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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너리 푸드 : 오늘도 초록 ㅣ 띵 시리즈 3
한은형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5월
평점 :
오늘도초록
한은형
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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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인 식탁에서 중심에 있지 않았다. 메인디쉬는 고기, 생선, 파스타, 피자 등등 나에게는 기름지고 고소하고 뜨끈한 것들이었다. 채소가 들어간 샐러드는 곁들어 먹는 것이니 그리너리푸드는 나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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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은 초록빛 채소가 식탁의 가운데를 차지한다. 그래야 마땅하다. 야채에 대한 이야기가 이토록 흥미롭고 황홀하며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동안 고백하자면... 채소를 꺼리던 나의 식생활을 반성하게 했다. 같은 식재료를 보고도 풀밖에 없어? 라고 하는 나와 달리 작가의 그리너리푸드 스토리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심지어 그동안 야채를 등진 나의 식단을 생각하며 인생의 풍부한 경험을 외면해온 것은 아닌가 후회가 들었다. 비건이 되는 그림도 아니고 단지 야채를 즐거먹는 것으로 이토록 풍요로운 식탁의 일상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확인했다. 당장이라도 허브를 잔뜩넣은 샐러드를 먹으며 야채들의 향과 질감을 느끼고 싶어졌다.
두번째 반성 또한 이어졌으니 그것은 바로 상상력과 추진력이다. 음식을 보면 배고픔을 충족시키는 생명유지의 측면만을 생각한 게으름에서 벗어나 하나의 식재료를 보고 상상에 몰입하고 레시피를 시도하는 추진력이 필요했다. 야채를 보고 느끼는 작가의 이야기는 풍요로움 그 자체다. 이 책은 하나의 레시피북처럼 정교하면서도 멋진 이야기들이 이어져 에세이 이상의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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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나는 괜찮았다 라니 얼마나 담백하고도 슴슴한 표현인가 싶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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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
벚꽃을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미 벚꽃은 입안에 들어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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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3
초록 기운에 반응하는 것이다. 채식주의자처럼 ‘주의자’를 붙여본다면 초록주의자? 아니면 ‘친록파’ 정도라고 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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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좋아하는 채소가 있다. 망고류로 들어서 과일이라고 하기에 아, 역시 내가 좋아하는 채소는 없나..싶기도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아보카도다. 애호박을 연상시키는 컬러에 버터의 크리미함이 느껴지는 아보카도. 나는 아보카도를 자르기 전 나름 아보카도 점을 친다. 잘 익었을지 안익었을지는 칼이 들어가야 안다는 점에서 약간의 스릴이 느껴진다. 작가가 아보카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굉장히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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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
‘어떤 느낌’을 받아야 한다. 아보카도를 손에 쥐었을 때, 껍질과 과육이 분리되었다는 느낌이랄까. 겉흙이 말랐을 때 물을 주라는 화원 주인의 말처럼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잘 익은 아보카도는 손에 쥐었을 때 느낌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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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띵시리즈의 세번째 책이다. 첫번째 책인 조식은 마치 작가의 이야기에 오래 머물며 나의 아침식사 장면들이 떠올리며 수다떠는 기분도 들었다. 두번째 책인 해장음식은 내가 술을 즐기지 않으니 호기심에 시작해 유쾌하게 읽었다. 제목만 봐도, 뭔가 들이키는 화끈한 동작의 표지에 시선이 가기 때문이다. 세번째 책인 오늘도 초록은 그리너리푸드 전문가 앞에서 경청하듯 읽었다. 띵시리즈는 계속 이어질 예정인데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평생 평양냉면이다. 밤차를 놓치지 직전까지 이어진 평냉에 대한 대화를 기억한다. 대체로 식욕이 없다가도 평부심(평양냉면을 먹는 자부심?!)을 부리는 나를 기대하게 한다. 그 외에도 짜장면, 치즈, 바게트, 치킨 등 특정 메뉴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고, 소설가의 마감식이나 병원의 밥, 직장인의 점심처럼 일상의 식생활을 공감으로 이끌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앞으로도 띵시리즈를 계속 읽으며 건강하고 즐거운 식생활에 대한 사연들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