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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2011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던 한국 장르 소설 『7년의 밤』을 읽지 않았던 건, 인기 있는 책에 대한 심술도 있었지만 읽은 후 많이 우울하다는 평들 때문이었다. 일부러 줄거리는 안 읽고 100자 평만 찾아봤는데 100자 평들도 우울했다. (재미있지만 우울하고 슬프다는 평들) 안 그래도 어두운(?) 책만 읽는데 우울한 책을 또 읽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다 정유정 작가의 『28』을 읽고 팬이 된 후 바로 찾은 것이 이 책이었다. 북 클럽 카페에서 함께 읽기 위해 7월까지 기다렸고 드디어 읽기 시작했다.
유망했던 야구 선수가 경비업체 직원이 되고, 그의 두 어깨엔 보살필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 그는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 아내의 권유로 전근을 하면서 가족 모두가 세령 마을로 오게 되었다. 나름 열심히 살았던 그는, 어느 날 살인마가 되었고 감옥에 갔다. 그 후 홀로 남겨진 그의 아들 서원은, 아버지의 부하 직원이었던 승환과 함께 7년간 떠돌이 생활을 한다. 한 곳에 정착하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의 아버지 사건이 담긴 잡지가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배달되었다.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승환이 사라지고, 그가 쓴 소설과 아버지가 어릴 적 사주셨던 운동화가 도착해있었다. 그 소설 속엔 서원과 그의 가족이 세령 마을로 오기 전부터, 그의 아버지가 감옥에 가기까지의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7년 전 그날 밤의 진실까지도.
소설이 치밀하고 자세하다.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소설이 너무 친절해서, 글은 읽지만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어떤 이에게는, 너무 친절해서 지루해 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서평 하나도 잘 못 쓰는 내가 부러워하는 매끄러움 덕에 두꺼운 편인 책도 금방 읽었다. (승환의 소설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앞 부분이 지루하긴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성격이 제각각이다. 그 많은 성격들을 묘사하기보다는 그들의 과거 인생사를 보여주고,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확실하게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이 인물들의 성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소설 전체적으로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이, 각 인물들을 내가 제대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던 섬세함이다. 최고는 역시 세령 마을의 오영제였다. 세령 마을에서 나고 자랐으며 부족함 없는 지주의 아들이었다. 치과의사 원장으로 돈과 명예도 가졌고 예쁜 아내와 딸까지 있는, 겉으로 볼 땐 완벽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악행은 책으로 읽으면 알 수 있는데, 악행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준 작가의 묘사였다. 승환이 콧기름을 손가락으로 문지른 뒤 옷에 닦는 것을 보고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을 읽었을 땐, 작가가 인물들에 대해 적지 않은 연구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빙의가 되어 생활을 했을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을 관찰했을 수도 있고, 방에 처박혀서 이 생각만 죽어라 했을 수도 있다. 어떻게 인물들에 대해 생각했는지도 괜히 궁금해질 정도로 작가의 인물 묘사 방법은 내게는 최고였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하려던 말은 뭐였을까. 교훈을 주는 책도 아니고, 사회 문제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사회파 미스터리도 아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말하려는 소설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에 가깝지 않을까. 공포와 위기 순간, 그들의 본 모습을 보며 세상에서 가장 약한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알면서도 자꾸 잊는 사실이지만 나 역시 그런 인간이다.
다 읽고 나니, 100자 평들대로 많이 우울하다. 인물들에 대한 묘사 덕에 감정이입이 너무 잘 된 것이 이유일 것 같다. 그만큼 나를 몰입하게 했고, 재밌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단 덜 우울하니 읽어보고 평하는 걸 추천한다.
p.s. 영화화가 되어 올해 개봉한다고 하는데, 소설의 섬세함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정말 어려울 것이다. 원작의 반이라도 따라갈 수 있는 영화만 만든다면 잘했다고 해줄 것이다. 가장 어려운 역이 될 것 같은 오영제 역은 장동건이라는데....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