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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수사대 시아이애이 - 서빙고, 화마에 휩싸이다
손선영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10월
평점 :
나는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국내 장르소설계가 외국 장르소설에 맞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은 무엇인가하고 말이다. 한국인의 정서와 대중적 기호에
부합하고 싶다면 소재에 관한 상상력의 부재라는 장막부터 걷어내야 한다고 본다. 최첨단 과학수사를 동반한 그들만의 스케일 앞에서 국내시장은
무기력하기만 하니 다른 대안이 제시되어야함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상상력의 확대를 위해 팩션이라는 형식은 우리만의 강점이자 차별화된 요소가 분명
될 수 있을 터. 손선영 작가는 현대가 아닌 조선 세종시대를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고 그 점에서 재미를 찾는다면 괜찮은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
일단 책제목 ‘示芽理埃吏(시아이애이)’가 특이하지 않은가? 이것은
코카롤라를 구가구가로 표기하는 것 같은 이치로 미국 CIA를 절묘하게 표기함은 물론이요, 일종의 패러디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이다.
세종 5년(1423) 8월 15일, 중국 명나라의 황제는 정변으로 교체되고 새로이 등극한 황제는 세자 책봉 칙서를 들고 조선에 대규모 칙사단을
파견하기로 되어 있다. 칙사단이 조선에 도착하기 3일전 뜻밖의 사건이 발생한다. 소주방 나인 미연이 연회에 사용할 얼음을 구하러 서빙고로
향한다. 갑자기 서빙고 안에서 화염에 휩싸인 사람이 뛰쳐나오는데, 아, 어찌 얼음으로 가득 찬 서빙고 안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은 해괴한 소문으로 도성 안에 좌악 퍼지고 세종의
귀에 까지 소식이 들어간다. 사건을 어떻게든 수습해야만 한다. 명의 칙사단이 도착하기 전에. 그래서 세종은 은밀한 수사를 위해 박연과 장영실만을
따로 불러 비밀리에 해결할 것을 명하는데... 만약 칙사단이 올 때까지 해결 못한다면 조선은 국내, 외적으로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되면서 국가의
명운이 흔들릴 수도 있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비상사태 발생!!!
그런데 팩션은 드라마와 영화뿐만 아니라 문학계를 가릴 것 없이 메마른
대중문화를 활성화 시키는 원천이자 영감을 낳는 아이디어이다. 상상력의 고갈을 해갈해 줄 중요한 수단이 된 팩션을 역사고증처럼 표현한다면 자칫
고루하고 따분한 이야기 밖에 될지도 모를 위험을 피하고자 이 소설은 세종과 박연과 장영실이라는 역사상 실존인물들에게 입체적인 개성을 불어넣어
흥미만점의 캐릭터로 재탄생시켰다. 세 사람을 군신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형님 아우하는 관계로 설정했음도 재밌지만 악공과 과학자로 조선의 문물을
번성하게 한 박연과 장영실이 본연의 임무를 벗어던지고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비밀특별수사대원이라니 정말 기발한 발상이지 않은가. 특정한 시대로
들어가 미스터리로서 뿐만 아니라 신흥왕조로서 조선이 자주와 사대 사이에서 겪어야만 하는 외교적 행보 앞에서 역사는 허구와 함께 시대의 아픔과
교훈을 동시에 전해주기 때문에 별도의 의의가 있지 않나 싶다. 장영실이 부산 동래 출신에다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널리 등용했던 세종의
정책 덕에 천민에서 중인의 신분에까지 올랐다고 하는 사실까지 역사적 고증에 철저한 점도 높이 인정할 만하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심한 사투리에
말까지 더듬는 장영실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정은 허와 실을 절묘하게 섞었다고 보여 진다.
<세종특별수사대 시아이애이>는 어쨌거나 기본성격은
추리/미스터리물이다. 하나의 단서를 통해 수수께끼를 풀고 나면 다음 문제가 연이어 대기하고 있어 긴장감과 흡입력은 꾸준하게 유지되는 편이다.
그러면서 개국 초반이 지나면서 부와 양극화와 신분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가진 자들의 독점과 수탈 같은 횡포 속에서 고통 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의
피폐한 삶은 오늘날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결국 명나라에 정면 도전할 수 없었던 조선이 그들에게 바치는 조공품들은 고스란히 백성들이 피땀 흘려 채워놓을
수밖에 없는 고통의 산물들이었다. 지금이라고
달라진 것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무능하고 탐욕스런 위정자들 때문에 착취 받는 민초들의 삶은 고단한 것이니 세종의 고민은 당시에도 깊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고자 했던 세종의 마음 씀씀이와 고뇌가 지금에라도 조금이나마 반영되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