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토리 시즈카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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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혼다 테쓰야는 경찰이라는 조직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세심한 전개와 묘사로 ‘경찰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발군의 재능을 보여 왔다. 그럼 점에서 <히토리 시즈카>는 기존 자신의 작품들과 궤를 달리하는 외전격인 스타일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경찰은 등장하되 주역은 아닐뿐더러 주인공을 쫓는 술래와 술래잡기의 관계에 놓여 수수께끼라는 안개를 걷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정국이란 형상을 구축한 건 물론 이토리 시즈카라는 여성이다. 그녀의 8세부터 31세까지의 인생을 여섯 개의 테마로 분류, 각각의 사건이 하나의 종점으로 귀결되는 구성을 택하여 눈앞의 단서에만 몰두함으로서 놓쳐버리는 진실과 배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마지막까지 달리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 책은 울산 와우북 갔을 때 씨엘 사장님께서직접 추천하신 책이었는데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이라고 하셨음. 그래서 질렀는데....

 

 

이토 시즈카의 그림자를 만나게 되는 첫 계기는 도쿄 고가네이 시의 연립주택에서 한 건달이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이다. 현장에 출동한 기자키 경사는 피해자가 젊은 여성을 매춘과 마약에 찌들게 만든 무뢰배였으니 그를 증오할만한 용의자는 널리고 널렸을 거라는 점에 주목한다. 아니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했다는 어떤 착오를 뒤늦게나마 발견했단 점인데 사건은 해결된 것이 아니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어떤 존재가 어렴풋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시작은 이러했으니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별개로 인식되었던 살인사건의 배후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진짜 그림이 사건의 내막을 조종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름인 이토 시즈카라는 여성. 사건들 사이에서 미묘한 흔적만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그녀를 번번이 놓치고 마니 신기루나 유령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각 사건을 담당한 경찰들은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교묘히 개입하여 배후 조종하도록 만든 그녀의 미스터리함에 농락당하면서도 각자의 방식대로 행방과 단서를 뒤쫓는다.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는 그녀의 행보는 경찰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혼란을 제공하며 끊임없는 상상력으로 부족한 면을 보충시켜 이해불가지만 결승점으로 집결되도록 하는 셈이다. 타인을 괴롭히는 악은 벌레만도 못하니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소신과 증오를 동시에 지니는 이토리 시즈카를 선과 악의 잣대로 판단하는 일은 상당히 모호한 작업이다. 사회로부터 구제받지 못한 그녀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정의를 실현하려했을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만 하리라. 한편으론 현실에선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사적응징을 이런 방식으로라도 해서 결과적으로 약자의 입장을 대변해준 셈이니 속 시원했다. 그녀의 꾐에 빠져 꼭두각시처럼 놀아난 살인자들을 대리인이나 소모품처럼 만들어버린 계략에는 감탄과 놀람을 금치 못했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도 불확실을 가능함으로 만든 그녀는 뱀 같은 여자!!!

 

 

그런 점에서 ‘히토리 시즈카’에는 다양한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는데 ‘혼자서 조용히’와 ‘홀아비 꽃대’ 는 주인공의 이름인 동시에 누구의 도움에도 의지 않고 독자적으로 고독한 길을, 보이지 않는 기개를 상징하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기에 모두가 그녀를 잡으려할 때마다 더 멀리 달아나버리는 과정을 반복 순환했던 그녀를 함축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각기 다른 화자의 입과 눈을 통해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들며 조종하는 그녀에게서 해답을 못 들었기에 끝내 미스터리한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음은 보충과 여백이라는 미학이다. 물론 그 간극이 너무 커 좀 밍숭밍숭한데 역시 나에게는 칸테쓰와 이오카 콤비가 있어야 살 판 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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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프랑수아 가르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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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것은 실화이다. 무인도에 버려진 한 남자의 생존기는 자연스럽게 대니얼 디포의 <로빈스 크루소>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로빈스 크루소>에게는 야만에 대한 서구문명의 우월함을 역설하는 치명적 문제를 지닌 작품이라는 지적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반면 프랑수아 가르도의 이 작품 <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는 외견상 <로빈슨 크루소>와 여러모로 궤를 같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 나르시스 펠티에가 로빈슨 크루소와 동일선상에 놓일 만한 출발선이 굉장히 유사하다. 프랑스 보르도를 출발하여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오스트레일리아에 생폴호가 도착하게 된 것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걸 알기 전 까지는.

 

계속 발생하는 환자, 궁극적으로 사망자... 치료도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마실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서 군도의 한 섬에 상륙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아직 어린 선원이었던 나르시스 펠티에는 동료들과 구역을 나누어 물을 찾다가 그만 복귀신호를 감지 못하고 그만이 혼자 섬에 남겨진다. 선장과 동료선원들은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이미 뱃머리를 돌려 떠난 뒤였다. 조난신호 표식을 남기면 자신을 찾는 일은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지만 그는 그 섬에서 무려 17년을 보내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고립 속에서 탈진 상태에 빠졌다가 어느 날, 한 흑인 원주민 노파를 만나게 된다. 도무지 의사소통도 안 되는 상태에서 노파를 따라 다니다가 나중에는 흑인 원주민 무리에 엉겁결에 합류하지만 이들 종족에 동화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서구 문명으로 대변되는 흰둥이와 야만인으로 대변되는 흑인 원주민 종족은 처음부터 이질적인 만남이었으니 태어나면서 야생으로 길들여진 정글북의 소년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문명vs야만, 이성vs본능, 백인vs흑인. 이 모든 것이 무지와 충돌을 빚다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융합되기 시작하는 순간, 철저히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나르시스 펠티에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흰둥이 야만인으로 변모해간다. 그래서 그들 무리 속에 섞여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17년 후 유럽의 한 상선에 나르시스 펠티에의 존재가 발견된다. 섬에 상륙했던 선원들이 원주민 무리 속에서 발견한 백인 남자를 시드니로 데려왔던 것.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이미 사망처리 되어 있었고 게다가 모국어인 프랑스어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프랑스어를 사용할 일도, 들을 일도 없는 상태에서 그의 언어는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말이었고 모든 서구문화에 대한 규범과 예절 등은 기억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던 것이다. 모든 것이 퇴화되었으며 흰둥이 야만인은 자칭 문명인으로 자부하는 유럽인들에게는 충격이자 색다른 호기심의 도구로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당시 시대적 배경인 19세기 중반 유럽이 그러했다. 제3세계 진출을 통한 식민지 쟁탈전 속에 피지배 종족들을 야만인으로 간주하면서 착취, 수탈이 만연하던 시기였으니 피부색이 자신들과 같은 야만인의 출현은 이해불가의 넌센스 였을 것이고 사르키 바트만 같은 인종 전시장의 유물로 같은 취급을 당하게 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르시스 펠티에를 다시 문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위한 주변사람들의 시도는 문명속에 있다가 이탈했던 사람에게 다시 문명을 주입시키는 것으로 흡사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 학습효과와 유사한 형태가 된다. 그나마 그에게는 본능이 잠재되어 있다. 백지 상태애서 출발한 상태가 아니기에 언어부터 예절, 규범 같은 문화 재 습득 과정을 겪게 되면서 다시 이 세계로 편입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나르시스 펠티에의 마음의 고향은 언제나 야만족들에게 가 있었다. 자신의 친 어머니 대신에 야만족의 노파를 먼저 생각한다. 이미 죽었지만 말이다.

 

나르시스 펠티에는 많은 이들을 감화시켜 나간다. 그래서 정작 가르침을 받은 것은 나르시스 펠티에가 아니라 자신들이었다는 자기고백이 흘러나올 때면 그렇게 마음이 짠할 수가 없더란 말이지. 이것은 결코 서구문명의 자아도취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 돌아가라, 야만이라는 편견 속에 진정한 이상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말이다. 어설픈 편견과 얄팍한 신화로는 재단할 수 없어 감동적인 인류학적 고찰 앞에서 실존과 자아라는 정체성은 고전적인 기록으로 빛을 발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읽어 볼 가치가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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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 죽은 남자 ㅣ 스토리콜렉터 18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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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자와 야스히코가 95년 데뷔한 이래 처음으로 국내에 작품이 소개되었다. SF와 신본격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착안은 얼핏 이질적이고 부조화라는 색안경을 피해가기 어려울 법도 한데 읽어보고 나면 남들이 흔히 시도하지 않은 방식에서 느낀 기상천외함에 색다른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주류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분명 마니아들로부터 얻은 꾸준한 인기와 함께 이 작품의 국내출간을 갈망해왔던 분들도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난해하다기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게 되고 자극적이거나 잔인한 설정 없이도 이만한 수준의 미스터리를 창안해 낼 수 있는 작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특정한 날의 특정 행동과 현상들이 수차례 반복되고 있지만 오직 본인만이 캐치할 뿐, 주변 사람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진행된다는 설정은 작가도 시인했지만 빌 머레이 주연의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나 자신도 즉각 떠 올렸다. 타임루프를 이 영화에서 최초시도하지 않았음에도 이유 불문하고 단단히 각인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정한 날로 되돌아가서 반복함정에 빠진다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대처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상상은 누구라도 한번 즈음은 해보지 않았을까? 이러한 SF적 설정에다 미스터리가 가미되면 그땐 어떠한 화학작용을 일으킬지, 그 엉뚱 발랄함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더군다나 20여 전에 출간될 당시에는 지금처럼 다양한 타임루프가 시도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실로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 같다.

 

 

목차부터가 유머러스하지만 각 파트별로 사건이 어떤 식으로 발단되어 전개되고 결말을 맡게 될지 기본적인 설명을 함축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타임루프가 가진 구간반복이라는 특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독자들은 어떻게든 나선형처럼 돌고 또 돌아야한다. 이것은 마치 원을 그릴 때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정확히 그 지점으로 다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떨 때는 안으로, 어떨 때는 밖으로 뒤틀리면서 계란형이 되었다가 보름달형이 되는 식으로 원형에서 탈피한 그림으로 완성되는 방식이 반복함정이었다.

 

 

그래서 고등학생인 소년 오바 히사사타로는 사건이 반복된다는 걸 알고 인지하고 있다. 큐타로라고 잘못된 이름으로 오해받는 히사타로가 어느 순간 체험하기 시작한 건 원인을 알길 없는 이상 체질 때문이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사전예고도 없이 어떤 날이 딱 아홉 번 반복된다. 어제와 오늘은 달라야 하는데 내일까지 똑같이 반복될 때 시작된 첫 날은 오리지날이 되고 다음 날 부터는 자신의 의도한 바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전개시킬 수 있음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필요에 따라, 자신의 입맛대로 규칙을 유리한 쪽으로 이용해왔다, 입시에서도 문제를 반복 입수하여 만점을 받고 천재 소릴 듣지만 이후에는 다시 꼴통으로 전락하는 등 실력을 요행으로 얼렁뚱땅 넘긴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설날에 히사타로는 외할아버지 댁을 방문하게 된다. 사업에 성공해 가진 게 돈 뿐이지만 과거 괴팍한 성격 때문에 가족들과 불화를 겪어 세 딸 중 두 딸과 의절하고 지내왔던 외할아버지는 오랜만에 가족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재산과 사업체를 지정된 후계자에게 물려주겠다고 선언한다. 수시로 마음이 바뀌어 후계자를 갈아치웠지만 공인된 유언장을 작성해 확정짓겠다는 말씀에 지금까지 서먹하게 지냈던 히사타로네 가족들과 이모네 가족들까지 모두 할아버지의 환심을 얻어 재산과 사업체를 독차지할 속셈에 각자가 동상이몽을 꿈꾼다.

 

 

이제 가족들 사이는 경쟁관계로 인해 긴장과 반복, 대립이 극심해지는데, 다음 날 히사타로는 이 시점에서 자신이 또 ‘반복함정’이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인 ‘타임루프’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문제는 계속 반복해서 겪게 될 그 날에 할아버지가 갑자기 시체로 발견된다. 왜 갑자기 뜬금없이 할아버지가 살해되었는지, 범인은 누구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 할아버지의 죽음을 막기 위해 히사타로는 바쁘다. 반복함정에 빠질 때마다 범인의 살인시도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럴 때 마다 철저히 어긋나버린다. 범인은 날마다 다른 사람이 되니까, 나비효과가 되어 매일 다른 결과를 낳는데 마지막 날이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스터리가 이토록 유쾌하게 전개되는 경우도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웃음은 시작부터 끝날 때 까지 지속되면서 끊임없이 낄낄거리게 하지만 미스터리물이 가진 고유의 기능을 결코 잊지않는다. 변수란 녀석은 본래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살인이 어떤 억제력을 뿌리치고 일정의 뒤틀림을 가져다준다. 이것을 인과율이라고 달리 표현하는데 반복현상은 논리를 설명할 기회가 제공되지 않고 반복학습과 수정작업을 통해 최적의 답안을 시험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히사타로의 고민은 깊어지고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어긋남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오리지날이라고 부르는 첫날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 대책을 강구한다.

 

 

사실 <일곱 번 죽은 남자>는 신본격을 표방하고 있지만 고도의 두뇌게임을 요하지 않는다. SF라지만 과학지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니 미스터리를 선호하지 않는 일반 독자층도 충분히 선호할 만하다. 이것은 어차피 시간과의 싸움이다. 시간이라는 물리적 흐름에 주목하다보면 범인의 정체나 살해 동기 같은 일반적인 미스터리의 해법보다는 반전에서 지금까지 구상된 트릭들이 의외성이 아니라 규칙의 반복에서 빚어진 착각이라는 개념임을 알게 된다. 퍼즐이 아니라 넌센스 퀴즈 같은 타입이니 재미와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의도는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

 

 

그 점을 증명하고 있으니까. 자칫 마이너틱한 이미지로 전락해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저자는 정통계열에서 벗어난 점을 인정하면서도 어디까지나 미스터리의 한 계보로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직구만으로 타자를 상대할 수 없으니 이 같은 변화구도 때론 필요하다. 강속구 투수는 수도 없이 보아왔지 않은가? 유희왕 같은 투수는 변칙이 자신 있게 살아남는 또 다른 유형이자 요령인 것이다. 아웃만 시켜낸다면 정통파나 기교파냐 하는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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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수사대 시아이애이 - 서빙고, 화마에 휩싸이다
손선영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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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국내 장르소설계가 외국 장르소설에 맞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은 무엇인가하고 말이다. 한국인의 정서와 대중적 기호에 부합하고 싶다면 소재에 관한 상상력의 부재라는 장막부터 걷어내야 한다고 본다. 최첨단 과학수사를 동반한 그들만의 스케일 앞에서 국내시장은 무기력하기만 하니 다른 대안이 제시되어야함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상상력의 확대를 위해 팩션이라는 형식은 우리만의 강점이자 차별화된 요소가 분명 될 수 있을 터. 손선영 작가는 현대가 아닌 조선 세종시대를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고 그 점에서 재미를 찾는다면 괜찮은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 

 

 

 

 

 

일단 책제목 ‘示芽理埃吏(시아이애이)’가 특이하지 않은가? 이것은 코카롤라를 구가구가로 표기하는 것 같은 이치로 미국 CIA를 절묘하게 표기함은 물론이요, 일종의 패러디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이다. 세종 5년(1423) 8월 15일, 중국 명나라의 황제는 정변으로 교체되고 새로이 등극한 황제는 세자 책봉 칙서를 들고 조선에 대규모 칙사단을 파견하기로 되어 있다. 칙사단이 조선에 도착하기 3일전 뜻밖의 사건이 발생한다. 소주방 나인 미연이 연회에 사용할 얼음을 구하러 서빙고로 향한다. 갑자기 서빙고 안에서 화염에 휩싸인 사람이 뛰쳐나오는데, 아, 어찌 얼음으로 가득 찬 서빙고 안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은 해괴한 소문으로 도성 안에 좌악 퍼지고 세종의 귀에 까지 소식이 들어간다. 사건을 어떻게든 수습해야만 한다. 명의 칙사단이 도착하기 전에. 그래서 세종은 은밀한 수사를 위해 박연과 장영실만을 따로 불러 비밀리에 해결할 것을 명하는데... 만약 칙사단이 올 때까지 해결 못한다면 조선은 국내, 외적으로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되면서 국가의 명운이 흔들릴 수도 있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비상사태 발생!!!

 

 

그런데 팩션은 드라마와 영화뿐만 아니라 문학계를 가릴 것 없이 메마른 대중문화를 활성화 시키는 원천이자 영감을 낳는 아이디어이다. 상상력의 고갈을 해갈해 줄 중요한 수단이 된 팩션을 역사고증처럼 표현한다면 자칫 고루하고 따분한 이야기 밖에 될지도 모를 위험을 피하고자 이 소설은 세종과 박연과 장영실이라는 역사상 실존인물들에게 입체적인 개성을 불어넣어 흥미만점의 캐릭터로 재탄생시켰다. 세 사람을 군신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형님 아우하는 관계로 설정했음도 재밌지만 악공과 과학자로 조선의 문물을 번성하게 한 박연과 장영실이 본연의 임무를 벗어던지고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비밀특별수사대원이라니 정말 기발한 발상이지 않은가. 특정한 시대로 들어가 미스터리로서 뿐만 아니라 신흥왕조로서 조선이 자주와 사대 사이에서 겪어야만 하는 외교적 행보 앞에서 역사는 허구와 함께 시대의 아픔과 교훈을 동시에 전해주기 때문에 별도의 의의가 있지 않나 싶다. 장영실이 부산 동래 출신에다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널리 등용했던 세종의 정책 덕에 천민에서 중인의 신분에까지 올랐다고 하는 사실까지 역사적 고증에 철저한 점도 높이 인정할 만하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심한 사투리에 말까지 더듬는 장영실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정은 허와 실을 절묘하게 섞었다고 보여 진다.

 

 

<세종특별수사대 시아이애이>는 어쨌거나 기본성격은 추리/미스터리물이다. 하나의 단서를 통해 수수께끼를 풀고 나면 다음 문제가 연이어 대기하고 있어 긴장감과 흡입력은 꾸준하게 유지되는 편이다. 그러면서 개국 초반이 지나면서 부와 양극화와 신분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가진 자들의 독점과 수탈 같은 횡포 속에서 고통 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의 피폐한 삶은 오늘날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결국 명나라에 정면 도전할 수 없었던 조선이 그들에게 바치는 조공품들은 고스란히 백성들이 피땀 흘려 채워놓을 수밖에 없는 고통의 산물들이었다. 지금이라고 달라진 것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무능하고 탐욕스런 위정자들 때문에 착취 받는 민초들의 삶은 고단한 것이니 세종의 고민은 당시에도 깊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고자 했던 세종의 마음 씀씀이와 고뇌가 지금에라도 조금이나마 반영되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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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탐정들
정명섭.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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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대로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갈등이 있게 마련이고 종종 폭력으로, 극단적인 겨웅에는 살인이라는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다. 지금에야 CSI 같은 과학수수사가 일반화되어 있지만 그러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던 과거에는 어떤 방법으로 수사를 했는지가 관건이자 의문점일 것이다. 조선시대에 실제 발생했던 살인사건을 실록과 역사서를 근거로 시대의 명탐정들이 해결한 스토리를 그리고 있는 <조선의 명탐정들>은 역사의 재조명이자 범죄라는 어두운 그림자에 감춰진 당대의 천태만상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고찰해주는 또 다른 사회이다.

 

우리들이 사극을 통해 드러나는 수사는 용의자를 다짜고짜 형틀에 묶어 주리를 트는 고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믈론 그것이 중요한 수단이자 도구이기도 하다. 용의자의 입을 열게 만드는 강력하고도 원초적인 방법이지만 강압에 못이겨 허위자백을 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지문채취니 DNA같은 방식은 없더라고 최소한 정황과 심증, 가설과 유추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오히려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대적 수사방식대신 사람의 오류를 감안하더라도 머리를 쓸 줄 아는 과거의 수사방식에서 어차피 사람과 사함 사이에 발생한 분쟁은 사람의 순수한 지혜가 필요하단 것이다.

 

이 책은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적 기록에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당시의 사건실화들은 배경에서부터 사회적 문제, 권력 앞에 굴하지 않는 소신도 결국 성역을 파헤치지 못한 한계까지 기지에 감탄을, 때론 좌절과 안타까움까지 다양한 감정과 반응들을 이끌어내고 있다. 당시의 왕들은 사선해결을 독려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사건의 정황을 보고로만 듣고 범인을 알아낸다든지 하는 비상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민심을 헤아릴 줄 아는 군주의 영민함이 돋보인다. 대표적인 인물이 세종이지만 희대의 폭군 연산군도 해당된다 하니악은 악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그 능력을 좋은 곳에 쓸 줄 모르고 폭정에만 전력을 다했으니 후대의 평가는 실로 박할 수밖에 없다.

 

절대 권력이라는 비호 속에서 초법적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며 악행을 감추고 처벌을 면하려했던 살인자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이휘와 박처륜 같은 명탐정도 있었고 조선의 대표적인 명탐정 정약용은 같은 경우는 이제 소설과 영화 등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명탐정들과 서양의 명탐정들을 유형별로, 사례별로 비교 설명함으로서 보다 다채롭고 풍성한 읽을거리를 들려준다. 특히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대목은 해리 보슈에 대한 언급인데 외모를 설명하면서 그가 콧수염이 있다고 하는 부분이다. 보슈의 열렬한 팬이지만 그 사실을 처음 인지하게 된 셈인데 여태 몰랐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신선한 정보였다.  

 

그리고 지금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조선시대에는 별의 별 사건들이 발생했건 것 같다. 조선최고의 요부이자 스캔들의 대명사 어우동의 어머니 살인사건에서는 남존여비가 만연했던조선시대에도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런 그녀가 긍정적인 방면으로 유명세를 떨친 것이 아닌 한낱 악녀로만 평가받을 수밖에 없었던 결과에서 피는 못 속인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가문의 명예를 위해 시댁에서 소박 받고 돌아온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을 통해 독립적인 객체로 크지 못하고 남성 중심의 종속물로서 끝내 희생당하고 말았던 당시 시대적 아픔과 계급구조적인 문제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사채업자의 악랄한 횡포는 금권주의가 만연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대의 소용돌인 셈이다. 모든 악에 대하여 일체의 구림도 없이 말끔히 해소되었더라면 읽는 내내 통쾌하고 후련했을텐데 악인은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식의 후일담은 그래서 씁쓸했다. 무전유죄! 무전유죄! 여하튼 진범들을 잡아낸 명탐정의 노고는 칭찬하면서 당시의 시대상이 절실하게 반영된 사건들을 해결하는 그 시대만의 수사 방식은 현대의 수사와는 차별화된 개성 있는 재미를 선사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바로 <조선의 명탐정들>에 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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