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화전 - 지상 최대의 미술 사기극 ㅣ 밀리언셀러 클럽 133
모치즈키 료코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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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14회 일본 미스터리 문학 대상 신인상 수상작!!!

거미줄의 계략에 걸려든 한 남자, 한 여자.

 

군마 현 남부에 자리한 ‘오우라’ 집안에는 아들이 두 명 있다. 장남 소스케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도쿄에서 작은 디자인 사무소를 경영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집안의 미술품을 처분한 돈을 받아다 써야 할 정도로 방만하게 운영하고 있다. 또 한 사람은 긴자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던 여성 아카네이다. 그녀는 일하던 가게에서 야반도주하여 작은 스낵바를 운영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일면식도 없지만 공통점이라면 소비자금융에 빚을 지고 있었고 제때 상환하지 못해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그들에게 우연히 주식 사기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며 누군가 접근한다. 자신들에게 신용을 쌓은 후 돈을 투자하여 한 몫 잡으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 두 사람은 시킨 대로 했지만 이것은 사기였다. 이제 더 큰 빚이 그들에게 남겨졌다. 뒤늦게 사기를 당했다는 걸 알아차린 두 사람에게 전직 은행원 시로카가 개입하여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은행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을 훔쳐내어 팔자는 것. 거액을 챙겨 각자 분배한 후 제 갈 길로 갈라지자는 달콤한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던 두 남녀는 그의 프로젝트에 동참하기로 결심한다.  

 

 

모두가 탐을 내는 명화 [가셰 박사의 초상]를 그린 빈센트 빌렘 반 고흐는 생전에 빈곤과 혹평에 고뇌하다 절망 속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그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여관에서는 무려 600점의 그림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 있었던 [가셰 박사의 초상]은 여러 사람들을 거치며 잦은 소유권 변경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술관에 보관되다가 이후 나치 독일의 헤르만 괴링이 압수했으며 다시 외부로 유출해 팔았었다. 이후 수차례 그림이 돌고 돌면서 소유권 분쟁이 있었고 일본 경제가 버블이라는 호황기를 맞이하여 유럽의 명화를 닥치는 대로 사들였을 때 경매를 통해 일본으로 매입된다. 이 때 사들였던 미술품들은 예술적 가치로 인정되어 매매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이 돈을 빌려주고 담보로 회수했던 것이라 당연히 세상에 다시 빛을 보기 전까지는 창고에서 잠자게 된다. 여기에 예술에 관심 없는 졸부들의 허세를 충족시키거나 폭력조직의 자금줄 역할로 이용되면서 도난이 발생해도 소유자나 은행 측에서는 그 사실을 은폐해서 고객의 비밀유지와 과실이라는 민감한 사안의 노출을 꺼려하는 측면이 있어 그 점을 도둑단에서는 노렸던 것이다. 

 

훔쳐도 아무에게나 팔 수 없는 현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훔치고자 하는 그림은 다른 그림들과 함께 한 컨테이너에 보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컨테이너에 들어가 일일이 뒤지다가는 경찰이 제 시간내에 출동하리란 것은 불을 보 듯 뻔한 일. 이제 고민을 접고 두 컨테이너를 훔치기로 하는데 시가 총 2,000억엔어치의 그림들을 한꺼번에 빼돌린다는 대담하고 무모한 시도는 시로타가 은행 내부사정을 사전에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진행된다. 각종 센서, 감지기, 감시카메라같은 각종 최첨단 장비를 단계적으로 돌파해야만 하는데 보안의 허점과 시간싸움을 이용한 역할 분담이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제목 미술 사기단은 영화 “나우 유 씨 미 – 마술사기단”이 연상되는가 하면 도둑단이란 소재에서 역시 영화 “도둑들”이 추가로 연상되기도 한다. 헐리웃 영화 같은 절도작전은 때론 완벽보다는 어이없을 정도의 정면 돌파가 시도되는데 리얼리티에서는 점수를 더 받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명화를 훔쳐내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린 채 거액을 나눠서 각자가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스토리였으면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했겠지만 스릴러의 재미와는 차별화된 미술이라는 장르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과 투자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투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탐욕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읽게 되는 진정한 의미가 있다.

 

“그림 속에는 언어라는 비문화적 필터를 거치지 않은, 시대의 어느 순간의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화가는 시대를 남기는 일에 생명을 불태우기 때문에

 슬픈겁니다.” (p.327.)

 

고흐는 사후에 자신의 작품이 이토록 저급한 자본의 논리에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자신은 배고픔에 시달렸음에도 후세의 누군가는 시커먼 배 속을 채우는데 급급했을 거라 알았더라면 그 많은 명화들을 결코 세상에 내놓기보다 불사르고 봇을 꺾어버리는 결단을 내렸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적 영감과 감명마저 주지 못하고 사장되는 서글픈 현실을 개탄하고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는 [가셰 박사의 초상] 절도 대작전은 숭고하다. 여기에 인간에 대한 배려도 있다. 작전에는 돈 말고도 악의에 대한 복수가 곁들여 있었는데 나중에 드러난 속사정에는 예술적 재능을 고취하기 위한 속 깊은 정이 들어있었고 궤도에서 이탈한 가련한 인생에 갱생의 기회를 부여한 프로젝트의 개념도 들어있어서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훈훈할 수가 없다. 추악한 위선에는 통쾌한 메스를 들이댄 권선징악이라는 학습효과도 있고 예술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어 상쾌, 통쾌한 소설이다.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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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나이트 ㅣ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1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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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시리스트에 올려놓고 차일피일 미루던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를 드뎌 시작하였다. 도서관에 가서 조회를 해보니 현재 출간된 시리즈 중 딱 한 권을 제외하고는 다 비치되어 있어서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도서관은 보유 장서 권수가 적어 의외로 미보유중인 유명 장르소설이 수두룩함에도 불구하고 혼다 테쓰야의 책들만큼은 거의 다 있다하니 확실히 요 시리즈의 인기몰이가 대단한걸.

그리고 평소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접하기 전 가지고 있던 느낌과 예상 같은 것이 있었는데 우선 표지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스타일이란 것이다. 어두운 배경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붉은 색의 포인트가 너무 매혹적이어서 한참을 넋 놓고 볼 때도 많았으며, 분명 책꽂이에 나란히 진열할만한 소장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히메카와 레이코는 아마도 보이시하고 쿨한 성격이 아닐까, 굉장히 대범한 카리스마로 조직을 휘어잡는 강인한 여장부일 것으로 추측했었다.

 

 

그런 주인공 히메카와 레이코는 곧 서른을 코앞에 둔 수사1과 10계 주임인 여형사이다. 열일곱 살에 한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아픈 기억이 있는데 당시 피해자였던 레이코의 마음의 상처를 달래주던 여형사가 업무수행 중 순직한 일이 있었다. 솔직히 그 여형사의 일기는 너무 속 뻔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상투적이고 신파적이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들었지만 법정 씬에서 모든 경찰관들이 레이코에게 일제히 경례를 하는 대목에선 알면서도 속아주는 심정, 평소 시기와 경쟁을 벌이다가도 동료를 위해서라면 대동단결하는 결속력과 무게감이 전하는 압도적인 파장 앞에서는 마치 현장을 목도한 것 같은 떨림이 있었다. 확실히 과거의 굴레를 극복해낸 레이코의 결단과 용기에 칭찬을 보내는 바이다.

 

 

하지만 그녀가 미즈모토 공원 저수지 근처에서 파란 비닐에 싸인 남자의 변사체가 발견된 현장을 찾는 순간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다. 계급사회의 묘미라며 경위라는 계급장에 우쭐하는 모습이다. 물론 경찰이라는 계급조직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쟁취한 계급장은 스스로도 대견하다 할 것이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왜 경찰이 되었는지를 망각하지 않았나 싶다. 퍼내어도 퍼내어도 줄지 않는 악이라는 우물이지만 힘닿는데 까지 발로 뛰어가며 죽은 자의 노랫소리에 귀 기울여 결코 외면하지 않겠노라는 해리 보슈나 경정이라는 계급에도 권력이라는 수직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미카미를 먼저 만나고 나니 레이코가 얼마나 세상을 자신의 편협된 관점과 가치관으로 재고 있는지, 얼마나 등 따시게 살아온 공주과인지(물론 특정한 기억을 지워버리진 않겠지만)가 노골적으로 다가와서 심히 비호감이다.

 

 

 

 

시리즈의 특성 상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에 대한 친밀도 정도인데 그런 점에서 주인공은 일단 실패한 캐릭터이다. 오히려 다른 등장인물들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바로 칸테쓰라고 불리는 카쓰마타 경위와 레이코의 부하 이오카 경장을 언급할 수 있는데 무례하고 거침없는 독설을 날리며 수사과정에서 편법을 남발하는 어둠의 형사지만 사리사욕이 아닌 조직에 도움 되는 관점에서 독자노선을 걷는 카쓰마타의 행보가 거침없이 시원시원해서 오히려 통쾌한 기분마저 든다. 지나치게 직감만을 추종하는 레이코의 수사 활동이 때때로 놓쳐버리는 기본적 실수에 통렬한 일침을 놓아서 속이 후련하다.

 

 

 

저수지에서 발견된 시체에 대한 범인들의 역할분담에서 살인자와 시체수거 처리자가 별도로 구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체수거처리자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의문부호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그 안일한 사고방식 같은 걸 예로 들 수 있는데 레이코는 비범한 수사능력이 있지만 허점도 많아 크나큰 위기를 자초할 수 있는 불씨가 항상 상존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레이코는 그러한 지적들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포용력이 없다. 아직 시기와 질투의 덩어리인 보통여자로서의 한계도 지니고 있어 많이 배우고 경험해서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카쓰마타의 표현대로 아직 레이코는 풋내기이다. 나는 그녀를 아직 인정하지 않으련다. 대신 파이팅, 카쓰마타!!!

 

 

 

 

또 다른 주인공 이오카 경장. 레이코가 이름 부르는 걸 질색해도 능청스럽게 “레이코 주임님예, 사랑합니더. 지 맘을 받아 주이소.”라며 뻔뻔하게 들이대는 모습과 소심하게 쭈뼛거리는 키쿠타 경사와의 라이벌전은 읽을 때마다 이 시리즈에서 참기름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즐거움이 있다. 오사카 사투리로 설정된 그의 말투는 경상도 사람인 내가 봐도 한번씩 무슨 소리인지 해석불가한 면도 있어 서울이나 타지방 독자들은 과연 어떻게 알아들을지 상상만 해도 우습고. 단순 코믹 캐릭터같이 보이지만 의외의 비범한 솜씨도 발휘하고 있어 그의 등장횟수가 좀 더 늘었으면 좋겠는데. 키쿠타와 레이코의 재미없는 관계는 단절됨과 동시에 이오카-레이코의 러브라인이 적극 구축되었으면 하는 바이다. 이오카는 같은 남자로서 상당한 매력이 있다.

 

 

 

캐릭터의 강점과는 별개로 유머와 잔혹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스트로베리 나이트”의 제목이 시사하는 의미는 두 가지 특성 모두에 해당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딸기 밤”을 “딸기 기사”로 해석하는 레이코의 엉뚱한 유머를 차지하고서라도 “스트로베리 나이트”가 상징하는 인간성의 상실과 야만의 극치, 저열한 호기심이 어우러진 끔찍함, 그리고 배후에 얽힌 반전도 산뜻해서 만족스럽다. 단지 살인마가 심경의 변화를 갑작스레 일으키는 대목은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더라. 내가 놓친 단서가 있는지는 모르나 뜬금없는 설정이 위기를 개연성 없이 무마시키는 불친절이 좀 실망스럽더란 말이지. 그래도 첫 술에 완전 배부를 수 없으니 이만하면 괜찮은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레이코의 각성만 있다면 별 반개는 언제라도 추가하는 덴 문제없으리라. 문제는 너야 레이코!!! 드라마나 영화 속 레이코 역할도 다케우치 유코가 아니라 마츠시마 나나코가 했더라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나나코가 지금보다 젊다는 가정하에. 이제 "소울 케이지"로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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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 ㅣ 요시키 형사 시리즈 2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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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28일 오후, 형사 요시키는 전처 미치코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6년의 결혼생활, 그리고 헤어진 지 5년 만의 통화였다. 그녀는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는 말만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어딘가 가냘프고 주저하는 것 같은 목소리의 여운에서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 요시키는 미치코의 얼굴을 보기 위해 우에노역으로 가지만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미치코가 탔던 걸로 알려진 유즈루호 열차 침대칸에서 한 여성의 시체와 학을 본떠 만든 공예품이 발견되면서 요시키는 미치코의 신상에 변고가 생겼음을 직감하게 된다. 이제 그녀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다.  

 

돌이켜 볼 때 요시키의 마음은 항상 그녀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안고 있었다. 남들 앞에서는 조신하다가도 요시키와 단 둘이 있을 때는 잘 웃으면서 명랑했던 그녀, 어리광도 피우고 감정의 기복도 심해서 때론 어린 아이 같았던 미치코에게 항상 바쁜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따스한 말 한마디와 속 깊은 정을 보여주지 못하고 무뚝뚝하게 대했던 결혼생활이 떠 오를때면 스스로 자책해왔다. 그런 결혼생활이 이혼으로 이어진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는 마음의 짐이었다. 그래서 이번 신정 연휴를 활용하기로 결심을 굳힌다. 그녀를 찾기로. 

 

그녀의 행방을 좇아 실마리를 찾으러 구시로로 향한 요시키는 그녀가 열차 살인사건만이 아니라 살았던 아파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도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내막을 들여다보니 그것은 절대로 해법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이었다. 이에 자신 말고는 그녀를 위기에서 구할 사람이 없음을 자각하고 그녀에 대한 믿음만으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목숨 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시마다 소지의 미스터리는 환상적이며 초현실적인 현상에 상식의 틀을 뛰어넘는 거대한 트릭이 가미되면서 사건의 진실에 감춰진 인간적인 사연들이 언제나 매력적이다. 그런 점에서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에서 개인사에 줄곧 주목해왔던 요시키 형사 본인의 개인사를 바탕에 두고 진행되는 이번 이야기는 그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부부의 연이란 전생에서 어떠한 인연이 없으면 이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비록 불확실한 이유로 헤어지기는 했지만 처음에 좋은 인연으로 만나 점차 원점으로 되돌릴 수 없는 원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미치코와 살면서 그녀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요시키의 모습에서 같은 남자로서 이 만큼 공감과 이해가 형성되는 일도 흔치않다. 그는 인생의 반려자로서 미치코를 진심 아끼고 사랑하고 싶지만 맘 같이 표현하는 일에 서툰 남자이다. 결코 내 여자는 내가 지킨다는 의지만큼은 어느 남자와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에 요시키가 미치코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목숨 건 사투 속에서 죽음과 맞서서 특유의 끈기로 약속한 시간에 사건을 해결해야한다는 압박과 제약을 끝내 돌파하는 과정들은 긴박감과 함께 뜨거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구조 상 외부에서 몰래 출입하기 불가능한 건물 5층에서 살해된 두 여성에 대한 살인트릭은 이론상 가능하지만 실제 시도하기에는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세밀한 방식이라 트릭을 위한 트릭이라고 평가절하 했다가 미스터리의 즐거움이란 과학이 아닌 발상에서 의의를 부여할 수 있기에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자면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처음부터 정해놓고 트릭에 얽힌 비밀을 풀어내는 방식임을 감안하여 누가(who) 왜(why) 대신 어떻게(how)에 모든 포커스를 맞춰 괴담이 논리로 설명되는 순간, 그 기상천외함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부부의 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님”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남”이 될 것인가? 축복받으며 행복한 출발을 다짐했던 당시의 포부는 어느 순간 실종되고 인생극장처럼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 까닭은 각자가 알겠지. 결혼이라는 울타리에 들어가면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다들 진심으로 만족하며 살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러한 현실에서 해답을 찾고자 요시키란 남자는 과거에 미처 되돌리지 못한 관계라는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그렇게 살얼음 위를 걸으며 진정 목숨을 걸었나보다. 한 여자에 눈이 먼 남자, 이런 걸 두고 꽃보다 남자라고 한다. 불꽃남자 요시키의 순정은 서로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성공했고 그래서 멋지고 여전히 감동적인 로맨스이다. 가을에 어울릴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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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숙청의 문을
구로타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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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겨울 어느날, 케이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소녀는 폭주족을 피해 달아나다 그들의 오토바이에 치어 사망한다. 한순간 생명이 빠져나간 냉기만이 남고 딸을 잃은 엄마의 비통한 심정과 결연한 각오, 이것은 피비린내는 비극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40대 중반의 여교사 곤도 아야코는 D반 아이들의 출석을 부른뒤 일종의 선전포고를 한다. "여러분은 인질입니다. 반항하면 죽이겠습니다."   

 

 

스물아홉명의 반 아이들은 일제히 코웃음을 친다. 평소 학교에서 무시당하는 존재였던 곤도 아야코의 말 한마디가 우습게 들렸지만 한 녀석이 겁없이 대들었다가 총에 무참히 사살당하는 걸 보고 이것은 결코 꿈이 아닌 현실임을 깨닫는다. 그것은 발단이었을 뿐이다. 인질극이 시작되고 경찰과 언론, 학부모, 학교 관계자까지 나서 사태의 해결을 위한 집압시도를 하지만 그녀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이제 곤도 아야코에게 조금이라도 불응하는 아이들은 차례차례 죽어나간다. 그녀에게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총이나 칼 무기는 기본으로, 일대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호신술까지 내부의 인질은 물론, 외부의 침투로 부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감시시스템, 대인살상용 지뢰 같은 것도 구비함으로서 인질극은 장기전으로 이어질 조짐이 보였다. 곤도 아야코는 돈을 요구하지만 프롤로그에서 보여준 상황들이 그것이 진짜 목적이 아님을, 담보로 잡은 돈은 또 다른 계획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필이면 극악무도한 문제아들만 D반에다 몽땅 집결시켜둔 설정은 작위적일수도 있겠지만 학교라는 시스템은 우등과 열등으로 분리해서 격리수용하는 방식이다. 같은 부류끼리 편성하여 순백을 물들이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는 것. 취지는 알겠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인질극에 당위성이 충분히 성립된다고 본다. 물질적인 보상이나 정치적 요구를 하는 일반적인 인질극과는 달리 교사가 학생들을 인질로 삼는다는 설정은 딸을 잃은 모정이 강 건너에 있는 복수를 만나기 위한 임시가설교였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1회용으로 소모되면 그것으로 끝일뿐. 여기에는 자비도 없다. 눈에 거슬리면 바로 즉결처분. 

 

그래서일까? 계속해서 인질로 잡힌 아이들이 죽어나가는데도 안타까움이 들지 않는다. 이 녀석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후안무치한 존재들이라 휴대폰으로 외부의 친구들에게 사태를 자랑하기도 하는가하면 머리에 총구를 겨누며 자신이 저지른 죄악이 낱낱이 까발려져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눈만 껌뻑할 뿐. 시간이 흐르면서 곤도 아야코가 펼치는 논리에 점차 감화되고 명쾌함에 설득당하는데 부패를 촉진시키는 해충은 박멸만이 정답이니 착하고 힘없는 선량한 약자들이 우는 얼굴을 조금이나마 덜 볼 수 있는 밝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소망은 사법제도의 테두리에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곤도 아야코가 당기는 방아쇠마다 싹수가 노란 녀석들이 미리미리 제거되어 미래의 더 큰 불행을 차단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후련함은 없을 것 같다. 어찌 청소년 범죄에만 해당되겠는가? 사회에도 필연적으로 집행되었으면 한다. 평소 마음 속에 꾹꾹 눌러뒀던 억압된 울분을 해소시키는 폭발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기에 진정한 가독성이 존재한다. 

 

그러면서 인질극이 영원히 진행될수도 없으니 어떻게 종결지을까 궁금했었다. 평범하고 무기력했던 곤도 아야코가 단시일내에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움을 준 조력자의 정체도 뜻밖이었거니와 인질 중에 어떤 의미를 짊어지고 있었던 어느 아이(본인은 전혀 짐작도 못했겠지만)가 어쩌면 사소한 행동으로 인하여 용서받을 줄 알았는데 죽음의 순서만 늦춰진 이유가 결국 악행의 고리를 잘라내지 못한 자업자득 때문이었다는 설정도 인상적이다. 그랬다. 인질극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으로 끊임없이 서스펜스가 불꽃을 튀기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아야코와 경찰 간의 치밀한 심리전도 일품이라 읽는 내내 기분이 쫄깃했다. 

 

한마디로 장르소설에서 독자가 원하는 쾌감을 제대로 구현했다고 볼 수 있는데 유쾌, 상쾌하지는 않지만 통쾌했다는 것. 그리고 아야코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그 돈으로 잘 먹고 잘 살려는 추악한 욕망이 아니었기에) 피끊는 모정에 대한 안타까움에다 인질로 잡혔다가 죽은 아이들의 부모 중 일부가 족쇄에서 해방된 기분을 느끼는 대목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때론 희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울한 현실을 수용해야만 했고. 문득 그저께인가, TV에서 방영되었던 한 청소년 프로그램이 오버랩된다.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어느 학부모는 자식에게 위해를 가한 아이들 중 주범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을 반드시 원한다고 절규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 순간 곤도 아야코의 심정이 저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소설 속 주요 대목들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니며 말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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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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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 메세추세츠 뉴턴 시티 지방검찰청 차장검사 “앤드루 바버”는 신중하며 사려 깊은 아내 “로리”와 한창 사춘기에 해당되는 열네살 아들 “제이콥”과 함께 중산층 가정을 꾸리며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앤드류”네가 살고 있는 뉴턴 시티는 범죄와는 거리가 멀고 자녀교육에 더없이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조용한 지방도시이다. 그런데 콜드스프링 공원에서 한 소년이 시체로 발견되면서 뉴턴의 주민들에게는 불시의 타격이 되고 불안으로 뒤숭숭한 분위기가 된다. 지검의 넘버 2인 "앤드루"가 직접 사건을 담당하게 되는데 살해된 소년은 "제이컵"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또래 “벤저민 리프킨”이었고 사건발생 며칠 동안 수사는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앤드루”는 인근에 사는 소아성애자를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면서 좀 더 밀어붙이면 그걸로 사건은 해결될 걸로 믿었다. 그러나 사건의 행방에 변수가 생기면서 “앤드루”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데 살인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흉기의 행방과 정황 등이 모두 자신의 아들 "제이컵"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게 되면서 "앤드루"의 검사경력과 가정의 행복 모두 심각한 붕괴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 않은가? 그는 지금까지 사법제도를 신뢰하고 옹호하는 위치에 있었던 고상한 “갑”이었다. 그랬던 그가 사법제도에 대한 절대 신뢰를 부정하고 시스템에 대한 오류와 허점을 입증해서 아들의 무죄를 입증해야만 하는 정반대의 입장, 즉 “을”로 격하되어버린 것이다. 죄의 유무만이 중요했던 이분법적 세계에 살았다고 인정하지만 하필이면 그의 밑에서 일을 배우면 자신을 밟고 올라서기를 꿈꾸었던 야심만만한 후배검사 “닐 라주디스”와 대적하게 되었으니 어제의 동지가 적이 되어버린 셈이다. 또한 가족 중 범죄용의자가 존재한다는 건 일상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맹독이 스며든다는 걸 의미하는데 그동안 무탈하게 흘러왔던 가정은 비로소 구성원의 가치관이 불협화음을 빚으며 충돌하는 시발점에 놓이게 된다. 아들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고 자부했던 부부는 그것이 과신이 아니면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고 남편은 근거 없는 낙관론을 아내는 지나친 신중론을 펼치면서 아들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현저한 입장 차이를 보여준다.

 

 

사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두 사람 어느 쪽도 일방적으로 생각이 옳다고 지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자녀양육이란 현실에 있어서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여러모로 불완전하고 미숙한 점도 있고 반항도 하면서 그렇게 커나간다는 과정을 우리 모두는 잘 안다. 방임할 것인가 통제할 것인가 하는 방법 선택에 있어서는 낙관과 신중함 모두의 조화가 반드시 필요하리라 본다. 그렇다면 작금에 닥친 불행을 두고 그런 관점에서의 부부의 고민과 충돌은 이해하고 싶어도 지나칠 정도로 반복적이어서 좀 줄여줄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 적정 수준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상황들이라 컷팅이 필요했는데... 장르소설이라는 특성을 감안했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의 가정의 분열과 붕괴는 익히 다루어온 단골소재가 아니던가? 직계에서 대물림 되다시피 한 “앤드루” 집안의 “살인유전자”같은 비합리적 근거로 평결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려는 검사 측 시도도 현실적이지 못해 좀 황당한 설정인 것도 같은데 실제에서는 반영 가능한 일인지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어쨌든 직접 사건을 지휘하던 "앤드루"는 그 일에서 손을 떼게 되고 검사자리에서도 밀려나다시피 하게 되면서 결국 "제이컵"은 용의자로 재판을 받게 되고 "앤드루"는 증인이 되어 자신의 아들 "제이컵"의 무죄를 무조건적으로 믿으며 아들을 변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임한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은 부부 모두 아들 "제이컵"에 대해 너무도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아니면 잘 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한다. 이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정해진다. 무죄 입증이 아닌 유죄 입증불가 방식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들을 위해서라면 부부는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고 그렇게 해서 승리의 깃발을 쟁취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용서와 화해, 신뢰의 손길을 내밀지 않으리라. 한 번 뒤집어쓴 오욕은 평생을 씻어도 악취가 가시지 않으리란 것을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피해자의 아픔과 상처에 주목하고 있을 때 무고한 사람들에게 덧씌워진 낙인이란 형벌에 무관심 할 때 숙명처럼 감내해야만 하는 그들의 현실이 마음 한 구석을 아프게 한다. 그래도 세상은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보다.

 

 

다시 재판과정으로 돌아가 보자. 정황 자체가 “제이컵”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진행되다 보니 이대로라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검사와 변호사 측 공방도 추가 한 쪽으로 기울었다. 배심원단의 평결을 뒤집을만한 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어떤 터닝포인트를 기대했고 실제로 나왔지만 그런 뜬금없는 전개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 크게 달궈 놓은 것도 없지만 법정소설로서 급격히 냉각되는 패착이다. 이제까지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그리고 결말을 향해 이 소설은 달려간다. 충격적인 반전이 입을 쩍 벌리고 나를 맞이했다. 분명 이대로 끝나지 않으리라 예상하며 나름대로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있었다. 자세한 해설 없이 오로지 정황만으로 사건의 진실을 유추케 하는데 예상했던 진실에는 맞아 떨어진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반전이라고 해야 할지는 애매하지만 라스트 신은 놀랍다 못해 악몽이다. 실제로 책을 덮고 자면서 이상한 꿈들에 시달려야 했고 깨어나서도 어느 정도의 후유증이 남았다.

 

 

“당신은 가족을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 이 책은 그에 대한 해답이라고 했다. 그런 선택 말고는 다른 선택은 과연 없었을까? 그런데 묵직한 통증이 뒤통수를 내려치는 것 같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회의가 동시에 발생한다. 그렇다. 이 소설은 법정소설로는 밀도가 떨어지는 실패작이거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취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정당성 부여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최선의 작품이 될 수도 있는 양자의 기로에 정확히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솔직히 나는 법정소설의 최고봉을 기대했었다. 생생한 재판과정에서 파생되는 치밀한 플롯, 불꽃 튀는 논쟁 같은 것들을. 사실 이런 요소들은 없다. 낭패였다. 모든 것이 결말(또는 반전)을 위한 무의미한 소모전이었을 뿐이다. 법정이야기에 좀 더 완성도를 높였다면 나 또한 이 소설을 올해 최고작으로 선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종착역에 올인하기는 힘들다. 매끄럽지 않은 경유지로 인해 “제이컵을 위하여(Defending Jacob)”의 심각한 옥의 티는 용서할 수 없는 재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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