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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1 - 송지나 장편소설 ㅣ 신의 1
송지나 지음 / 비채 / 2012년 12월
평점 :
언제고 그분이 떠나시는 날, 내손으로 보내드리기 위해...
그 웃음을 지키기 위해 내가 살아야겠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원작소설을 일부러 찾아본 적이 있는지? 암만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나의 경우에는 확실히 없다는 것. 두 번씩이나 동일한 작품을 형태를 달리하여 비교할 정도로 너그러움이 없기에 대개 한 번의 감상이면 족하다. 드라마 "신의"만 해도 그렇다. 이미 종결된 이 드라마에 방영초기 잠깐 관심을 둔 적은 있으나 무협 판타지에 타임 슬립을 소재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배경에서 어딘지 모르게 황당무계하면서 빈 그릇 같은 공허함이 느껴져 즉시 나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종영 이후 케이블에서 방영할 때 가끔씩 무료한 시간을 때울 겸 시청한 적은 있지만 꾸준하지 않았고 사실상 스토리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연을 끝내었다.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도 않게 원작소설로 다시 만나게 된다. 이미 알려진 대로 “신의”는 송지나 작가가 쓴 첫 장편소설이다. 송 작가 대본의 드라마 중에서는 "여명의 눈동자"를 예전에 미친 듯이 좋아한 적은 있지만 그녀의 드라마 원작소설은 처음인데 이거 예상했던 것 보다 흥미를 당길만한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해있어 읽는 즐거움이 상당한 소설이다. 그냥 기대 없이 읽은 소설이 기대 이상이었다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때는 서기 1351년 고려, 공민왕은 원나라의 볼모로 잡혀있다 고려의 새로운 왕으로 책봉되어 왕비인 노국공주와 함께 최영이 이끄는 우달치의 호위를 받으며 고려로 돌아오던 중에 자객들의 계속된 습격을 받는다. 아무래도 고려와 원나라 사이를 이간질시키기 위한 암살시도인 것 같고 표적은 원의 공주인 노국공주인 듯하다. 악전고투 끝에 자객들의 암습에서 왕과 왕비의 목숨을 지켜내긴 하지만 왕비는 외상을 입고 만다. 최영은 공민왕으로부터 천혈로 가서 왕비를 치료할 하늘의 의원을 모시고 돌아오라는 어명을 받고 2012년 서울에서 의학 세미나 중인 성형외과 의사 유은수를 만난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른 시도 끝에 그녀를 강제로 납치하여 과거의 고려로 데려오면서 시공을 초월한 역사 거꾸로 보기가 시작된다.
소설을 읽다보면 뜬금포처럼 시청했던 드라마의 영상들이 파편처럼 뇌리에 각인되면서 그때 그 장면들이 담고 있던 배경과 상황 설명들을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림이 아니라 섬세한 감정라인들이다. 눈으로만 확인했던 인물들의 동선에 가려 미처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인물들의 내면적 고뇌와 심리묘사는 왜 드라마보다 원작소설인지 수긍하게 되는지 알게된다. 글을 영상으로 옮기는데 있어서 시각화는 가능하나 머리와 감성을 충실히 재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안다.
그래서 소설은 덤덤하게 읽히다가도 한번 씩 마음을 울컥하게 뒤흔드는 대목들이 나오는데 최영, 유은수, 공민왕, 왕비, 기철까지 모두 다섯 명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역들의 시점과 심리가 교차로 전개된다. 그들의 속사정... 원의 내정간섭에 보국안민을 펼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진 왕들은 자주 교체되면서 신하와 백성들의 신망을 잃은 지 오래인지라 충절의 대명사인 최영에게도 왕에 대한 충성심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유은수는 얼떨결에 과거로 떨어져 역사라는 태풍의 한가운데 놓이면서 좌충우돌하지만 기죽지 않고 입담 쩌는, 당찬 현대여성이자 현대의술을 시전하며 의선으로 불리는 사람, 공민왕은 힘없는 나라의 새로운 군주로서 아직 자신의 소신을 펼치지 못해 자학하고 있는 나약한 사람, 공민왕을 연모하여 스스로 그의 여인이 되고자 자청한 원나라 위왕의 딸 노국공주, 내공을 익힌 절세고수이자 고려를 직접 통치하기보다는 왕을 무릎 꿇려 조종하는 것에 더 관심 많은 야심가 기철까지, 이들이 펼쳐가는 판타지의 출발이 이제 시작되려 한다. 일단 시작의 느낌이 좋다.
작가가 일부러 드라마를 그대로 베끼듯 똑같이 집필하진 않을 것 같고 분명 드라마에서 시스템상 한계에 부딪쳐 미흡했던 부분들을 소설을 통해 마음껏 보완내지 그 이상의 완성도를 만들어낼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든다.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완전비교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은 사실상 새로운 도전이다. 그래서 이제 2권으로 돌입!!!