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컨피덴셜 ㅣ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1
제임스 엘로이 지음, 나중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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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버두 산기슭의 한 모텔에 한 사나이가 현금과 헤로인, 총기를 소지하고 들어온다. LA최대의 범죄조직의 대부 미키 코헨의 부하들과 LA 경찰 양측으로부터 추적당하고 있던 그는 모텔에서 이들과 총격전을 벌이다 결국 경찰로부터 사살 당한다. 1951년 2월에 있었던 화끈한 느와르로 포문을 여는 이 소설은 그해 12월 25일 또 다른 사회적 이슈로 전환점을 맞이한다. 경찰관에게 폭행을 가한 여섯 명의 혐의자가 있는 감방으로 몰려간 경찰들이 우발적인 집단폭행을 가한 사건이 발생한 것. 이 폭행사건을 계기로 LA 경찰국은 운명의 갈림길로 인도되며 대립과 갈등의 정중앙으로 빠져 들어간다.

 

 

복잡한 줄거리와 많은 인물들의 등장으로 이름과 역할을 외우는 일이 벅찰 정도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인물은 크게 세 명의 경찰로 압축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유년기 아버지의 폭력으로 비참하고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던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꿈꾸었지만 끝내 실현 못했던 웬들 화이트는 합법적인 응징을 위해 가정폭력범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며 이들을 처벌해나간다.

 

 

에드워드 엑슬리는 LA 최고의 사업가인 아버지와 죽은 형에 대한 미묘한 존경과 반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인물로 머리가 비상하며 성탄절 폭행사건을 양심적으로 폭로한 영웅으로 둔갑하게 된다. 사실 그는 태평양전쟁 당시에도 전사한 일본군을 마치 자신이 궤멸한 것으로 위장하여 이미 전쟁영웅으로 등극한 적이 있다. 순경출신으로 현장보다는 머리를 이용한 수사에 일가견이 있는 카멜레온 같은 인물, 빛나는 미래가 보장된 남자.

 

 

뛰어난 사건해결능력을 보이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일탈되어 있는 잭 빈센즈까지 이들 세 명의 경찰들이 벌이는 애증의 관계와 거대한 사건들이 충돌을 빚으면서 1951년부터 1958년까지를 배경으로 50년대 미국사회의 그늘진 이면을 통해 관료주의의 병폐를 고발하고 있다.

사실 이들 세 사람은 한 경찰국에서 같이 근무하는 등료라는 점 말고는 "밤 부엉이 사건"과 거물 범죄자 "미키 코헨"과의 얽히고 설킨 인연으로 각자의 길에서 상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길을 건넌다.

 

 

버드가 감성주의자라면, 에드는 이성주의자이며, 잭은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융합한 인물로 묘사할 수 있는데 초반부에 설정되는 이들의 성격의 패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융화되어 가는 듯하다. 잭은 처음부터 중도파였지만 교활한 기회주의자로만 비쳐졌던 에드가 정의에 대한 가치관이 자리 잡으면서 진정성 있는 인물로, 반영웅주의의 선두에 섰던 버드는 대책 없는 사고뭉치였다가 이성을 회복해나가는 인물로 변모한다. 성탄절 사건을 계기로 서로에게 등을 돌린 사이였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한 공동의 노선 앞에서 그들로 한낱 경찰의 일원일 뿐이었다.

 

 

이들은 배신이 합종연횡을 반복하는 가운데에서도 이성과 비이성, 합법과 비합법의 수단을 통해 무엇을 요구받는지, 어떻게 이용당하는지 모른 채 지나가며 쉽사리 현혹당하기 쉬운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사건의 본질은 진상을 파헤쳐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동료 경찰들에게 단서를 줘서도 안 되고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며 자신보다 더 위험한 유일한 사람을 배신해야 할 때도 닥친다. 어떠한 희생을 강요받더라도 절대적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LA경찰국의 요구답게 은폐되어 있던 진실을 들어냈을 때 절대적 명제를 훼손하는 쓸쓸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상처 많은 인간으로 조심성 있고 나약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미숙하고 덜 영리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연쇄폭발을 보이던 광기와 폭력을 잠재우고 이 거대한 서사시는 그렇게 끝을 맺는다.

 

 

방대한 분량과 스토리에 완전몰입과 이해가 결코 용이하지 않았지만 시대를 초월한 느와르의 수작임은 틀림없으리라. 오래전 영화에서 느꼈던 그 끈적끈적한 재즈음악이 문득 떠오르는 걸 보면 원작은 더 뛰어나지 않았을까? 당시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대세였던 “타이타닉”의

대중적 인기의 영합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영화는 스타일이 살아 있었던 것 같다. 러셀

크로우, 가이 피어스, 케빈 스페이시, 킴 베이싱어까지.... 그들의 명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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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2 - 송지나 장편소설 ㅣ 신의 2
송지나 지음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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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에도 왕의 방패가 되라고.

죽는 순간에도 왕을 지키며 죽으라고 가르쳤으니까.

허나..... 멈칫하던 마음이 다시 묻는다.

그게 뭐 그리 애달픈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과연 더 분한 일인가?  

 

춥다. 냉기기 뼛속 깊이 스며든다. 얼어붙은 호수 위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꿈속의 그 곳에서 아버지는 미소 지으며 아들에게 "아직 못 찾았느냐"고 물으신다. 그리운 목소리에 답을 하려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간신히 꿈을 깬다. 그래, 하늘로 돌아가시려는 그 분을 강제로 붙잡지 않았는가? 의식이 남아있는 한 최영은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 지켜야 할 도리는 신의, 이제 그 분을 어떡해서든 무탈한 상태로 하늘나라로 돌려 보내드려야만 한다. 그것이 고려무사의 언약이다.

 

 

은수는 대학시절 짝사랑했던 남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온 마음을 다해 그 남자를 따라다니며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했다. 다신 이런 경험 따윈 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다짐 또 다짐했건만 대장에게는 이상하게도 신경이 쓰인다. 뭐지 이런 기분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평생 표정 없는 얼굴이었을 대장을 보면 화가 나고 붙들어서 성치 않은 그의 몸을 강제로 치료하고 싶은데 왜? 숨어서 이렇게 지켜보아야만 하는 걸까? 도대체... 왜? 왜? 왜?

 

 

최영 그 놈이 적월대의 대장이었던 문치후의 제자였다고? 그 문치후가 자질을 탐내었던 아이가 최영이라는 말을 듣고 기철은 최영에게 호기심이 동한다. 절대 내공의 소유자인 기철은 자신의 호적수를 찾지 못하게 되자 무공으로 겨룰 일도 없어지면서 세상사는 일이 따분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최영이 내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일단 소유하고 싶어 한다. 용도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늘 아래 믿을 자는 오로지 최영, 너뿐이다. 나는 힘없는 이 나라에서 새로운 왕이 되려한다. 그러나 아무도 믿을 자가 없다. 민심은 돌아선지 오래고, 신하들은 덕성부원군에 빌붙어 나를 능멸하려고 하는 간신들만 득실거린다. 하지만 최영 이 남자라면 나의 편이 되어줄 것이다. 아니면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지 그의 마음을 돌려야한다. 자신과 왕비를 고려로 호송하는 임무를 마치고 우달치 대장의 자리를 던지려는 그에게 충성심을 이끌어내고 싶다. 공민왕은 자신의 유약함을 탓하며 자포자기의 심정에 놓여있다가도 그래도 나는 이 나라의 군주인데 믿고 의지할 충성스런 신하가 하나쯤은 있어야 이 보위를 지켜낼 수 있는 선결과제라고 고민한다.

 

 

전하, 그대는 이미 오래전에 저를 잊으셨겠지만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대의 뒤를 따라 걸었지요. 그대를 얼마나 그리워했던지. 그 웃는 얼굴이 얼마나 보고 싶었던지. 그대가 고려의 왕자 강릉대군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대와 소통하고 싶어 일부러 고려의 말을 배웠고 저를 가엾은 고려의 여인으로 아셨을테죠. 저는 원나라의 공주지만 고려라는 나라와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모릅니다. 그냥 그대를 연모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아바마마를 졸라 혼인을 하였습니다. 고려의 여인인 줄 아셨던 그대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겠지만 저는 머나먼 이국땅으로 그대를 따라 온 것에 후회는 없습니다. 저에게 부디 마음을 여시고 미우나 고우나 지아비로서 당당한 위용을 보여주세요. 천길 낭떠러지 앞에 선 듯 안절부절 못하는 그대의 모습에 속이 타들어갑니다. 그리고 최영 그 자는 저에게도 소중한 신하입니다. 제 목숨을 구명한 생명의 은인이니까요. 비록 정략결혼의 형식이 되어버렸지만 고려의 국모가 된 노국공주는 공민왕과의 옛 추억의 끈을 아직 놓지 않고 있다. 언젠가는 아마도...

 

 

“신의” 2편이다. 흔히 “이 몸이 죽고 죽어...”로 시작되는 단심가로 유명한 최영은 고려 충절의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소설 속에서는 아직 세상에 무심한 보통남자로 그려지고 있을뿐이다. 그에게는 과거 적월대의 일원으로 왜구무리들을 소탕하고 고려의 안위에 충심을 다한 적이 있지만 무능하고 방탕한 선대의 왕의 폭정에 문치후 대장과 목숨같이 사랑했던 여인 매희를 비롯한 동료들을 차례대로 잃은 후에는 마음의 문에 빗장을 걸었다.

 

 

충성을 바칠 나라도 왕도 모두 마음에서 지워버렸다. 그래서 공민왕과 덕성부원군 기철 모두가 자신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냉담한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런데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의선님을 다시 그 세상으로 돌려보내야만 한다는 언약 때문에 얼음장 같은 그의 내면에도 변화가 생길 조짐이 엿보인다. 누군가의 편에 서야한다는 선택이 기로에서 말이다.

 

 

“신의 2권”을 읽으면서 드라마와 달리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는 역시 공민왕과 왕비 노국공주이다. 원나라의 내정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고려의 현실 앞에서 공민왕은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운 개혁의 깃발을 아직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최영을 탐하는 그도 남자로서의 능력에 질투하고 왕비에게 다정한 말보다 억하심정으로 퉁명스레 대하는 대목에서는 의기소침한 모습도 보여 진다. 왕은 태어나는 것인가? 대신 어떻게 왕을 만들 것 인가?에 대한 고민과 숙제가 엿보이는 상황들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기철에게 맞설 힘도, 의지도, 마스터플랜도 준비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왕비에 대한 연민도 빼놓을 수 없겠다. 드라마에선 도도한 한 떨기 꽃 같은 아름다움만 존재했을 뿐인 그녀는 오로지 사랑 앞에서 결단을 내리고 위기에 처한 신하를 지키고자 하는 강단이 있어 소설과 드라마에서 배역이 가장 다르게 느껴지는 캐릭터인 것 같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랑은 시련을 이겨내고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인데 소설을 읽으면서 주안점으로 맞춰도 좋을 만큼 그녀의 사랑 이야기는 참 애절하더라.

 

 

경창군도 2권에서 가슴 절절하게 만든 인물들 중 하나인데 아직 천진난만할 나이지만 격변의 폭풍을 힘없이 수용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어린 경창군이 너무 가여워서 오열할 뻔 했다. 그 어린 것이 무슨 죄라고? 그렇게 이 소설의 이야기가 다음 권으로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등장인물들의 방황과 애통한 마음에 감정이입이 심화되는 것 같아. 시대를 잘못 태어났을 뿐인 이들이 홀로 설 것인가, 복속될 것인가?에 대한 딜레마는 재미뿐만 아니라 통찰을 동시에 던져주기 때문에 3권이 기다려진다. 그래서 그 뒷이야기는 어떻게 되냐고? 난 이미 깊은 사랑에 빠진 기분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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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1 - 송지나 장편소설 ㅣ 신의 1
송지나 지음 / 비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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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고 그분이 떠나시는 날, 내손으로 보내드리기 위해...

그 웃음을 지키기 위해 내가 살아야겠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원작소설을 일부러 찾아본 적이 있는지? 암만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나의 경우에는 확실히 없다는 것. 두 번씩이나 동일한 작품을 형태를 달리하여 비교할 정도로 너그러움이 없기에 대개 한 번의 감상이면 족하다. 드라마 "신의"만 해도 그렇다. 이미 종결된 이 드라마에 방영초기 잠깐 관심을 둔 적은 있으나 무협 판타지에 타임 슬립을 소재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배경에서 어딘지 모르게 황당무계하면서 빈 그릇 같은 공허함이 느껴져 즉시 나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종영 이후 케이블에서 방영할 때 가끔씩 무료한 시간을 때울 겸 시청한 적은 있지만 꾸준하지 않았고 사실상 스토리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연을 끝내었다.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도 않게 원작소설로 다시 만나게 된다. 이미 알려진 대로 “신의”는 송지나 작가가 쓴 첫 장편소설이다. 송 작가 대본의 드라마 중에서는 "여명의 눈동자"를 예전에 미친 듯이 좋아한 적은 있지만 그녀의 드라마 원작소설은 처음인데 이거 예상했던 것 보다 흥미를 당길만한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해있어 읽는 즐거움이 상당한 소설이다. 그냥 기대 없이 읽은 소설이 기대 이상이었다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때는 서기 1351년 고려, 공민왕은 원나라의 볼모로 잡혀있다 고려의 새로운 왕으로 책봉되어 왕비인 노국공주와 함께 최영이 이끄는 우달치의 호위를 받으며 고려로 돌아오던 중에 자객들의 계속된 습격을 받는다. 아무래도 고려와 원나라 사이를 이간질시키기 위한 암살시도인 것 같고 표적은 원의 공주인 노국공주인 듯하다. 악전고투 끝에 자객들의 암습에서 왕과 왕비의 목숨을 지켜내긴 하지만 왕비는 외상을 입고 만다. 최영은 공민왕으로부터 천혈로 가서 왕비를 치료할 하늘의 의원을 모시고 돌아오라는 어명을 받고 2012년 서울에서 의학 세미나 중인 성형외과 의사 유은수를 만난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른 시도 끝에 그녀를 강제로 납치하여 과거의 고려로 데려오면서 시공을 초월한 역사 거꾸로 보기가 시작된다.

 

 

소설을 읽다보면 뜬금포처럼 시청했던 드라마의 영상들이 파편처럼 뇌리에 각인되면서 그때 그 장면들이 담고 있던 배경과 상황 설명들을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림이 아니라 섬세한 감정라인들이다. 눈으로만 확인했던 인물들의 동선에 가려 미처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인물들의 내면적 고뇌와 심리묘사는 왜 드라마보다 원작소설인지 수긍하게 되는지 알게된다. 글을 영상으로 옮기는데 있어서 시각화는 가능하나 머리와 감성을 충실히 재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안다.

 

 

그래서 소설은 덤덤하게 읽히다가도 한번 씩 마음을 울컥하게 뒤흔드는 대목들이 나오는데 최영, 유은수, 공민왕, 왕비, 기철까지 모두 다섯 명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역들의 시점과 심리가 교차로 전개된다. 그들의 속사정... 원의 내정간섭에 보국안민을 펼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진 왕들은 자주 교체되면서 신하와 백성들의 신망을 잃은 지 오래인지라 충절의 대명사인 최영에게도 왕에 대한 충성심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유은수는 얼떨결에 과거로 떨어져 역사라는 태풍의 한가운데 놓이면서 좌충우돌하지만 기죽지 않고 입담 쩌는, 당찬 현대여성이자 현대의술을 시전하며 의선으로 불리는 사람, 공민왕은 힘없는 나라의 새로운 군주로서 아직 자신의 소신을 펼치지 못해 자학하고 있는 나약한 사람, 공민왕을 연모하여 스스로 그의 여인이 되고자 자청한 원나라 위왕의 딸 노국공주, 내공을 익힌 절세고수이자 고려를 직접 통치하기보다는 왕을 무릎 꿇려 조종하는 것에 더 관심 많은 야심가 기철까지, 이들이 펼쳐가는 판타지의 출발이 이제 시작되려 한다. 일단 시작의 느낌이 좋다.

 

 

작가가 일부러 드라마를 그대로 베끼듯 똑같이 집필하진 않을 것 같고 분명 드라마에서 시스템상 한계에 부딪쳐 미흡했던 부분들을 소설을 통해 마음껏 보완내지 그 이상의 완성도를 만들어낼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든다.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완전비교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은 사실상 새로운 도전이다. 그래서 이제 2권으로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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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의 고백 ㅣ 우먼스 머더 클럽
제임스 패터슨.맥신 패트로 지음, 원은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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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한 사람을 꼽자면 아무래도 제임스 패터슨을 빼놓고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베스트셀러 리스트 1위에 총 19편을 올려놓았고, 연간 수입이 5천만불 이상이라고 하니 정보로만 인지하고 있는 명성 그 이상의 슈퍼베스트셀러 작가로 불리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겠다. 그런 제임스 패터슨의 <알렉스 크로스 시리즈>와 더불어 또 다른 인기 시리즈인 <우먼스 머더 클럽 시리즈>를 통해 귀동냥으로만 접했던 패터슨의 명성을 확인해볼 기회가 드디어 생겼다.

 

 

형사 린지, 검시관 클레어, 기자 신디, 검사 유키의 네 여성 주인공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의 여덟 번째 시리즈인 "8인의 고백"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재능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 팀플레이로, 때론 개별의 사건들을 따로 국밥식으로 나눠 수사하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아침 출근길 통학버스가 갑자기 폭발하고 테러로 간주되어 용의자를 찾아야 하는 의문의 사건이 발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곧 이어 거리의 성자로 불리던 한 노숙자가 처참하게 유린당해 살해당한 채로 발견되고, 상류층 인사들이 연달아 변사로 발견되는 등, 끊임없는 사건들로 넘쳐나는데 이 사건들은 경찰의 업무과중과 중요도면에서 우선 해결순위가 정해진다.

 

 

린지와 클레어는 상류층 인사들의 연쇄죽음을 담당하게 되고 특종을 노리던 기자 신디는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노숙자 사건을 검사 유키는 존속살해 사건을 맡아 각자의 임무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이런 식으로 “8인의 고백”은 제목에 등장하는 다수의 숫자처럼 여러 사건들이 다발처럼 터지는 과정과 이것을 풀어나가는 수순에서는 나름 미스터리하면서도 거의 4페이지 이내의 빠른 챕터 전환과 간결한 문체로 술술 잘 읽혀진다는 특성이 있는데 이 점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간결함이라는 점에서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여성의 감수성과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장점에 있어서도 더욱 두드러지며 여성독자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아니 오히려 여성독자들이 더 좋아할만한 스타일이 아닌가 싶은 게 군데군데 양념처럼 끼어드는 로맨스는 하드보일드 아닌 소프트한 추리물로 완충시키는데 크나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랑도 중요하지만 일도 잊어선 안 되는 법, 이 숙녀분들은 자주 마음이 흔들린다. 주위에 매력적인 남자 동료나 주변인물들이 등장하기에 그러는 것도 이해하고 넘어가고 싶지만 필살기처럼 남용하는 것 같아 산만해지면서 몰입에 받을 정도이니 정신건강을 생각해서 적당히들 하셨으면 좋겠다. 시도 때도 없이 사랑에 눈 멀지 말고.

 

 

결국에는 로맨스를 뒤로 물리더라도 사건의 해결과 집중을 통해 추리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초반에 발생한 통학버스의 폭발은 시작부터 스케일과 긴장감 조성면에서 탁월하게 시선 집중하는데 성공하나 이후 사건들을 해결하는 단계들이 그냥 뒤지고 다니다 단서 포착, 범인 발견, 사건해결로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범인의 정체는 허술하고 범행 동기는 더욱 개연성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보니 정신학적 분석에서 사이코패스로만 범행을 분석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크다.

 

 

분명 네 여성 주인공들은 캐릭터별로 개성이 강하고 좀 더 큰 물에서 놀 수 있는 재목들인 것 같은데 제임스 패터슨이 다작을 하는데 것 때문인지, 공저라는 시스템의 한계인지 급히 찍어낸 수제품으로 인식된다. 더군다나 초기작들도 단점의 반복들이 타인의 서평들에서 자주 지적되곤 하는데 뭐든지 과하면 부족함만 못할 듯 하다. 소재면에서도 참신성도 발견하기 힘들고 반전이라고 하기에도 미흡하지만 매끄럽게 전개되는 필력만큼은 구성의 결핍을 커버할만한 솜씨임은 인정하고 넘어가야겠다. 그래서 뛰어나지도 나쁘지도 않은 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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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ㅣ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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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 라디오 시리즈를 꺼내 들었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라고 역시 앙앙에 수록 연재되었던 50편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번 것이 시리즈의 1탄이라고 하는데 왜 순서대로 출간되지 않았는지 내심 궁금해진다. 그러한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나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같은 이전 제목과는 달리 이번 것은 채소나 동물이 의인화 되어있지 않다. 그냥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라....

 

 

그런 그런 이번 에세이도 여전히 천연덕스럽고 능청스런 익살과 해학이 있어 즐거운 독서가 가능했다. 우선 <리스토란테의 밤>을 들여다보자. “어느 특별한 밤에, 어느 특별한 여성과 아오야마의 어느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그래봐야 결국 아내와 결혼기념일을 축하한 것뿐이다. 뭐야아아, 시시하게, 시시하지 않나? 성격 급한 나는 이 문구의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고 “뭐야아아, 이 아저씨 어떤 여성을 만나 밀회를 즐긴 거야?” 라며 혼자서 엉뚱한 오해를 해버렸다.

 

 

근데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된다고, 결혼기념일에 아내랑 외식했단 결말에 초반부터 파안대소하였다. 그런 비도덕적인 시나리오가 버젓이 나올 리도 없지만 결국은 일부일처제에 대한 귀여운 푸념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어쩌면 기혼남들의 감춰진 응큼한 속마음을 짧은 문구 속에 숨겨진 반전과 경쾌한 해피라이프를 잘 압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키란 남자는 이런 사람이다. <리스토란테의 밤>의 그 뒷이야기는 기억에 남지 않는데 오직 서두만 기억에 남을 뿐.

 

 

<불에 태우기>는 또 어떤가? 소설가라는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이상한(쓸데없는) 일에 연연하는 인종이라고 자가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왜 또, 뭐 이런’ 같은 반응을 부르는 일에 신경을 쓰여 미치려고 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인용하는 일화가 70년대에 여성해방 운동을 부르짖던 페미니스트들이 그 주장의 일환으로 브래지어를 태운 일을 언급한다. 남자여서 그 물건이 속박하는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알 길 없어 불평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그냥 가던 길을 가지 않고 엉뚱한 발상을 그대로 전파해버린다. 새 것이었는지, 아님 착용하던 것인지에서 시작하여 다른 여성용품들은 왜 태우지 않고 브래지어만 희생양이 되었느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쓸데없는 잡설에 불과하다고 일축해 버린다면 하루키의 라디오 시리즈를 읽을 이유가 전혀 없을 것 같다.

 

 

그런 외전 격인 상상들은 소설가로서 집필을 하는데 있어 원동력이랄까 소재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이고 그 점은 일상의 정해진 루트대로 반복적인 경험과 할당된 목표에 대한 기능적 걱정에만 고착화 되어있는 나 같은 현대인들에게는 상상력의 부재나 고갈을 창의적인 발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자극의 계기로 삼을 만하다. 눈앞에 보이는 그 현상 이외의 사실에 대한 고찰과 확대 재생산이 전혀 없는 나를 일깨울만한 신선한 아이디어화 하고 싶다. 그래서 브래지어에 대한 이야기는 우스꽝스러운 농담이 아닌 진지하게 읽었던 것 같다. 한가해도 내 두뇌는 이미 굳어간다. 소설가들은 그래서 사고가 유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먹어본 적은 없지만 가키피란 일본식 과자가 있나 보다. 톡 쏘는 매운 맛의 감씨 모양과자와 통통하고 고소한 땅콩이 섞여있는 과자. 잘 배분하여 조화롭게 먹어야하는데 무슨 맛일까? 한 번 먹어보고 싶은데... 이 과자의 구성을 결혼생활에 비유하는 그 센스란... 위엄돋네. 감시가 ‘들이대는’역할로 공격적으로 치고 들어오면 땅콩은 ‘받아주는’ 역할을 맡아 그저 고개만 끄덕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받아칠 줄도 알아야 하는, 그야말로 핑퐁 같은 조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듣고 보니 결혼생활의 조화도 얘기하고 있는 거다. 땅콩을 좋아하는 아내에 투덜대면 가키피에 불균형이 발생하기 때문에 양자는 서로 협력하며 살아야한다는 것. 슬기로운 결혼생활을 위한 전제조건이자 배려이면서도 일부일처제에 대한 탄식을 잊지 않는 하루키식 해피 라이프는 언제나 솔직해서 좋고 공감백배라서 좋다. 이번에도 하루키의 에세이는 머릴 싸매고 분석 안 해도 되니 더 좋은데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그의 소설과는 여전히 담을 쌓고 싶다. 하지만 그의 유쾌한 에세이라면 언제든지 읽어주마. 대환영일세. 그리고 나도 바쁜 아침에 귀찮은데 전날 저녁에 면도하고 잘까? 나름 괜찮지 않을려나. 물론 다음 날 오후 늦게면 코 밑이 거뭇거뭇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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