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는 루브르 - 루브르 관람, 시작은 이렇게
나카노 교코 지음, 지종익 옮김 / 아트북스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Et in Arcadia ego."
- [처음 가는 루브르](2013), 나카노 교코, 지종익 옮김, <아트북스>, 2016.
- [욕망의 명화](2019), 나카노 교코, 최지영 옮김, <북라이프>, 2020.


"푸생은 나폴레옹의 어용화가였던 다비드와 마찬가지로 '자존심이 전부'인 프랑스 절대권력자의 취향이었다. 딱딱한 푸생에 뒤이어 향락적인 로코코가 등장한다. 로코코는 다비드의 얼어붙은 듯한 큰 그림에 밀려나고 다비드는 색채와 격정이 범람하는 로만주의(낭만주의)에 밀려 자취를 감춘다. 그 또한 지겨워지자 인상파가 등장한다. 이처럼 파도는 밀려왔다 밀려간다."
- [처음 가는 루브르], <5장. 아르카디아에 있는 건 누구?>, 나카노 교코, 2013.


프랑스의 가난한 시골 농부의 아들이 열여덟살에 집을 나와 파리의 아틀리에를 전전하고 있다. 바로크 시대인 당대의 천재화가 플랑드르의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 1577~1640)는 스물세살에 이미 이탈리아 만토바 공의 궁정화가로 이름을 날린 후였는데, 이 프랑스 젊은이는 특별한 작품을 남기지 못하고 서른살이 되는 1624년경 다시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번이 세 번째 로마행이었다. 

훗날 '고전주의' 화풍의 대가로 알려진 니콜라 푸생은 로마에서 <베들레헴의 영아학살>이라는 17세기 당대 '바로크' 화풍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생애를 이탈리아 로마에서 보내면서 스스로를 이탈리아인으로 규정했다. 르네상스의 성지였던 이탈리아 지역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이상적인 인체상과 고대 사상에 대한 오마주의 본거지였고 바로크 화풍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로 충격을 받았던지 거의 죽을 뻔한 중병에 걸렸다가 되살아난 푸생은 깨달음을 얻는다. 루벤스와 같은 바로크식 '대중주의'를 벗어나 고전주의적 '예술주의'로 전향하는 화풍의 전환이었다. 약 3백년 후 오스트리아의 젊은 화가 지망생 아돌프 히틀러가 미술에서 펼치지 못한 꿈을 신비주의적 인종주의 나치즘으로 전환시켰다면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은 이탈리아인을 자칭하고 르네상스를 재부활시키며 '고전주의'의 문을 열었다.
푸생의 대표작은 1637~38년에 제작한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Et in Arcadia ego)>(또는 <아르카디아의 목자들>)라는 그림이다.


"아카데믹한 거장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 1594~1665)'이었다. 그는 로마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거기서 살며 작품을 제작했다. 푸생은 정열적으로 고전시대의 조각상들을 연구했는데, 그것들의 아름다움을 통해 순수하고 장엄했던 고대 도시들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전달하고자 했다. 도판(<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은 이러한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서 생겨난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 [서양미술사], <19장. 발전하는 시각세계>, 에른스트 곰브리치, 1950.


20세기 오스트리아 미술(예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그의 장대한 저작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1950)에서 소개한 '고전주의자' 니콜라 푸생이다. 
곰브리치는 '~주의'로 분류하는 다양한 예술사조를 중시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미술(예술)사에서의 '변혁'들은 예술의 등불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들고 도전하는 수많은 '미술가'들이 만들어간다. 곰브리치는 '미술가'들에 주목하지만 대중들은 미술가들의 특징을 기억하기 위해 다소 도식적이지만 예술사조 별로 그들을 분류해볼 필요도 있다. 그래서 나는 니콜라 푸생을 '고전주의자'로 특정한다. 
고전 시대에 대한 지적 연구와 이상적 고전미를 예술로 실현한다는 푸생의 거만한 자부심은 그의 자화상에 배치한 여신의 아이콘에도 보인다. 좌측 그림의 여성 이마에 장식된 '제3의 눈'은 '진실'을 보는 눈을 상징한다. 푸생 자신은 고전적 아름다움이라는 '진실'을 볼 수 있다는 지적인 '고전주의자'의 자부심이다.

루벤스로 대표되는 바로크식 '대중주의'와 다른 길을 선택한 '고전주의' 대가 푸생은 결국 이탈리아에서 명성을 날렸고 조국인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이탈리아산으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39점의 푸생의 대작들 중 31점을 이탈리아로부터 구입한 장본인이다. 지적이고 이상적인 고전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푸생의 거만한 '고전주의'는 절대왕정 시대의 절대권력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이러한 '고전주의'는 장대한 바로크 이후 화려한 로코코 시대를 지나 18세기 자크루이 다비드의 '신(新)고전주의'로 이어지는데, 유럽의 절대권력자를 꿈꾸던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Louis Napoleon Bonaparte : 1769~1821) 1세는 다비드를 궁정화가로 두고 본인의 초상화와 대관식 장면 등을 최고로 이상적이며 웅장하게 그려지기를 희망했다. 


"앵그르는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그려서 유명해진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 1748~1825)의 제자였는데, 오랜 기간 이탈리아에 거주하면서 남성적이고 딱딱한 역사화보다 우아한 여성미를 그리는 쪽이 자신에게 맞음을 깨닫는다. 옳은 판단이었다. 그의 그림에서는 치밀한 사실적 묘사와 달짝지근한 여성의 나신이 훌륭하게 어우러지는데, 이 그림(<그랑드 오달리스크>)이 좋은 예다."
- [욕망의 명화], <1-4. 흰 뱀처럼>, 나카노 교코, 2019.


자크루이 다비드는 나폴레옹처럼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나폴레옹은 혁명으로 조직된 국민군의 젊은 장교였고, 다비드는 가장 급진적인 자코뱅파였다. 나폴레옹은 대혁명의 정파투쟁 혼란 속에서 혁명을 배반하고 황제가 되었으며, 단두대로 끌려가는 프랑스 마지막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조롱하는 스케치를 그렸던 다비드는 자코뱅파의 지도자 로베스피에르가 얼마 후 단두대에서 목이 달아나던 때 이미 혁명을 배신하고 권력자의 편에 섰다. 결과는 왕정을 복고한 나폴레옹 황제의 최측근 궁정화가였다.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Jean -Auguste-Dominique Ingres : 1780~1867)는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의 제자였다. 다비드처럼 나폴레옹 황제의 초상을 그리던 앵그르는 19세기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 1798~1863)의 '낭만주의'와 대립하던 '신고전주의'의 적자였고 왕립 아카데미를 대표했다. 앵그르는 또한 19세기 출현하기 시작했던 '인상주의'를 배척하고 이 새로운 '인상주의' 화풍의 신예들을 미술계의 황야로 내몬 장본인이었다. 그의 작품은 푸생의 '고전주의'와 다비드의 '신고전주의'를 잇고 있지만, 고전적 남성미가 아닌 여성미가 주전공이었다. 당시 유럽은 동방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페르시아' 풍의 화려함과 사치, 방탕함 등이 유행했는데, 앵그르의 대표작은 '하렘(성역)'이라는 오스만식 비밀의 방(오달리스크)에서 목욕재개하고 술탄을 기다리는 후궁을 그린 <그랑드 오달리스크>와 역시 여성 나체의 향연인 <터키탕>과 <목욕하는 여인>, <샤를 7세 대관식의 잔다르크> 등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상주의'를 부정한 앵그르의 화풍은 이후 '인상주의' 대가인 르누아르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니 역시 세상만물은 '대립(맞섬)'과 '연결(얽힘)'이 교차하고 난무하는 '변증법' 또는 '맞얽힘'의 원리가 지배한다.


"앵그르와 그 유파가 '장중한 양식(Grand Manner)'에 몰두하여 푸생과 라파엘로를 찬탄하는 동안, 들라크루아는 베네치아파와 루벤스에 주목함으로써 감식가들을 놀라게 했다."
- [서양미술사], <25장. 끝없는 변혁>, 에른스트 곰브리치, 1950.


17세기 '고전주의자' 니콜라 푸생의 대표작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에 나오는 '아르카디아(Arcadia)'는 한적한 시골의 목가적 이상향의 상징이다. '아르카디아'는 원래 황량한 산골마을로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산양인 고대 그리스 신화의 반인반수 신인 '판(Pan)'을 숭배하는 지역이다. '판'이라는 용어는 '세상 어디에도 있는 전부'라는 의미인데, 고대의 범신론적 사상이 녹아있다. 
그림에는 '판'의 여사제로 추정되는 여인이 중앙에 서 있다. 아마도 그녀는 석곽에 적힌 "Et in Arcadia ego!"를 발견하고 놀라서 들여다보는 다른 목동들처럼 실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전적 미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관념 혹은 '성상(아이콘)'일 수도 있다. '아르카디아'라는 이상향에도 존재하는 '나(ego)'는 비슷한 소재를 그린 구에르치노 같은 이전 화가들의 전작에 의하면 곧 '죽음(해골)'을 의미한다. 
이상향인 낙원에도 '죽음'은 존재한다는 뜻이다.


[무서운 그림] 시리즈 등으로 미술사의 대중화를 꾀하는 일본의 독일미술사학자 나카노 교코는 [처음 가는 루브르](2013)와 [욕망의 명화](2019) 등의 미술대중서를 지속적으로 내면서 미술사 속 명화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 가는 루브르]는 루브르에 처음 가면 꼭 봐야 할 작품들을 엄선하여 소개한다. 
[욕망의 명화]는 기존 [무서운 그림] 시리즈와 그 뒤를 잇는 후속작으로 [문예춘추] 같은 문예잡지에 연재하는 그녀의 글들을 편집하여 묶은 모음집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미술 이야기는 모든 곳에 깃든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다. 
나카노 교코는 미술사에 관심있는 독자로서 내가 추천하고 싶은 작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푸생의 '고전주의'와 다비드를 거쳐 19세기 앵그르로 이어지는 '신고전주의'의 물결은 '아르카디아'라는 고전적 이상주의를 지향한다. 그러나 그 이상향에도 '죽음'이 존재한다. 
'고전주의'는 '낭만주의'와 대립했지만 미술사에서 이어지는 전후기 '인상주의'와 함께 연결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변증법'과 '맞얽힘'의 관계다. 
고전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무섭고도 낭만적인 죽음 또한 그렇다.


"Et in Arcadia ego(I'm also in Arcadia)."
"나(죽음) 또한 '아르카디아(낙원)'에도 존재한다."

***

1. [처음 가는 루브르](2013), 나카노 교코, 지종익 옮김, <아트북스>, 2016.
2. [욕망의 명화](2019), 나카노 교코, 최지영 옮김, <북라이프>, 2020.
3.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1950), 에른스트 곰브리치, 백승길/이종숭 옮김, <예경>,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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