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방정식 - 궁극의 이론을 찾아서
미치오 카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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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생이 '물리학'을 읽던 시간 : 1993~2000년
- [단 하나의 방정식], 미치오 카쿠, 2021.


"... 물리학 이론은 시간이 흐를수록 몇 개의 방정식으로 축약되면서 더욱 단순하고 강력해진다. 이것이 바로 물리학의 매력이다... 우주를 올바르게 서술하는 방정식은 단 하나 뿐이다. 그 외의 방정식들은 수학적으로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 [단 하나의 방정식], <7. 우주의 의미를 찾아서>, 미치오 카쿠, 2021.


1.

열 다섯명의 주소록이 돌았다.
아미즈 호프의 '아무거나' 안주접시를 둘러싸고 앉은 '철봉파' 친구들은 매번 업데이트되는 총무 철호의 주소록을 또 검토한다. '철봉파' 조직원 15소년의 주소와 집 전화번호가 신형엑셀로 정리된 출력물로 친구들 각자의 손에 쥐어져 있다. 때는 1993~1994년, 휴대폰도, 삐삐도 없어 친구 집으로 전화하면 본의 아니게 친구의 가족들과도 통화를 많이 하던 시절 이야기다. 대학가에서는 서점 앞 게시판을 보고 약속장소를 찾아가던 시절이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경희고 31회 동창인 우리 '철봉파'는 1학년 때부터 재수생은 물론 문과와 이과를 '파동'처럼 이어 철봉대 아래 모였던 조직이었다. 각자 초중교 시절 친구들이나 같은 반 친구들을 데려와서 야간자율학습 전까지 운동장과 오락실을 전전하던 아웃사이더들이었다. 우린 함께 백일주를 마셨고, 졸업 후 대학으로 진학한 친구, 재수삼수를 하기로 하거나 사회로 진출한 친구들로 각자 다양하더라도 매월 셋째주 토요일에는 무조건 이문동 외대앞 정문에서 모이기로 졸업식날 저녁 전철 1호선 휘경역 인근 뮌헨 호프에서 결의했다. 그날 스무살 또는 스물한살이 된 우리 '철봉파'의 총무로는 가장 머리가 좋은 철호가 맡을 수 밖에 없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던 '철봉파'의 두뇌 철호는 물리학과에 진학한 터였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하는 부반장 전문이었던 철호는 나의 초중교 동창이자 오랜 친구다. 근데 사실 중학교 때까지 나는 민수와 주로 붙어다녔지 철호는 '팬더 종이공작'의 취미가 비슷하여 만나게 되는 친구였다. 더 거슬러 가면 초등 4학년 때인가 같은반에 공부를 못하던 중국집 아들이 있었는데 나는 공부를 알려준다는 핑계로 진심은 짜장면 얻어먹으러 몇 번 들락거리다가 어느날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우리반 부반장 철호를 그 중국집에서 만났던 거였다. 그 이후로 철호와 나는 친구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던 '이과' 머리 철호는 아마도 꿈이 '과학자'였지 싶다. <해문>과 <지경사> 등지의 종이공작을 넘어 스타워즈 비행기 등을 본인이 직접 그리고 설계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던 진정한 '금손'이었으며, 컴퓨터와 각종 최신 전자장비의 선구자였다. 친구였으되 민수와 주로 놀던 내가 철호네 집에 갈 때는 사실 당시는 흔하지 않던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비디오 시청을 하고 싶은 무언가 '필요'가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진학 후 철봉대 아래에서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오랜 단짝 민수가 철봉을 떠난 후 오랜 동창 철호는 나의 '불알친구'가 되었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전공하고 싶어했을지도 몰랐던 철호가 '물리학'이라는 순수 자연과학을 전공하게 된 1993년 2월, 철호는 우리 '철봉파' 최초의 '공식' 총무이자 영원한 '원조' 총무가 되었다.


2. 

진심으로 '문과'적 인간인 나는 아마도 철호와 엥겔스와 레닌이 아니었다면, '물리학'이라는 영역을 쳐다볼 엄두도 못 냈을 게다. 철호는 말할 것도 없이 내 주변에서 가장 '이과'적 인간이었는데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과학'의 이름으로 철학적 관념론과 사이비 사회주의를 신랄하게 깨부수던 엥겔스와 레닌의 논쟁적 저작들을 읽다가 미적분 수학이나 중력과 힘의 작용과 반작용 같은 사안이 나오면 난 어김없이 철호네 집으로 전화하거나 녀석을 찾아갔다. 물리학자 철호는 열심히 설명를 해줬고 사실 나는 반도 이해 못했지만 그래도 안 듣는 것보다는 나았다.


미국의 일본계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는 아인슈타인이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으로 우주를 수학적으로 정리하려던 미완의 노트를 펼쳐놓은 채 블랙홀 너머로 돌아간 1955년에 여덟살이었는데, 그 어린 나이에 아인슈타인의 사망기사를 보고는 저 '통일장 이론'을 본인이 완성하겠다는 다짐을 했단다.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이런 이과적 물리학의 세상에서 미치오 카쿠는 뉴턴의 전통 물리법칙의 세계를 혁신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또 넘은 양자물리학을 더 넘어 '끈 이론(string theory)'을 계속 다듬어서 우주 삼라만상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방정식'을 완성하고자 한다. 
'문과'적으로 보면 서양의 논리학과 철학, 동양의 '기(氣)'와 명상, 득도를 통해 만들어질 법한 이 단 하나의 '신의 법칙'은, '이과'적으로 보면 수학적으로 표현되는 가장 명료하고 단순한 '방정식(equation)'의 '대칭(symmetry)'으로 압축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서 '세계관'은 문과적, 이과적으로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언제나 '진리(眞理)'를 추구하는 인간의 이성은 그 방식이 다를 뿐 '절대불변'의 법칙을 향해 수렴한다. 철학에서는 '일자(一者)'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를 통해, 물리학에서는 '무한대'라는 불가지론을 극복하려는 수학적 공식의 무한한 수정을 통해 우주 법칙의 필연성을 증명하는 시도가 끊어질 수 없다. 이들의 문과, 이과적 노력은 궁극의 세계관을 정립하고 또 반증에 따라 폐기되고 수정된다. 이런 진리의 '상대성'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절대'적 진리를 찾아 나아갈 수 밖에 없는데, 미치오 카쿠 같은 물리학자에게 이것은 '궁극의 이론'이자 '신의 방정식'이며 우리말 번역본 제목에 따라 [단 하나의 방정식]이 된다. 이를 위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이와 모순되는 듯 보이는 최근의 '양자역학'을 접목시키되 '중력'이라는 매우 전통적이고 고전적이며 어려운 힘의 주제를 포괄하는 미시적인 '끈 이론(string theory)' 또는 거시적인 '초끈 이론(super string theory)'에 대해 미치오 카쿠는 대중적으로 간략하게 소개하는 책을 2021년에 낸 것이다. 이 책의 원제가 [The God Equation(신의 방정식) - The Quest for a Theory of Everything(궁극의 이론에 대하여)]이고 국역본의 제목이 [단 하나의 방정식]이다.
결론적으로, 세상 '거의 모든 것의 이론'으로서 '궁극의 이론'을 이과적으로 표현한 단 하나의 '신의 방정식'은 역시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 책에서는 그 수식까지 상세하게 소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설령 수식이 나온다 한들 일반인이자 다분히 문과적 대표인간인 나는 그 '물리학' 법칙에 담긴 단 하나의 의미도 '수학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게다.


"... 완전한 이론이 되려면 '대칭'이 붕괴된 원인과 과정까지 설명해야 한다... 중력, 빛(전자기력), 그리고 핵력(강력과 약력)은 언뜻 보기에 공통점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힘들이 조금씩 비슷해지다가, 창조의 순간(빅뱅)까지 가면 하나로 통일된다. 그리하여 물리학자들은 '우주론(cosmology)' 최고 미스터리인 창조의 순간에 입자물리학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다른 분야였던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이 어쩔 수 없이 한 배를 타게 된 것이다... '신의 방정식(The God Equation)'... 그것은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그 누구도 떠올린 적 없는 '초대형대칭(마스터대칭)'이었다."
- [단 하나의 방정식], <4. '거의 모든 것'의 이론>, 미치오 카쿠, 2021.


다만, 철학과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방향이듯, 단 하나의 '신의 방정식'을 향한 경향은 '문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으니, 중력을 비롯한 세상 만물의 근원인 '신(神)'은 종교에서 말하는 '인격적 신'이 아니라 목적이 없는 '단 하나의 법칙'으로서의 그것이라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후예들, 요하네스 케플러와 '이단자' 갈릴레이 등도 사실은 '신'을 증명하려고 했던 과학자들이었는데, 그 신은 '무한대'라는 무책임한 불가지론이 아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수학적으로 방정식의 미학은 '대칭(symmetry)'이며 이 대칭만이 무한대의 문제를 해결하므로 미치오 카쿠에 의하면 '대칭'이야말로 물리학의 미학적 정점이 된다. 궁극의 이론에서 이러한 미시적 '대칭'은 거시적인 '초대칭(Master-symmetry)'이 되며 우주 발생의 근원인 '빅뱅'까지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내 마음대로 '문과'적으로 정리하면, 우주 발생 전 최초의 '초대칭'에서 '대칭'을 무너뜨린 '붕괴'가 발생했고 이러한 '빅뱅'으로 우주는 팽창하는데 이런 무한 확장성을 '무한대'나 '신' 또는 '불가지론'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대칭'과 '붕괴율'과 또다시 이어지는 '초대칭'의 물리학적 법칙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방정식이 '끈 이론'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미치오 카쿠의 주장이다. 그의 '끈 이론'은 원자 또는 입자의 전통 물리학에 이들간의 진동과 파동의 관계까지 아우르는 '양자역학'을 접목하되 '중력은 실체적 힘이 아니라 휘어진 공간에서 나타나는 환상'(같은책, <2. 통일을 향한 아인슈타인의 여정>)이라는 일반상대성이론의 거시적 영역에서 작용한다. 즉, 아인슈타인의 후예인 미치오 카쿠는 아인슈타인이 확립한 '중력'의 세계를 '끈 이론'이라는 새로운 이론에 "갖다붙이는 것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중력을 끈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이다"(같은책, <옮긴이의 말>).

사실 책을 몇 번 다시 뒤적여 봐도 1968년에 발표되었다던 '끈 이론'을 나는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입자가 아닌 '끈'으로 3차원이 아닌 10차원(또는 11차원)의 공간에서 쌍방 입자를 끈으로 이어 대칭을 이룬 결과 '무한대'의 문제를 해결한 이론이라는데, 궁극의 수학공식을 소개하지 않으니 그 증명과정을 알 수 없을 뿐더러 다시 말하지만 설령 수학공식을 봐도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다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혁신한 '중력'의 문제와 입자와 파동으로 운동법칙의 확률을 다루는 양자역학을 수학적으로 접목하는 이론이 아직 미완성된 '끈 이론'이며 미치오 카쿠에게는 이것만이 온 우주법칙을 단 한 줄의 방정식으로 정리하려고 했던 아인슈타인의 유언과도 같은 '통일장 이론'을 완성하는 길이다.

물론, 물리학자인 저자는 철학자가 아니기에 논리학만이 아니라 '수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단 하나의 '신의 방정식'으로 세계관을 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3.

미아역 신일고 옆 건물 2층에서 며칠밤을 샌 철호가 까치집 머리를 하고 내려왔다.
우리 둘은 그 건물 1층 오락실에서 테트리스 한 판을 하고는 음침한 그 사무실에 잠시 들러 레츠비 캔커피와 담배 하나씩 피우고는 다시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갔다.

나는 물리학과에서 우등생으로 졸업한 철호가 대학원 가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줄 알았다. 휴학 없는 입대와 전역으로 나보다 1년 먼저 조기졸업한 물리학도 철호의 1998년 학사논문의 주제는 [반도체 기술 및 제조공정(Semiconductor Technology & Fabrication)]이었는데, 깔끔하게 제본까지 한 그 논문책을 증정받은 나는 "라면 받침대로 잘 쓰겠다"는 말로 친구의 호의에 답변했지만 실은 읽어도 역시 전혀 이해를 못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각별하게 선물이나 증정받은 책을 끝까지 못 읽은 아마도 첫 케이스였고 '논문'이란 건 읽으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첫 계기였다. 

내가 군에서 전역하고 맞이한 세상은 'IMF' 구제금융의 신탁통치 시대의 첫 해였고 구조조정에 맞선 민주노총 권영길 후보가 군소후보지만 노동자민중운동진영의 대표로서 "불심으로 대동단결!"을 외치던 호국당 스님후보와 TV토론하는데 둘 다 삭발이니 유권자들이 민중진영과 불교진영을 구분하지 못하면 어쩌나 내심 염려되던 시절이었다. 대선결과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고 예상대로 IMF구제금융 체제는 우리 사회를 대규모 구조조정의 신자유주의 체제로 질적 전환을 주도했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이후 노무현 '참여정부'의 토로는 실상 IMF 구제금융 체제를 선도한 김대중 '국민의정부'가 앞서 몸소 실천한 바에 대한 고백에 불과했다. 자본주의 경제위기에서 집권한 '부르주아 민주정부'는 대다수 노동자들의 생명줄과 독점자본의 생명줄을 맞바꿨고 남한 자본주의 체질을 전반적으로 바꿔버렸다.

대학원 진학 예상을 깬 철호는 당시 정부가 적극 지원을 시작한 '신지식산업'인 IT업계에 취업했고 수년 간 여기저기 회사를 옮기며 밤을 새워 일했다. 그동안 '철봉파'의 총무는 몇 차례 다른 친구들로 바뀌었고 집에도 잘 못들어오던 '원조 총무' 철호는 '철봉파' 모임에는 한동안 통 나오질 못했다. 나를 비롯한 '철봉파' 친구들은 늘 줄담배를 피우던 철호에게 "밤새 야동 그만보고 이제 집으로, 친구들 곁으로 돌아오라" 선동질을 해댔다. 하지만 복잡한 하도급 다단계 체제에서 우리의 '물리학도' 철호가 임금도 체불되며 밤새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까지는 미처 몰랐다.

나도 회사에 취직하고 오후 외근길에 찾아간 21세기 첫 해의 철호의 어둑한 사무실에서 본 여전한 줄담배와 캔커피, 종이컵 믹스커피의 풍경이 아련하다. 아마도 그 회사에서도 변함은 없었을 임금 체불과 그럼에도 '신지식산업'의 선두주자가 되고자 꿈을 꾸었을 '철봉파'의 이과적 두뇌 철호를 회상한다. 역경을 딛고 창업신화를 쓰면서 신기술 첨단과학을 통해 인류의 문명을 혁신하기 위해 투신했던 수많은 '20세기말 IT 소년'들을 생각한다. 지금은 변화주기가 더 빨라진 신기술에 밀리고 있을 수도, '과학자'의 꿈에서 이탈하여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을 그 빛나던 '두뇌'들의 지난날을 새삼 돌아본다.

아인슈타인의 부고기사를 읽고 그 천재의 꿈을 이어가고자 했던 여덟살의 미치오 카쿠 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끊임없이 아인슈타인의 뒤를 이으려던 두뇌들이 수많은 별처럼 빛났으리라. 우주의 별처럼 많았을 그 천재들의 천체에서 그 언젠가 저멀리 작게 빛났을 우리 '철봉파 원조 총무' 철호의 오래전 지난날이 역시 아련하다.

***

1. [단 하나의 방정식(The God Equation)](2021), 미치오 카쿠, 박병철 옮김,<김영사>, 2021.
2. [세계관 - 당신 지식의 한계](2018), 리처드 드위트, 김희주 옮김, <세종>, 2020.
3. [반도체 기술 및 제조공정(Semiconductor Technology & Fabrication)], 유철호, <광운대학교 물리학과>,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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