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 읽는 것만으로 역사의 흐름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김재원 지음 / 빅피시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를 '한 권'에 담기 위해서는
-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김재원, <빅피시>, 2022.


"이 책은 과거를 향한 쓸데없이 신중한 접근을 삼간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거꾸로 반감부터 드는 게 인간이 아니던가. 마치 역사를 알면 세상 삼라만상의 비밀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할 생각도 없다. 그럴수록 역사는 더 지루해진다. 역사라는 학문이 지금까지 과도하게 유통되면서도 정작 사람들의 뇌리에 남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프롤로그>, 김재원, 2022.


오래전 소설을 써보고 싶었지만 잊고 살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중년이 되었다. 서평이라도 써서 남겨보려고 책을 읽다보니 문득, 모든 책이 '역사' 책이라는 걸 깨달았다. 철학도, 문학도, 사회과학도, [자본론]이나 [종의 기원]도 결국 '역사'로 보였다. 
그래서 굳이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역사' 관련 책만 읽지는 않는다.
인류가 남긴 모든 책에는 '역사'가 들어 있기에 독자는, 그 책에 담긴 '역사'를 찾아내는 탐정이 되면 된다.


역사학자 김재원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2022)라는 담대한 제목의 책을 통해 너무 신중하게 다루어서 지루해졌거나 또는 입시용으로만 공부했기에 대입시험 후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한국사'를 경계하며 "쉽게 그러나 가볍지 않게 떠나는 한국사 여행"(같은책, <프롤로그>)을 제안한다. 

그에 따라 저자는 <고대>를 다룬 1장에서 고조선과 삼국시대를 대표적 사건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연속적 서사에 필요한 다른 이야기들은 과감하게 생략한다. 예를 들어 고조선은 단군왕검 신화와 청동기에서 철기시대로 전환과정으로 정리하고 말지 고조선 내부의 국가체제, 사회문화, 주요인물 세부내용들은 건너뛴다. 부여라는 국가의 중요성은 잠시 언급하고 나서 삼국시대는 철기를 기반으로 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의 틀을 갖춘 고구려-백제-신라의 특징, 즉 정복약탈국가 고구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백제, 배신의 아이콘 신라와 이에 가려진 가야를 순식간에 정리하고 만다. 한 권으로 엮기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국가체제를 갖추었을 수도 있었을 고조선과 고대국가체제 이전부터도 삼국 또는 열국시대가 가능했을 수도 있다는 논쟁거리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급하게 넘어가야 하니 사료가 별로 없는 남북국 시대 발해는 본격적으로 언급할 여유도 없다.

2장의 <고려시대>는 남북국 시대의 남국 통일신라 말기 후삼국의 영웅인 궁예와 견훤, 왕건을 시작으로 고려시대의 굵직한 흐름을 잘 정리하고 있는데, 지방 호족 분권정치의 시작 및 광종과 성종의 개혁, 묘청의 서경반란의 배경인 문벌귀족 이야기와 이 체제가 초래한 무신정변, 원나라의 사위나라로서 고려의 위상 등의 흐름이 잡힌다. 입시용으로 외울 내용은 과감히 생략하고 흐름만 잡아도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생소한 <고려시대>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 책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장이 바로 2장 <고려시대>다.

3장 <조선시대>는 정도전과 이성계의 역성혁명의 본질을 '부동산', 즉 '계민수전'의 토지개혁으로 간단히 정리하는데, 정도전의 성리학 관료국가를 뒤집은 이방원의 왕권강화와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이후 두차례의 중종 및 인조반정과 왜란과 호란의 전란 등 굵직한 사건과 그 속의 인물들 중심으로 흐름을 잡고 있다. 다들 알만한 성군 세종의 업적이나 붕당정치의 실체와 장단점 등을 논하기에 한 권으로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임진-정유왜란과 정묘-병자호란 등 조선의 국운을 꺾은 대전쟁들은 한반도 국지전을 넘은 대륙까지도 아우르는 동아시아 세계대전이라는 인식은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4장 <근현대> 또한 구구절절 1960년의 4.19, 1961년의 5.16, 1979년의 10.26과 12.12, 1980년의 5.18이나 1987년 및 2016년 민주항쟁 같은 전통적 서사를 벗어난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면서 전두환 군사독재는 일언반구도 안하는 이유가 이승만과 박정희는 공과를 놓고 민주-반민주 진영논쟁의 여지가 있는 한편, 전두환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끝났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희대의 살인권력 전두환 정권에 대한 비판이 빠진 근현대 한국사는 다소 생소하다. 이 책에서 현대의 끝은 아마도 1997년 IMF 경제위기인 듯 한데, 저자는 1995년 삼풍백화점이라는 강남의 호화시설의 붕괴에 빗대어 평가하고 있다. 재해의 규모상 1950년 6.25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재난이었던 삼풍백화점 붕괴는 남한의 기존 사회경제 체제의 붕괴를 상징하며 우리 사회의 체질을 바꾼 IMF의 전조라는 저자의 결론적 평가 행간에는 그럼에도 불평등 체제가 그 위기들 이후 심화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한국사를 한 권으로 정리해야 하는 저자에게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서술할 지면적 여유는 없어 보인다.

결국, 입시를 위한 암기용이 아닌 '역사'는 세세한 내용보다는 흐름 위주로 읽어야 한다. 
중국의 역사학자 이중톈은 수십년 계획의 '중국통사' 시리즈를 쓰며 이를 위해 추리소설 기법을 접목했다. 즉,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나열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시기의 특정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시대적 배경을 아우르며 사건의 인과관계를 추적하는 방식이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도 굳이 '한 권'에 담기 위해서 노력하기 보다 '추리소설'처럼 독자를 안내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

어떻게 쓰든,
'역사'는 흥미롭지만 말이다.

***

-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김재원, <빅피시>,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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