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성술 살인사건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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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신본격’ 추리소설,  그 전설의 시작?    

 

일본 추리소설의 특징이자 강점이라고 한다면 수수께끼 풀이식의 본격추리가 아닐까 한다. 이 같은 스타일은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서양에서는 거의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면 끈질기게 명맥을, 아니 오히려 더 활성화 되고 있음에 일종의 회귀본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신본격’의 창시자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이 처음엔 주목을 받지못하다가 이후 입소문에 의하여 전설로 남은 작품이라는 평판은 명성이 때론 열광과 탐닉을, 괴리감이라는 상반된 감상을 이끌어낼 수도 있음도 주목한다. 모두가 만족하는 작품이란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 불가능에 도전장을 던진 담대함에는 일단 박수를 보낸다. 

 

 

스스로를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꼭두각시라고 고백하는 화가 “우메자와 헤이키치”는 점성술에 깊이 심취해있기도 했다. 그는 점성술의 이론을 대입하여 각자 다른 별자리를 타고난 여섯딸의 신체를 여섯 개로 절단한 후, 하나의 신체로 결합 개조하고자 한다. 이른 바 “아조트(azoth)”라고 불리는 인조인간 로보트 마징가Z(?). 그런 바람이 담긴 수기의 내용대로 각기 훼손된 딸들의 시신이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고 이 사건은 일본 전역을 충격과 경악으로 몰아넣는다.  

 

“헤이키치”가 말한 “아조트”는 인간의 신체 모든 부위가 행성의 축복을 받고 있으며 이 특별한 부위의 합체야말로 완벽한 미녀의 조건을 갖춘 꿈의 이상이자 결정체라고 믿는 망상이 낳은 해괴망측한 이론의 집대성이다. 자신의 딸들을 대상으로 그런 망상을 한다는 건 정상적인 사람의 머리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신본격’이라는 흐름을 완성하기 위해서 해당계열의 작품들에서는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도를 넣은 잔인하고 기괴한 구상이 자주 이용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음을 수용하였다. 물론 그래서 당시에는 환영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복잡 미묘하며 파헤치기가 불가능할 것 같은 수수께끼를 내놓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설정으론 만족 못해 더 비현실적이고 더 도발적인 더 환상적인 시도를 해야만 하고 이것은 “시마다 소지”의 작품들에 언제나 호불호가 엇갈리는 이유였다. 모 평자의 조언대로 이것은 과학이 아닌, 이론적으론 실현가능하지만 실제론 실패할 염려가 높기에 시도하기가 부담스러운 논리라는 변칙게임으로 받아들이고 즐기라고만 해야겠다. 무한 경쟁이라는 또 다른 의미도 들어 있고.

 

 

 

결국은 전대미문의 사건을 두고 해답을 알아내고자 많은 이들이 지혜를 짜내었지만 40년간 아무도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던 불가사의한 사건이었다. 영국의 명탐정 “홈즈”와 조수 “왓슨” 콤비 같은 “미타라이 기요시”와 “이시오카 가즈미”가 이에 도전장을 내민다. 정작 콤비 플레이는 아닌, 따로 국밥식의 활동인데 완벽한 밀실구조, 그리고 주변에 어지러이 놓여 있는 눈 속의 발자국, 시체 훼손방법에다 또 다른 희생자에 대한 살해동기까지 복합적인 난제들이 얽혀 있어 논리와 진실을 기만하고 왜곡하는 트릭의 두 요소는 상호 보완적인 완충재 역할을 하면서 마지막에 진실이 밝혀질 때 까지 짐작조차 못하게 만들었다. 물론 난 이런 방식에 상당히 취약하니까. 일일이 설명해줘도 여전히 의문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작가의 불친절함과 나의 우둔함에 반반씩 책임을 물어야지. 그런고로 무엄하게도 독자에게 두 번씩이나 도전장을 던진 "소지" 선생. 나의 완패요. 

 

 

 

그래도 “아조트”의 완성을 명목으로 자행(?)되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던 여섯 구의 시체의 배열에 관한 수수께끼는 역시 글보다 그림으로 이해해야 납득이 가는 속 시원함에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다. 어렵다면 어렵지만 의외로 쉽게 풀어낼 수도 있는 아이러니함이었다. 살해 동기란 것도 그렇다. 살해 동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에드 맥베인"의 <살의의 쐐기>에도 나와 있던데 기억을 떠올리기가 불가능해서 그 중에서 어떤 것에 해당될지 모르겠다. 다만 살해까지 해야 할 동기는 아니었지만 끝내 집행하고 만 것은 먹기 위해 살생해야만 하는 여타 생명체들과는 달리 인간만이 다양한 살의라는 변수들을 섞어 잔인해 질 수 있는 야만적이고 무법적인 존재들이라는 증거였다. 고작 그런 이유로.... 

 

 

 

마지막으로 사람의 성격을 추리하기 위해서 점성술을 공부했다는 “미타라이 기요시” 말인데, “홈즈”가 인간냄새가 나서 매력있다고? 그의 주장이 궤변처럼 들리는 건 그에게선 인간냄새가 나질 않고 그냥 추리하는 기계같기 때문인데 인간냄새 나는 건 오히려 “요시키 다케시” 쪽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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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뎀션 ㅣ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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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베트 그렌스" 경정 시리즈 제3탄!!!

 

"난 사형 제도를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선거 때마다 엄격한 사형집행을 공약으로 내건 주지사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만약 내 아들 녀석이 진짜 범인이라면 녀석은 사형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니까요. 하지만...잘 모르시겠지만, 존은 살인범이 아닙니다."  - 본문 증에서 -

 

스웨덴의 "안데슈 루슬룬드(Anders Roslund)"와 "버리에 헬스트럼(Borge Hellstrom)"는 "에베트 그렌스" 시리즈로 모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명콤비들이다. 소아성애범죄를 다룬 데뷔작 <비스트(The Beast)>로 스칸디나비아 최고의 스릴러에 주어지는 ‘글래스키 상“을 수상했으며. 영화화를 앞둔 두 번째 작품 <쓰리 세컨즈(Tre sekunder)>까지 연달아 히트를 치면서 헤닝 만켈 이후 반도 최고의 스릴러 작가로 거듭나고 있다.  이번에 시리즈의 세 번째에 해당하는 <리뎀션(Edward Finnigans upprattelse/Cell 8)>이 국내출간 되었는데 개인의 복수와 정의실현은 생각만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주제의식이 극명하게 표현될 뿐만 아니라, 교도소에 수감된 사형수를 모델로 교도행정의 실태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지적하기도 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항해하는 오보 페리선에서 여성을 상대로 상습 성추행을 하던 남자가 밴드의 보컬에게 머리를 걷어차여 중상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존 슈워츠”라는 이 남자는 평소 그 성추행범을 눈여겨보다 마침 분노를 참지 못하고 순간 폭발하였던 것인데 스웨덴에 거주하는 캐나다인의 신분인 “존 슈워츠”가 폭행죄로 구금 조사를 받던 중 정신적 이상 증세를 보이게 되자 의혹을 느낀 "에베트 그렌스" 경정은 "존 슈워츠"의 신원조사에 착수한다. 

 

아뿔사, 그 남자는 처음부터 수상했었는데 신원 조사결과는 정말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존 슈워츠"는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에다 본명은 “존 메이어 프레이”였고 17살에 16살의 여자친구를 살인했다는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재소자였던 것이다. 게다가 사형집행을 2개월을 앞두고 6년 전 감옥에서 사망한 사람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그런 그가 지금 버젓이 살아 남아 스웨덴에서 다른 신분으로 결혼까지 해 아내와 아들까지 두었다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어찌 믿어야 할 것이며, 또 어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이 문제는 대외적으로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는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EU 간 체결된 범죄인 인도조약으로 인해 즉시 본국으로 송환시켜야만 하지만 분명 이 남자는 즉시 사형에 처할 운명이 될 것이라 스웨덴 정부는 거부와 송환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사형을 반대하는 인권단체의 시위와 청원까지 줄을 이으면서 쟁점사항으로 번져가는 상황에 이르자 스웨덴 정부는 자신들에게 쏟아질 여론의 질타에 미국이 아닌 제3국으로 보내어 어떤 책임에서도 회피하고자 한다.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존 메이어 프레이”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대중은 그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조속한 사형집행을 촉구하는 여론으로 들끓는데...   

 

스웨덴 국영방송국 사회부 기자였던 "안데슈 루슬룬드"와 과거 범죄자였던 "버리에 헬스트럼" 콤비는 이 작품 <리뎀션>을 통해 몇 개주에서 사형제도가 아직 살아있는 미국과 사형제도가 폐지된 스웨덴이라는 국가적 비교를 통해 사적복수의 어디까지가 정당한 것인지 묻는다. 정의 실현인가, 아님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억울한 희생자를 감안하면 인권의 사각지대인가라는 무겁고도 민감한 이슈를 정면 돌파하고 있다. 사형옹호론자들과 사형폐지론자들의 논쟁은 쉽사리 좁혀질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사안인데 유족들에게는 보상이 될 것이며 범죄 예방효과라는 일석이조라는 해석에 일단 무게가 실린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당사자들에겐 죽은 자를 되살려내진 못해도 국가에게 보상을 요구함으로서 국가가 저지르는 살인에 대의명분과 면죄부를 실어주는, 어떤 의미에선 공범이 되는 셈이다. 사랑하는 이의 피를 보았으니 반드시 살인자의 피를 다시 뒤 짚어 써서라도 합법적인 살인으로 보답 받고 싶은 심정은 구경꾼들은 헤아리기 어렵다. 나 또한 그런 차원에서 존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싶고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피의자가 과학적 증거가 아니라 정황증거에 의한 유죄평결을 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복수 대신 보상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되는 사형제도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형수들 중에 정말 무고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하늘만이 알 것이다. 이 책에서는 모든 것이 정리된 이후 억울한 희생자를 양산해서는 안 될 사형제도의 허점을 증명하고자 하는 모종의 실험이 가진 의도를 점차 드러내면서 허를 찌르고 들어온다. 그래서 무죄입증을 위한 시도가 이처럼 허망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정의와 진실은 언제나 승리한다는 말은 살아남은 자에게만 해당될지도 모른다. 그렇지 못했다면 그 보상은 또 어디에 청구해야한단 말인가? 진실을 호도하고 마녀사냥을 부추기는 여론이라는 압박도 무책임과 또 다른 의미의 매카시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피해가진 못한다. 연대책임을 요하는데.

 

또한 "스벤"과 "아니타" 부부 사이의 대화에서는 징벌을 받는 것은 정작 당사자가 아닌 남겨진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앗아간 행복에 신경 쓰인다는 말은 이 제도의 공명정대한 집행이 얼마나 절실한지가 주장된다. 시간에 쫓긴 졸속 집행 대신 한 치의 오차도 발생하지 않는 엄숙함이 필요하다. 그렇게 이 책은 주제 면에서는 확실한 색깔을 보여주기는 하나 “에베트 그렌스”의 잦은 짜증과 괴팍함은 동어 반복적으로 다뤄지기에 인내심을 수시로 확인시켜 준다는 점은 확실히 치명적이다. 뭔가 삶에서 새로운 활력을 찾아 신선한 바람으로 환기시켜 줄 필요가 있었고 “마리아나 헬만손”과의 데이트(?)는 그나마 숨통을 트여줘서 다행이다. 그래서 그런가 봐. 단점 대신 장점으로 승화시킬만한 실마리를 투입하기 위해서라도 로맨스는 필요한가 봐. 더욱이 늙은 남자 “에베트 그렌스” 경정에겐 말이다. 하루하루 그녀 대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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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내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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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제목만 들어봐선 혹시 했었습니다. <가시내>가 그 “가시내”냐고요.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계집아이를 속되게 일컫는 방언 “가시내”를 제목으로 사용했다면 10대 소녀 “솔랑주”와 그 친구들은 필시 정숙함과는 거리가 먼, 일탈적 성격이 강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솔랑주”가 사는 곳은 프랑스 남부지방의 ‘클레브’라는 마을인데 바쁜 부모님 대신에 이웃에 사는 “비오츠”씨가 돌봐줍니다. 따분한 일상을 보내던 중에 생리라는 신체적 변화를 겪게 되면서 남녀의 신체의 차이점, 가령 생식기 같은 것에 궁금증도 덩달아 느낍니다.

 

 

학교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모두 섹스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들은 토막토막 단락으로 끊어지면서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않으니 굉장히 모호하고 불친절하기 짝이 없습니다. 섹스에 탐닉하는 아이들을 위해 남녀의 생식기는 백과사전을 펼쳐 사전적의미로 설명되고 있습니다만 그것만으로 다 이해했다고 볼 수 없겠네요. 그래서 “솔랑주”는 일기를 써 보려 합니다. 직접 펜으로 쓰자니 그렇고 녹음기의 녹음버튼을 눌러서 기록하기로 하죠.

 

 

아버지의 자동차 안에는 잡지들이 있습니다. 잡지 속의 여자들을 비교하면서 자위행위를 체험하기도 하고 사전의 힘을 빌릴 필요 없이 자연이라는 순환 주기처럼 스스로 터득한 부모님들을 이해해 보려고도 하지요.

 

 

“저런 바보가 어느 세월에 여자가 되겠어요? 그리고 언제 애를 낳겠어요?

사람들은 여자이길 포기하지 않으려 하죠. 나는 기꺼이 포기하겠지만.”

 

 

어머니의 투덜거림대로 무엇이든 첫 경험이 중요합니다. 첫 사랑, 첫 키스, 첫 섹스, 첫 출산 등등 소녀에서 여인으로 나아가기 위해 통과의례가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남자랑 데이트로 했다가 늑대 티셔츠를 입은 해변의 서퍼를 나이트에서 만나기도 하고, 영국 펜팔친구, 오토바이 타는 바이크족 “아르노”, 이웃집 어른 “비오츠”씨까지 상대를 고민하다 결국 순결을 잃게 됩니다.

 

 

아직 철없는 이 어린 소녀에게 제대로 어른 노릇을 할 보호자가 없었음에 안타깝고 무기력함을 느껴버리게 되었습니다. 여물지 못한 정신적 성숙을 부모도 책임지지 못했습니다. 피임에 대해서 엄마조차도 무관심에 방임했던 것이라 “솔랑주”가 “비오츠”씨에게 다시 “아르노”에게 일시적으로나마 이끌렸던 것은 막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죠. 무척 당혹스럽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10대의 性(성)이란 민감하고도 은밀한 주제입니다. 性(성)에 눈 떠가는 와중에 느끼게 되는 격정적 사건이나 몽상과 흥분 등을 적나라하게, 직설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의의는 상당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표현은 확실히 난폭했기 때문에 생각할 거리들이 여진처럼 남는 문제작입니다.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 여의치 않은 탓에 몇 번을 반복해 읽어보면 다소 가닥이 잡히지 않을 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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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심증후군
제스 로덴버그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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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 흔히 차였다는 표현을 씁니다. 마음의 준비가 전혀되어있지 않은 무방비 상태에서 실연은 ‘아랫배를 세게 차이는 느낌’ 만큼이나 숨이 턱 막히는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연증후군”은 ‘다른 고통에 무덤덤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심각한 충격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다른 충격에 반응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가슴 통증과 같은 심장마비와 전형적으로 유사한 증세를 보인다는군요.

 

 

그런데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정도 느낌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심장이 산산조각 난다면 어떨까요? 이 소설은 그러한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열여섯 소녀 “브리”는 남자친구 “제이콥”으로부터 어느 날 “나는 널 사랑하지 않아.”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게 됩니다. 그 순간 “브리”는 정말 죽었습니다. 그냥 죽은 게 아니라 충격을 견디지 못해 심장이 부서져 버렸던 것이죠. 실연의 고통을 이처럼 극단적으로 묘사한 표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려 합니다. “브리”는 유령이 되어 저승과 이승을 떠돕니다. 자신을 죽게 만든 원흉 “제이컵”의 주변을 맴돌며 복수한다며 갖은 해코지를 하기도 하지만 저승에서 만난 “패트릭”에게서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를 배우면서 깨달음을 얻어 새로이 성장하게 됩니다. 어쩌면 말입니다. “브리”처럼 우리들도 그 나이에 벼락을 쾅쾅 맞은 것처럼 운명 같은 사랑을 맞이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엔 아직 어린 열여섯은 조건이 붙은 어른들의 세속적인 사랑 대신 무엇보다 순결하고 깨끗한 사랑에 빠지기도 쉽고 그만큼 상처받기 또한 쉬운 나이였을 테죠.

 

 

그래서 패트릭의 말처럼 안식을 찾아 새 출발 해야 한다는 것, 사람들을 미련 없이 떠나 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충고에도 쉽사리 마음 정리를 못했습니다. 설득당하지 않겠다며. 분노에 사로잡혀 이성적으로 제어하지 못했던 것, “제이컵”이 평생 유일한 사랑이라서 동화 속 주인공처럼 영원히 행복하게 살 거라는 믿음에 소녀는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어른이 된 우리들은 잘 압니다. 그 순간뿐이라고, 아직 많은 여정이 남은 인생에서 첫 실연은 한 뼘 더 성장시키는 도약이고 진정한 사랑을 다시 하게 될 날이 반드시 찾아올 거라는 진리를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딱 하루를 환생할 수 있다는 악마적 유혹에 빠질 뻔 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패트릭”의 한결같은 믿음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서투르고 미숙했던 소녀는 새로운 행복을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따뜻하고 감동적이며 응원했던 보람이 컸습니다. 읽는 내내요. 단지 청춘남녀만의 사랑을 떠나서 평소 내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미처 모르고 그냥 살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내가, 아니면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었는지 뒤늦게 알게 되는 까닭도 더 이상 기회가 없기에 그 절박함과 안타까움도 배가 되는 듯합니다.

 

 

“아니. 너나 똑똑히 들어. 넌 고통이 뭔지. 고독이 뭔지 아무것도 몰라.

  하지만 곧 알게 될 거야. 모두가 너를 잊어버린다는 게 어떤 건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네가 이 세상에서 지워진다는 게.

  완전히 혼자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273페이지>

 

 

이 소설 <상심증후군>에서 영혼이 이승에 추락해서 사물을 직접 조종할 수 있게 되까지의 과정이라든지, 영혼이 영혼을 사고파는 거래, 영혼이 자살을 하는 장소 등 로맨스를 넘어 재미있는 판타지적 설정은 지루하지 않도록 흥미를 지속시켜 주어 좋습니다. 때문에 피식거리게도 하였다가 갑자기 코끝 찡한 슬픔도 함께 체험해 볼 수 있는 <상심증후군>은 이 가을, 메마른 정서에 충분한 힐링을 가져다 줄 만 이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실연당했을 때 심장이 부서지는 기분이란 어떤 경험인지 직접 읽고 느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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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ㅣ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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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오노 후유미”의 <십이국기>는 귀가 따갑게 명성을 들었던 것 같아요. 서양에 <반지의 제왕>이 있다면 동양에는 바로 <십이국기>가 있다고요. 대단한 극찬이 아닐 수 없죠. 때마침 문학 동네서 사전 서평단을 선정해서 가제본을 보내주었기에 무척 부푼 기대를 안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1권인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로 이 판타지를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여고생 “요코”양. “요코” 양은 악몽을 자주 꿉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서 있으면 이상하게 생긴 짐승들이 그녀에게 점점 가까이 달려옵니다. 그런데 몸은 옴짝달싹 못해서 이대로라면 죽고 말 것 같은 공포. 꿈을 꿀 때 마다 그 거리가 점점 좁혀오는데 단순히 꿈이라기엔 마음의 불안도 덩달아 커져 가지요.  

 

그 불안이 현실로 나타난 걸까요? 갑자기 “게이키”란 남자가 학교에 나타나 주인님이라 부르면서 적들을 피해 어서 피신해야 한다면서 “요코” 양을 다짜고짜 어디론가 데려가려 합니다. 멘붕에 빠진 “요코” 양은 끌려가다시피 해서 따라가던 차에 거대한 새가 나타나 공격을 해오고 검 한 자루를 넘겨받아 어떤 신비한 힘에 의한 빙의로 인해 그 새를 베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는 혼자 다른 세계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이 세계는 자신이 살던 일본이 아니라 12개 나라로 구성된 또 다른 땅덩어리였는데 행불된 “게이키”를 찾아 다시 원래 세상으로 되돌아 갈 방법을 구하고자 방랑을 합니다. 도중에 요마들의 계속된 습격과 자신같이 다른 세계에서 우연히 넘어오게 된 사람들을 지칭하는 “해객”이라는 신분 때문에 사람들의 추적도 받으면서 도움을 청할 “안”이라는 나라로 향해요. 

 

각 나라마다 현재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안”국의 “연왕”이라는 군주는 “해객”에게 차별과 위해를 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분이라면 자신을 함부로 내치지 않고 어떤 도움이나 실마릴 제공해 줄 것이라 믿었으니까요. 또 어쩌면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타인이 원하는 그림대로 살지 않으면 버림받을까 억지로 범생인 것처럼 행동해야 했던 “요코”양이 두려움과 안주라는 껍질을 깨고 나가 자신의 의지대로 현실을 경영하려 하는 자아성장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내내 듭니다. 자기 목소릴 내면서 말이죠.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변화가 진행될수록 그녀는 전사가 되어갑니다.  

 

그런 점에서 그녀가 가진 보검이 마음 속 번민과 두려움을 가족과 친구, 주위사람들이 평소 그녀에게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지 영상으로 보여줄 때 자신 말고는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다는 냉혹한 진실들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도록 만듭니다. 실종되었지만 엄마 말고는 그 누구도 “요코” 양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이상한 소문과 추측, 비아냥만 난무하는데 나도 죽어버린다면 남은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면 공상이 만들어낸 이상향으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단 평소 생각들이 오버랩 되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이 책은 그런 바람들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지요. 

 

차라리 죽는 게 고통이 적다. 모두가 자신을 이용하려할 뿐이다 면서 사악한 웃음을 날리는 푸른 원숭이라는 허상과의 심리전은 그래서 몰입도를 더욱 높여나갈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원숭이를 더 이상 보지 않는 순간부터 “요코”양은 정체성을 되찾아 비로소 자신이 여기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각성하게 되는 것이며 마음의 감옥에서 해방되는 순간이 됩니다. 그 계기를 만들어준 것은 쥐의 모습을 한 “라쿠슌”이라는 반수와의 만남입니다. 처음으로 타인에 대한 믿음, 신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순순한 호의로 접근하지 않았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뒤부터 진정한 친구가 되어준 “라쿠슌”이 무척 좋았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영민하고 듬직함과 푸근함을 함께 느끼게 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은 엄마 뱃속이 아닌 열매에서 태어난다는 발상도 기막히네요. 왜 “요코” 양의 여기에서의 모습이 일본에서 살 때랑 다른지를 설명해 주는 결정적 이유였으니까요. 그렇게 판타지적인 여러 복합적 설정들은 나쁘지 않습니다. 애니로 이미지화한 후 책으로 보충설명을 이해하는 병행 방식이면 이 시리즈를 읽어나가는 일이 원활해 질 것 같네요. 단지 이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진짜 이유가 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보편적인 목적 대신 원한, 증오 같은 감정들이 변태적으로 분출되는 것 같아서 공허하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그런 이유라면 굳이 전쟁을 일으킬 필요가 있나, 무의미한 희생 때문에 말리고 싶었지요. 정복전쟁이 아니면.... 

 

우야동동 출발점은 무난했던 것 같네요. 진정한 대작으로 이어질지는 후속편에서 두고 봐야 하겠죠. 만약 모든 것이 잘 마무리 된다면 “요코” 양은 돌아갈 것인지, 남을 것인지가 역시 주목할 만한 선택이겠습니다. 그 선택이 뻔히 보이기도 합니다만 대단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끝까지 가 보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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