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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이야기 ㅣ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김보은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8월
평점 :
“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
캐나다 출신의
작가 “루이즈
페니”
여사의
2009년
<냉혹한
이야기>을
읽었다.
그동안 참
기회가 안 닿는다 싶었는데 이제야 "아르망
가마슈"
경감을 만나게
되는구나.
이번이 시리즈
중 다섯 번째 라고 한다.
그리고
“루이즈
페니”
여사를
‘cozy
미스터리계’의 강자라는
말도 있던데 용어가 생소해서 ‘피니스
아프리카에’
블로그에서
검색해 봤더니 ‘cozy’는 사전적
정의로 아늑한,
친밀한 이런
뜻이고 선정적이거나 잔인한 묘사가 없고 작은 마을이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사건을 다룬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드럽고 온화한,
젠틀한
미스터리라는 말이렷다.
이렇게 모르는
미스터리 용어를 하나 배우고 시작해 본다.
캐나다 퀘벡 주
‘스리
파인즈’의 숲속 외딴
오두막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사람이
건너편에 앉은 사람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도둑맞은 물건을 찾으러 군대가 오고 있다는 내용인데 사실인지 신화인지 분간할 길 없는 상황에서 이야길
마친 한 사람은 오두막을 떠난다.
그리고
‘스리
파인즈’
한가운데 있는
‘비스트로’
안에서 노숙자의
시체가 발견되는데...
그 누구도
노숙자의 신원을 모른다.
외모나
복장만으로 신분을 추측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좀
있다.
노숙자치곤
위생상태도 깔끔하고 치과치료 흔적도 있기에 상식을 벗어난 피해자였다.
얼마 만에
사건이 발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장으로 출동한 퀘백 경찰청 살인반 반장 "아르망
가마슈"
경감조차 시신에
대한 단서를 밝혀내지 못해 난감한 가운데 사건이 미궁에 빠질 법도 하다.
누군가의 일격에
의해 피도 최소한 흘린 상태였고 흉기로 의심되는 도구도 ‘비스트로’안에 있는 것도
같고 어두웠던 내부에 불이 켜진 것을 목격한 이는 없는지,
마지막으로
문단속으로 한 이는 누구인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숲에다 시체를 유기했으면 들짐승의 밥이 되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텐데 굳이 사람들 이목을 끄는 공개된 장소에 보란 듯이 버려두고
간 이유는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수사에 있어서의 최대난항이다.
조용한 마을을
뒤흔든 이 사건 때문에 마을 사람 모두 차례차례 용의자로 조사받게 된다.
그런데
'비스트로'를 운영하는
"올리비에"가 여러 정황
상 가장 큰 의심을 받는다.
“가마슈”경감이 부관인
“보부아르”에게 가르친
교훈,
살인자는 과거
오래 전 사건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며 앞이 아닌 뒤로
물러나 곪은 상처를 찾아내라는 취지에서 보자면 "올리비에"
만큼 적합한
인물은 없으리란 판단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떨어져 있는 낡은 ‘해들리
저택’이 외부에서 온
어느 부부에 의해 스파와 호텔로 리모델링되는 변화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해들리
저택’과
‘비스트로’는
영업측면에서 경쟁관계를
벗어나 앙숙으로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에 더욱 곤혹스럽다.
그래서
“가마슈”경감은 과거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진실과 위선
사이의 거짓말이 분명 또아리를 틀고 있으리라.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범인은 자신의
인생에서,
마을에서 분명
쫓겨나리라...
누군가는
전전긍긍한다.
친절이란 가면을
쉽사리 벗지 못한 채,
속임수로 모두를
속이고 있는 자는 누구일까?
어찌 보면
오두막에서 발견된 “소로”의
<월든>과
“E.B
화이트”의
<샬롯의
거미줄>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이야기’로부터 파생된
'말'
자체의
무시무시한 파급력을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말이 입을 떠나
상대의 귀에 계속적으로 전달되는 동안,
말은 독소가
되어 마음을 병들게 하고 지배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이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준 사례도 드물 것이다.
사람의
인생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힘을 잘못 사용하는 것 자체가 제목인 <냉혹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살롯의
거미줄”을 이용한
트릭도 신선한 발상이었고,
보물찾기와
신화,
암호풀이 등
현대적 요소보다는 고전의 낭만과 향수를 듬뿍 담은 미스터리의 진수를 멋들어지게 담아냈다.
탐욕으로
시작해서 이기심이 가세하고 의심이 의심을 낳는 바람에 마을은 공동체의 단합보다는 끊임없이 갈등과 분열로 출렁거렸다.
비록 난파라는
최악의 수는 비껴갔지만 완결되지 못한 상처와 여운을 남긴 의혹만이 남는다.
믿어도 되는
걸까?
진실은 회복된
것일까?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어떤 여지를 다음 편의 몫으로 남겨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장담할
수 없다.
다음 편이 최고
걸작이라고 하니 기대를 걸어보는 이유도 이번 작품의 열린 결말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