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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ㅣ 문제적 인간 1
장 마생 지음, 최갑수 머리말, 양희영 옮김 / 교양인 / 2005년 8월
평점 :
로베스삐에르와 중도개혁 세력의 한계, 그리고 민주노동당
근대혁명의 시작을 알린 1789년 프랑스대혁명은 현재까지도 진보적 희망을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혁명 또는 개혁의 이상적 모델로 회자되고는 한다. 하지만 현재형이 아닌 역사적 과거로 기억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렇게나마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서곡인 프랑스대혁명이 기억되는 이유는 계급불평등 사회의 깊은 질곡을 넘어서려는 의지가 아직까지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의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대혁명은 분명 중세의 봉건적 계급관계에 대한 ‘확실한’ 반란이었다. 그 양태와 규모가 너무도 확실하여 그 이후 1848년 2월 혁명이나 1871년의 파리코뮌을 통해 표출된 노동계급의 반란과는 다르게 ‘대혁명’으로 불리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대혁명’으로 추앙받는 본질에는 바로 지금 이 사회의 계급적 역관계가 투영되어 있다. 계급의 철폐와 노동해방을 목표로 했던 사회주의체제의 패배,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초국적 자본의 광범위하고도 철저한 계급지배를 통해 갈수록 이 사회는 자본가만이, 부르주아지만이 자신의 존재론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사회진보의 최고가치로서 계급철폐와 노동해방을 주장하는 세력이 갈수록 약해져만 가는 지금, 다른 혁명들에 비해 프랑스대혁명은 ‘대혁명’으로서 더욱 찬란하게 기억되고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중심에 바로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삐에르(Maximilien de Robespierre)가 있다. ‘공포정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 좀더 깊이 파고 들어가 알아보면 독재적 권력에 대한 편집증세로 인해 부르주아 혁명을 말아먹은 인물 등으로 알려진 바로 그 인물이다. 그러나, 진정 제대로 알게 된다면, 민중을 배반한 채 루이16세와 밀거래를 했던 왕당파 오노레가브리엘 미라보, 혁명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으려 했던 관용파의 조르주 당통과 같은 정적들을 제거함으로써, 고단한 민중의 해방과 애국에 대한 열정을, 외부의 왕정복고주의자들로부터 프랑스의 혁명정신을 지키기 위해 ‘민중중심’의 원칙을 고수한 부르주아 최후의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94년 7월, 혁명을 배반한 의원들의 이른바 ‘테르미도르 반동 쿠데타’로 인해 단두대 이슬로 사라질 때까지 그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기층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향한 꿈을. 그러나 그 꿈은 그 자체로 실현될 수 없었다. 봉건주의 타파를 기치로 왕족과 성직자에 비해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던 제3신분으로서 부르주아들의 정치적 권력 쟁취와 자본주의적 체제를 정착하면서 근대사회 창출의 역사적 임무를 지닌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당시의 기층 민중, 노동자와 농민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었으며, 필연적으로 부르주아 혁명에 의해 배반당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 농민이 대다수인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이 꿈에 머물 수 밖에 없었던 그 지점, 장 자끄 루소의 정치적 아들이라 자처했던 로베스삐에르의 한계는 바로 거기까지였다.
민중… 민중의 교육을 가로막는 장애물로는 또 무엇이 있는가? 빈곤이다. 그렇다면 민중은 언제 계몽될 것인가? 민중이 빵을 갖게 될 때, 그리고 부자들과 정부가 더 이상 민중을 속이기 위해 신의없는 펜과 혀를 매수하지 않게 될 때, 그리고 그들의 이익이 민중의 이익과 합치될 때이다. 언제 그들의 이익이 민중의 이익과 합치될 것인가?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 Maximilien de Robespierre, 1793년의 노트 중
테르미도르 반동을 이끈 부르주아 의원들은 로베스삐에르의 개인적 문건들을 모두 강탈했다고 하지만, 그가 처형되기 1년 전의 노트에서 그는 민중의 빈곤을 끈질기게 문제삼았고, 부자들과 정부로 대변되는 신의없는 부르주아 계급을 비판했으며, 그럼에도 그들의 이익은 민중의 이익과 결코 합치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 노무현 정권은 새삼스레 ‘양극화 문제’를 화두로 삼고 있다. 오래 전부터 이 사회 노동자, 농민 등 대다수 민중들이 해결하고자 했던 그 문제를 가지고 신년에 국민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그러나 그 해법은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이를 부각시키고,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같은 피지배계급으로서 노동자를 분열시켜 어느 한 쪽의 양보만을 통해 상대적으로 처우가 낮은 다른 한 쪽의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같은 노동자이면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게 양보의 결단을 촉구하는 그 정권은 정작 스스로 비정규직과 빈곤해결에 대해 어떠한 정책을 내어놓았는가. 현재 국회 계류 중인 비정규직 확대 법안의 조속한 입법화를 강조했고 정부 스스로 비정규직 공공일자리 창출을 통한 실업문제 해소를 주장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스스로 쟁취했던 고용안정과 권익확보의 성과를 허물고 노동자끼리만 나누어 대다수 노동자 모두가 비정규직이 되고 빈곤해지라는 것이다.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고 빈곤의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이 정권의 해법은 결국 모든 노동자의 비정규직화와 모든 노동자의 빈곤평준화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이 사회 모든 정권이 외면했던 ‘양극화’와 민중빈곤의 문제들을 신자유주의적 계급지배가 사회 전체에 확산되고 뿌리내린 지금 현정권도 더 이상 모른 채 할 수 없었고, 이 사회를 보는 시각이 어떠한지를 나름의 정책으로 드러내고 있다. 역시 대다수 노동자계급이 바라보는 시각과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양극화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이제 비로소 비정규직 문제와 민중빈곤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노무현 정권과 중도개혁 세력은 자신의 임무를 본격적으로 수행하는 일만 남았다. 이 사회 부르주아 민주주의 개혁을 완수하는 것, 가능하면 수구보수세력과의 대립각을 더 날카롭게 세워서 스스로가 자처하는 ‘중도개혁’의 위치를 굳히는 것, 18세기의 로베스삐에르처럼 강고할수록 더 좋을 것이다. 대다수 노동자와 민중의 이익에 기반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양극화’와 민중빈곤의 문제를 전사회적으로 공론화시켜야 하는 지점, 민주적 부르주아 정권, 중도개혁 세력으로서 노무현 정권의 한계는 바로 여기까지이다.
대다수 노동자와 민중의 유일한 대변자인 민주노동당은 더 이상 이 ‘양극화 문제’, 비정규직 문제, 이 사회 민중빈곤의 문제를 노무현 정권을 마지막으로 마감되어야 할 중도개혁 세력에게 선점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대다수 민중의 입장에 더더욱 충실하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관철되고, 파견노동을 더 엄격하게 제한하며, 비정규직의 권리보장 법안을 더욱더 대다수 노동계급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관철해 나가야 한다. 대다수 노동자, 농민의 이익에 기반한 민주노동당의 독자적인 시각을 전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바로 이것이 대다수 민중이 민주노동당에게 부여한 역사적 임무이며, 대다수 노동자, 민중의 한계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