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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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뭘 알고 싶소?

  그리고 뭘 차라리 모르고 싶소?“ 

 

두 번째로 만나게 된 “아멜리 노통브”의 책이다. 앞서 읽었던 <오후 네시>는 그야말로 눈부시다 못해 휘황 찬란한 토크 배틀 이었으니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롭고 신선한 문학적 형태이자 시도였던 셈이다. 그랬던 그녀가 풀어놓은 이번 재료는 사랑이다. 사랑을 낭만적으로 간주하며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하고, 사랑에 오래 동안 머물고자 하며 더 의존적인 쪽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속설을 기반으로.

 

그 사랑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던 남자가 있다. 이름은 "돈 엘레미리오". 마흔네 살로 에스퍄냐 귀족이다. 그는 에스파냐 사람이란 자부심이 상당하다. 세상 어떠한 품격도 자신을 따라올 자 없다 호언장담하면서 계란을 신격화하는가 하면 집도 크고 방이 많은 재벌이다. 18년 동안 완벽한 사랑을 꿈꾸며 8명의 여자들을 만났고 그녀들에게 방을 세놓았었다. 

 

 

하지만 성에 차지 않은 사랑이었나보다. 생각만큼 원하던 결말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평범한 벨기에 아가씨 "사튀르닌"과 "엘레미리오"의 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집에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암실이 있고 누누이 들어가지 마라는 그의 경고를 무시한 8명의 젊은 여자들은 모두 실종되었다. 이번에도 세놓은 방에 입주할 여자를 구한다는 공고에 지원자들이 몰리지만 그녀들은 처음부터 입주할 생각은 없었고 다만 그 소문에 대한 진실이 궁금해서 이 집을 찾아왔을 뿐. 

 

허나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사튀르닌"은 사실상 무상이나 마찬가지인 입주조건과 호사스런 환대에 혹해 입주를 결정한다. 이제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사랑에 무지했고 결혼에 관심 없던 일상을 뒤흔들 아홉 번째 희생자라는 월계관이다. 머리에 씌워주며 사랑한다 말하는 "엘레미리오". 그는 장기간 외출한 적도 없어 외부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 관계에 서툴다. 그래도 사랑을 꿈꾼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금단구역을 침범한 여자들이 치러야할 대가는 잔인했으니 각자 지켜야 할 자리와 위치를 넘어갈 때 산산 조각난 믿음과 불편한 호기심이 남는다.

 

아홉 번째 사랑 "사튀르닌"은 "엘레미리오"와 티격태격하다 어느 순간 사랑에 빠진다. 단지 지낼 방을 구하기 위해 이 집을 찾았을 뿐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 큰 소리쳤지만 "엘레미리오"의 말대로 되어버렸다. 이제 사랑은 그녀가 지금까지 믿었던 가설에 안대를 씌운다. 이 남자는 거짓됨이 없이 진실 되며 여자들이 알아서 자진퇴장을 했을 것이라 믿게 된다. 사랑에 의심이 싹트는 순간 그 때부터 더 이상 사랑은 아니다.  

 

“​샤를 로페”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푸른 수염>은 여전히 “아멜리 노통브”만이 창작해낼 수 있는 매력적인 유머와 속사포 같은 두 남녀의 대화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상황설명이나 행동보다는 대화에서 시작하여 대화에서 끝장을 보는 동안 잠시도 한눈을 팔 여유란 애시 당초 없다. 전혀 지루하지 않고 끊임없이 지적이고 철학적이며 호기심과 유쾌함까지 단정한 상태로 끝까지 달려간다. 그 힘의 원천이 대단하다. 정말 홀리듯 읽어 내려갔다. 중도에 멈출 수 없어. 그러면서 두 남녀의 구애와 사랑이 어떤 결말로 치달을지 궁금증은 증폭되는 구조를 유지하다가 마침내 그를 위해 금이 되는 그녀. 또 다른 의미의 연금 술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전 당신의 여자가 아니에요."「내 여자요. 오늘 아침부터는.」 「천만에요. 전 계약서를 조목조목 읽어 보고 서명했어요.」 「그건 계약서에 담기에는 너무나 미묘한 문제지.」 「좋을 대로 말씀하세요. 전 당신한테 조금도 끌리지 않으니까.」 「나 역시 그렇소.」 「그럼 왜 절 당신의 여자라고 하시죠?」 「운명이니까. 오늘, 방을 얻기 위해 열다섯 명의 여자가 왔었소. 당신을 보는 순간, 난 즉시 당신과 함께라면 운명이 완수될 수 있으리라는 걸 알았소.」 「내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완수되지 않을 거예요.」 「그렇긴 하오.」 「따라서 아무것도 완수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이해하오. 당신이 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건 당연하오. 난 매력적인 남자가 아니니까.」 「사람들에게 염증을 느꼈다고 하셨는데, 남자들에 대해 그렇다는 얘기였군요.」 「여자들도 지겹긴 마찬가지요. 하지만 그중 몇몇하고는 사랑이, 결코 싫증나지 않는 사랑이 가능하지. 거기에 미스터리가 있소.」 p.24∼25 

 

이제 그녀의 선택은 빗장을 열고 숨겨진 비밀을 연다. 그 남자는 자신의 욕망을 노란 색이란 색채의 완성을 통해 꿈꾸었으니 금이 된 것은 완벽한 실현이다. 하지만 그녀는 광기 대신 이성을 끝내 놓지 않았고 마침내 어둠의 심연과 마주하게 된 남자의 이상에 기꺼이 동참해준다. 어딘지 모르게 슬프고 쓸쓸한. 이것은 <오후 네시>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볼 수 있다. 벽으로 둘러싸인 자신만의 성에 갇혀있는 타자를 성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대화를 통해 설득하며 이미 단단해진 껍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대를 위해 족쇄를 풀어 해방시켜주는 시도야말로 최대의 미덕이다. 관용과 화해. 이미 늦어버려 안타까운 마음만은 금치 못하겠다. 너무나 숭고하다. 그리고 영원불멸의 수수께끼는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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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그릇 2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9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병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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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메다는 지금도 여전하지요?”  

 

솔직히 처음에는 의아했었다. 왜 문동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마쓰모토 세이초의 “모래그릇”이 포함된 것일까? 라고 말이다. 같은 문동의 블랙펜 클럽시리즈로 미미 여사의 “솔로몬의 위증”이 때마침 내 수중에 같이 들어오다 보니 그러한 의문점은 뭉게뭉게 피어올랐던 거다. 세계문학전집에 일본 추리소설이라니.... 아마도 그 이유로 인하여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호기심이 커졌으리라.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새벽, 전차 조차장에서 한 남자가 얼굴이 뭉개진 시체로 발견된다. 전차가 이를 모르고 출발했었더라면 시체의 훼손이 어떠했으리라 불을 보 듯 뻔했다. 시체의 훼손 상태를 두고 보더라도 잔혹하기 그지없으며 피의자의 원한이 상당했으리라 짐작될 뿐이다. 경찰은 전날 밤 인근 술집에서 죽은 남자와 또 다른 남자 일행을 보았다는 목격담으로 수사를 시작하지만 실마리의 가닥은 잡히지 않는다. 겨우 알아낸 단서라고는 불확실하지만 도호쿠 지역 사투리를 쓴 것 같았으며 대화중 ‘가메다’라는 단어가 있었던 것 같았다는 증언뿐. 사건은 그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미제로 남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이마니시 형사만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긴 수사를 계속해 나간다. 하지만 관련된 인물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최초의 단서인 ‘가메다’와 ‘도호쿠 사투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공간적 변수를 드러내며 도달한 진실에는 "그것"이 숨어 있었다.

 

이 소설 “모래그릇”은 드라마와 영화로 수차례 방영되었다니 일본에서의 대중적 관심과 인기는 상당했었던가 보다. 지금의 시점에서 본다면 속도감도 과학수사와도 거리가 먼 그 당시의 수사방식은 몰입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지 특산품으로 주판을 선물 받는 장면에서는 시대의 초침을 거꾸로 돌려버린 것 같은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이마니시 형사의 집념과 끈기만은 인정해 줄 한데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먼 길을 돌아 돌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심정으로 결승점까지 당도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맥이 빠지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 것 상황에서 찰나적 단서포착으로 다시 시동을 거는 그의 방식은 좋게 말하면 창의적 수사일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우연의 남발, 작위적이라고도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런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어떠한 사실에 담긴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단순히 지식의 나열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각도에서 수사에 필요한 지식을 추출하고 응용하는 솜씨가 뛰어나다. 공부 머리가 아닌 일 머리라고 봐야겠지. 그래서 내가 소설에서 설명하는 백과사전식 지식에 멍해 있을 때 그만은 어느 순간 출구를 빠져나온다. 결국 그가 밝혀낸 범인의 정체도 놀랍지만(개인적으로 범인을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의심하도록 만든다.) 그 동기가 중요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가답게 동기에 승부수를 걸었다. 그것이 살인의 동기였단 말인가? 그런 이유로 그토록 잔혹하게 살해하였더란 말이냐? 정말 인간이란 존재의 살의에는 몇 가지로만 단정지울 수 없는 다양한 동기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우치다 야스오의 “헤이케 전설 살인사건”을 읽고 난 뒤의 우울한 기분이랄까, 소감이 똑같이 느껴진다.  

 

더없이 일본 전후 시대의 사회적, 구조적 차별과 편견이 낳은 모순에 통렬한 비판과 저항이 담겨 있다. 그러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도록 만든 시대정신에 대한 가차 없는 메스를 들이대어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야말로 세이초가 의도했던 방식일 것이다. 그렇다면 죽어도 될 존재는 뻔뻔하게 살아남고 죽어서는 안 될 존재는 보호받지 못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기에 슬프다. 살생부는 누구의 허락 하에 기록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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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맨션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6
오리하라 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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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랜드”와 “맨션”이라는 단어와 결합하면 럭셔리 아파트화 되지만

실상은 4층짜리 공동주택일 뿐. 입주민도 들어온 지 30년도 더 되는

고령자가 다수를 차지하는데 분양받아 나갈 능력이 안 되거나

얼마 남지 않는 노후를 마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나가려 않고 눌러앉으려 한다.

여기서는 60대면 청춘이다. 80대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저렴한 임대료만 내고 살던 1관 도로 건너편에는

10층짜리 현대식 2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여기서 민원의 소지가 발생하는데 바로 일조권 침해다.

제대로 굴러가는 대표자회의나 반상회 같은 거라도 있다면

입주민들이 궐기하고 나서겠지만 여기는 이웃끼리 살갑게 교류

하는 편이 아니라 옆집에 누가 사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대체로 관심이 없다고 해야 하나. 한 사람만 빼고.

 

닭장 속의 닭들 마냥 문을 걸어 잠그기만 하고

이웃이 나한테 피해만 안주면 개의치 않겠다는 사람들이다.

단체행동에 들어가는 일이 없어서 2관은 순조롭게 올라간다.

그동안 이 볼품없는 맨션에 현대 사회의 병폐가 고스란히 농축된다.​

층간소음, 살인, 절도, 스토킹, 사체유기…

공공의 선을 잃어버린 지독한 개인주의가

범죄를 양산하고 이것은 다시 무관심했던 자신에게도

비수가 되어 돌아올 때, 아뿔싸 진즉에 도움을 청할 걸,

진즉에 잘할 걸, 같은 후회막심이 생긴다.

 

소설이나 뉴스가 아니라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모골이 송연해질 때가 많다.

일곱 편의 에피소드들은 연작의 형식을 띄고 있으며

각 에피소드별로 호실별로 입주민이 화자로 등장하다가

다음 편에서는 다른 입주민으로 화자로 변경된다.

그러면서 이전 에피소드의 각 화자들은 담장을 넘어가듯

주변인으로 재등장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연결고리로 구축되는 것이다.

 

결국 순서대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 복선이

숨어있고 서술트릭의 대가답게 각 에피소드의 결말에서

움찔하게 만드는 소소한 반전들이 놀랍다.

그래서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말고 꼼꼼히 읽기를 권장한다.  

 

또한 특별히 눈길을 끄는 요인은 단순히 사회 고발적 성격을

뛰어넘어 미스터리 팬들을 잔잔히 매료시킬 밀실과 시점을 이용한 트릭,

그밖에 다양한 재간 등으로 이 소설이 장르소설임을 상기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각개 격파했을 때는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각 호실이 하나 둘 모여 공동주택을 구성하듯이 이야기의 힘과 기술은

전부를 위한 하나였음을 뒤늦게라도 간파할 수만 있다면

진정한 재미를 깨닫는 즐거움을 얻게 될 것 같다.

성패는 거기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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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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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P.9>​

 

 

 

황혼기에 접어든 에밀과 쥘리에트 부부는 올해 예순 다섯 살의 동갑내기 부부이다.

법적으로는 43년, 하지만 실제로는 유치원에서 같은 반으로 만나 사랑을 키워 왔기 때문에 사실상 60년을 부부로 지낸 셈이다. 에밀은 고등학교에서 라틴어와 그리스를 가르쳤고 정년퇴직 이후 도시를 벗어나 조용한 시골에서 아내와 함께 전원생활을 꿈꾸고 싶었다. 때마침 마음에 드는 집을 구했는데 근처에는 똑같은 모양의 집이 한 채 있고 의사가 살고 있다 들었을 뿐인지라 기쁨과 평화가 오래 가리라 믿는다.

 

어느 날 오후 4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문을 열어줬더니 에밀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그러니까 일흔 정도는 됨직한 뚱뚱한 사내가 서있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게 다반사인 도시의 삭막함과는 달리 거주인구가 백여 명 정도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서 이웃끼리 방문하고 교류하는 일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베르나르댕이라는 이 남자는 처음부터 괴팍했다. 에밀이 아무리 이런 저런 대화를 시도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그렇소.” 아니면 “아니오.” 단답형이다.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가 한번 씩 인상을 찌푸리는 정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에밀 부부의 일상은 악몽으로 돌변한다. 이날 이후 매일 오후 4시에 방문해 여전히 단답형의 무미건조하고 무뚝뚝한 대답 말고는 자신의 주도로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일 없이 저녁 6시가 되면 돌아간다. 왜 그러는지? 무슨 의도로 계속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는 것인지 도통 속을 알 수 없어 점차 이 남자의 방문은 고통스러운 일이 된다. 인내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어떡하든 이 남자의 방문을 기피할 요량으로 일부러 외출도 나갔다가 집에 없는 척도 해보지만 베르나르댕의 방문은 피할 도리가 없다. 그랬다간 문을 부수고 들어올지도 모른데다 불같이 화를 낼 테니까.

 

어디까지가 예의이고 무례는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아무 의미가 없다. 베르나르댕의 침묵은 분통터지게 만드니까. 나라면 이런 상황을 겪으면 십중팔구 불면에 두통, 소화 장애, 불안 초조, 분노 조절 장애 등등 갖가지 증세에 시달려 히스테리컬 해버릴 것 같다. 에밀의 훈련받은 이성 대신 막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본성은 자신도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아내의 능청스런 보조만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폭발해 버렸을 것이다. 점점 우화 같은 첫 분위기가 블랙 코미디로, 다시 괴담으로 변화무쌍한 단계를 밟는 동안 베르나르댕의 아내가 등장한다.

 

에밀과 베르나르댕의 숨 막히는 심리전은 결국 타인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들여놓는 대신 관계 맺기를 거부한 것에 대한 응징을 취함으로서 극단적인 선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베르나르댕의 아내 또한 원인제공자의 입장에서 자유롭지 않다. 설득과 타협에 지쳐가는 자아는 침몰하는 배나 마찬가지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나는 누구인가로 끝맺는 대화는 간결하면서도 속사포 같은 논리를 쏟아내고 전개는 지속적으로 흥미진진하다. 철학적이지만 결코 진중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구성 때문에 “아멜리 노통브” 작풍의 독특한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다음에도 만나고 싶은 작가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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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이야기 ㅣ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김보은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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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 

 

캐나다 출신의 작가 “루이즈 페니” 여사의 2009년 <냉혹한 이야기>을 읽었다. 그동안 참 기회가 안 닿는다 싶었는데 이제야 "아르망 가마슈" 경감을 만나게 되는구나. 이번이 시리즈 중 다섯 번째 라고 한다. 그리고 “루이즈 페니” 여사를 ‘cozy 미스터리계’의 강자라는 말도 있던데 용어가 생소해서 ‘피니스 아프리카에’ 블로그에서 검색해 봤더니 ‘cozy’는 사전적 정의로 아늑한, 친밀한 이런 뜻이고 선정적이거나 잔인한 묘사가 없고 작은 마을이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사건을 다룬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드럽고 온화한, 젠틀한 미스터리라는 말이렷다. 이렇게 모르는 미스터리 용어를 하나 배우고 시작해 본다.

 

캐나다 퀘벡 주 ‘스리 파인즈’의 숲속 외딴 오두막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사람이 건너편에 앉은 사람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도둑맞은 물건을 찾으러 군대가 오고 있다는 내용인데 사실인지 신화인지 분간할 길 없는 상황에서 이야길 마친 한 사람은 오두막을 떠난다. 그리고 ‘스리 파인즈’ 한가운데 있는 ‘비스트로’ 안에서 노숙자의 시체가 발견되는데...

 

 

그 누구도 노숙자의 신원을 모른다. 외모나 복장만으로 신분을 추측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좀 있다. 노숙자치곤 위생상태도 깔끔하고 치과치료 흔적도 있기에 상식을 벗어난 피해자였다. 얼마 만에 사건이 발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장으로 출동한 퀘백 경찰청 살인반 반장 "아르망 가마슈" 경감조차 시신에 대한 단서를 밝혀내지 못해 난감한 가운데 사건이 미궁에 빠질 법도 하다. 누군가의 일격에 의해 피도 최소한 흘린 상태였고 흉기로 의심되는 도구도 ‘비스트로’안에 있는 것도 같고 어두웠던 내부에 불이 켜진 것을 목격한 이는 없는지,

 

 

마지막으로 문단속으로 한 이는 누구인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숲에다 시체를 유기했으면 들짐승의 밥이 되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텐데 굳이 사람들 이목을 끄는 공개된 장소에 보란 듯이 버려두고 간 이유는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수사에 있어서의 최대난항이다. 조용한 마을을 뒤흔든 이 사건 때문에 마을 사람 모두 차례차례 용의자로 조사받게 된다. 그런데 '비스트로'를 운영하는 "올리비에"가 여러 정황 상 가장 큰 의심을 받는다. “가마슈”경감이 부관인 “보부아르”에게 가르친 교훈, 살인자는 과거 오래 전 사건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며 앞이 아닌 뒤로 물러나 곪은 상처를 찾아내라는 취지에서 보자면 "올리비에" 만큼 적합한 인물은 없으리란 판단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떨어져 있는 낡은 ‘해들리 저택’이 외부에서 온 어느 부부에 의해 스파와 호텔로 리모델링되는 변화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해들리 저택’과 ‘비스트로’는 영업측면에서 경쟁관계를 벗어나 앙숙으로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에 더욱 곤혹스럽다. 그래서 “가마슈”경감은 과거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진실과 위선 사이의 거짓말이 분명 또아리를 틀고 있으리라.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범인은 자신의 인생에서, 마을에서 분명 쫓겨나리라... 누군가는 전전긍긍한다. 친절이란 가면을 쉽사리 벗지 못한 채, 속임수로 모두를 속이고 있는 자는 누구일까?

 

 

어찌 보면 오두막에서 발견된 “소로”의 <월든>과 “E.B 화이트”의 <샬롯의 거미줄>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이야기’로부터 파생된 '말' 자체의 무시무시한 파급력을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말이 입을 떠나 상대의 귀에 계속적으로 전달되는 동안, 말은 독소가 되어 마음을 병들게 하고 지배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이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준 사례도 드물 것이다. 사람의 인생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힘을 잘못 사용하는 것 자체가 제목인 <냉혹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살롯의 거미줄”을 이용한 트릭도 신선한 발상이었고, 보물찾기와 신화, 암호풀이 등 현대적 요소보다는 고전의 낭만과 향수를 듬뿍 담은 미스터리의 진수를 멋들어지게 담아냈다.​​

 

탐욕으로 시작해서 이기심이 가세하고 의심이 의심을 낳는 바람에 마을은 공동체의 단합보다는 끊임없이 갈등과 분열로 출렁거렸다. 비록 난파라는 최악의 수는 비껴갔지만 완결되지 못한 상처와 여운을 남긴 의혹만이 남는다. 믿어도 되는 걸까? 진실은 회복된 것일까?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어떤 여지를 다음 편의 몫으로 남겨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장담할 수 없다. 다음 편이 최고 걸작이라고 하니 기대를 걸어보는 이유도 이번 작품의 열린 결말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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