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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 - 조현병을 이겨낸 심리학자가 전하는 삶의 찬가
아른힐 레우벵 지음, 손희주 옮김 / 생각정원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
‘조현병을 이겨낸 심리학자가 전하는 삶의 찬가’라는 부제는 나를 이끌다가도 밀어낸다. 감동의 여정이 담긴 드라마가 될 수 있으나 그건 제3자의 각색으로나 가능하다. 자신의 기록이라면 그 깊은 고통의 시간을 보는 것만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마음의 병.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그리고 조현병 등. 병의 이름은 하나로 통칭되지만 병증은 하나의 병명으로 설명될 수 없다. 저자는 ‘증상’에 대해서 단순히 증상을 진단하기 전에 이미 경험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증상’에 있어서 대단히 주체적인 정의를 내린다.
증상은 그 증상을 나타내는 사람의 것이므로, 단지 그 사람만이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특정한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론지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67쪽)
자신의 말이 의미를 잃고 그저 하나의 증상이 되어버리면 사람들은 매우 외롭다고 느끼고, 기분도 나빠진다. 더는 중립 지역이 없다는 것, 나의 모든 말들이 항상 의심받고 내 진단명과 연관 지어서만 해석된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가 느꼈던 심한 무력감과 불안감을 여전히 기억한다. (131쪽)
두통은 머리가 아픈 것이고 종양은 암 덩어리가 생긴 것이다. 정확하고 간결한 병명에서 우리는 대책을 세울 수 있고 또한 작은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마음의 병이라는 이름에는 어떤 정확한 인상이 없다. 조현병 환자들이 사회적으로 일으키는 사건을 통해서 그 병에 대해 안다고 생각할 뿐이다. 환시나 환각, 그리고 환청. 그야말로 ‘미친 사람’ 정도로 우리는 조현병 환자를 생각한다. 이해하려는 시도보다는 쉽게 규정하고 외면하는 것에 대해 정당화하는 것이다.
나에게도 우울의 시간이 있었다. 진단을 받기 전에, 몸과 마음의 이상을 느꼈을 때, 이 병은 통칭과 범주화로 처방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만이 이 병을 치유할 수 있다. 그는 자신했다. 나는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방법이 없었다. 환자이고 의사가 되어 ‘우울’이라는 병을 견디기로 했다.
나는 마음속에서 역할극을 했고 결국 호전되어 더 이상 우울을 겪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자살시도와 폐쇄병동에 감금되며 자해와 환청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그는 심리학자가 된다. 환자였던 시간을 상세히 기록하며 좌절과 불안 속에서도 삶의 방향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에서 ‘죽고 싶다’라는 말이 반복되지만 사실 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나는 과연 죽음이 모든 문제의 해답일까, 스스로에게 점점 더 자주 물었다. (38쪽)
사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지 못했으므로, 삶을 끝내려고 했다. (147쪽)
그가 죽음을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신이었다. 자신의 현재는 자살을 결심하게 하지만 자신의 미래는 삶에 대한 희망을 꿈꾸게 한다. 그리고 그는 그의 모든 순간을 기록했다. 그 기록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그의 삶이다. 가장 솔직하고 치열한 한 편의 드라마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