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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하게 산다
가쿠타 미츠요 지음, 김현화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3월
평점 :

내 나이 20대 때..
나한테 40 이라는 나이가 올까... 라는 아주 발칙한 생각을 했었다.
나의 20대는 가만 있어도 반짝반짝 빛이 났고 자신감으로 가득했으니까..
낯 뜨거운 자랑질 같지만 이때는 누구나 존재 자체만으로 빛이 날 때다.
그러니 손가락 질은 말아주시라..
밤을 새워 나이트 클럽에서 놀아도 담날 말짱하게 일어나 학교를 갔다.
말 술을 마시고 변기통을 끌어앉고 토해도 담날 콩나물 해장국 한그릇이면
눈에 총기가 돌아왔다..(쓰면서도 이게 자랑인가 싶다..ㅠ.ㅠ )
신체 장기들도 성능이 좋아 숟가락을 뺏기 전까지 절대 먹는 걸 멈추지
않던 나의 어마무시한 식탐에도 위의 기능은 첨단 시설을 갖췄는지
고장 한번 안나고 다음 끼니 때가 되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세상 무서울게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호기로움도 잠시 눈 깜짝할 사이에 서른이 되었고,
숨 한번 돌리니 마흔이 되어 있더라.
그리고 그 후로도 시간은 쏜살 같이 흘러 이제 쉰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도 바로 코 앞에서..
내 얼굴은 대책없는 개기름(?) 덕분에 같은 나이 친구들보다 주름이 적다
성능 좋은 B.B크림 덕분에 기미, 주근깨도 깜쪽같이 가릴 수 있다.
염색으로 흰머리도 매력적인 갈색으로 바꿀 수 있어 오히려 더 도시 여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속임수도 밤마다 "아이쿠.. 다리야..어깨야.." 하고 내지르는 소리를
막을 수는 없더라.
책을 읽는데 불편하기 시작하고, 바늘 귀에 실을 꿰는게 슬슬 짜증나기 시작한다.
하루 밤 잠을 설치면 3일 낮이 괴롭다.
쇠도 녹일듯하던 나의 위장도 나이가 들어 역류성 식도염에 걸리고 나서부터는
기름진 고기 몇 점에 볼쌍사납게도 끄억끄억 신트림을 한다.
소주 한 병이면 세상이 노골노골 해져보이고.. 두 병이면 너덜더덜 해진다.
'예전 같지 않은 몸'을 느끼면서 나는 내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내 몸과 타협하는 것!!
요즘들어 더욱 심하게 공감한다.
반갑게도(?) 이런 나와 꼭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작가의 책을 발견했다.
일본 작가인 가쿠다 미쓰요(角田光代)의 [무심하게 산다]...라는 책이었다.
원제 わたしの容れもの.
1967년생인 작가는 나보다 두어살 위다.
그러니 보는 몸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도 비슷하게 듣고 비슷하게 반응하나 보다.
나만 이렇게 쪼그라드는게 아니구나. 다들 마찬가지구나..하는 공감은
묘하게 사람을 안심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괜히 신이 났다. 나 혼자 반가워서 작가한테
동질감과 연대감마저 생겨 친한 동네 언니 한명 얻는 느낌이었다.
작가의 말에 낄낄 웃기도 하고.. 맞네 맞아 하면서 "작기 언니"에게
완전 빙의되어 코 끝이 살짝 찡해지기도 하면서 자유자재로 감정 이입이 되었다.
적지 않은 나이를 먹은 여성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익숙한듯한 낯설음'
그것이 50여년 같이 해온 너무나 익숙한 내 몸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낯설음을 느낄 때
생경한 그 무엇인가 가슴을 친다.
아픔과 슬픔이 묘하게 섞인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 달랐다.
가쿠다 미쓰요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놀랐던게 한 가지있다.
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를 적은 그녀의 에세이에 격하게 공감하면서도
내가 감히 범접하지 못한 부분이 그녀가 "나이듬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이드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라니.. 두려움이 아니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덜 늙어보일까 젊게 살까
전전긍긍 고심하곤 하다. 보톡스도 맞고, 레이저 시술로 기미, 주근깨, 점도 다 빼고
마사지 샵에서 얼굴 경락을 받으며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쓰길 주저하지
않는다. 확실히 외관은 리모델링하면 깔끔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내부 철골등은 이미 삭고 있다.
허무하고 이렇게 삭아가는 건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세월에 맞서기보다는 지금의 나와 사이좋게 살아가는 법을 택했다.
덕분에 그녀가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는 여유로움이 있다.
우아함이 있다.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온다.
잔고가 넉넉한 통장을 갖고 있는 사람같다.
괜히 부럽다. 살짝 질투가 날듯도 하다.
(하지만 처음에 내 맘대로 정한 동맹의식 때문에 질투는 참기로 한다)
응원을 하고 닮고 싶다.
동네 언니 같은 작가와 함께 그렇게 여유롭게 나이를 먹으며
슬로우 슬로우 퀵 퀵..하고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가는 내 몸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그렇게 나이를 먹고 싶다.
갱년기인가...하고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 분이라면
절대 이 책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