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국가 전략 - 스웨덴 모델의 정치 경제학 논형학술총서 1
미야모토 타로 지음, 임성근 옮김 / 논형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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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사회민주주의 모델 : '선택적 경제정책'과 '보편주의적 복지이념'의 결합
- [복지국가 전략], 미야모토 타로, 1999.


"자네는 굳이 할 작정인가?"

1975년 '임노동자기금안'을 마련하여 들고 찾아간 메이드네르(마이드너)에게 94세의 비그포르스가 한 말이란다.
루돌프 메이드네르는 예스타(구스타) 렌과 함께 1950년대부터 '연대임금정책'과 '임노동자기금' 등을 통해 스웨덴 복지정책에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담고자 했던 경제학자이고, 에른스트 비그포르스는 1930년대 스웨덴 사민당이 의회 다수당으로서 장기집권하기 시작할 당시부터 한손 총리와 함께 스웨덴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을 정착시킨 정치인이자 재무장관이었다. 

비그포르스는 엄밀한 의미로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스웨덴 사민주의 정책을 확립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평등주의'와 '보편주의' 이념의 유토피아를 포기하지 않았다. 당장의 '혁명'적 '정치'가 아닌 '개혁'적 '정책'의 길에서도 '이상'을 폐기하고 '운동'만을 본 서유럽의 베른슈타인식 개량주의와 달랐다. 

1920년대 스웨덴 사민당 '예테보리 강령' 시기에 비그포르스는 전통적 사회주의 생산수단 사회화 과정에서 국유화 같이 거대한 소유를 넘어 노동자와 시민의 자율적 소유 등의 개념을 포함시키려 했고, 그의 경쟁자이자 이후 사회당 내각의 사회부장관 묄레르는 보다 좌파적 관점에 입각한 '보편주의 복지이념'을 관철시키고자 했다.

1932년 사민당 한손 내각은 재무장관 비그포르스를 앞세워 1938년 '살트셰바덴 협약'을 통해 노사정이 경제성장과 연대임금, 중앙집중적 노사교섭, 정리해고 요건 규정 등의 사회협약의 틀을 정하는데, 바로 '코포라티즘' 시대의 시작이었다. 
인구 1천만의 스웨덴 사민주의 모델의 분기점이다. 

1944년 이른바 '전후 강령'은 한손 총리의 '인민의 집'이라는 상징적 구상을 바탕으로 '나라살림의 계획'의 프로그램을 담게 되는데, 국가 자체를 '계급투쟁'의 전장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가정'으로 상정하고는 경제성장을 통한 부의 축적과 분배, 가족(국민/인민/시민) 모두가 '보편'와 '평등', '자유'의 이름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국가를 만드는 '나라살림'의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후 1960~1970년대 초까지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번영기', 에릭 홉스봄에 따르면 20세기 '극단의 시대'에서도 또 하나의 '황금시대'가 다 지나간 1970년대 초 '위기의 몇십년'(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에 들어서며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에도 위기가 닥치기는 하지만,
명확하게 스웨덴 '복지국가 전략'의 기본정책은,
1) '선택적 경제정책'과,
2) '보편주의적 복지정책'이었다.


"1950~1960년대에는 새로운 '(선택적) 경제정책'이 완전고용을 정착시켜 '풍요로운 사회'를 실현해 나가는 가운데 '보편주의적 복지정책'이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1930년대에 제기되었던 복지정책에는 적어도 묄레르의 견해에 따르는 한, '보편주의'적 형식을 취하면서도 수직적인 재분배에 대한 강한 지향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 1950~1960년대 전개에서는 세대간 혹은 개인의 생애단계(질병/출산/실업/노령) 간의 수평적인 재분배를 강화하면서 철저한 '보편주의'를 지향하게 된다... 1930년대부터 사민당이 내걸었던 복지이념은 수직적 재분배를 중시한 것이며, 이 점에서는 '보편주의적 복지정책'을 주도한 묄레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비해 경제정책이 '완전고용'을 실현시켜 연대임금정책 등을 통해서 경제격차가 어느정도 축소됨에 따라서 복지정책은 개인의 생활기회 확대에 중점을 둔 새로운 이념('전후 강령')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 [복지국가 전략], <3-3. 보편주의적 복지정책의 전개>, 미야모토 타로, 1999.


일본의 복지정책론자 미야모토 타로 교수는 지난 세기말인 1999년에 위와 같은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을 전반적으로 분석한 [복지국가 전략]이라는 논문을 냈다. 북유럽 사민주의는 세계전쟁과 냉전 이데올로기로 인해 '극단의 시대'였던 20세기 역사(에릭 홉스봄) 속에서도 '이론'과 '이데올로기(이념)'가 아닌 '실용'과 '생활'의 정치로 복지국가를 이루었다. 노사간 '계급투쟁'의 권력자원론은 기본바탕으로 하되, 노사정이 모여 함께 국가살림을 계획하는 '나라살림의 계획'으로서의 '코포라티즘'의 세계를 열었다. 결과는 체제의 '혁명'적 전환이 아닌, '개혁'을 통한 체제 이행이었지만, 체제는 여전히 '자본주의'였고 국가모델 또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복지자본주의'였다.
20세기 초 전투적 '사회민주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또는 '수정자본주의' 내지 '혼합경제' 등으로 불렸다.

1930년대부터 노사정 코포라티즘을 통해 1970년대까지 경제적 번영과 연대임금을 이룬 스웨덴 사회는 노동자 권력의 증대를 기획하며 '체제 이행'을 꿈꾸었다. 마르크스주의적 사회민주주의자라기보다는 길드사회주의에 가까운 비그포르스였지만, 그의 '예테보리 강령'에서도 그는 '자유'와 '평등'의 '유토피아'를 버리지 않았다. 사회부장관 묄레르의 '보편주의적 평등'과 대치하면서도 비그포르스의 복지정책에는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전제가 붙었다. 그리고 '전후 강령'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국가살림의 계획'을 꾸리고자 했다. 이제 비그포르스가 은퇴하고 그의 후배들인 렌-메이드네르(마이드너)가 제시한 1975년 '임노동자기금'은 '나라살림의 계획'의 소박함을 넘어 '생산수단 사회화'를 실현시키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었고 하나의 '체제 이행' 계획이었다. 실제로 '임노동자기금'의 설계자 메이드네르는 당시 임노동자기금 관련한 인터뷰에서 "일종의 사회주의로 받아들여도 좋다"고까지 말했다는데, 강화된 노동자 사회권력을 바탕으로 한 사회정책의 자부심이 묻어난다. 한편, 이 생산수단 사회화 방안으로서 '임노동자기금'을 상의하러 간 젊은 마르크스주의자 메이드네르에게 늙은 길드사회주의자 비그포르스가 건넸다는 "자네는 굳이 할 작정인가?"라는 염려의 말 자체도 부럽기만 하다. 체제 이행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방안에 대한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이견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나라살림' 차원에서 '체제 이행'이니 '사회화' 논의 자체가 '이단'으로 취급된다.


"원래 중앙정부에 대해서 코뮌(지자체)이 복지공급 주체였던 스웨덴에서 시민부(관청)가  지향한 것은 '시민의 영향력 확대'였다... (복지국가 비판의 우파 자유주의와의 대결을 통해 등장한 좌파 사민당 개념인) '자유선택사회'와 '보편주의적 복지'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 시민에게 공공서비스 자체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움직임..."
- [복지국가 전략], <4-4. 새로운 사회민주주의 전략>, 미야모토 타로, 1999.


1975년에 작성되고 1976년 LO(스웨덴 블루칼라 노총) 대회에 제출된 [노동자기금을 통한 집단적 자본형성]이라는 보고서는 기업의 초과이윤으로 조성된 '임노동자기금'으로 기업의 주식을 노동계급이 소유하고 점차로 이러한 노동계급의 '집단적 자본소유'를 통해 노동계급의 사회권력을 강화한다는 '사회주의'적 발상이었다. 당연히 자본가계급과 사용자단체(SAF)는 극렬하게 반대했고 일부 상층 사무직-전문직-화이트칼라 노조(TCO)와 자유주의 정객들은 '노동자'가 아닌 '시민'이라는 탈계급적 용어로 무장한 채 메이드네르가 말한 '노동자 권력 이행'으로서의 '임노동자기금' 문제를 '경제활성화를 통한 자본형성'이라는 문제로 희석시키고 실제로 전환시켰다. 결국 1978년과 1981년 두 차례의 수정을 통해 '시민적 노동자기금' 형태로 1983년에 도입한 이 정책은 1991년 우익 보수정권에 의해 폐기되고 말았다. 
역시 이러한 '노동자 사회권력' 문제와 '체제 이행' 사안이 구체적인 정책의 형태로 논의되는 과정 자체가 경이롭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소유 문제만 거론해도 '자유민주주의'적 '신성'을 모독한 심각한 '이단'이 된다.

미야모토 타로의 이 논문은 스웨덴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을 전반적으로 분석한 흔치 않은 책이다. 다수의 책이 있지만 그 단편을 그릴 뿐 본격적으로 모델 분석을 시도한 책은 의외로 거의 없다고 하는데, 아마도 지난 세기말의 이야기일 테다. 21세기에는 우리 사회는 크게 변한 게 없어도 북유럽 사민주의를 다룬 보다 대중적인 책들이 많이 소개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스웨덴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의 두 이념으로,
1) '자유선택사회'
2) '보편주의적 복지이념'을 든다. 

'자유선택사회'는 전술한 정책이념으로서 '선택적 경제정책'에 맞물린다. 즉, 경제성장과 초과이윤 달성의 '선택적 경제정책'으로 사회적 부가 축적되고 '보편주의적 복지정책'으로 배분된 부를 통해 '풍요로운 사회'를 일군 스웨덴이 지향한 사회의 상이 바로 '자유선택사회'다. 물론 노동계급의 좌파적 용어는 아니다. 사민당의 좌파정책에 계속 반대해온 우파 자유주의자들과 중도보수 정당들의 '복지국가비판'에 응답하는 대항개념이다. 노동계급의 권력강화를 넘어 모든 시민(국민/인민)의 '자유'를 강조한 사회의 상이 '자유선택사회'인 것이다. 이 사회의 대전제는 확고하게 '완전고용'에 기초한다. 이 '완전고용'이 무너지면 보편적 복지국가는 없다. 실제로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이 무너지고 새로운 사민주의 전략이 필요하게 된 이유도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위기로 인해 1980년대부터 실업률이 급증한 배경이었다. 우리 사회 우파들이 말하듯 북유럽 복지국가의 위기는 '복지병'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체제 위기로 무너진 '완전고용'에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20세기말부터 맞닥뜨린 [복지국가 전략]의 모색과 전환의 배경은 여전히 실업률의 극복과 '완전고용'의 문제다.

여기에 '잠정적 유토피아'와 '나라살림의 계획'이 있는 '인민의 집'으로서 복지국가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여전히 남는다. 바로 '보편주의적 복지이념'이 그것이다. 
경제성장과 풍요는 우리 삶에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즉, 인간적인 삶은 '풍요'만으로는 얻어지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롭게 분배되고 영위되는 부, '선택'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복지를 통해서만이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체제가 가능하다. 또한 '보편주의적 복지정책'에는 소득과 자산에 따른 누진적 과세가 필수다. 소득비례만이 아니라 누진적 '부유세'를 통해 만인의 복지를 실현하는 사회가 바로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의 정책적 기초다. 


"자네는 굳이 할 작정인가?"라는 메이드네르에 대한 비그포르스의 질문은, 굳이 그러한 방식이 아니어도 '보편주의적 복지이념'과 '잠정적 유토피아'를 견지하는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은 새로운 '체제 이행'을 할 수 있다는 체제의 자부심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다.

20세기 1천만 인구의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이,
21세기 5천만 인구의 남한의 복지국가 모델로 다시금 새롭게 시도될 시간이다.

***

1. [복지국가 전략 - 스웨덴 모델의 정치경제학](1999), 미야모토 타로, 임성근 옮김, <논형>, 2003.
2.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 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신정완, <사회평론>, 2012.
3.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 니크 브란달/외이빈 부라트베르그/다그 토르센, 홍기빈 옮김, <책세상>, 2014.
4.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홍기빈, <책세상>, 2011.
5.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1914-1991(
Age of Extremes : The Short Twentieth Century, 1914-1991)](1994), Eric Hobsbawm, 이용우 옮김, <까치글방>, 1997.
6.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최연혁, <쌤앤파커스>,2012.
7. [세계화와 노동개혁], 김인춘 외, <백산서당>, 2005.
8. [세계화시대 노사정의 공존전략], 한국정치학회, 심지연 외, <백산서당>,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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