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7
나가오카 히로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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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오카 히로키”의 경찰소설 <교장(敎場)>은 한자로 풀어보면 하면 교육장이 되겠네요.

구체적으로는 일본 경찰학교의 교육장입니다. 저자는 경찰소설의 집필을 앞두고 지금까지 무수히 많이 출간된 경찰소설과 차별점을 만들고자 고민했으며, 그 결과로 경찰학교를 무대로 한 이번 작품을 내놨다고 합니다. 확실히 경찰학교를 전면에 내세운 경찰소설은 여태껏 본 적이 없어서 생경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신선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소 특이한 점은 연작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어 특정한 인물 한 사람의 전지적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게 아니라 매 에피소드별 중심이 되는 생도가 있고, 그 생도는 다른 에피소드에서 주변인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 생도들을 조율하고 경찰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통제관으로 가자마라는 교관이 따로 있습니다만 엄연히 생도가 주인공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입학과 동시에 바로 ‘순경’이라는 직급이 부여된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직급은 무사히 수료했을 경우에 한해서 부여되는 줄 알았더니 아닌 가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실제로 수료해서 현장에 투입되기 위해서 받는 교육과정들은 엄청나게 강도가 세고 따라서 혹독합니다. 불심검문, 체포술, 차량수색, 형사소송법 생도들이 통과해야 할 교과목들만 해도 까다로운데다 규율은 더욱 심신을 고되게 만들지요.

 

 

일례로 세 걸음까지는 걸어도 되지만 네 걸음부터는 반드시 뛰어야만 하고, 개인소지품에 자기 식별표시를 조금이라도 허술하게 한다든지, 매일 일기를 의무적으로 써야하는 대신에 창작이 약간이라도 들어가든지 하면 체벌과 심할 경우에는 퇴학까지 당할 정도입니다.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바로 탈락이라는 냉엄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피 끊는 청춘들은 단련 또 단련해야겠죠.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자신감을 유지하면서 실습 시 당황하지 말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교육과정만 잘 따라가서 수료는 무난할 것 같지만 중도에 탈락자가 나옵니다. 단순히 실력 부족 탓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자진 퇴교하는 생도들이 매 에피소드에 꼭 한명씩 나오는데 마인드 컨트롤을 못한 일부 생도들이 또래 생도들과 부딪치면서 발생하는 어떤 불협화음들이 주원인입니다. 오해와 불신, 악의와 증오 등이 우리는 하나다 같은 동료의식을 밀어내면서 안타까운 일들이 자주 벌어져요.

 

 

그것을 매의 눈으로 포착하는 수사관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 앞서 말한 “가자마” 교관입니다. 불행한 사고의 원인과 동기,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정확히 꿰뚫어보면서 규율 내에서 문제적 생도들을 계속 안고 갈지, 중도 탈락시킬지 같은 칼자루를 쥐고 시험하기도, 기회를 다시 주기도 합니다. 경찰관이라는 자질을 단순히 교육과정을 잘 이수하는 것에만 두지 않고 인간의 심연에 두면서 이 직업을 투철히 수행할만한 성향인가를 자신만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지혜도 있습니다. 그 과정들이 조용하면서도 교묘하고 효율적이어서 일체의 잡음이 들리지 않네요. 그런 식으로 소리 없는 카리스마를 작렬시켜주시는 “가자마” 교관은 참으로 멋진 캐릭터였어요. 6개월이라는 단기는 짧다면 짧지만 끝까지 갈 수 있도록 생도들을 잘 유도하기도 하니까요

 

 

또한 경찰소설의 대가로 인정받는 “요코야마 히데오”가 "경의를 표한다. 항복이다!"라는 전설적인 독후감을 남겼다는 풍문이 이 소설을 더욱 값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감상을 남겼는지 찾아볼 수만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데 가능했다면 그 독후감을 별도로 이 소설 마지막에 실어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대중적 기호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지겠지만 갓 태어난 햇병아리들을 강하고 체계적인 신입경찰로 육성하고자 하는 그 공정들을 정밀하게 견학시켜 준 <교장>은 지금까지의 경찰소설 중 가장 그 본질을 제대로 만족시켜 주기 때문에 감히 최고봉이라고 주장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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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즈 ㅣ 웨이워드파인즈 시리즈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변용란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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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눈을 뜹니다. 머리는 지독한 편두통에다 늑골은 누군가 강철 쪼가리를 찔러 넣은 듯 무척이나 고통스럽습니다. 제대로 걷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지갑도, 신분증도, 휴대폰도 없이 거리를 비틀비틀 걷던 이 남자는 결국엔 다시 쓰러졌어요. 정신 차리고 보니 병원입니다.그는 미연방 비밀수사국 요원 “에단 버크”예요. “에단”이 기억하는 건 현 대통령의 이름, 헬기를 조종할 수 있다는 것, 중동에 벌어진 전쟁에 참여했었다는 것, 서른일곱 살에 아내와 아들이 있다는 것, 실종된 동료요원들을 찾아 이 곳 “웨이워드 파인즈”라는 마을에 왔다는 점입니다.

 

 

이 마을에 도착함과 동시에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처음에 “에단”의 기억들과 보고 듣는, 모든 현상들이 정신적 외상장애 인줄만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과대망상에 빠진 “돈 키호테”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보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마을이 의문투성이에 이상한 곳이군요. 자신이 연방요원임을 내세워 보안관을 찾아가지만 오히려 동료요원을 살해한 범인으로 내몰립니다.

 

 

또한, 아내에게 분명 연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연락이 닿질 않습니다. 실종된 요원은 폐가에서 침대에 묶여 죽어 있었구요. 모두 그를 정신병자 취급합니다. 아주 외딴 지역에 자리 잡은 마을은 전기 울타리에 둘러싸여 아무도 밖으로 탈출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보안관에게 반항하다 먼지 나게 두들겨 맞곤 병원에 강제 감금당해서 뭔가 약물도 투입하고 수술도 하려는 듯합니다. 아! 위기일발의 순간에 바에서 만났던 바텐더 여인이 나타나 탈출을 돕습니다. 병원은 간신히 빠져나갔지만 그 때부터 온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어 두 사람을 뒤쫓습니다.

 

 

외부로 탈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아나지만 결국 여인은 마을 사람들에 잡혀 갈기갈기 찢겨 처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집요하게 추적하는 사람들 때문에 진실은 무엇인지 점점 궁금해지며 “에단”은 미치광이가 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제정신임을 깨닫는 것임을 그제야 깨닫게 되죠. 꿈과 인생이라는 의식의 뗏목에 매달리는 일을 어떻게 구별해야 할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속도로 이야기는 달려갑니다.

 

 

“웨이워드 파인즈”에서 새롭고 놀라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틀 동안 정신 상태를 의심케 할 만한 것들은 과연 자신이 진정 미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도록 만들려는 의도인지, 어쩌면 이 모든 의구심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그래서 손에 책을 잡는 순간 끝까지 손에서 뗄 수 없는 겁니다. 아름다운 지옥, 도시를 둘러싼 감옥의 철창,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 게다가 반군까지 존재하는 이유가 점점 알고 싶어서입니다. 이상한 생명체도 “에단”의 목숨을 위협하는데 합류하는군요.

 

 

피의 축제, 이상한 광기, 시간의 왜곡, 기억의 퇴행 등 계속적으로 충격적인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욱 놀랄만한 반전이 기다립니다. 2015년 미국 폭스 티비에서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기도 한데, 감독은 <식스 센스>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주인공 “에단 버크” 역에는 “맷 딜런”이 캐스팅되었다고 합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가득 찬 이 소설에는 흡사 <혹성탈출>을 연상케 만드는 세상의 안과 밖이 존재하고 있는데, 생물의 진화 중에 인간의 진화는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지 묻습니다. 축복인가? 재앙인가?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될 것인가? 그 점을 알려주는 “웨이워드(wayward)”라는 마을 명은 “변덕스러운, 제멋대로의, 다루기 힘든, 까다로운” 등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에 대단히 난폭합니다.

 

 

미스터리에서 출발하여 스릴러, 호러, 액션어드벤처, SF로 넘어가며 종횡무진 내달리죠. 놀라운 사실은 이제 3부작의 시작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거대한 스케일을 펼쳐 놓았으면 궁극에 어떤 결말로 봉합할지 완결편 까지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을 거라는 것이죠. 아찔하고 현란한 속도감은 이 소설의 백미입니다. 시작은 이만하면 충분히 성공적이라서 부디 용두사마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그래서 근래 보기 드문 가독성이 끝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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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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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는 나에게 중국 현대소설의 신선한 재미와 감동을 가슴에 새겨준 잊지 못할 작품이었고 웃음과 짠한 눈물이 교차하는 경험이라 기회만 된다면 그의 다른 작품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염원을 항상 담고 있었다. 그래서 신작 장편소설 <제7일>은 그의 작품세계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오랜만의 재회선물이거나 처음 그의 작품을 읽고자 하는 이에게 입문작으로 손색이 없어서 역시 “위화구나.”하는 감탄이 든다. 작가 스스로도 ‘30년 문학 인생의 결정판’으로 꼽는 작품이라고 하니 팬이라면 결코 놓쳐선 안 될 것이며 어느덧 우리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중국 작가로 꼽힐 정도가 되었음은 영향력 면에서도 그 스펙트럼은 광대하다.

 

그런데 왜 소설의 제목이 <제7일>일까? 그것은 주인공 “양페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난 뒤 “이승”에서 “저승”으로 완전히 넘어가지 못하고 떠도는 "7일" 동안에 벌어지는 사후기를 의미한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조물주가 엿새 날까지 일을 마치고 다음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었다고 되어있고 거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그리하여 종교적 의미를 인간의 사후에 시간적, 공간적 의미로 변환함으로서 인생을 숙연한 시선으로 재해석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작과 끝이라는 시간적 경계와 인간이 자신의 삶을 마감한 이후(천수를 누렸거나, 병사를 했거나, 불의의 사고로 죽었거나 죽음의 형태와 살아온 기간은 상관없이) 묘지에 안정되어 완전히 "저승"으로 넘어가기 전에 대기하는 공간인 것이다. 살아서는 각자의 처지가 달랐던 인간들이 생전의 시간들에 대하여 추억을 되새기고 삶이라는 형태에 대한 해석을 거쳐 영원한 안식을 찾아가게 하는 셈이다.

 

 

또한 “7일”이라는 공간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쌓일 수밖에 없는 회한과 오해와 앙금을 털고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화합의 한마당이 될 수 있는 마지막 자리이다. 묵은 때를 씻어내고 마음의 빚을 청산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주인공 “양페이”는 자신을 임신한 어머니가 출산을 앞두고 진통을 못 견뎌 화장실로 달려갔다가 그만 구멍으로 빠뜨려 이산가족이 된 아픔이 있었다. 철도원이 된 양아버지가 아이를 발견해 지극정성으로 키워냈고 나중에는 친어머니와 재회하지만 양아버지를 못 잊어 돌아온 “양페이”. 어릴 적에는 부양이 힘들어 일시적으로 자신을 버린 적도 있었던 양아버지였지만 너무나도 사랑해주셨던 그 분이 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게 되자 “양페이”에게 짐이 되기 싫어 집을 나갔고 그 분을 찾아 온 세상을 뒤지고 다녀야했던 그 기억은 “양페이”에게 평생의 한으로 남았었다. 그렇게 살아서는 만날 수 없었던 두 부자가 “7일”이라는 공간에서 상봉하게 되는 일은 어떠한 극적인 장치를 심지 않고도 은연중에 떨리는 슬픔과 기쁨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 순간의 뭉클함이란!!!

 

그 밖에 “양페이”는 “7일”동안 많은 여러 사람을 그들의 사연을 듣게 된다. 생전에 자신의 옷깃을 스쳐갔던 인연들이 여기에 와서 재구성되는 걸 보면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도 인간의 관계라는 연줄은 어떤 식으로도 연결되어 있다는 게 진기했다. “두 사람의 원한은 생사의 경계를 넘지 않았다. 원한은 저지당한 채 그 떠나간 세계에 남았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지지고 볶았던 악연들이 사후에는 아무런 쓸모없이 순백의 심성으로 어떤 편견이나 조건 없이도 상대를 재평가하는 공간이기에 죽어서 다시 만나는 그 곳은 욕심에 찌들려 아등바등 살아온 "이승"에서의 시간들이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는지 깊숙이 깨닫게 된다. 

 

분명 이들에게 생전의 삶은 사회주의 체제에다 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인 중국의 시장경제체제와 여전히 부패하고 경직된 관료라는 벽으로 인해 고달펐으리라. 그렇게 빈부의 격차에 시달렸던 이들은 인간다운 대접은 고사하고 억울한 죽음에도 세간의 관심도 못 받고 쓸쓸히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다. 그런데 죽어서는 만인이 평등할 줄 알았는데... 적어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논리는 죽어서도 꼬리처럼 따라다닌다. 돈이 없으면 누울 묘지도 없거나 슬퍼해 줄 유족도 없는 상황이라면 번호표를 뽑고 자신의 화장터에 가기 위한 채비를 한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비통한가! 돈 많은 부자는 VIP로 대접받고 좋은 관에서 많은 이들의 애도 속에서 화장되는 호사를 누리지만 “양페이”같은 이들은 마냥 떠돌다가 부패해서 해골이 되는 시점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차별은 비참하지만 “저승”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은 인간이라는 의미, 인간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의의를 다시 찾는 순간들과 깨달음이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받는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작가는 부자들의 삶을 결코 반추하고 있지는 않다. 가난에 찌들었던 이들이 살아있는 동안 물질적인 성공과 행복에 매진하며 선택의 기로에 놓을 수밖에 없어 결정해야했던 판단에 결코 옳고 그름이라는 무게를 두지 않는다. 인생이란 과정은 섣불리 어떠한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에 각자가 최선을 다해 살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단지 이것을 뒷받침해주지 못한 체제에 대한 은근한 비판을 이번에도 유머와 눈물이 절묘하게 교배되는 구성으로 찔러댈 뿐이다. 그래,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고, 원수도 없고 원망도 없는. 죽은 사람들 모두 평등하기를 바라는 세상을 염원하며 떠나가고 있구나. 

 

이제 작가의 한국방문 소식도 들리고 <허삼관 매혈기>가 배우 "하정우"의 연출로 2014년에 한국영화로 개봉한다고 하니 여러모로 기쁘고 반갑다. 영화는 영상으로 어떻게 재해석될까? 문화혁명기의 중국을 그대로 옮기지는 못할 테니 분명 어떠한 변화가 있겠지. 부디 원작의 감동을 훼손하지 말고 최대한 가깝게 잘 살려내기를 바란다. 물론 이 소설도 영화로 만든다면 더 바랄게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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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자들 ㅣ 블루문클럽 Blue Moon Club
유시 아들레르 올센 지음, 김성훈 옮김 / 살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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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구하지 않는 여자>로 2012 배리상을 수상하며 "요 네스뵈"와 함께 북유럽 추리/스릴러 소설의 절대강자로 부상한 “유시 아들레르 올센”의 미결 사건 전담 “특별수사반Q”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를 읽었다. 여성 정치인 "메레테 륑고르" 실종 사건을 멋지게 해결해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칼 뫼르크" 경위는 3주간의 특별휴가를 마치고 복귀한다. 사람냄새 대신 형광등 때문에 두통이 밀려오는, 마치 포로수용소 같은 칙칙한 지하사무실은 그에게 여전히 불만의 대상이었고 책상 위에는 20년 전 여름 어느 휴양지 별장에서 오누이가 살해당한 사건파일이 떡 하니 놓여 있었다. 누가 올려다 놓았는지 아무도 모르는 그 사건은 이미 11년 전 범인이 자수해서 감방에 수감되어 종결된 건이라 지금에 와서 왜 이 파일을 자신에게 일부러 보라고 했는지 영문을 몰라 난감한 "칼 뫼르크" 경위. 이뿐만 아니라 복귀신고를 하러 3층에 올라갔더니 거기는 경찰개혁이 어쩌고저쩌고 난리 블루스에다 얼마 후 노르웨이 오슬로 경찰국에서 “특별수사반Q”를 시찰하러 방문한다고 한다.

 

또한 시리아(?) 출신으로 알려진 기존의 조수 "아사드" 외에 거침없는 입담과 반골기질에다 헤어, 패션까지 튀는 이상한 여비서 “로즈”까지 이 팀에 합류하면서 식구가 1명 더 늘게 되는데 그녀는 "칼"에게 새로운 두통거리가 된다. 어찌하면 이 여자를 잘라버릴까 궁리하다가도 그녀의 수완에 많은 도움을 받게 되는데 새로운 멤버의 가세는 시리즈에 상당한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제대로 안착한다면 재미는 책임져 줄 캐릭터가 될 것 같다. 그리하여 "모나 입센"에 대한 "칼"의 음흉한 흑심과 3인방의 티격태격 엇박자 유머는 우리네 정서에도 입가에 미소를 자아낼 정도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다시 사건파일로 복귀. 분명 범인의 자수로 종결된 사건의 이면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는 듯 하다. 범인은 출소가 코앞이었고 종결된 사건을 지금에 와서야 다시 들춰내야할 뚜렷한 명분과 실마리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데,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상부에서는 수사중단을 지시한다. 권력의 입김이 개입했다는 정황이 보인다. "칼"은 수사도중 폭력을 휘둘렀다는 누명에도 저항한다. 다행히도 익명의 제보자가 남긴 사건 파일을 꼼꼼히 살펴 본 칼은 사건이 단독이 아닌 다수가 벌인 일이라는 정황을 발견하고 재수사를 벌인다. 

 

그랬다. 범인은 패거리의 일원이었고, 나머지 패거리들은 교묘히 용의선상에서 벗어나 덴마크 최고의 사회지배층 계급에 올라있었다. 넘치는 부와 사회적 명성에 도취된 이들은 기숙학교 재학 시절부터 시작해서 불특정한 계층을 대상으로 무차별 폭행과 숲에 풀어 놓은 동물을 잔인하게 사냥하는 등 잔혹하고 엽기적인 악행 및 살인을 계속해서 저질러 왔었다. 이른 바 묻지 마 범죄였다. 과거 한 패거리였으나 현재는 그들에게서 도피 중인 여인 “키미”가 사건 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 희생자 한 명당 카드 한 장, 여섯 장의 트리비알 퍼슈트 카드.

 

패거리에 대한 절대복수의 칼날을 가는 “키미”와 “키미”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패거리들, 그리고 점차 법 집행의 포위망을 좁혀오는 “칼”과 “아사드”가 한 자리에 모여드는 과정들은 심증과 증거, 비밀과 추적이라는 상황을 통해 절체절명의 긴박감이 잘 조율된다. 그런 솜씨를 “유시 아들레르 올센”은 영리하게 성공적으로 발휘했다. 여기에서 패거리들은 분노와 복수라는 초에서 심지역할을 굳이 자제할 필요가 없었다.  희생자들의 죽음은 관심사가 아니었으니까. 이들을 이끌고 가는 것은 힘과 무기력 사이의 공백에 어떤 역할을 부여해야 하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쥐를 갖고 노는 고양이의 역할. 단숨에 먹잇감을 절명시키는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고 그 경이로운 쾌감에 경도되는 사이코패스들이었던 것이다. "칼"과 "아사드"는 그런 악을 뒤쫓았기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단지 아쉽다면 처음부터 범인의 정체와 악행을 대놓고 까발리다보니 미스터리는 자취를 감춘 것이 흠이라면 흠. 자! 이놈들이 어떻게 파멸당하는지 신나게 지켜보세요.

 

우연찮게도 <자비를 구하지 않는 여자>와 <도살자들> 모두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맞서 불굴의 정신력으로 대항하는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폭력, 저항, 여성이라는 세 가지 조합은 도저히 승산이 없을 것 같은 승부를 마지막까지 잘 이끌고 가면서 악의로부터의 구원을 폭발적으로 그려내었다. 덕분에 이야기라는 물줄기에 마음을 맡기면서 감탄했고 종착역에 도착해서 무거운 짐을 바닥에 내려놓은 안도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생생한 현장묘사와 입체적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며 여지없이 빛을 발하는 심리전과 일촉즉발의 결말에 재미는 기본이다.

 

 

이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북유럽 추리/스릴러계의 진정한 대항마, “유시 시 아들레르 올센”의 필력을 계속 확인해야 할 차례가 조만간 도래할 것임을 믿는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키미"가 정신병자처럼 혼자 중얼거렸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면 이보다 슬픈 사연은 없을 것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아사드"가 이라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이유와 "칼"에게 항상 데미지처럼 남아 있는 과거의 그 사건은 언제 해결해서 친구의 한을 풀어줄 것인가,라는  두가지 의문이 남는다. 해답을 기대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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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케이지 ㅣ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2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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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케이지>를 읽기 전 드라마 <딸기 밤>에 대한 일본시청자들의 반응을 잠시 검색해본다.

 

회가 거듭될수록 시청률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내용과 레이코를 성토하는 댓글들이 줄줄이 올라와 있다. 원작을 능가하는 드라마는 흔치않다고 보더라도 레이코에 대한 비공감은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저격수로서 칸테쓰의 역할을 칭찬하는 댓글들이 많다는 것도 의미하는 바는 의견일치라는 것이겠지. 하지만 점차 시리즈의 원작에 빠져드는 나!!! 

 

한 남자가 공사장 9층에서 몸을 내던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뭔지 모를 이상한 심정이 가슴을 휘감아 도는 것 같다. 왜 뜬금없이 대화 도중 자살을 택한 걸까? 그 남자는무거운 굴레에 지쳐있던 것 같은데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일까? 어떤 의문과 회한을 남겨두며 시간은 그렇게 흘렀고 강둑에 방치된 경승용차에서 남성의 절단된 왼쪽 손목이 발견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넘어간다. 증언과 지문 조사 결과 타카오카 켄이치라는 43세의 목수로 판명되는데 몸통의 행방은 알 길 없다. 당연히 죽었을 터. 그러나 레이코의 촉은 죽은 남자의 정체에 주목한다. 그리고 쿠사카 경위의 수사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여서 의혹으로 다가온다. 죽은 남자와 동거했던 청년, 그리고 같은 건설회사에서 동일한 형태로 추락사한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청년과 그와 연인관계였다는 한 아가씨. 우연이 아닌 의도된, 조작된 배후가 있는 것 같다. 어떤 흑막이 있었고 그것을 통해 이득을 본 측이 있는가 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던 아픔도 있구나.   

 

그리고 전작에서 칸테쓰의 활약이 돋보였다면 이번에는 레이코의 숙적이라고 하는 쿠사카 경위가 중심이 된다. 레이코는 쿠사카가 자신을 성폭행했던 남자를 연상시키는 외모라는 이유로, 직감을 중시하는 자신의 방식에 반해 지엽적인 사실을 배제 않고 일일이 포함시켜 철저한 수사를 추구하는 그의 방식에 분통을 터뜨린다. ‘유죄판결 제조기’라고 불릴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면 그것은 나름의 수사방식일 것이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 지 명확히 선을 그을 수 없기에 각자의 스타일을 존중하고 필요한 점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사실 레이코가 쿠사카를 세상에서 두 번째로 싫어하는 남자라는 얼토당토 하지도 않은 이유는 부당하다고 본다. 조직사회는 상사든 동료든 부하든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기호에 따라 믹스해먹는 배스킨 라빈스가 아니다. 때론 반목하고 때론 손을 내밀고, 그렇게 부대끼며 사는 것이 조직일진대 칸테쓰 같은 괴팍한 구성원이라면 좀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쿠사카는 특별히 자신을 적대시하지도 않는데 먼저 적으로 단정지어버리는 레이코의 오만함은 이번에도 짜증을 수시로 돋운다. 그 점을 시청자들이 지적하고 있었다. 관용과 수용의 지혜를 가져라는.

 

 

그렇게 레이코에 대한 계속적인 불만이 집중력을 흩뜨리기는 하지만 여전히 재밌고, 아니 전작에서 일취월장한 전개와 흥미, 감동이 담겨있다. 점차 발전해나갈 것 같다는 신뢰가 있어 이 시리즈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산 자와 죽은 자가 뒤바뀌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사연이 기막히면서 무엇보다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관통하는 물줄기는 “부성(父性)”이라는 단어다.

 

“아이의 볼은 참 부드럽습니다.

보들보들하고 은은하게 젖내가 납니다.

 나 같은 놈이 뺨을 대고 부비면 아플 겁니다.

더럽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버지 왜 우냐고 묻습니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그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사과의 말을 하고 맙니다.

미안하구나, 정말 미안하다. 못난 아비라서.....”  (p.9)

  

단순히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 말이 레이코의 아버지 이야기로 연결되고 범인의 정체와 트릭이 드러나는 순간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난다. 범인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독백은 사건의 전말을 이해시키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래야만했던 안타까운 속사정을 자식 된 도리로 청취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 석연치 않은 사정이 있던 내겐 바늘이 구석구석 찌르고 들어오는 기분이라 정면으로 직시하기 힘들었다. 

 

핏줄이 이어져야만 부모자식 간은 아니다.

피를 나눈 가족만이 가족은 아니다(p.386)

  

제목 <소울 케이지(Soul Cage)>는 그런 의미에서 참 절묘하게 붙인 것 같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영국 뮤지션 스팅의 1991년 앨범의 제목에서 모티브로 삼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가설에 바탕을 두고 추론해본다면 소울(Soul)은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로 해석이 가능할 듯싶다. 그렇다면 케이지(Cage)는 감옥이라는 뜻이 있으니까 합성어 “소울 케이지(Soul Cage)”는 악의와 위협, 고난이라는 굴레에서 자식을 구원해 주고 싶은 절절한 부성을 의미하는 합성어로 보인다. 이제 이 책을 읽고 나면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들을 헤아리는 절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리라.

마음속의 증오 대신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느끼며 그 사랑을 키운 자의 감정을. 슬픔의 도가니 ㅠ.ㅠ  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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