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아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북로드 / 2020년 4월
평점 :
품절


 

사노 요코 작가는 그림동화작가로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중의 한명이다.

2010년 향년 72세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녀가 남긴 수 많은 작품들은

오랫동안 일본인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림 동화뿐만 아니라 에세이, 소설, 극본등 왕성을 작품 활동을 한 작가로 기억된다.

실제로 내가 일본에서 유학을 하던 시기 서점가에는 사노 요코 작가의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참새 방앗간 드나들듯 틈나면 들리는 헌 책방에서는 그녀의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괜찮아 라는 책은 일본에서 1986년도 작품인 [러브 이즈 더 베스트]를 제목을 바꾸고

사카이 준코(酒井順子)씨의 해설을 곁들여 다시 출판한 에세이다.

이번에 북로드를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되어져서 사노 요코 작가를 알고 있는(팬이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많아서..) 한 사람으로써 반가운 일이 아닐수 없다.


책에는 짧은 30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로 우리 주변의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희안하게도 에피소드 속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조금씩 "독특"하다.

[비가 오면 라면이 팔린다],[사람을 죽이면 안돼],[미소라 히바리를 위해서 입니다],라는 에피소드에서는

조금 특이한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가 펼쳐진다.


[비가 오면 라면이 팔린다]에서는

택시를 자주 타는 작가와 택시 기사와의 짧은 대화들이 여럿 소개되어 있다.

어느 택시 기사는 조수석에 다이쇼고토(기타와 건반악기를 합쳐 놓은 듯한 일본의 현악기)를 싣고 다니며

신호에 걸렸을 때마다 그걸 연주한다고 했다.

운전 기사는 사노 작가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택시 문을 열어주는 대신에

손님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양 본격적으로 다이쇼고토를 연주했는데

이부분에서 폭소가 터졌다. 약속 시간은 간당간당하여 속이 타는데

연주 도중에 내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했을 작가의 모습이 보여지는듯 했다.


"비가 오면 인스턴트 라면이 잘 팔린대요"라고 말한 택시 기사는 연상이지만 연상같지

않은 여자를 만나 6년째 동거를 하고 있고 그녀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그 여자는 결혼을 하자고 해도 싫다고만 한다.

하루종일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그를 기다리며 비가오는 날이면 

더더구나 밖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집에 갈때 인스턴트 라면을 사가지고 간다고 했다.

(뭐하는 여자인가 싶다.)

얼마전 이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 몰래 알아봤더니 나이가 무려 열여덟 살이 많았단다.

그래도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열여덟 연하는 택시 기사.

흠.. 다들 별별 모습으로 살아가는구나 싶었다.

내가 아는 일본의 택시 기사님들은 차안에서 손님에게 말을 많이 걸진 않는 편이지만

택시 기사님과의 에피소드가 많은걸 보면

그녀가 탄 택시의 기사님들은 그녀에게 참 많은 이야기를 하는듯하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 보니 사카이 준코씨가 책의 말미에 곁들인 '사노씨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믿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라는 대목에서 느낌표가 똬악 보이는듯했다.


​필시 그건 남을 믿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그녀의 따뜻한 성격때문일것이다.

남들이 슬금슬금 피하는 좀 이상한(?) 사람들에게 조차 그녀는 선입견을 갖지 않고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택시 기사들뿐만 아니라 전과가 있는 술취한 야쿠쟈가 전철안에서

말을 걸어왔을때도 그녀는 말을 받아주고 말을 걸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면 안돼]라는 에피소드에서는

누가 봐도 위험해!! 라며 온몸의 세포들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의 

험상궂은 아저씨가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말을 걸어오며 대부분은 사람들은 못들은 척하거나

내리는 척 하며 자리를 뜨기 마련이다.


"누님 사람을 죽이면 안돼"

술내 나는 입김이 정통으로 나를 향했다.

"아저씨 그런 짓 한 적 있어요?"

"십이 년, 십이 년이었지만 팔년만에 나왔지"

"아저씨 야쿠자였어?"


읽는 내가 '이러다 낭패보는거 아닌가' 싶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고 형무소에서 별하나를 달고 출소한 야쿠자 아저씨는

양 옆에 이쁜 여자를 끼고 하얀 머플러를 휘날리며 찍은 젊었을때의

사진 한장을 꺼내보여주며 지금은 결혼한 딸아이를 찾아갈 용기가 없다는

말을 남기고 지하철에서 내린다.

처음엔 그 야쿠자 아저씨가 무서워 조마조마했는데 나중에는 뭔가 짠~해진다.

[미소라 히바리를 위해서 입니다]는 미소라 히바리라는 이름때문에

잠깐 나를 추억에 잠기게 만든 에피소드다.

일본의 국민가수 미소리 히바리는 우리나라의 국민가수 이미자 선생님(극존칭 사용)과

맞먹는 위치의 가수다.

아무리 봐도 별반 쓸모 없는 땅을 누가봐도 부동산 사기꾼 같은 업자에게

1억엔을 주고 사게 되는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입만 떼면 뭔가 미덥지 않고 사기꾼 스멜을 풍기는 부동산 업자는

"내가 부동산 업자가 된 것은 미소라 히바리를 위해서 입니다" 라고 말한다.

그녀를 너무 좋아하고 사랑해서 그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부동산 일을 한다고 말하는

그 남자의 말은 믿을 수가 있겠더라고, 그래서 그 미덥잖은 그 땅을 덜컥 사버린 그녀는

완벽한 사기를 당하고 우리나라 돈으로 10억원의 거액을 날리게 되고 

결국 그 부동산 사기건으로 남편과 이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그 사기꾼 같은(아니 사기꾼인) 부동산 업자의 미소라 히바리에 대한 "꿈"만은

진짜였을거라 생각한다.

나는 배가 꽤나 나오고 머리에 기름을 바른 반지르르한 믿음잖은 중년의 남자가

내 첫사랑은 미소라 히바리이고 그녀를 만나고자 시골에서 동경으로 상경하여 부동산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어느 사나이의 눈동자가 보이는듯 하다.


미소라 히바리는 돌아가신 아버지도 너무 좋아하는 가수였다.

방학때 잠깐씩 한국에 나올때 아버지 선물도 드린 미소라 히바리의 CD를 틀어놓은 채

마당 가득 피어 있는 목단꽃을 지그시 바라보시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

어쩜 우리 아버지도 젊었을때의 미소라 히바리의 미모를 흠모하셨던가..?

돌아가셨으니 여쭤볼수도 없는 일이다.


사람 냄새 폴폴 나는 작가의 이야기와 그녀가 만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땐 웃다가 어느땐 울다가 내 일인양 걱정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녀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실상 내 주위의 사람들과 크게 다를바 없고

나의 모습도 작가의 모습과 크게 다를바 없지 않나 싶다.

나팔바지에 핑클파마 하고 다닐때부터 그 옛날부터 코로나로 온 세상이 펜데믹에 빠진 현재까지

늘상 우리 주변에 있어왔던 사람사는 이야기

힘들고 어려워서 좌절도 하고 실망도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라는 메세지를 전해준 사노 요코 작가의 이야기를 읽어보길 권한다.


내일이 괜찮으면 어제의 상처는 다 재미있는 추억일 뿐이야!

                                                                                                                                                                      

그래도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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