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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 지식의 대통합 ㅣ 사이언스 클래식 5
에드워드 윌슨 지음, 최재천.장대익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4월
평점 :
미래를 위한 '실존적 보수(보존)주의' 혹은 '보수(보존)적 실존주의'
- [통섭(統攝/Consilience)], 에드워드 윌슨, 1998.
'통섭(統攝/consilience)' :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귀납'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
- [통섭](1998), <옮긴이 서문>, 에드워드 윌슨, 최재천 옮김, 2005.
유발 하라리로 촉발된 '빅 히스토리'는 인류의 역사를 '역사학' 자체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진화생물학과 기후생태학, 그리고 특히 하라리에게는 '신'의 창조적 영역에 도전하는 미래적 인류의 과학기술과 접목해야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관점이었다.
언어와 신화에 의한 1차 '인지혁명'과 밀의 기생유전자에 속은 인류가 정착을 하게 된 2차 '농업혁명', 그리고 현대의 3차 '과학혁명'을 통해 진화해 온 '(호모) 사피엔스'는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미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면서 고대로부터 '신(神)'만이 기획하던 '영생'의 길을 인간 스스로 열어갈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게 유발 하라리의 '빅 히스토리'적 전망이다.
우리의 지리학자 박정재 교수 또한 인류의 기원으로부터 진행되어 온 진화사 일체를 기후생태적 지리학의 관점에서 돌아보며, [총,균,쇠](1997)의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사피엔스](2011)의 유발 하라리가 이끄는 '빅 히스토리'가 '인문학'이라기보다는 "인문학의 한 분과로서의 역사학 외에도 천문학, 지질학, 기상학, 해상학, 생물학, 인류학, 고고학, 지리학 등 다양한 학문이 서로 얽혀 진행되는 학제 간 연구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준다"는 매혹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인류의 역사는 '역사학'만으로는 더 이상 설명이 안 된다.
21세기 초 과학과 인문학을 아우르는 '빅 히스토리'의 열풍은 일정 정도는 20세기 말인 1997년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생리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 1937~)의 [총,균,쇠]로부터 기인한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사회과학적 '사회문화사' 또는 인문학적 '역사학'의 관점을 넘어 생태학과 기후학, 지리학 등의 관점에서 방대하게 서술하기 시작했다.
생물학, 기후학, 지리학 등의 '자연과학'이 사회학, 정치경제학 등의 '사회과학'과 교차하고, 철학, 문학, 역사학 등의 '인문학'의 차원에서 융합되는 이 과정이 바로 '통섭(統攝/Consilience)'이다.
우리의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스승인 미국의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 Wilson : 1929~2021)은 1998년의 저서 [통섭]을 통해 이 과정을 '지식의 대통합(The Unity of Knowledge)'이라 규정했다.
[통섭]에서 에드워드 윌슨이 정의하는 '통섭' 관련 대표적 문장들을 몇 가지 인용해 본다.
"'통섭(統攝/consilience)'은 '통일(統一/unification)'의 열쇠이다. 나는 이 용어를 '정합(整合/coherence)'보다 더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통섭'은 '정합'의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 하나만을 뜻할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섭'이라는 용어는 그 '희귀성' 때문에 그 의미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용어는 (19세기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이 1840년에 [귀납적 과학의 철학]이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설명의 공통 기반을 만들기 위해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한 이론을 연결함으로써 지식을 통합하는 것'을 뜻한다."
- [통섭], <2장. 학문의 거대한 가지들>, 에드워드 윌슨, 1998.
"... '통섭(統攝/consilience)'... 다른 분야에서 탄탄하게 검증된 지식에 순응하는 어떤 분야의 단위와 과정은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일관성'의 측면에서 더 우월하다고 입증되었다."
- [통섭], <9장. 사회과학>, 에드워드 윌슨, 1998.
"... 한 가지 부류의 설명... 그 설명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수준의 시공간과 복잡성을 넘나들어 결국에 '통섭'이라는 방법으로 여러 분과들의 흩어진 사실들을 통일한다. '통섭'은 '봉합선이 없는 인과관계의 망'이다."
- [통섭], <12장.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에드워드 윌슨, 1998.
"'통섭(統攝/Consilience)' 세계관의 요점은 인간 종의 고유한 특성인 문화가 자연과학과 인과적인 설명으로 연결될 때에만 온전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여러 과학 분과들 중에서 특히 '생물학'은 이런 연결의 최전선에 있다."
- [통섭], <12장>, 에드워드 윌슨, 2005.
지금의 과학자들에게 '과학자(Scientist)'라는 말을 안겨주었다던 19세기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 : 1794~1866)이 처음 사용했다는 '통섭'은 원어로 'consilience'인데, [통섭]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은 '과학'과 '인문학'을 아우르는 '지식의 대통합'을 'unification(통일)'이나 'coherence(정합)'보다 'consilience(통섭)'으로 선택했다. 이유는 우리말로 잘 이해가 어렵기는 하나,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 하나만을 뜻하기 때문"이며 '희귀성'으로 "그 의미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라 쓰고 있다([통섭], <2장>).
아마도 일반 용어로 '합일(合一)'이라고 번역될 수 있을 'consilience'가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한국 제자인 최재천 교수에 의해 '통섭(統攝)'으로 번역되었다.
최재천 교수는 [통섭]의 <옮긴이 서문>에서 저자 윌슨의 위와 같은 용어선택 사상을 이어받아 고심 끝에 '통일'이나 '정합'이 아닌 '통섭'으로 정한 듯 한데, 과연 '통섭'이라는 단어 자체가 '희귀성'을 갖고 있기는 하다.
'통섭'에 관한 위 인용문들을 통해 내가 이해하는 '지식의 대통합'으로서 '통섭'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희귀성'으로 인한 의미 보존.
둘째, 자연과학적 '귀납추론'을 통한 엄밀성.
셋째,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영역에서도 여전히 탄탄하게 검증되는 '일관성'.
위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에드워드 윌슨이 정의하는 '통섭'은 "설명의 공통기반을 만들기 위해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한 이론을 연결함으로써 '지식을 (대)통합'하는 것"([통섭], <2장>)이 된다.
"과학은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인류가 뽑아든 마지막 검(劍)이다."
- [통섭], <4장. 자연과학>, 에드워드 윌슨, 1998.
'통섭'을 주장하면서 생물학자로서 에드워드 윌슨은 자연과학의 한 분야인 '생물학'을 '최전선'([통섭], <12장>)에 둔다.
그에게 '사회과학'은 그 자신의 영역에만 머무는 '환원주의(reductionism)'에 더욱 매몰된 결과 "사회에서 '마음'과 '뇌'로 이어지는 여러 수준들을 관통하는 '인과적 설명망'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이 실패로 인해 '사회과학'은 "진정한 과학이론의 본질을 결여하고 있다"([통섭], <9장. 사회과학>).
자연과학자 윌슨에게 그나마 '과학'적으로 간주되는 사회과학 분야는 고도의 수학적 모델로 사회현상을 설명하려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이다. 물론 이런 경제학 또한 자신의 영역에만 머무는 '환원주의'로는 안되고 인간의 '뇌'와 '유전자'를 연구하는 '생물학'과 '마음'을 연구하는 '마음의 과학'인 '심리학'과 융합되어야 진정한 과학이론이 된다.
현재 주류 경제학에서도 요원한 길이다.
'생물학', 세부적으로 '뇌과학', '진화생물학' 등의 귀납적인 과학의 연구방법을 우선시하지만, 다소 부족한 사회과학도 위와 같은 자연과학의 방법을 통해 일관된 인과관계의 연결망을 구성하면서 과학이 이룬 이 지식의 성과들을 인류사에 적용하는 '인문학'의 지휘 하에 '일관성'의 이름으로 대통합되는 지식의 본연이 바로 에드워드 윌슨이 주장하는 '통섭'이다.
"수십만 년의 구석기 역사 속에서 인간의 특정한 '후성규칙'들을 규정하는 유전자들은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점점 증가해 종 내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런 수고 덕분에 '인간 본성'이 탄생한 것이다."
- [통섭], <8장. 인간 본성의 적응도>, 에드워드 윌슨, 1998.
이로 인해 인류사의 '빅 히스토리'는 '유전자'와 '문화'의 상호작용으로 '인간 본성'을 구명할 수 있게 된다. '인간 본성'이란 선험적이거나 '초월론'적인 것이 아니라, 인류 유전자의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은 '자연선택'의 유구한 시간이 각인된 특질들이 수십만 년의 유전을 통해 인간의 '마음'에 전해지고 새겨지며 일정의 '대수의 법칙'처럼 예측되는 일종의 '후성규칙'이다. 이것이 과학자로서의 윌슨이 '인간 본성'에 관해 주장하는 '귀납적'이자 '유물론'적인 규정인 것이다.
'예술'은 인류의 오래된 '본성' 중 하나인데, 예술에 대한 '해석'은 예술과 과학의 교차점이며, '유전자'와 '문화'의 '공(共)진화'는 윌슨이 보기에 '뇌과학', '심리학', '진화생물학'의 "연구결과에 가장 잘 부합하는 과정"([통섭], <10장>)이다.
"윤리적 격률은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신의 계시나 인간 세계 바깥에서 오는 천상의 메시지와는 전혀 다르다. 또 그것은 정신의 비물질적 차원에서 울려 퍼지는 독립적인 진리와도 다르다. 그것은 오히려 '뇌'와 '문화'의 '물리적 산물'에 가깝다. 자연과학들에 대한 '통섭(統攝/Consilience)'적 관점에서 보면 윤리적 격률은 사회 계약의 원리들이 규칙들과 명령들로 굳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 사회의 성원들이 다른 이들도 이에 따르기를 바라면서 기꺼이 공동선을 위해 받아들이는 행동 코드들인 것이다.'
- [통섭], <11장. 윤리와 종교>, 에드워드 윌슨, 1998.
이렇게 '생물학'과 '인문학'의 '통섭'으로 보는 '윤리적 격률' 또한 '뇌'와 '문화'의 "물리적 산물"([통섭], <11장>)이 된다.
"관념은 인간 두뇌라는 물질이 만든 최고의 '물질적 산물'이다"라고 단언한 20세기 초의 혁명가이자 변증법적 유물론자였던 레닌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렇게 원래 '철학'의 이름으로 원시 '과학'들이 통합되어 있던 고대 그리스 사상은 현재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환원주의'를 거쳐 다시 미래의 '통섭'으로 '재통합'되는데, 윌슨은 이를 '이오니아의 마법(Ionian Enchantment)'이라고 부른다([통섭], <1장>).
"우리는 새로운 (보수적/보존적) '실존주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키에르케고르나 사르트르의 (개인주의적) 낡은 부조리적 '실존주의'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통합된 지식'(통섭/統攝/Consilience)만이 정확한 예견과 현명한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는 '실존주의' 말이다... '통합된 지식 체계'(통섭)는 아직 탐구되지 못한 실제 영역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 [통섭], <12장>, 에드워드 윌슨, 1998.
이제, 20세기 말의 '통섭'적 '빅 히스토리'를 주장하는 윌슨의 결론이다.
20세기 말의 그가 전망하는 인류의 미래는 기후생태 위기로 인해 다소 암울하지만, 21세기 초 신의 자리를 대체하는 '호모 데우스'를 가정하는 유발 하라리 못지 않게 낙관적이다.
세계인구 60억 명이었던 20세기 말에 윌슨이 예상한 25년 후의 세계인구는 80억 명이었다. 지금 2025년의 세계 총인구는 결국 82억 명 이상이 되었고, 25년 전 윌슨의 결론은 인류가 '통섭'을 통해 기후위기를 제어해야 하고 또한 그럴 능력이 있다는 희망이었다.
에드워드 윌슨은 결론에서 '보수주의'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보수주의'는 영미식 정치사상으로서의 '자유지상주의'가 아니다. 지구환경과 인류생존을 지키는 '보수주의', 즉 '보존주의'([통섭], <12장>)를 의미한다.
여기에 '개인주의적' 실존주의를 넘어 인류의 '실존'을 고민하는 인류의 철학으로서 집단적 '실존주의'가 이어서 등장한다.
물리학과 화학이 오래전 생물학의 발전을 견인했듯,
이제는 뇌과학과 진화생물학, 유전자공학 같은 생물학이 사회과학을 견인하고,
궁극에는 인문학의 차원에서 '통섭'이라는 '지식의 대통합'을 이루는 세계관.
'통섭'의 이름으로 이렇게 결합된 '보수(보존)적 실존주의' 또는 '실존적 보수(보존)주의'가 에드워드 윌슨이 [통섭](1998)의 결론으로 말하는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는 사상이다.
"정말 자유로운 최초의 종인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를 만들어 낸 자연선택을 해제하려 하고 있다. 우리의 자유의지 바깥에는 유전적 숙명도, 우리의 갈 길을 알려주는 길잡이별도 없다. 인간 본성과 인간 역량의 유전적 진보를 포함하는 진화는 이제부터 도덕적, 정치적 결정으로 조절되는 과학기술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우리는 곧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 보고 어떻게 되고 싶은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은 끝났다. 이제 메피스토펠레스의 진짜 음성을 듣게 되리라."
- [통섭], <12장>, 에드워드 윌슨,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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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섭(統攝/Consilience) - 지식의 대통합](1998), Edward Osborne Wilson,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5.
2. [사피엔스](2011), 유발 하라리, 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1.
3. [호모 데우스(Homo Deus)](2015), 유발 하라리, 김명주 옮김, <문학과 사상사>, 2017.
4. [총,균,쇠](1997), 제러드 다이아몬드, 김진준 역, <문학과 사상사>, 1998.
5. [기후의 힘], 박정재, <바다출판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