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박물관 순례 2 - 백제, 신라, 그리고 비화가야 국토박물관 순례 2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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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
- [국토박물관 순례 2], 유홍준, 2023.


"삼국과 가야는 제각기 다른 고분군을 남겼다. 같은 죽음의 공간이건만 그 정서 표현은 다 다르다. 만주 집안에 있는 고구려 돌무지무덤에는 굳센 기상이 넘쳐흐른다. 공주 송산리와 부여 능산리의 백제 고분에는 단아한 아름다움이 있다. 경주 대릉원의 신라 고분에는 화려함이 있다. 이에 비해 가야 고분군에서는 뭐랄까 아련한 그리움의 감정이 일어난다."
- [국토박물관 순례 2], <가야 1>, 유홍준, 2023.


1.

취향이 구식인 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부러 피해 다닌다.

소위 말하는 '힙한' 곳을 찾지 않거나 또는 그러지 못하는데, 그러다 보니 유행이 이미 지난 후에야 찾아가게 되는 편이다.
성정이 그러하니 나는 스스로 역사 '유물'이나 '유적지', 특히 오래된 사찰 등을 좋아하게 된 거라고 위안을 삼기도 한다. 이십대에는 관심없다가 서른 넘어 갑자기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를 찾아본 이유이기도 하다. 왁자지껄한 대규모 답사라기 보다는 중장년 또는 노년의 학자가 홀로 역사 유물과 유적을 돌아보는 쓸쓸한 서정 같은 그런 분위기에 크게 동감했다.

2023년에 [국토박물관 순례] 시리즈를 새로 시작하는 노학자의 글을 읽으며, 이 역사 선생님의 아련한 뒷모습을 떠올린다. 이제 유홍준 선생께서 오랜 시간 이어온 그의 답사기를 우리 역사의 통사적 편년에 따라 마무리하시려나 보다 하면서.


2.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문화의 꽃이다. 백제문화가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말해주는 물증이다. 이 향로의 발견으로 우리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의 미학을 지녔다는 백제 아름다움의 진수를 만날 수 있다."
- [국토박물관 순례], <백제 1>, 유홍준, 2023.


그런데 막상 [국토박물관 순례] 1권의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와 <철기>를 거쳐 만주 환인(졸본성)과 집안(국내성)의 <고구려>를 지난 후, 2권을 펼치니 내가 그 동안 몰랐던 신기술과 역사 유물의 현대적 융합이 펼쳐진다.

물론, 경기 연천과 전곡리 구석기 박물관의 첨단성을 1권에서 잠시 소개하고는 있지만, 백제와 신라를 다루는 2권에서는 신기술과 접목된 역사적 유물과 유적지가 본격 등장한다.

지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백제' 편을 통해 배운 말이 있다. 
유홍준 교수가 백제의 문화를 정리하며 인용한 하나의 문장, 바로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다. 뜻은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인데,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1권 '시조 온조왕'편 15년조에서 김부식이 한 말이다. 
나는 이보다 더 백제를 잘 설명해주는 감명깊은 문장을 떠올리지 못한다. 

퇴직 후 부여에 터를 잡고 15년간 백제문화를 설명해주고 있다는 유홍준 교수는 백제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유물로 1993년에 발견된 금동대향로를 꼽고 있다. 백제문화 전성기였던 6세기 위덕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과 능사터에서 발견된 금동대향로는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신기술을 통해 향 피우는 모습도 볼 수 있단다. 가상현실(VR) 구현의 기술로 실제 유물에 향을 피우지 않고도 6세기 당시의 백제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계에서 1천년간 수도를 지낸 이른바 천년고도(千年古都)로는 경주 외에 이집트의 카이로, 이탈리아의 로마, 프랑스의 파리, 중국의 서안(西安,시안), 일본의 교토 등이 있다. 그러나 많은 천년고도들이 왕조를 바꿔가며 수도의 지위를 유지한 것임에 반해 경주는 오직 한 왕조의 수도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각별하다."
- [국토박물관 순례 2], <신라 1>, 유홍준, 2023.


'신라'편은 역시 '천년고도(千年古都)' 경주가 무대다.
'백제'편도 '한성백제 5백년, 웅진(공주)백제 60년, 사비(부여)백제 120년'(같은책, <백제 1>) 중 마지막 수도 부여(사비)의 능산리 고분군을 중심으로 돌아보았다.
세계적으로 이집트 카이로나 이탈리아 로마, 중국 시안과 일본 교토 등에 비견할 만한 1천년의 수도 경주에서 또한 고분군을 중심으로 신라를 둘러본다.

여기서 또한 금관을 비롯한 금속 유물이 발굴된 4~6세기 돌무지덧널무덤들을 배경으로 한다. 
박-석-김씨가 돌아가면서 왕위를 이었다는 고대 신라(서라벌)로부터 경주 김씨 왕은 의외로 13대 미추왕(이사금)부터였다는데, 김씨의 시조 김알지는 이사금은 못했단다. 이후 17대 내물왕부터는 '왕'이 '마립간'으로 불렸는데, '높다(宗)'는 뜻의 '마루'가 어원인 '마립'과 '칸(Khan/干)'과 같은 '간'의 합성어다. 이렇게 박혁거세의 '거서간'과 이후 2대 '차차웅', 3대부터 16대까지 이빨(연령)이 많은 '이사금'('님금' 또는 '임금'의 어원)을 거쳐 경주 김씨가 세습왕조를 이룬 17대 내물왕부터 불려진 '마립간'은 22대 지증왕대에 이르면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의 틀을 구축하고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면서 '마립간' 대신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아마도 기병을 앞세워 남쪽의 고대 서라벌로 남하한 북방 숙신의 후예였을지도 모르는 '김'씨들이 북방의 문명을 무기로 신라를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만들었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숙신의 일파인 여진족이 수백년 후 중원에 세운 나라 이름이 '금(金)나라'인 기원을 여기에서 찾기도 한다.

경주 시내 대릉원 일대의 미추-내물-지증왕이 수도 안 무덤에 묻힌 이유는 수도 경주 자체가 '사자(死者)의 도시'인 '네크로폴리스(nekropolis)'였다는 의미다. 고구려 수도 집안(국내성)의 태왕릉(광개토대왕)과 광개토대왕릉비, 장군총(장수왕)이 그랬듯, 신라 고대국가 초기 경주 김씨 왕조는 죽어서까지 수도의 민중들을 지배하고자 했던 것이다. 4~6세기 '마립간' 시기를 지나 지증왕의 뒤를 이은 법흥왕이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죽음'에 관한 관념의 변화가 있어 법흥왕 이후로는 경주 외곽의 산에 묻혔단다. 

[국토박물관 순례] 2권의 '신라'편은 이처럼 4~6세기의 경주 김씨 '마립간' 정권의 고분들을 배경으로 한다. 
고구려는 5세기 장수왕, 백제문화는 6세기 위덕왕, 신라는 7세기 선덕여왕 시기가 문화적 전성기로 구분된다지만, 이 책은 4~6세기 경주 '네크로폴리스' 시기 대릉원을 통해 화려한 신라문화의 진면목을 본다.

신라금관을 비롯한 금세공품들은 같은 시기 중앙아시아의 양식과 비슷한 점도 있는 점을 보면 북방에서 문명교류의 힘을 가지고 내려온 '김'씨 또는 '금(金)'씨들의 '신문명'을 추정케 한다. 대릉원의 '돌무지덧널무덤' 유적 또한 이를 증언한다. 가야문명을 시작한 김수로 집단도 북방기마민족의 후예로 추정되며, 옆 동네 백제의 왕족인 '부여'씨 또한 고구려에게 밀려 남하한 북방 부여국의 잔존세력으로 추정될 수 있다.


"... 학자마다 견해를 달리하여 대단히 복잡하고 일반인은 그 많은 학설을 다 옳게 알아들을 수도 없다. 이럴 경우는 어느 한 명의 견해에 먼저 의지하고 다른 사상을 참고하면서 자기 견해를 갖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비결'이다."
- [국토박물관 순례 2], <신라 3>, 유홍준, 2023.


[국토박물관 순례] 2권의 마지막은 '비화가야'다. 고대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가야소국 연맹체로 머물다 신라에 의해 멸망하는 과정에서 신라와 접경에 해당하는 '비화가야'가 선택된 이유는 아마도 유홍준 교수에게 가야가 "잃어버린 왕국"의 "애틋하고 애잔한 서정"(같은책, <가야 1>)으로 회상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문헌상 기록이 거의 없다는 가야는 [일본서기]의 기사에 따라 고대 일본의 한반도 남부 지배설로서 '임나일본부설' 따위의 논쟁도 있으나, 유홍준 교수는 일부 극우세력을 제외한 대부분 양식있는 일본 역사학자들은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하고 있다고 간단히 일축한다(같은책, <가야 1>). 매우 타당한 시각이지만, 실은 [일본서기]가 [삼국사기]보다 더 오래된 문헌이라는 이유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멋대로 해석한 '임나일본부설'이 '실증적'인 '정설'이라 믿는 듯한 우리 주류 실증사학계 일부가 더 문제이기도 하다.

역사학자는 아닐지라도 미술사학자이자 역사답사 전문가인 유홍준 교수가 알려준 "역사를 공부하는 비결"(같은책, <신라 3>) 또한 내가 알게 모르게 배우고 써먹는 바로 그 방식이기도 했다.


3.

미술사학자로서 오랜 시간 역사에 대한 겸손함과 경외심으로 유물을 바라보고 유적지를 답사하며 대중들에게 감명을 주는 노학자는, 혹시나 마지막 답사기 시리즈일 것만 같은 [국토박물관 순례]를 통해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로 구현되는 유물과 유적지의 신기술에 감동하고 새롭게 단장된 유적지 고분군 사이에서 사진찍고 노니는 젊은 세대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계신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 노학자의 '답사기'를 따르던 구석기 시대 취향을 가진 나는 그의 자상한 할아버지 같은 따뜻한 시선을 따라 멀지 않은 때를 잡아 국립부여박물관과 경주 신라고분정보센터 등을 찾아 신기술과 융합된 역사 유물과 유적을 다시금 만나볼 요량이다.

구식이든 신식이든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든,
역사는 유물을 낳고 그 유물은 역사를 언제나 증언해 준다.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
- [국토박물관 순례 1], <책을 펴내며>, 유홍준, 2023.


유홍준 선생님에 의하면,
"역사가로서 김부식의 중대한 실책은 '가야'와 '발해'의 역사를 기술하지 않은 것"(같은책, <가야 1>)이라고 하는데,
통일신라와 발해의 남북국 이야기를 담게 될, 
아직 출간되지 않은 [국토박물관 순례] 3권을 기대한다.

***

1. [국토박물관 순례 2 - 백제, 신라, 그리고 비화가야], 유홍준, <창비>, 2023.
2. [국토박물관 순례 1 - 선사시대에서 고구려까지], 유홍준, <창비>, 2023.
3. [삼국사기(三國史記)](12세기), 김부식,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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