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B - 3집 The Third Wave [재발매]
공일오비 (015B) 노래 / 대영에이브이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옛생각을 끊어야지...]


중년이 꺾어지고 또 꺾어지는 이 가을에,
오랫만에 듣게 된 내 어릴적 대중가요를 기화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부질없고 찌질한 내 옛 시절이 자꾸자꾸 떠올라 끊었던 담배를 사러 그 새벽에 기어이 뛰쳐나가고야 말았다.


1. 'Santa Fe' - [015B] 3집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 효종이와 우리집 반지하 방에서 함께 살았다.
등교 10분 거리라 같이 거의 지각하면서.

대입이 끝난 후 효종이는 구리 돌다리 사촌누나 집으로 홀연히 떠났고,
나는 내 '서정의 기원' [015B]의 '세번째 물결' 뒷면 첫곡 'Santa Fe'를 들으며 망우리 공동묘지를 넘어 친구를 찾아갔다.
형들이 많아 조숙했던 효종이는 '비틀즈' 밖에 모르던 내게 '팝송'이 뭔지 가르쳐주었고, '개그욕심'을 일깨워 주고는 기약없이 떠난 터였다.
그렇게 다가올 스무살에는 오로지 나 혼자 '개그'를 해야했다.

이 곡을 떠올리면,
92년 말 93년 초 그 겨울길과,
새로 시작될 우리들의 불안한 청춘과,
겨울입김을 담아 내뿜던 담배연기에 실린 우리들의 농담이 짙게 배어온다.


2. '여름 이야기' - [무한궤도] 1집

"잊어버렸던 첫사랑의
설레임과 떨려오는
기쁨에 다시 눈을 감으면
너는 다시 내곁에 예쁜
추억으로 날아들어
내 어깨 위에 잠드네~"
- '여름 이야기', [무한궤도] 1집, 1989.

고등학교 때 친구 철호네 집에서 처음 알게 된 [무한궤도 1집] '여름 이야기'를 들으면,

동대문구 이문동 충남수퍼 앞 횡단보도와 그곳에 서 있는 여자아이가 왠지 내게도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혼자 좋아했던 오미나랑 고등학교 때까지도 우연히 마주치면 뒷모습까지 계속 눈으로 쫓던 김화영이 생각난다.

물론,
찌질하고 못생겼던 나는 말 한마디 붙여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무한궤도]의 '여름 이야기'를 흥얼거리면, 그 여학생은 "예쁘게 날아들어 내 어깨 위에 잠들었다."

아울러,
내게 [무한궤도] 뿐만 아니라 너무도 많은 것을 가르쳐주면서 초딩때부터 줄곧 붙어다녔던 내 오랜 친구 철호가 늘 건강하게 나랑 오래오래 붙어서 놀아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3. '눈물나는 날에는' - [푸른 하늘] 2집

"나에게 올 많은 시간들을
이제는 후회없이 보내리
어두웠던 지난날을 소리쳐 부르네
아름다운 나의 날을 위하여~"
- '눈물나는 날에는', [푸른 하늘] 2집, 1989.

중학교 때는 큰 누나가 이선희, 셋째 누나가 전영록에 빠져 카세트 테이프를 사댔는데 나는 레코드점 한 번 못 가봤다.
그 때는 '좀 놀아보이던' 키 큰 친구 민상이가 멀리서 놀자고 불러도 삥뜯길까봐 도망가던 내 인생의 '중세 암흑기'였다.

고등학교 올라가서 친구들을 많이 만나 내 인생은 '근세'에 접어들었는데, 친구들 생일선물 사려고 레코점을 몇 번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생일이 세 개나 되던 민상이로부터 '푸른 하늘'과 '윤상'을 알게 되었다. 특히 [푸른 하늘] 테이프는 민상이에게 한 번 빌리면 반납 안하고 '존버'하다가 수차례 독촉을 받고 거의 절교 전 결국 테이프 다 늘어진 다음에 돌려줬다.

1981년에 인천에서 서울로 올라와 살던 '이오사' 높은 구석집과 여인숙 단칸방에서, 일요일 아침 KBS에서 하던 [디즈니]와 MBC '명작만화'를 누나들과 옹기종기 보던 어린시절도 흐리게 떠오른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아마 그 여인숙에서 잠깐 본 것 아니었을까.

아무튼,
원래부터 심하게 구겨져 있던 가세가 펴진 적이 없던 어린 나와 민상이는 이제 어른이 되어 꼭 남들처럼 풍족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4. ...
담배를 안 피우려면,
옛생각을 먼저 끊을 일이다.


(2020.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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