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의 삼국지 1 (라이트 에디션) - 답답한 세상, 희망을 꿈꾸다 설민석의 삼국지 1
설민석 지음 / 세계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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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고전이라는 삼국지를 읽어보았냐고 물어보면 사실 나는 조금 떨떠름해진다.

읽어는 보았지만 내용을 물어보면 잘 모르겠고, 등장인물도 주연급 몇명 정도는 알겠는데

더 깊이 들어가면 이름이 가물가물해진다.

읽은거 맞냐고 오히려 내가 나한테 물어보고 싶어진다.

서양엔 톨스토이에 가로막히고 동양엔 삼국지에 가로막혀 나의 독서 지식은

자랑은 커녕 어디가서 말꺼내기도 사실 부끄럽다.


이번에 설민석 선생(감히 선생이라는 존칭을 썼다)이 내놓으신 삼국지에 딱 꽂힌것도 이러한 나의 고전 컴플렉스를 좀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것이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나조차도 티비에서 조곤조곤한 목소리도 역사에 대해서 설명하는 그의

해박한 지식에 입이 떡 벌어지곤 했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연구를 했을까.. 만권 정도는 읽어야지 저 정도의 방대한 동서양의 역사적 조감도가 정확하게 그려질수 있겠지

평소 저자의 강의를 즐겨 듣는 나로써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귀에 쏙쏙 박히도록 정확하고 재미지게 설명하는 그 특유의 말투 그대로 책으로 옮겨놓은 삼국지를 마다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토록 끙끙대며 읽었던 (읽다 말았던가..) 삼국지를 어쩜 이렇게 야들야들하게 설명을 하고

있는지, 이건 책을 읽는건지 얘기를 듣는건지 살짝씩 헷갈리며 페이지가 팔랑 팔랑 잘도 넘어간다.

그 많은 등장 인물들 중 필요없다 싶으면 과감히 장군1, 여인1.. 처럼 간략화 해버리는 필살기도 나오니까 인물들 때문에 이야기가 헷갈릴 위험도 덜해지고

부담감도 줄어드니 읽기가 확실히 편하다.


중간 중간 끼여있는 삽화도 우리 애들 어렸을때 읽던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림체다.

덕분에 삼국지가 딱딱하지 않고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글 읽기 싫어하는 청소년들이 봐도, 나 같이 삼국지의 높은 벽에 머리 찧고 나자빠진 사람들도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좋은것 같다.

 

 


 

삼국지라는 명성답게 참 많은 버젼으로 번역이 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만화로 된 삼국지에서부터 무협지 저리가라 하는 삼국지도 있고,

유비를 세상없는 선비로 표현한 책도 있고, 반대로 약간 찌질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그리고 있는 책도 있다.

조조는 둘도 없는 간신배라 얘기하기도 하고, 최고의 지략가로 칭송하는 책도 있다.

어느쪽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사람을 평하는 것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다만 모범 답안만 있을뿐이지..

평가는 각자의 몫이니 다른 사람들의 평가도 살짝 궁금해진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궁금해지는게 한가지 있다.

1700년 전의 중국 이야기를 왜 꼭 읽어보라는 거지?

좀 고리타분 하지 않나.. 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저자인 설민석 선생은

삼국지 안의 다양한 리더들의 삶을 통해 삶의 지혜와 통찰을 깨칠수 있으며

리더십을 배울수 있기 때문에 삼국지를 꼭 읽어보라고 한다.

사회 생활을 좀 해본 사람들은 알것이다.

사회 생활하면서 제일 힘든게 뭔지를..

일주일씩, 이주일씩 계속되는 야근보다 책상 위 수북한 산더미 같은 일거리 보다 더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것이

바로 인간관계..라는 것을 말이다.


삼국지를 읽다보면 다양한 리더십과 팔로워십, 그들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인생의 참뜻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자신은 물론 조직과 사회를 성찰할 수 있다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것이다.

이정도면 삼국지를 읽을만한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왕이면 읽다 지쳐 던져 놓는 그런 책이 아니라

책을 읽으며 낄낄때고 웃기도 하고, 혀를 끌끌 차기도 하고, 등장인물에 쌍욕도 하면서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는 책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내가 읽다가 주구장창 게임만 해대는 아이들한테 슬쩍 던져줘도

어려워하지 않고 꽤나 재미나게 읽을듯 한 책이면 금상첨화이지 않을까..

세대를 아우르며 읽을 수 있는 설민석 선생의 매우매우 자상한 책!!

삼국지 라이트에디션을 권하고 싶다.

 

 


이제 삼국지2, 3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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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빌리티 교양수업 : 역사 속 위대한 여성 - 나는 알고 너는 모르는 인문 교양 아카이브 있어빌리티 교양수업
사라 허먼 지음, 엄성수 옮김 / 토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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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면 좀 있어보일려나 싶어서 펼쳐든 책이 출판사 토트에서 시리즈로 엮어나온

있어빌리티 교양수업 - 역사 속 위대한 여성 편이었다.

인문 지식에 목말라 하는 나는 항상 이런 류의 책에 꽂히곤 한다.

 

역사가 시작된 고대부터  최첨단 혁신을 걷고 있는 현대까지 한국을 비롯한 세계각국에서는

아직도 여성들이 (암묵적이거나 아님 아예 대놓고) 불평등을 당하고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사회적인 통념으로 여성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고 천대시 되는 나라들이

의의로 꽤나 많다.

솔직히 생각해보면 참 많이 아이러니하다.

지구상에 인간이란 남성과 여성, 달랑 두개의 性이 있고 각자의 성이 함께 공존하지 않으면

인류도 생존하지 못할텐데 말이다.(생물학적 용어로 번식이 불가능하여..)

이러한 남녀 불평등 현상이 2020년을 살아가는 현재까지 존재한다는 것이 

외계인 존재보다 더 불가사의 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째 여기까지 쓰고보니 페미니스트의 향기가 풀풀 풍기는 듯도 하지만

나란 사람은 남녀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게 반드시 서로에게 양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임을 밝힌다.

각설하고 책 얘기를 해볼까한다.


이 책은 영국의 작가겸 편집자 사라 허먼(Sarah Herman)이 저술한 책이다.

그녀는 다방면에서 해박한 상식과 교양을 갖춘 것으로 명성이 높다고 한다.

덕분에 독자는 저자의 지식 보따리에서 꺼내준 새로운 지식을 손쉽게 나눠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한꺼번에 103명의 인물들이 한꺼번에 우루루 쏟아져 나오니 한편으론 반갑고

한편으론 나의 뇌용량 부족으로 과부하에 걸릴까 당황스럽다.


맨 처음 우주에 간 여성은 누구일까?

다르크가 화형을 당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아인슈타인의 수학 문제를 풀어준 여자 과학자는 누구일까?

최초의 여성 수상은 누구였을까?

구혼자들에게 내기를 걸어 말 1만 마리를 챙긴 공주는?

세계에서 성차별이 가장 적은 나라는 어디일까?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편집된 것이라고?

에디트 피아프는 왜 프랑스 전쟁 포로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을까?



제목들을 훑어보면 흥미 진진한 이야기들이 많다.


각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대략 한페이지나 두페이지에 걸쳐서 소개되고 있다.

시대도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고 두각을 나타낸 여성들을 소개하고 있다.

선구자들, 사상가들, 종교와 문화, 정치, 페미니즘, 리더들, 전사와 슈퍼우먼, 죄와 벌,

미술과 문학, 쇼 비지니스..이렇게 총 10개의 파트로 나뉘어 각 파트별로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보니 시대를 뛰어넘고, 나라를 뛰어넘고, 이념을 뛰어넘어 가며 인물들을

바삐 쫓게 된다.


한 파트가 끝나면 제대로 읽었는지, 대충 읽었은지, 독자들은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파트별로 10문제씩 스피드 퀴즈가 나오는데, 이게 의외로 어렵다.

사람 이름 까먹는 것이 호박씨 까먹는 거보담 더 쉬운 나에게는 8글자 이상되는 외국인들의

이름을 외우는건 넘나 어려운 일이라 첫 문제에서 자체 채점 결과 30점이라는 미천한 점수를 받고

쇼크를 받은 후로는 스피드 퀴즈는 슬쩍 넘어가는 걸로 자신과 타협을 봤다.

정답은 책 맨 뒤쪽에 있다.

몇 십년 만에 전과 문제집을 푸는듯 했다.(그때는 꽤나 공부 잘 하는 비교적 똑똑했던 아이였는데..)



읽기도 어려운 수많은 인물들을 나열하고 필요할때 사전을 들추듯 두뇌 데이터에서 꼭 찝어서

꺼낼려면 방대한 양의 역사적인 지식과 상식을 탑재해야 할 것같다. 

돌아서면 까먹는 나이에 진입한 나로써는 작가의 방대한 지식과 상식이 부럽다.

(물론 그녀도 컴퓨터의 폴더에, 핸드폰에 저장해놓고 샤샤샥~꺼내볼거라고는 생각하지만..)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작가가 영국인이다보니 아무래도 서양사에 더 조예가 깊은 탓인지 소개되어 있는 인물도

동양인에 비해 압도적으로 서양인의 비중이 많고,

너무 방대한 양의 인물들을 다루다 보니 아무래도 깊이감이 딸리는 경향이 엿보인다.

분명 서양보다 더 심한 여성 차별을 받았을 동양에도 여성이라는 굴레를 벗고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어쩌면 목숨을 걸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맞선 위대한 인물들이 상당수 있을텐데

소개가 덜 되서 약간 아쉽다.


하지만 내가 아는 인물의 예상치 못한 점을 알게 되었다거나,

반대로 전혀 알지 못했던 인물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즐거움을 준 책이다.

인문지식 서적으로써 크게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어른들뿐만 아니라 청소년에게도 권해줄만 하다.

수 많은 인물들 중 나에게 의외의 감동을 준 에디트 피아프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발췌해서 소개하고 싶다.

노래만 잘하는 가수인줄 알았는데, 목숨을 걸고 전시에 수 많은 사람을 구했다니

그녀에게 프랑스인들이 사랑을 넘어 경의를 표하는 이유를 이제서야 조금 알것 같다.


1940년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25세였던 피아프는 노래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5년 전 파리의 홍등가에서 발굴된 키 147센티미터의 이 작은 가수는 어린 시절부터

아주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

피아프는 매음굴에서 자랐고 어렸서 잠시 눈이 멀기도 했으며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나치가 독일 군인을 위해 노래를 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녀는 프랑스군 포로도

자신의 공연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고집했다.

피아프는 또 포로수용소를 순회공연하면서 프랑스군 포로에게 몰래 지도와 나침반을

건네주었다.

베를린 인근 3-D 포로수용소에서는 모든 포로와 함께 사진을 찍겠다고 고집했다.

그 사진은 그녀의 영향력 있는 친구들에게 전달되었고 그 친구들은 그 사진을 보고

각 포로의 신분증을 만든 뒤 그들을 독일에 사는 자유로운 프랑스 노동자라고 선언했다.

두 번째 공연을 하러 그 포로수용소에 다시 들렀을 때 피아프는 그들에게 새로운

신분증을 전달하여 300명 가까운 포로가 탈출할 수 있게 했다.

피아프는 그 유명한 <장미및 인생 La Vie En Rose>등 많은 노래를 직접 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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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감상문 - 먹고 마시며 행복했던 기록
이미나 지음, 이미란 그림 / 이지앤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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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의 오복 중의 하나가 바로 치아가 좋을 것!!(알고들 계시지..)

이렇게 오복중에 하나로 꼽을 만큼 먹고 사는 일은 우리에겐 심히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다행히 우리에겐 임플란트가 있으니 치아가 안 좋아 씹고 뜯고 맛보는 즐거움을

빼앗길 위험은 적어졌으니 처음 임플란트를 개발한 의느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보릿고개가 없어진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50여년은 된듯하니

이제는 살기 위해서 먹는다기 보다는 즐기기 위해서 먹는다는 것이 맞는듯하다.

​식후감상문은 우리 주변의 흔하지만 맛난 음식들에 대한 '고찰' 이라고 해야 할듯하다.

업무를 보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한줄 먹는 김밥

기름 위에 얹고 후라이팬에 굴려내면 술안주로 손색없는 비엔나 소시지

몸이 아픈날 엄마가 끓여주시던 하얀 흰죽

신김치 한줌과 두툼한 돼지 고기 몇점 넣고 끓여 내는 김치찌개

손안가던 재료도 기름옷만 입으면 명물허전 최고의 일품요리가 되는 튀김

특별할것 없는 음식들에 대한 작가 이미나의 추억과 감상에 이미란 작가의 일러스트가

더해져 눈으로 글을 읽고 눈으로 음식을 먹는듯 하다.

매 페이지마다 식욕을 자극하는 그림과 글 덕분에

책을 펼친 그 곳이 어디든 간에 나는 얼큰한 찌개 냄새, 고소한 기름냄새,

달달하고 새콤하고 상큼한 냄새를 맡으며 참을 수 없는 허기와

음식의 유혹을 혹독하게 견뎌야했다.



물오뎅


마음에 드는 놈을 고른다.

호호, 입술로 더운 정도를 확인한다. 첫입은 간장만 찍는다.

두 입부터가 다르다. 위로 솟은 꼬치로 간장 속 양파를 찍고, 오뎅을 비스듬히 눕혀 양념을 묻힌 뒤

양파와 오뎅을 같이 먹는다. 씹히는 양파가 별미다.

꼬치 두 개를 비웠을 때, 국물을 먹으면 된다. 70도 내외로 먹기 좋게 식었다.

시동을 걸었으니, 이제 달려볼까.



흰 죽


엄마는 지금도 나를 걱정한다.

당신이 아플 때보다 내가 아플 때 더 아파한다.

그런 엄마에게 손수 죽 한 번 끓여드린 적 없는 내가 오늘 참, 밉다.

음식은 추억이고 기억이다.

이미나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추억에 빠지기도 하고

가물가물했던 희미한 기억이 또렷하게 되살아나기도 하면서

오래전의 나와 조우하기도 하였다.



작가의 글 중에 내가 뭉클했던 건 경양식 돈가스에 대한 글을 읽을 때였다.

경양식-간단한 서양식 일품요리..퍼석한 국어사전에 실린 경양식의 뜻이다.


하지만 나에겐 경양식은 진수성찬 부럽잖은 최고의 만찬이다.

내가 어렸을때 특별한 날이면 엄마는 날 데리고 경양식 집으로 가셔서

돈가스나 함박스테이크를 사주셨다.

그 당시 경양식은 왠지 차려입고 가야하는 제법 격조있는 레스토랑 축에 끼였고,

가격도 제법 했던것 같다.

솔직히 어떤 특별한 날이었는지 기억엔 없지만

엄마와 함께 먹던 두툼한 돈까스와 걸죽한 소스, 고소했던 스프 맛은

아직도 어렴풋하게 기억이 난다.

곰곰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는 토종 한국사람 입맛인데 엄마 입맛에 느끼했을

돈까스가 맛있었을까..

딸의 특별한 날을 축하해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을

이 나이가 되었어야 겨우 조금 알게 되었으니

나는 참 많이 무심했던 딸이었던 것같다.


음식이란 존재는 그 어떤 것보다 더욱 빠르고 깊게 추억으로 빠지게 하는

매개체인듯하다.

우리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마음을 나누고 정을 나눈다.

짧은 글에 실물을 꼭 빼닮은 일러스트가 더해져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음식에 대한 맛과 그리움이 가득했던 음식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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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아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북로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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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 작가는 그림동화작가로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중의 한명이다.

2010년 향년 72세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녀가 남긴 수 많은 작품들은

오랫동안 일본인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림 동화뿐만 아니라 에세이, 소설, 극본등 왕성을 작품 활동을 한 작가로 기억된다.

실제로 내가 일본에서 유학을 하던 시기 서점가에는 사노 요코 작가의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참새 방앗간 드나들듯 틈나면 들리는 헌 책방에서는 그녀의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괜찮아 라는 책은 일본에서 1986년도 작품인 [러브 이즈 더 베스트]를 제목을 바꾸고

사카이 준코(酒井順子)씨의 해설을 곁들여 다시 출판한 에세이다.

이번에 북로드를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되어져서 사노 요코 작가를 알고 있는(팬이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많아서..) 한 사람으로써 반가운 일이 아닐수 없다.


책에는 짧은 30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로 우리 주변의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희안하게도 에피소드 속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조금씩 "독특"하다.

[비가 오면 라면이 팔린다],[사람을 죽이면 안돼],[미소라 히바리를 위해서 입니다],라는 에피소드에서는

조금 특이한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가 펼쳐진다.


[비가 오면 라면이 팔린다]에서는

택시를 자주 타는 작가와 택시 기사와의 짧은 대화들이 여럿 소개되어 있다.

어느 택시 기사는 조수석에 다이쇼고토(기타와 건반악기를 합쳐 놓은 듯한 일본의 현악기)를 싣고 다니며

신호에 걸렸을 때마다 그걸 연주한다고 했다.

운전 기사는 사노 작가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택시 문을 열어주는 대신에

손님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양 본격적으로 다이쇼고토를 연주했는데

이부분에서 폭소가 터졌다. 약속 시간은 간당간당하여 속이 타는데

연주 도중에 내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했을 작가의 모습이 보여지는듯 했다.


"비가 오면 인스턴트 라면이 잘 팔린대요"라고 말한 택시 기사는 연상이지만 연상같지

않은 여자를 만나 6년째 동거를 하고 있고 그녀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그 여자는 결혼을 하자고 해도 싫다고만 한다.

하루종일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그를 기다리며 비가오는 날이면 

더더구나 밖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집에 갈때 인스턴트 라면을 사가지고 간다고 했다.

(뭐하는 여자인가 싶다.)

얼마전 이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 몰래 알아봤더니 나이가 무려 열여덟 살이 많았단다.

그래도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열여덟 연하는 택시 기사.

흠.. 다들 별별 모습으로 살아가는구나 싶었다.

내가 아는 일본의 택시 기사님들은 차안에서 손님에게 말을 많이 걸진 않는 편이지만

택시 기사님과의 에피소드가 많은걸 보면

그녀가 탄 택시의 기사님들은 그녀에게 참 많은 이야기를 하는듯하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 보니 사카이 준코씨가 책의 말미에 곁들인 '사노씨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믿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라는 대목에서 느낌표가 똬악 보이는듯했다.


​필시 그건 남을 믿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그녀의 따뜻한 성격때문일것이다.

남들이 슬금슬금 피하는 좀 이상한(?) 사람들에게 조차 그녀는 선입견을 갖지 않고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택시 기사들뿐만 아니라 전과가 있는 술취한 야쿠쟈가 전철안에서

말을 걸어왔을때도 그녀는 말을 받아주고 말을 걸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면 안돼]라는 에피소드에서는

누가 봐도 위험해!! 라며 온몸의 세포들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의 

험상궂은 아저씨가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말을 걸어오며 대부분은 사람들은 못들은 척하거나

내리는 척 하며 자리를 뜨기 마련이다.


"누님 사람을 죽이면 안돼"

술내 나는 입김이 정통으로 나를 향했다.

"아저씨 그런 짓 한 적 있어요?"

"십이 년, 십이 년이었지만 팔년만에 나왔지"

"아저씨 야쿠자였어?"


읽는 내가 '이러다 낭패보는거 아닌가' 싶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고 형무소에서 별하나를 달고 출소한 야쿠자 아저씨는

양 옆에 이쁜 여자를 끼고 하얀 머플러를 휘날리며 찍은 젊었을때의

사진 한장을 꺼내보여주며 지금은 결혼한 딸아이를 찾아갈 용기가 없다는

말을 남기고 지하철에서 내린다.

처음엔 그 야쿠자 아저씨가 무서워 조마조마했는데 나중에는 뭔가 짠~해진다.

[미소라 히바리를 위해서 입니다]는 미소라 히바리라는 이름때문에

잠깐 나를 추억에 잠기게 만든 에피소드다.

일본의 국민가수 미소리 히바리는 우리나라의 국민가수 이미자 선생님(극존칭 사용)과

맞먹는 위치의 가수다.

아무리 봐도 별반 쓸모 없는 땅을 누가봐도 부동산 사기꾼 같은 업자에게

1억엔을 주고 사게 되는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입만 떼면 뭔가 미덥지 않고 사기꾼 스멜을 풍기는 부동산 업자는

"내가 부동산 업자가 된 것은 미소라 히바리를 위해서 입니다" 라고 말한다.

그녀를 너무 좋아하고 사랑해서 그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부동산 일을 한다고 말하는

그 남자의 말은 믿을 수가 있겠더라고, 그래서 그 미덥잖은 그 땅을 덜컥 사버린 그녀는

완벽한 사기를 당하고 우리나라 돈으로 10억원의 거액을 날리게 되고 

결국 그 부동산 사기건으로 남편과 이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그 사기꾼 같은(아니 사기꾼인) 부동산 업자의 미소라 히바리에 대한 "꿈"만은

진짜였을거라 생각한다.

나는 배가 꽤나 나오고 머리에 기름을 바른 반지르르한 믿음잖은 중년의 남자가

내 첫사랑은 미소라 히바리이고 그녀를 만나고자 시골에서 동경으로 상경하여 부동산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어느 사나이의 눈동자가 보이는듯 하다.


미소라 히바리는 돌아가신 아버지도 너무 좋아하는 가수였다.

방학때 잠깐씩 한국에 나올때 아버지 선물도 드린 미소라 히바리의 CD를 틀어놓은 채

마당 가득 피어 있는 목단꽃을 지그시 바라보시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

어쩜 우리 아버지도 젊었을때의 미소라 히바리의 미모를 흠모하셨던가..?

돌아가셨으니 여쭤볼수도 없는 일이다.


사람 냄새 폴폴 나는 작가의 이야기와 그녀가 만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땐 웃다가 어느땐 울다가 내 일인양 걱정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녀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실상 내 주위의 사람들과 크게 다를바 없고

나의 모습도 작가의 모습과 크게 다를바 없지 않나 싶다.

나팔바지에 핑클파마 하고 다닐때부터 그 옛날부터 코로나로 온 세상이 펜데믹에 빠진 현재까지

늘상 우리 주변에 있어왔던 사람사는 이야기

힘들고 어려워서 좌절도 하고 실망도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라는 메세지를 전해준 사노 요코 작가의 이야기를 읽어보길 권한다.


내일이 괜찮으면 어제의 상처는 다 재미있는 추억일 뿐이야!

                                                                                                                                                                      

그래도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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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감상문 - 먹고 마시며 행복했던 기록
이미나 지음, 이미란 그림 / 이지앤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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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음식은 곧 기억이고 추억이고 그리움이다.
먹을때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이미나 작가의 공감 100% 글과
보고 있으면 식욕이 땡기는 이미란 작가의 일러스트와 함께
행복하고 그리움 담뿍 담긴 음식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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