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술사 1 - 기억을 지우는 사람 아르테 미스터리 10
오리가미 교야 지음, 서혜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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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잊고 싶은 기억을 지워준다는 기억술사..가 있다...라는 도시괴담에서 시작한다.

도시 괴담 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훨씬 전부터 곰곰 생각해보면 시대를 걸쳐

괴담은 이어져 내려왔고 어린 아이들은 그걸 사실인냥 믿고 공포에 떨곤 하였다.

내가 아주 어렸을때는 "망태 아저씨" 이야기가 있었다.

너도 나도 그렇게 넉넉치 못했던 시절..커다린 망태를 등에 지고 다니며 돈이 될만한 

헌옷이나 종이, 폐품을 줏으러 다니던 넝마주의를 망태 아저씨라 불렀고.

그 망태 아저씨가 아이들을 잡아서 망태기에 넣고서는 아이들이 필요한 데가 팔아버린다는

이야기에 동네 꼬마들이 망태 아저씨만 지나가면 개장수를 만난 개들처럼 절절거리거나

울음부터 터트리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때쯤에는

국적도 다른 "홍콩 할매" 괴담으로 해만 지면 애들이 겁을 내며 밖을 못다녔던 적이 있다.

이 홍콩 할매 괴담은 ​9시 뉴스에도 나올 지경이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런 도시 괴담은 하나씩 있었다.

기억술사 1 : 기억을 지우는 사람.. 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오리가미 교야 라고 하는 작가의 작품이다.

비교적 신인 작가인 오리가미는 이 작품으로 2015년 제 22회 이본 호러소설 대상에

응모하여 독자상을 수상하였다.

독자상이라는 말이 보여지듯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오리가미 작가에게 표를 줬다는 뜻이니

독자들로 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책임이 틀림없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잊고 싶은 기억들이 한두개씩 있다.

생각만 해도 낯뜨거워지고, 화가 나고, 의기소침해지는 그런 기억들 말이다.

나 또한 그런 기억들이 있다.

이 나이만큼 살아 오다보니 다소 그런 기억들이 희석되어 조금 희미해진 것 뿐이지.

까맣게 고스란히 잊혀지는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기억들일 수로 글자그대로 까맣게 잊는건 정말 불가능하다.

잊혀질 수만 있다면 ​뼈라도 발라 줄 정도로 괴로운 기억이 있다면..

그 기억 때문에 사람이 죽고 살 수도 있는 거라면...

그 기억을 지워주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기억을 지우건가요..?

대학생 료이치는 선배인 교코를 짝사랑 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 치한한테  당한 트라우마로 인해 혼자 밤길을 걷지 못한다.

료이치는 그녀가 공포를 극복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그녀는 치유되질 못할 공포에

갇혀 있는듯 했다.​ 그러던 그녀는 기억술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되고..

한참 후에야  그녀를 만나는데..

 

그녀 곁으로 달려가면서 큰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교코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멈춰 서서 ​돌아보더니 의아한 얼굴을 했다.
“무슨 일이에요? 학교에도 안 오고, 휴대전화는 연결이 안 되고…… 

더구나 이런 캄캄한 길을 혼자서.”
“저어.”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교코는 나의 말을 막았다.

“누구세요……?” 
순간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선배?”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지는 않았다.

목소리만으로는 사람을 식별할 수 없더라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 보고 있는데 나를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료이치인데요.” ​

짝사랑 하던 그녀는 죽고 싶을 만큼 그녀를 괴롭히던 기억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그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고 말았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 그녀는 기억술사를 만난게 틀림없다.​

기억술사는 해질녘에 녹색 벤치에서 기다리면 나타나고,

얼굴을 봐도 그 기억조차 사라지기 때문에 그의 정체를 아무도 모르고

기억술사가 한 번 지운 기억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호러 소설이라고 했지만 ​무섭지 않다.

오히려 참 애잔하다. 안타깝다.

구성이 탄탄하고 전개도 빠른 편이라 지루할 틈이없다​

이 작품이 1편을 발표한 후에  이어 2편, 3편이 만들어진 이유를 알것같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달리 독자상을 받은게 아니구나 싶었다...

나는 미스테리하지만 로맨틱 하고.. 코믹하지만 호러스럽고....

이렇게 절묘하게 두쟝르가 섞이는 것에 비교적 약하다..

이 작품은 미스테리하지만 비교적 덜 호러스럽지 않고.. 로맨틱 했다.

이제 나는 해질녘 벤치에 앉게 되면..혹시 내가 앉은 벤치가 녹색인가하며

벤치를 살펴볼 것이며..

기억술사가 말을 걸어오면 어쩌지 하면서 조건 반사적으로 그를 기억하리라..

그리고 "내 소중한 사람들도 함께 잊는야 한다면..차라지

내 기억은 그대로 놔두라" 라고 말해야지..하면서 혼자 대사를 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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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게스트하우스 100 - 진짜 일본을 만나다
마에다 유카리 지음, 김수정 옮김 / 즐거운상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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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업상, 그리고 개인적인 사유로 일본을 다른 어떤 나라보다 자주 방문한다.

당연히 업무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곳으로 숙소를 정하게 된다.

말하나 마나 대부분이 교통이 편리한 호텔이다.

호텔은 말 그대로 지불한 가격만큼의 편안한 잠자리와

편리한 부대시설을 제공한다.

그런데 그게 다다.

밋밋하다. 지루하다. 건조하다.


어느 호텔을 묵든 3일 이상 지나고 나면..

내 집이 그립다.

업무상이든 개인적인 여행이든 집을 떠나왔으니 뭔가

특별한 걸 원하기 마련이다.

아늑하지만 뭔가 설레임이 가득한 그런 여행 말이다.

그런 내 기대를 채워주기엔 호텔은 식상하다.


 

그러던 차에 일본 게스트하우스 100 이라는 책을 만났다.

게스트 하우스는... 요즘 한국에서도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한옥을 개조한 게스트 하우스는 많은 외국인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받고 있다.

일본에는 어떤 게스트 하우스들이 있을까?

내가 자주 가는 동경에도 꽤 괜찮은 게스트 하우스들이 있을까?

일박에 얼마나 하지?

누가 이런 게스트 하우스를 추천하였지?

근데 이 정보 믿을만 한거지?


물음표를 몇개나 찍으면서 첫장을 열었다.


우선 이 책의 저자인 마에다 유카리

1986년생으로 일본 4대 명문 대학이라는 도시샤 대학교를 졸업하고

오사카, 도쿄를 거쳐

고향 와카야마로 U턴..게스트 하우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2011년 1월 1일부터

블로그를 시작했고 그 계기로 게스트하우스 소개 사이트인

FootPrints를 만들게 되었다

120군데가 넘는 일본 내의 게스트 하우스를 돌아다녔고

현재 운영중인 사이트에 게스트 하우스 약 300곳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그중 그녀가 가장 믿을 만하고 자신있게 권하는

100군데의 게스트 하우스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어느 정도 공신력과 믿음이 간다.



책 속으로 들어가자 제일 먼저 게스트하우스 이용 가이드가 나온다.

나 처럼 게스트 하우스 초보자에겐 꼭 필요한 요점 정리 같은 거다.

필히 외워 두어야겠다.

게다가 게스트 하우스 초심자용 Q&A도 있다.

게스트 하우스의 안전성, 언어, 통금시간, 특별히 신경써야 할 매너...까지

내가 궁금해 하던 궁금점이 한꺼번에 풀린다.


다음 장에서는 게스트 하우스 100곳의 지역별 리스트가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당황하게 된다.

나는 과거 몇 년간 일본에서 살았기 때문에 비교적 일본 지리에는

익숙한 편이다. 치바현이 어디쯤 붙었고 나라현이 어디쯤 붙었고

히로시마현이 어디쯤 붙었는지 정도는 안다.

하지만 일본의 수 많은 현들의 이름만 나열되어 있으면 솔직히 어디가 어딘지

헷갈린다. 작아도 좋으니 일본의 전체 지도가 하나쯤 나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장에서는 게스트 하우스들의 소개를 주욱 다루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지역별로 소개를 한게 아니라 테마별로 게스트 하우스를 소개했다.

예술적 느낌이 가득한 아트 게스트 하우스,일본정취 가득한 전통 가옥

게스트 하우스,Bar가 있는 게스트 하우스,

나 홀로 여행객에게도 좋은 게스트 하우스 등등..


같은 테마별로 묶여 있으니 보기에는 좋지만 테마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은

지역별로 나누어져 있는게 나에게는 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시간을 들여서 일본 전역을 차근차근 여행하는 베낭족이 아니라면

보통은 한두 군데의 지역을 둘러보고 서둘러 귀국하기 때문이니까

지역별로 위치를 상세히 알려주면 편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 장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무엇보다 가까운 역에서 찾아가는 약도가 큰 힘이 된다.

역에서부터 게스트 하우스까지의 약도도 기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즐거웠던 점은

내가 전혀 몰랐던 게스트 하우스들의 재발견 이라는 점이다.

호텔보다 더 멋지고 민박보다 세련되고 일박에 3000엔 정도라는 가격적인

면에서도 훌륭한 게스트 하우스들을 이렇게나 많이 소개를 해 놓고 있어서

이제는 밋밋한 호텔이 아닌 각양각색의 색깔과 향기를 품어내는

게스트 하우스들을 골라갈 수 있다.


최소한 홋카이도에서부터 큐슈까지 여행하고자 하는 곳에 필히 몇군데의

정말 괜찮은 게스트 하우스들이 있다는 정보를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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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목욕탕
나카노 료타 지음, 소은선 옮김 / 엔케이컨텐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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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행복 목욕탕 ー원제 : 湯を沸かすほどの熱い愛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머리속에 내내 맴돌던 말..

과연 가족이란 무엇일가?!!

끈끈한 피를 나누지 않아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감쌀 수 있는 용기와 아량만 있다면

생면부지의 사람들도 가족이 될 수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것!!

그리고 그 행복의 시작이 집이 되어야 한다는 것..!!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다. 낯선 소재가 아니다.

자칫 식상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그게 신기하다.

이 소설 속의 등장 인물들은 각자 하나씩 둘씩 커다란 슬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

혼자서 감당하려고 해도 감당이 안되는 그런 슬픔들을 티 안나게 서로 조금씩 나누고

그 상처들을 어루만져준다.

아픔은 조금씩 치유가 되어 가고 스스로 용기를 내어 슬픔을 넘어 행복을 찾는 법을

알아가게 된다. 어설프지만 간절하고 간절한 만큼 뜨겁다

마치 목욕탕의 뜨거운 물 만큼이나....

보름도 넘게 찾아 헤맸다.

얼마나 속상하고 분했던지..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게 입구에 붙여 놓은 종이는 비바람을 맞고서 이제는 너덜너덜해졌다


수증기처럼 주인이 증발했습니다.

한동안 목욕물을 데우지 못합니다 - 행복 목욕탕 -



행복 목욕탕의 주인인 아버지는 일년전 갑자기 집을 나가버린다.

그날 이후로 목욕탕 굴뚝에선 더 이상 연기가 오르지 않고 온기 잃은 목욕탕은

아빠가 없는 빈 자리에 남은 엄마 후타바와 외동 딸 아즈미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다.

학교에서 투명인간이 되고 싶은 아즈미는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

이유없는 괴롭힘으로 학교에 가기가 죽기보다 더 싫지만 엄마는 그런 아즈미를

일으켜 세워 학교로 보낸다.

나는 엄마 허리에 두른 팔에 힘을 주어 꼭 껴안았다.

엄마가 대답하듯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안심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너무너무 소리내 불러보고 싶어졌다.

"............엄마."

"응?"

"엄마."

"으응!"

"엄마, 엄마."

"으응! 으응!"

나는 엄마가 없으면 못 살 거 같다. 그러니까 되도록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지내고 싶다.


그러던 어느날 후타바는 자기 몸의 이상을 느끼고 병원을 찾게 되고..

그리고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집 나갔던 남편을 찾기위해 탐정을 고용한다.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남편 가즈히로는 9살짜리 여자 아이인 아유코와 함께 있었다.


집 나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나갈때 혼자였는데 돌아올때 혼자가 아니다.

아빠가 바람을 피워 낳았다는 9살짜리 반항기 충만한 둘째딸과 함께 돌아왔다.

얼떨결에 가족이 되어 버린다.

환자인가 싶을 정도로 씩씩하고 밝은 엄마 후타바

어른맞나 싶을 정도로 철딱서니 없는 아빠 가즈히로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내성적인 큰 딸 아즈미

친엄마한테 버림받은 반항기 많은 둘째 딸 아유코

"모레부터 목욕탕 다시 열 거야. 다들 하나만 지켜 줘,

목욕탕 일은 넷이서 다 같이 하는 거야.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가게를 다시 열려면 1년동안 잠들어 있던 목욕탕의 기능을

되살아나게 해야한다.

우리는 머저 목욕탕 청소부터 시작했다.

나와 남편은 바닥 타일과 욕조를 솔로 문지르고

아즈미는 거울고 수도꼭지를 깨끗이 닦고

아유코는 세면대와 의자를 닦기로 했다.


자신이 떠난 후에도 가족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엄마는..

가업인 목욕탕을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네 명의 가족인듯 가족아닌 가족들의 리얼 가족이야기..

눈물 쥐어짤 것 같은 소재지만 의외로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유머스럽다. 하지만 그 유머와 익살 뒤에서 숨어 있던 아픔과 슬픔이 무방비 상태로

넋놓고 있던  나를 찌른다

덕분에 무뎌있던 내 감성이 깜짝깜짝 놀라며 깨어난다.

감성이 건들린 나는 속절없이 책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게다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폭죽처럼 일이 펑펑 터진다.

응..? 이건 또 뭔 전개인거지..? 글을 읽던 나는 긴장과 호기심을

떨쳐낼 수 없다.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이야기는 각자의 시선에서 옮겨다닌다.

전혀 지루할 틈이 없다.

다음 페이지가 미치도록 궁금하다.


'엄마와 아즈미는 하나도 다르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조금이라도 엄마 딸처럼 당당해지고 싶다.

다음 순간 재빨리 의자를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그래 사치노?"

나는 말로 대답하지 않고 위에 체육복을 벗었다.

'사치노 무슨 짓이야!? 그만해! 사치노."

멈추지 않았다.

교실이 웅성웅성해진 가운데 나는 체육복 바지마저 다 벗어버리고 속옷 차림으로 서 있었다.

엄마가 사 준 브레지어와 팬티 바람으로

긴장이 절정을 치닫고 있었다.

남은 힘을 몽땅 짜내가 내가 바라는 것을 말했다.

".......교복, 돌려줘"

교실이 한순간에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사치노, 알았다니까. 일단 체육복 입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저 셋을 향해 마지막 말을 내 뱉었다.

"싫어요...........지금은........체육 시간이 아니잖아요."



오랫동안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며 괴롭힘을 당해오던 첫째 딸 아즈미.

엄마처럼 되고 싶어했고 엄마를 닮고 싶어했던 아즈미는

드디어 오래 동안의 부당한 괴롭힘을 스스로 떨쳐내고 이겨냈다.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까..

내가 가장 울컥하면서 읽었던 부분이다.

수를 쳐주고 힘껏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기특하고도 대견하다.


"있어.........."

아유코는 현관문 앞에 혼자 있었다.

배낭이랑 책가방을 양팔에 끼고 무릎에 얼굴을 파 묻고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아직 어느 쪽이 옳은 건지 답을 내지 못했다.

나와 아즈미는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히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처음으로 아유코가 가늘게 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아유코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아유코를 절망의 밑바닥에서 꺼내줄 방법을 나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래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자.

이게 내 답이다.


다음 생일날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남자를 따라 떠나버린 친모

9살 아유코는 그런 엄마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기다린다.

목욕탕에서 일을 도우며 백엔, 이백엔 푼돈을 모아

엄마를 만날 날을 위해 준비해둔 아유코..

해가 꼬박 질때까지 친모를 기다리는 아유코에 앞에 나타난 이는

후타바와 아즈미였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이들은 가족이었다.

서로의 발목을 잡는 어줍잖은 의무와 책임으로 많은 가족들이 원수만큼 서로를

증오하면 살아간다.

서로에게 원망만 가득한 이름뿐인 가족들에게 묻고 싶다.

가족이란 당신네들에게 어떤 의미인가...라고..


이 책의 마지막은 솔직히 소름끼치도록 충격적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말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가족, 행복, 흔해 빠진 이 단어들의 진짜 의미를..

유쾌하지만 슬프고 절망적이지만 행복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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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하게 산다
가쿠타 미츠요 지음, 김현화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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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20대 때..


나한테 40 이라는 나이가 올까... 라는 아주 발칙한 생각을 했었다.

나의 20대는 가만 있어도 반짝반짝 빛이 났고 자신감으로 가득했으니까..

낯 뜨거운 자랑질 같지만 이때는 누구나 존재 자체만으로 빛이 날 때다.

그러니 손가락 질은 말아주시라..


밤을 새워 나이트 클럽에서 놀아도 담날 말짱하게 일어나 학교를 갔다.

말 술을 마시고 변기통을 끌어앉고 토해도 담날 콩나물 해장국 한그릇이면

눈에 총기가 돌아왔다..(쓰면서도 이게 자랑인가 싶다..ㅠ.ㅠ )


신체 장기들도 성능이 좋아 숟가락을 뺏기 전까지 절대 먹는 걸 멈추지

않던 나의 어마무시한 식탐에도  위의 기능은 첨단 시설을 갖췄는지

고장 한번 안나고 다음 끼니 때가 되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세상 무서울게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호기로움도 잠시 눈 깜짝할 사이에 서른이 되었고,

숨 한번 돌리니 마흔이 되어 있더라.

그리고 그 후로도 시간은 쏜살 같이 흘러 이제 쉰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도 바로 코 앞에서..


내 얼굴은 대책없는 개기름(?) 덕분에 같은 나이 친구들보다 주름이 적다

성능 좋은 B.B크림 덕분에 기미, 주근깨도 깜쪽같이 가릴 수 있다.

염색으로 흰머리도 매력적인 갈색으로 바꿀 수 있어 오히려 더 도시 여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속임수도 밤마다 "아이쿠.. 다리야..어깨야.." 하고 내지르는 소리를

막을 수는 없더라.

책을 읽는데 불편하기 시작하고, 바늘 귀에 실을 꿰는게 슬슬 짜증나기  시작한다.

하루 밤 잠을 설치면 3일 낮이 괴롭다.

쇠도 녹일듯하던 나의 위장도 나이가 들어 역류성 식도염에 걸리고 나서부터는

기름진 고기 몇 점에 볼쌍사납게도 끄억끄억 신트림을 한다.

소주 한 병이면 세상이 노골노골 해져보이고.. 두 병이면 너덜더덜 해진다.

'예전 같지 않은 몸'을 느끼면서 나는 내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내 몸과 타협하는 것!! 

요즘들어 더욱 심하게 공감한다.


반갑게도(?) 이런 나와 꼭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작가의 책을 발견했다.

일본 작가인 가쿠다 미쓰요(角田光代)의 [무심하게 산다]...라는 책이었다.

원제 わたしの容れもの.

1967년생인 작가는 나보다 두어살 위다.

그러니 보는 몸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도 비슷하게 듣고 비슷하게 반응하나 보다.

나만 이렇게 쪼그라드는게 아니구나. 다들 마찬가지구나..하는 공감은

묘하게 사람을 안심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괜히 신이 났다. 나 혼자 반가워서 작가한테

동질감과 연대감마저 생겨 친한 동네 언니 한명 얻는 느낌이었다.

작가의 말에 낄낄 웃기도 하고.. 맞네 맞아 하면서 "작기 언니"에게

완전 빙의되어 코 끝이 살짝 찡해지기도 하면서 자유자재로 감정 이입이 되었다.


적지 않은 나이를 먹은 여성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익숙한듯한 낯설음'

그것이 50여년 같이 해온 너무나 익숙한 내 몸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낯설음을 느낄 때

생경한 그 무엇인가 가슴을 친다.

아픔과 슬픔이 묘하게 섞인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 달랐다.​ 

가쿠다 미쓰요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놀랐던게 한 가지있다.

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를 적은 그녀의 에세이에 격하게 공감하면서도

내가 감히 범접하지 못한 부분이 그녀가 "나이듬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이드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라니.. 두려움이 아니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덜 늙어보일까 젊게 살까

전전긍긍 고심하곤 하다. 보톡스도 맞고, 레이저 시술로 기미, 주근깨, 점도 다 빼고

마사지 샵에서 얼굴 경락을 받으며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쓰길 주저하지

않는다. 확실히 외관은 리모델링하면 깔끔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내부 철골등은 이미 삭고 있다.

허무하고 이렇게 삭아가는 건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세월에 맞서기보다는 지금의 나와 사이좋게 살아가는 법을 택했다.

덕분에 그녀가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는 여유로움이 있다.

우아함이 있다.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온다.

잔고가 넉넉한 통장을 갖고 있는 사람같다.

괜히 부럽다. 살짝 질투가 날듯도 하다.

(하지만 처음에 내 맘대로 정한 동맹의식 때문에 질투는 참기로 한다)

응원을 하고 닮고 싶다.

동네 언니 같은 작가와 함께 그렇게 여유롭게 나이를 먹으며

슬로우 슬로우 퀵 퀵..하고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가는 내 몸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그렇게 나이를 먹고 싶다.


갱년기인가...하고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 분이라면

절대 이 책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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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괜찮습니다만,
이윤용 지음 / 예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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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작가이신 이윤용님의 책을 읽는 건 처음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만,' 이라는 책을 읽으며 나는 또 한번 생각했다.

그래..맞아.. 방송 작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지...


글을 맛깔스럽게 쓸 줄 아는 사람..

읽는 사람이 무의식 중에 "힛~!!" 하고 웃음이 나올 수 있도록

공감 할 수 있는 글을 쓸 줄 아는 사람..

글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면에서 이윤용님은 타고난 방송 작가구나 싶었다.


업무가 많이 바쁘지 않을 때 사무실에서 자주 라디오를 튼다.

시간대 별로 이 채널 저 채널 돌려가며 좋아하는 디제이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라디오와 함께 한 구력이 상당한 사람들이 주로 이 방법을 택한다.

(대부분은 한 채널 고정으로 틀어놓고 듣다말다 할껄..)


가끔 라디오를 듣다 보면 오프닝 멘트가 확~~ 마음을 끌 때가 있다..

홀라당 마음을 빼앗겨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이런 멘트를 쓰는 작가가 누군지

궁금해질 때가 더러 있다.

나는 이 책을 라디오의 오프닝 멘트를 듣는 심정으로 읽었다.

(그건 아마 이 글을 쓴 작가가 방송작가라는 사전 정보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윤용님의 글을 읽는 내내 나는 유쾌했다.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이 먹고 혼자 산다는 것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다른 사람 눈에는

조금은 걱정스럽고,조금은 한심스럽고, 조금은 꾸질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40 중반에 양반다리 하고 앉은 작가의 하루하루는

결코 칙칙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당차게 살아가는 모나지 않고 동글동글 귀여운 느낌..?!?!!



여태 혼자 살아? 아무하고라도 결혼해야지.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일 없으며 백수 아냐?

그렇게 철이 없어서 어떻개 해? 맹탕이구나 맹탕..

결코 녹록지 않은 타인의 시선 속에, 저는 이제 답을 준비합니다.

- 저는 괜찮습니다만,  (서문 中에서 )

 

 

 

 

사랑에 관한 작가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일러스트 그림과 함께 가득하다.

일부러 이쁜 척 글에다 화장을 시키지 않았다.

비비크림 정도에 연한 립그로스 정도 바른 느낌의 글이다.

(여자의 민낯과 두꺼운 화장은 둘 다 부담스럽다..)


무겁지 않다. 부담스럽지 않다. 칙칙하지 않다.

그래서 독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같이 웃고

같이 욕하고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작가의 주변인들이 들려주는 결혼에 관한 이야기, 연애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작가의 연애 실패담등 다양한 경험들을 소소한 에피소드와 함께 적어내려간

시집 안간 골드미스 후배와의 수다 타임 같은 책이다.


 

 

나이에 비굴해지지 않고  사랑을 포기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혼과 사랑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싱글 여성들의 마음이 여기저기서 엿보인다.

결혼한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연애하는 친구한테 질투가 나기도 할것이다.

마냥 행복할것 같은 부부도 이혼을 하고

천년만년 변할것 같지 않은 연애도 깨지는 걸 보며

"혼자사는 내가 젤 맘 편해.."라는 생각도 들겠지.

혼자라는 두려움과 함께라는 유혹 사이에서 서성이며 앞으로도  시간들도

보내겠지만 그 어떤 선택을 하던 반짝이는 삶을 살아갈..

그대들에게 권해주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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