과 애절한 손길이 그립다. 만일 다시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땐 나의 둘째 누나에게 말만이라도 따뜻하게 전해주고 싶다.

아니, 아직 팔팔한 동생 대신 하루하루 노쇠해지고 잠들기 두려워 매일 저녁 캔맥주를 드시고 주무셔야 하는 연로하신 우리 어머니나 잘 돌봐주기를 바란다.
몇 해 남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어머니와의 무작위한 생활을 내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도록.

오늘,
십여년 전 누나가 가던 날처럼 햇살이 눈부시다.

***

1. [수학의 힘(Number Crunch)](2023), Oliver Johnson, 노태복 옮김, <더퀘스트>, 2024.
2. [틀리지 않는 법(How Not to Be Wrong) - 수학적 사고의 힘(The Power of Mathematical Thinking)](2014), Jordan Ellenberg,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2016.
3.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Is That a Big Number?)](2018), Andrew Elliott, 허성심 옮김, <미래의창>, 2021.
4. [직관 수학](2004), 하타무라 요타로, 조윤동 옮김, <서울문화사>, 2005.
5. [단 하나의 방정식(The God Equation)](2021), 미치오 카쿠, 박병철 옮김,<김영사>, 20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